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변수가 등장했지만, 아직 우리는 매스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다.

TV나 라디오를 통해 세상의 정보들을 접하고, 때로는 울고 웃는다.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큰 만큼 매스미디어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의 영향도 크다.

당연히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최일선에 서 있는 프로듀서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요즘 잘 나가는 PD 2명의 책을 읽었다는 얘기를 하려고 그랬다.

 

김진혁과 이재익.

TV와 라디오라는 매체가 가장 큰 차이겠다.

하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일단 둘 다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이고, 9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만큼 프로그램의 가장 큰 미덕은 의미나 가치보다는 재미라고 생각하는 점도 닮았다.

 

 

 p34. 어떻게 해서든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만드는 힘, 근성과 노력이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 천재들의 방식은 직관에 의존하는데, 직관이란 날뛰는 망아지와 같아서 그 힘은 무시무시하나 그 힘만으로 트랙을 끝까지 완주하기는 어렵다.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다. 학창 시절에 자주 들은 말도 떠오른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며칠 밤을 새우며 머리를 쥐어뜯고 코피를 쏟았던 무용담은 퇴근하고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중요한 것은 아침에 누가 더 빛나는 결과물을 꺼내놓느냐다. 곱씹을수록 무서운 말이다.

 

 

 

 

 

 p32. 그저 단순한 사실만을 말하고 그 사실이 내포한 메시지는 시청자 스스로 찾고 해석하도록 한다.

 

 p149. 어떤 대상을 꾸짖을 때 이는 제작진이 꾸짖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꾸짖는 것이며, 다시 말해 언론에 비판의 기능을 일임한 국민들이 꾸짖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에게는 직접 꾸짖는 역할이 아니라, 국민의 꾸짖음을 '전달'해주는 역할만 있다.

 

p178. 시청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프레임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프레임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시청자는 최소한 한 가지 잘못된 프레임만으로 사실을 접할 때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다.

 

- 김진혁은 EBS를 떠나 한예종 영상원 교수로 부임한다. 우리 언론에 표현의 제약이 상존함을 또다시 확인한다. 다큐 제작 PD를 갑자기 수학교육팀에 보내다니... 왠지 창조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통섭을 노렸을 것이다, 물론. 방송 현장에서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로 한 결정이라면 기꺼이 격려하고 싶다.

 

 

 새로운 재미와 새로운 관점. 둘 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재익보다는 김진혁의 프로그램을 더 좋아하지만... 그래서 너무 티는 안 낼 생각이다. 그래도 얼굴에 다 써 있겠지만 얼굴 보는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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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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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꺼내어 다시 읽었다. 세월이 흘러 종이색이 조금 바랬다.

이 책을 보면 항상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시간이 흘러 먹먹함이 조금 덜하다.

 

개인주의의 아메리칸 드림은 한때 세계경제 성장의 추동력이었다.

하지만 빈부 격차, 환경 오염, 문화 충돌 등 현재 세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가 늘어나면서

'오늘의 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것에 대한 반성이 시작되었다.

바로 공동체 중심의 유러피언 드림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유럽 통합 과정에서 그 이상을 어느 정도 실현하는 듯했으나

경제 위기로 인해 EU 탈퇴나 해체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면서 잠시 멈춤 상태이다.

하지만 유러피언 드림의 정신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효한 가치이다.

유러피언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 모두가 인식하고 지향해야 하며

막연한 꿈으로 내버려두지 말고 단계적 실천을 통해 현실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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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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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맛. 파김치의 맛.

어른이 되면서 느끼는 큰 변화 중 하나는 어릴 때 입에 대지 못했던 꽤 많은 음식을 즐기게 됐다는 것이다.

어려서 맛있게 먹던 음식은 지금도 여전히 맛있다. 그래서 어려서 도무지 맛이라곤 없던 음식은 계속 맛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어느날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나온 파김치가 왠지 먹음직스러워 보여 조금 덜어 입에 넣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고... 조금은 걱정도 하면서... 그런데...

맛있다. ... 그것도 꽤...

마치 달래무침-어릴 때는 달래도 먹지 못했다-이 연상되는, 쌉싸래하면서 짭쪼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왜 이제까지 이 맛을 모르고 있었지?' ...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참 어렸었기 때문에... 뭘 몰랐었기 때문에...

 

어느날 포근한 안식을 주던 내 집이... 항상 사랑스럽던 아내와 딸이... 다른 집으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도 감당하기 벅찬 낯선 변화가 불쑥 자신을 찾아왔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암 발병이라는 가혹한 변화를 겪으며 최인호가 기록한 자기 고백이다.

