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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평점 :
학수고대했던 박완서님의 신작이 나왔다. 들뜬 마음에 배달되는 단 2일의 짧은 시간동안도 넋놓고 기다리기 힘들어서, 알라딘의 해당 마이리뷰들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죽여야 했다. 책은 박완서님이 약 5년동안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단편집 형식으로 되어있었다. 박완서님의 소설은 장편소설 위주로만 읽어왔던 터라, 나에게 단편집은 뭔가 새로운 면이 있었다.
각 단편들은 주로 쉰살 이상의 중장년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얼굴이 반반하고 야무지지만 운복이 없어서 고단한 삶을 사는 동생을 이것저것 도와주면서 특권의식을 느끼던 노인, 젋은시절 첫사랑 남자를 지긋한 나이까지 잊지 못해 끝내 집까지 찾아가보는 노인, 이른 타국생활로 어느정도 유복한 생활을 해온 노인, 아들내외와 가까이 지내보려고 하나 뜻대로 잘안되는 노인, 유방암으로 시한부인생을 살고있는 노인, 뜻하지않았던 결혼생활 끝에 중풍걸린 남편을 수발하는 어느 노인 등이 바로 이 소설책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각자가 그들만의 독특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사연들이 비 일상적인 것들은 아니다. 우리 주변, 즉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비교적 일상적이고 대표적인 사연들인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꺼내다가 자식들 대학 다 보내고, 결혼 시켜놨더니 다들 지들 살 궁리만 하는 자식들, 60-70년대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땅을 밟았지만 황혼에는 고국이 그리워 다시 돌아오는 노인분들,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수 없이 많이 늘어난 다양한 성인병들로 고통받는 노령의 환자나 그 가족들 등등이 바로 그 것이다. 박완서님은 이렇듯 특유의 감칠맛나고 구수한 문체로 소소한 노령의 일상들을 맛있게 그려내는 동시에 한국사회의 노인문제들을 조망해 보고 있다.
한국의 노인세대들 처럼 한 평생 동안 큰 변화를 겪어온 경우도 드물 것이다. 한국의 노인세대는 일제식민지기간 동안 일제에 핍박받으며 고국의 처참한 불운을 비탄하였고, 설상가상으로 광복 후 같은 민족끼리 피튀기며 싸운 골육상잔의 비극과 전쟁의 참화속에 피붙이들이 찢겨져 나가는 이산의 고통을 겪으셨으며, 60-70년대엔 찢어지게 가난한 경제상황속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잘살아보겠다고 이악물고 일하셨고, 80-90년대는 불의에 항거하여 화염병과 몽둥이를 들고 자유를 위해 총검에 맞서 싸우셨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놓은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혜택은 노인세대들에게 참 냉정한 것이 사실이다.
서양식 개인주의와 핵가족화에 물든 젊은 세대들은 노인들을 모시지 않는 것은 무슨 당연한 일인 마냥 생각하는 현실, 그렇게 버림받던지 또한 가난한 노인세대들을 수용할 경제적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며, 고령화사회랍시고 노인인구의 증가를 위협적인 세태로 보는 자들 등등 현재 한국사회는 한국을 이태까지 이끌어온 노인세대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분명한 실상이다.
소설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그래도 해피엔드'의 마지막 대목에선 따듯하게 노인을 배려하던 깍듯한 청년을 등장시키며 주인공 노인은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네" 라고 다소 엉뚱한 소리를 한다. 마지막 작품에서 박완서님은 한국사회의 노인세대에 대한 냉정한 대접을 간접적으로 꾸짖으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보다 따뜻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