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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누아르 ㅣ 달달북다 3
한정현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평점 :

기간 : 2024/09/01 ~ 2024/09/01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보고 잠시 갈등했다.
출판사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인데, 한정현이라는 저 소설가는 내 기억으로는 나와는 그다지 취향이 맞지 않는 소설가였기 때문이다.
'줄리아나 도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와 같은 소설은 들어본 적도 있고 도서관에서 본 적도 있고 낯설지는 않지만, 퀴어라는 장르가 나에게는 낯설다라는 표현을 훨씬 넘어서 매우 네거티브적으로 느껴진다.
종교적이라던가 보수적이라던가 등등의 이유는 결코 아니다.
그저 많은 AIDS 환자들을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스탠스가 생긴것 같다.
단언컨대 내가 여태 만난 모든 남자 AIDS 환자들은 99%도 아니고 100% 자신들의 성행위에 대해 후회한다.
뭐 구지 성소수자들을 구분해서 남자냐 여자냐 트랜스젠더냐 등등 나누자면 게이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하는게 정확한 답이겠지.
아무튼 내 취향이 이러하기 때문에 과연 저 작가의 소설이 나와는 잘 맞을까 주저하기도 했지만, 출판사를 믿고 보기 시작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87년이다.
서울에 대한 묘사가 직설적이면서도 강렬하고 또 한편으로는 수긍하게 만든다.
난 물론 저 시기 이후 10년 뒤에 서울에 올라갔긴 하지만, 내가 받은 서울에 대한 첫 느낌도 매우 강렬했고 그때 당시의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기차역까지 배웅해주신 부모님, 무궁화호 기차 안에서 까먹던 엄마가 싸준 간식들, 깜빡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보이는 서대전역 간판, 늦은 밤 서울역 앞의 모습, 경찰서, 대우빌딩, 연세빌딩,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하염없이 그저 멍하니 누나만 기다리던 내 모습.
그러고보니 이 날 이후로 난 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여태까지 따로 살았구나.
울컥해지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때 내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살이 떨어져나가는 기분이였을까?
서울이 나와 내 부모 사이를 갈라놓은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내가 그때 고집 부리지 않았더라면 내 부모는 나와 좀 더 오래 같이 살지 않았을까?
공교롭게도 지난 주말에 학회 일정으로 서울에 다녀왔다.
기차에서 이 책을 읽었다.
감회가 새롭다는 상투적인 말로 표현하기가 좀 그렇다.
무슨 말이 어울릴까.
세월이 이렇게나 흘러가는 것에 대한 허무? 서글픔?

이때는 다 저랬나보다.
우리 엄마도 산골짜기 시골 가난한 집에서 2남3녀중 막내딸로 태어나, 이미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공부는 곧잘 했으나 그 당시 여자 아이가 대학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이였겠는가.
여상을 졸업하고 엄청나게 큰 대도시 부산에서 취작해 경리로 일하다 우리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 엄마는 미쓰 황일때 뭐가 되고 싶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남영동 하면 다 저런 모습들이 떠오르나?
영화 때문일까?
난 지금까지도 남영동 하면 행복했던 첫사랑의 기억밖에 없다.
모닝글로리, 조흥은행, 전자오락실, 신포우리만두, 자유시간, 모래시계, 수많은 기억과 추억이 스쳐지나간 카페와 식당들.
왜 그렇게 그때 그 언덕길 오갈때는 힘들지도 않고 설레이기만 했던지.
나에게 이 책은 칙릿이 아니였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칙릿에 대한 작가의 설명을 읽어보니 뭐 대충 칙릿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딱히 이 소설이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칙릿에 대해 관심도 없을 뿐더러,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20살때,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를 너무나도 인상 깊게 봤고 한참동안이나 여운이 남아 수많은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고, 그 이후 학교에 공지영 작가가 찾아와 특별 강연 비슷한 그런걸 한다 해서 맨 앞자리에 앉아 황홀경에 빠져 강연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어디가서 뭐 이런 쪽으로 절대 내가 떨어지진 않는다는 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얇고 짧은 단편 소설이 나에게는 칙릿이 아닌 기억과 추억으로 읽혀졌다.
뭐 어때? 작가가 칙릿으로 썼다고 다 칙릿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잖아?
엄마에 대한 사랑, 첫사랑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읽혀졌으니 나에겐 진정한 의미에서 '러브 누아르' 일수도 있지.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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