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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아송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1) 중국의 지식인이 직면한 실존적 상황은 무엇인가? 나아가 지식인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중국에서 가지는 뉘앙스는 우리나라의 지식인에 대하여 같은 질문을 던질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방침에 의해 모든 것이 철저히 감시되고 통제되며, 학문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에도 당관계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당의 방침에 의해 교수들의 연구가 진행되거나 활동이 평가되고, 당의 정책과 상황에 따라 학문의 장려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인기없는 학문이 쇠퇴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이 소설41쪽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지디피가 십 퍼센트 성장했을 때에는 내가 발표한 논문들이 활자만 있고 원고료는 없는 처지가 되었다.
...원래는 문과 중에서도 힘들기로 유명한 고전문힉 수업이 얼마 전 '시경'해독을 가르치기 위해 내가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가난한 집에 영광스러운 일이 생긴 것만큼이나 대단히 인기있는 강의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경'으로 대표되는 고전문학 수업은 이 사회의 미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인문학이 소외받는 현실을 그리려는 것은 아니다. 옌롄커는 그의 소설 「풍아송」에서 ‘지식인’이자 중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소설 속 칭옌대의 교수인 양커의 경험을 통해, 중국에서 지식인이 처한 좀 더 근본적인 상황과 실존적 문제에 대해 접근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이 소설이 왜 ‘지식인’의 문제라는 범주로 다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즉, 이 소설이 양커라는 인물을 통해 포괄적인 중국의 사회상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개인의 정신적인 체험에 집중하여 이 소설을 감상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실 이 소설 중에서 지식인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대학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그려낸 것은 앞부분 3분의 1정도이며, 마지막 부분에 양커가 다시 대학에 나타남에 의해 잠시 교수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작품의 나머지 3분의 2는 고향에 내려간 양커가 고향의 주민과 겪는 일들, 젊은 시절 정혼했던 링쩐과의 만남, 천당 거리에서 만난 어린 여성들과의 일화 등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식인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는 틀에 이 작품을 가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이 적확하지 않은 이유는 양커가 고향에 내려가서도 '지식인'으로서 마을사람들과 조우했으며, 링쩐을 만나거나 몸을 파는 여성들과 이야기할때도 변함없이 '지식인'으로서 행동하고,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즉, 양커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전면에 내보였으며, 이 지식인이라는 의식은 그를 '공부 좀 한 이웃 아저씨'로 머물 수 없게 한다. 그는 일반 농민이나 시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식인'이므로 그가 머리를 쓰다듬은 아이는 대학에 합격할 거라고 동네 주민들이 믿을 정도이다. 또한 그는 수도 명문대의 교수라는 이유로 천당 거리의 가게들에서도 특별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중반 이후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양커 자신이 '지식인이자 교수'라고 자신을 타인과 구분하는 경향이 커지고, 자신은 특별하므로 자신을 멸시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격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양커가 갓 결혼한 샤오민의 남편을 목졸라 살해하는 장면에서 광기에 가득찬 모습으로 나타난다.
...누구든지 지식인을 쉽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p.477)
이것은 샤오민의 남편을 죽인 후에 양커가 흥분하여 내뱉은 말이다. 양커는 지식인인 자신을 화나게 하는 이 목수(샤오민의 남편)를 살해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양커의 의식 속의 지식인이란 것은 어떤 초월적인 권리가 있는 것인양 상정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식인은 일반인과 다른 그 무엇이며, 일종의 주술적으로 고양된 개념으로 여겨지는 데에 기인한다. 지식인 문제가 이 소설에서는 근본적으로 양커의 자기규정의 문제이자, 주위에 의한 규정의 문제인 것이다.
(2) 필자는 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지식인에 대한 문제로서 1) 교수 사회의 부패와 같은 현상적인 문제와 2) 소설에서 지식인이 지식인으로 존재하는 방식의 구조적인 면에 내재하는 문제, 이 두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1)은 위 (1)에서 언급한 '중국의 지식인이 직면한 실존적 상황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연관되고, 2)는 (1)에서 말한 '지식인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좀 더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두번째 문제이다.
