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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이재익 장편소설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SBS 라디오 PD로 유명한 이재익은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에서 밝혔듯이 소설에 관한 한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가다.(이 책에서 <41>의 영화 제작이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주관대로 캐스팅도 해보았다. 정태 - 설경구, 제훈 - 이제훈, 시윤 - 이수혁 ... 제법 괜찮다.)
<41>에서도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몇 가지 장치-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봐서 익숙한-가 마련되어 있다.
1. 몇 년 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연쇄 성폭행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소설이 역사의 공백을 보완하는 미시적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소설은 한때 당대의 현실보다는 거대 담론에 집착하는, 관념소설의 성격이 강했다.
'지금, 여기의 삶'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도가니>나 <41> 같은 소설은 가치가 있다.
2. 현직 라디오 PD답게 라디오 프로그램이 사건 전개와 분위기 형성에 매개가 된다.
주 검사를 도와 미나를 괴롭혔던 주동자들을 처단하는 인간 병기 시윤은 바텐더 혜나와 <깊은 밤의 서정곡>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된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비오는 날,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날 밤에 살인이 일어나는 설정을 연상시킨다.
3. <투캅스>, <라디오스타> 등에서 흔히 보던 버디 무비의 흥행 공식을 따라간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 정태와 논리로 승부하는 섬세한 제훈의 조합이 그것이다.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해 결국 끝을 보고 마는 형사 정태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하다. 전도 유망한 야구선수(투수)였으나 고등학교 때 승부욕에 불타 어깨를 혹사했다.(이재익의 전작에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던 캐릭터이다.
4. 법치에 맞서는 사적 징치의 정당성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았다. 강간이나 살인 장면 묘사는 적절히 절제한 노력이 보인다.
자극적인 요소를 더 부각했다면 소설은 지향점을 잃고 과유불급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소설의 효용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제시되는 당의정 이론을 들자면 약보다는 설탕옷이 주가 된 느낌이다. 주제의식이나 작가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과 소설의 재미 중에 이재익이 어느 쪽을 중시하는지 이해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꽤 재미있는 킬링 타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41>을 읽으며 아쉬움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소설 전반에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젊은 나이에 도심에 건물을 소유할 정도로 자신의 이익에 충실했던 주 검사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지난 과오를 반성하면서 법 대신 사적인 복수를 선택한다는 것.
의료사고로 숨진 의대생 동생의 복수를 도와준 주 검사를 돕기 위해
특전사에 입대하여 자신을 살인 병기로 변신시키는 시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의외로 허술한 결말.
그토록 치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던 시윤이 출국 전날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사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움직이며 잠복하다가 마지막 날 우연히 시윤과 마주치는 설정.
시윤과 재훈이 첫 대면할 때도 완벽을 추구하는 시윤이 모자를 떨어뜨리고 가더니...
마지막 범행 현장에서 시윤이 범인임을 확신한 정태가 이미 출국한 시윤을 쫓아 팔라우로 떠나는 것이
긴장감은 떨어지더라도 그나마 수긍할 수 있는 덜 작위적인 결말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소설의 효용에 대한 판단은 작가마다 다를 것이다.
어쩌면 소설에 대한 진부한 선입견이 재미를 잃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고 있는 <꽃잎처럼>과 <봄날>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