어느날 다른 맛으로 입 속에 찾아든 파김치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색다른 인생의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비보가 들렸다. 최인호 작가가 먼 길을 떠났다는...

하지만 암이라는 불청객을 만난 이후로

담담히 자기 안으로 침잠하여 본연의 업인 글쓰기에 전념했던 작가의 마지막 삶은

먼 길 떠나는 소중한 친구와 헤어지면서 몇 걸음 떼어놓고 뒤돌아보던 ... 그런 아쉬움으로

잊은 듯 잊지 않고... 오래오래 소중히 기억될 것이다.

 

이문구, 이청준, 최인호 ... 그리고 언제나 애틋한 김소진.

글로 삶을 대신한 작가들 ... 편안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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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이재익 장편소설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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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라디오 PD로 유명한 이재익은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에서 밝혔듯이 소설에 관한 한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가다.(이 책에서 <41>의 영화 제작이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주관대로 캐스팅도 해보았다. 정태 - 설경구, 제훈 - 이제훈, 시윤 - 이수혁 ... 제법 괜찮다.)
<41>에서도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몇 가지 장치-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봐서 익숙한-가 마련되어 있다.

1. 몇 년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연쇄 성폭행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소설이 역사의 공백을 보완하는 미시적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소설은 한때 당대의 현실보다는 거대 담론에 집착하는, 관념소설의 성격이 강했다.

'지금, 여기의 삶'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도가니>나 <41> 같은 소설은 가치가 있다.

2. 현직 라디오 PD답게 라디오 프로그램이 사건 전개와 분위기 형성에 매개가 된다.

주 검사를 도와 미나를 괴롭혔던 주동자들을 처단하는 인간 병기 시윤은 바텐더 혜나와 <깊은 밤의 서정곡>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비오는 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날 밤에 살인이 일어나는 설정을 연상시킨다.

3. <투캅스>, <라디오스타> 등에서 흔히 보던 버디 무비의 흥행 공식을 따라간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 정태와 논리로 승부하는 섬세한 제훈의 조합이 그것이다.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해 결국 끝을 보고 마는 형사 정태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하다. 전도 유망한 야구선수(투수)였으나 고등학교 때 승부욕에 불타 어깨를 혹사했다.(이재익의 전작에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던 캐릭터이다.
4. 법치에 맞서는 사적 징치의 정당성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았다. 강간이나 살인 장면 묘사는 적절히 절제한 노력이 보인다.
자극적인 요소를 더 부각했다면 소설은 지향점을 잃고 과유불급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소설의 효용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제시되는 당의정 이론을 들자면 약보다는 설탕옷이 주가 된 느낌이다. 주제의식이나 작가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과 소설의 재미 중에 이재익이 어느 쪽을 중시하는지 이해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꽤 재미있는 킬링 타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41>을 읽으며 아쉬움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소설 전반에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젊은 나이에 도심에 건물을 소유할 정도로 자신의 이익에 충실했던 주 검사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지난 과오를 반성하면서 법 대신 사적인 복수를 선택한다는 것.

의료사고로 숨진 의대생 동생의 복수를 도와준 주 검사를 돕기 위해

특전사에 입대하여 자신을 살인 병기로 변신시키는 시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의외로 허술한 결말.

그토록 치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던 시윤이 출국 전날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사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움직이며 잠복하다가 마지막 날 우연히 시윤과 마주치는 설정.

시윤과 재훈이 첫 대면할 때도 완벽을 추구하는 시윤이 모자를 떨어뜨리고 가더니...

마지막 범행 현장에서 시윤이 범인임을 확신한 정태가 이미 출국한 시윤을 쫓아 팔라우로 떠나는 것이

긴장감은 떨어지더라도 그나마 수긍할 수 있는 덜 작위적인 결말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소설의 효용에 대한 판단은 작가마다 다를 것이다.

어쩌면 소설에 대한 진부한 선입견이 재미를 잃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고 있는 <꽃잎처럼>과 <봄날>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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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 역사를 담은 건축, 인간을 품은 공간
서윤영 지음 / 궁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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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내용이 도무지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배경지식이 부족해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문장이 엉망이어서 내 나름대로 의미를 재조합해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내용이 다소 어렵더라도 깔끔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기쁨을 넘치게 선사해준다. 이 책은 건축을 키워드로 삼고 있지만 건축과 관련된 인접학문-역사와 철학, 문화인류학 등-의 정보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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