(3) 양커는 원래 평범한 학자였다. 시경을 연구하며 그동안 쓴 대작인 '풍아지송-시경 정신의 근원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펴내어 자신의 뛰어난 업적이 인정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즐거워하던 사람이다. 문제가 있고 부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주위의 학자들이었다. 자신의 아내인 자오루핑은 원래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고, 학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서 각종 편법을 써서 교수가 되었다. 그녀가 가르치는 것들의 내용도 조야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그녀는 학교의 부총장 리광즈와 정사를 벌이다 양커에게 현장에서 들키기도 한다. 그리고 양커는 6.4학생운동기념일에 (전혀 다른 일로) 학생들과 행진하다가 신문에 실리게 되고, 이 사건으로 당국의 추궁을 받게 될 것이 두려운 동료교수들에 의하여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순수한 학자인 양커가 부조리한 대학 사회와, 동료학자인 부인과 리광즈에 의하여 받게 되는 고충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소설의 첫번째 부분으로서 양커가 일종의 피해자로 제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커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여 고향인 바러우산맥 끝자락의 마을로 향하는데, 여기에서부터 내면에 변화를 겪는다.(엄밀히 말하자면 변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현재 그는 아내인 리핑에 대한 배신감과 동료교수들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상태이다. 고향에는 양커를 평생 진심으로 사랑한 링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양커의 집이 있는 첸스촌에는 식당이나, 약국, 이발소 등으로 영업하면서 동시에 몰래 성매매를 하는 가게들이 모인 '천당 거리'가 있었다. 양커는 '천당 거리 때문에 나는 내 집이 있는 첸스촌에 오랫동안 머물기로 마음먹었다.'(p.243) 그렇지만 천당 거리에 가서 여러 가게를 들르고 매번 가장 어린 여종업원을 부르지만, 성적인 관계는 맺지 않고, 그냥 돈을 주며 이런 일을 그만 두고 고향에 내려가라 타이른다. 설이 되자 양커는 수도에 다녀온다고 거짓말하고, 천당 거리에 가서 설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많은 여종업원들과 며칠을 보낸다. 그러나 이 때에도 (괴상하지만) 옷을 다 벗은 여자들 앞에서 시경을 강의하는 식으로 시간을 즐긴다. 이 때 링쩐은 양커가 천당 거리에 갔다는 말을 듣고 수면제를 먹고 세상을 뜨지만, 그녀의 헌신적인 마음이 알려지게 되고 장례식 때 모여든 나비떼들이 아름답게 눈내리는 날을 장식하는 장면으로 두번째 부분이 끝난다.
마지막 부분인 세번째 부분에서 양커의 의식은 점점 이상해진다. 죽은 링쩐의 딸인 샤오민에게서 링쩐의 젊은 시절 모습을 발견한 그는 샤오민에게 욕정을 느낀다. 샤오민을 '링쩐'이라고 칭하며 양자를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양커가 머리를 쓰다듬어준 아이들이 아무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자, 아이들의 부모는 양커의 집에 와서 당연하다는 듯 물건을 가져간다. 양커는 충격을 받는다. 또, 그는 샤오민과 결혼을 꿈꾸지만, 샤오민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괴로운 양커는 샤오민의 결혼식 날 천당 거리에 가서 즐기고 오는데, 이 사실이 마을에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는다. 이런 사건들의 결과로 이성을 잃은 양커는 신혼 첫날밤 샤오민과 정사를 나누던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고 도망가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도망가서 그가 찾게 된 것은 시경의 고성으로서, 이는 시경학상 엄청난 학술적 의의를 가진 유적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양커는 지식인으로서 그가 평생 연구한 것은 '시경'이다. 그의 노작 '풍아지송'은 그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칠 때에도 챙긴 것으로서 그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가 도망자가 되어 도착한 곳이 바로 시경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결국 그가 학문에 의해 일종의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선 속세와 초연한 학문을 추구하는 것이 양커가 가야할 길인 것일까? 사견으로는 이 국면에서 양커가 처한 상황은 오히려 문제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4) 양커와 일반인을 구분한 것은 '지식인'이라는 타이틀로서, 지식인은 아이의 머리만 쓰다듬어도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여겨졌고, 지식인은 천당 거리 같은 성매매업소에 출입해도 안되었다. 이것을 어기면 일반인은 지식인의 재산을 약탈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즉, 지식인이란 것은 모종의 구속과 의무를 지는 것으로 상정되고, 이것들은 그가 누리는 특권과 사실상의 권리의 이면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권리와 의무가 지식인 개념에 대한 이해와 정합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적 배경과 신화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 근거한 억견과 연결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런 틀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소설에서 양커가 겪는 문제상황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양커 자신도 자신을 (이 구조를 벗어나지 않은)'지식인'으로서 규정하고, 다시 칭옌대학에 가서 자신의 대발견을 이야기할 때에도 이러한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진리추구를 위한 활동에 따르게 되는 고귀한 가치에 대한 인식 이전에, 지식인의 인격과 일체가 된 '고귀함'이 진리 이전에 미리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인의 신화'는 과거에 왕조시대에서 학문이라는 것이 입신양명의 수단이기도 했고, 급제한 이는 곧 권력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과, 신분제 등에 의하여 형성된 고정관념에 의해 강화된다. 그러나 지식인이 부당히 의무를 지지 않으려면 동시에 부당하게 특권을 행사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5) 양커는 천당 거리의 아가씨들과, 새로 합류한 노학자들과 함께 시경의 고원에서 일종의 이상적 공동체를 만들며, 여기에선 '오줌 갈기기'로 동침할 남자와 여자를 고른다. 이런 상황은 양커가 평생 연구한 시경 정신의 근원을 어느정도 현실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결말에 이르러서 우리는 공동체 구성원 간에 있어서, 자기규정과 타자에 의한 규정이 교착된 상태를 벗어난 정돈된 상태를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시경 정신의 근원, 원시적 창조력과 생명력의 충만은 지식인이라는 규정이 지니던 도착적 상황도 자연스레 해결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