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짙은 안개가 끼었다. 저 안개 너머로 은은하게 파란빛이 보인다. 몽롱한 상태에서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주위에서 비린내가 난다. 안개 사이로 걸어가자 쓰러진 사람들이 보인다. 주위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갑자기 나를 향해 파랗게 변색된 손이 나타나고 난 암흑 속으로 빠져든다…….
어젯밤에도 잠을 설쳤다. 꿈에서 나타난 것에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벌써 세 번이나 같은 꿈을 꾼 것이다. 꿈속에서 나에게 다가온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극히 어둡고 사악한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봄날 아침의 햇살은 따사롭기 그지없었고, 꿈의 잔상은 햇빛과 함께 조금씩 사라져갔다.
독일에서 보내는 두 번째 봄이다. 미술사를 전공하기 위해 독일을 선택했을 때만 하더라도 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사실 그저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2년 전, 사랑에도 실패하고, 좋은 친구 두 명도 세상을 달리하자 난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느꼈다. 술은 더욱 마음을 황폐하게 했고, 나는 조금씩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어갔다.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은 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이곳을 떠나 책에만 몰두하자는 거였다. 그러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몰라도 과거의 기억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2년째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내 마음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학교 도서관으로 공부를 하러 집을 나섰다. 걸어가는 도중에 신문도 하나 샀다. 하루 중에도 여러 번 날씨가 변하는 독일이지만 오늘은 유달리 햇살이 따사롭고 날은 밝았다. 그러나 이따금 볼 수 있는 밝은 빛들은 이곳에선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밝음이란 어떤 의미에선 공포와 연결된 것일까. 과거의 미술가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 내가 논문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이곳의 중세 종교미술작품들을 보아도 이따금 신의 밝은 영광과 공포가 결합된 모호한 정서가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이런 정서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여러 권의 책을 서가에서 뽑아서 열람용 책상에서 뒤적이고 있다. 이번엔 내가 그동안 잘 몰랐던 화가들의 작품집을 골랐다. 500년도 더 전에 그들이 꾸었던 꿈이 고스란히 현실 속의 화폭에 옮겨져 있었다. 비잔틴 미술가들의 꿈, 브뤼겔의 꿈, 그리고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꿈들……무심코 도록을 보다가 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왜 내 꿈속에서 본 것이 여기 그려져 있는 걸까?
삼면화 <쾌락의 정원>의 세 번째 그림에, 꿈에서 본 파랗고 징그러우며 무시무시한 그 존재가 기분 나쁘게도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의 주위에는 역시 꿈속의 장면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참하고 괴기스러운지, 그들이 만들어내는 지옥의 괴성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헐레벌떡 그 책을 대출하고 도망치듯 도서관을 나왔다. 빵을 사먹고 잠시 조용한 벤치에 앉아서 오늘 산 신문을 보았다. 주위 공기가 무거워졌고, 금세 어두워졌다. 나는 일어나 걸었다. 가까운 곳에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걱정되어 가까이 가보았지만 생존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짙은 안개가 도로를 감쌌다. 뒤에 인기척이 있어서 돌아보자 악몽속의 괴물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고……나는 놀라 잠에서 깨었다. 벤치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신문에는 하이델베르크 교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소식이 보였다.
햇살이 화창한 날에 이어 연이틀 비가 계속 내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며칠의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꿈을 꿀 때, 그 푸르스름한 형체는 내 머릿속에 분명히 있었다. 내가 깨어 있으면 그것은 어느 곳에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향해 사악한 손길을 뻗고 있었다.
나는 책을 들고 카우프만 교수를 찾았다. 중세철학과 서양신비주의의 권위자인 그에게 무엇이라도 물어보지 않고선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불쑥 찾아가는 것은 실례를 범하는 것이었지만 사람 좋은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헤어 킴(Herr Kim). 자네가 본 것이 바로 이것이었나?”
카우프만 교수는 책장에서 큰 책을 펴고 그림 몇 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도 역시 내가 꿈에서 본 것과 놀랍도록 비슷한 것이 그려져있었다.
“이것이 바로 제 꿈에 나타난 것의 정체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네.”
“무슨 뜻인가요?:
“이것들은 모두 그림일뿐이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라네.” 카우프만 교수는 안경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고대로부터 온 악마나 괴물은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 고대부터 이런 괴물들에 관한 증언이 많이 있었지만 말이야.”
“고대부터 있었다고요?”
“그렇다네. 고대의 신화나 괴기스런 이야기가 다 거짓은 아니라네. 고대인들에겐 오히려 이것이 사실에 가까운 기록이었지.”
"여기에 대해 혹시 참고할 책이 있을까요? “
“이전에 이에 대해 학위논문을 쓰던 학생이 있었지. 한스 슈타버(Hans Staber)라고…….참으로 뛰어난 학생이었어. 그는 인간 역사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이 정체모를 존재들을 연구했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들이 일종의 ‘툴파’라는 것이야.”
“툴파라고요?”
“우리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보면 꿈에서 그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지. 인간의 사념이 아주 강해지면 그 생각이 투영된 대상은 때로는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네. 툴파란 이 현상의 티베트식 이름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굳게 믿어온 것이라면 그 사념은 얼마나 강력한 것이겠나. 티베트에 설인이 목격되었다는 말이 많이 있네. 그러나 실제 증거물은 발견되지 않았어. 그것은 이 설인이 툴파이기 때문이라네. 존재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거듭하는 거야. 그러다 사람들의 생각에서 독립해서 스스로 존재하게 되는 거라네.”
“그렇다면 제 꿈속의 괴물은 툴파란 것이죠?”
"그것이 툴파이든 아니든 그렇게 믿지 않기를 바라네. 그것의 존재를 믿는 순간 그것은 더욱 강해지는 거야. 그것의 이름도 붙이지 말게.”
“그럼 이것들이 지금도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실제로 독일의 각종 사고의 생존자들이 많은 증언을 남겼지.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경찰에서도 따로 파일을 만들고 있어. 바람직하지 않은 대응방법이지만 말이야.”
“한 가지만 더 여쭈어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 연구하셨다는 그 한스 슈타버라는 분은 혹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아십니까?”
“슈타버, 그는 죽었어1). 그는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네. 어쩌면 그 학생은 그렇게 집착하던 툴파와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군.”
나는 차를 몰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아우토반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한참을 달리다 앞에 정지된 차가 있어 멈추고 내려서 살펴보았다. 안개가 짙게 깔리기 시작해서 주위는 어두워졌다. 비린내가 주위에 진동했다. 앞에 서있는 차에 사람들이 모두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이 장면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절망해야할지 그저 웃어버릴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제 난 악몽이 다가오는 것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1) Staber, er starb. - ‘슈타버’라는 이름과 발음이 유사한 ('죽다'는 의미의) sterben동사의 과거형 ‘슈타르프’를 사용한 언어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