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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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로마의 일인자 : 일인자의 의미와 시대정신

 

 

 

 

 

  로마는 멸망하지 않았다. 로마는 현재까지 형태를 바꾸어 살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에서 정치체인 로마를 말한다면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점령으로 멸망하는 1453년까지 로마가 존속했다고 할 수도 있겠고, 더 길게 본다면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2세가 퇴위하는 1806년까지 로마의 명맥이 살아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형식적 명칭으로서의 ‘로마’에 집착하지 않고, 로마를 진정 유일무이한 ‘로마’로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세계제국으로서의 고대 로마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로마가 서양의 세계제국으로서 고대국가의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었고, 이때 만들어진 수많은 법과 제도, 문화적 산물이 현재 세상의 기본적 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서구문화를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룬 동양의 국가들에게도 변함없이 타당한 말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로마를 주제로 한 수많은 논문과 전문서적, 대중교양서적이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도 로마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는 멸망하지 않고 수많은 요소들을 지금까지 세계에 전하며 존속하고 있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간단한 줄거리

 

 

 소설 1권은 기원전 110년부터 기원전 108년에 이르기까지의 정무관직을 맡은 주요 정치인들을 언급하고, 정치적인 사건들을 소개한다. 당시 로마는 게르만 족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병사가 필요하자 퇴역군인에 대한 법까지 개정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한편 누미디아 왕 유구르타는 왕위계승 문제로 친척들을 살해하는 과정에 로마인과 이탈리아인들까지 죽게 해서 로마와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로마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한편 마리우스는 카이사르와의 약속으로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와 결혼하고 집정관 자리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단, 마리우스는 카이사르의 두 아들의 장래를 위해 금전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하는 의무도 생겼다. 젊은 청년 술라는 함께 살던 두 여성을 죽이고 부자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원로원 의원이 된다. 술라를 좋아하는 (율리아의 동생) 율릴라는 단식투쟁을 벌이다 마침내 술라와 결혼에 성공한다. 마리우스는 아프리카에서 메텔루스와 갈등을 겪다가 로마에 돌아와 집정관으로 당선된다.

 

 

 

왜 공화정 후기의 로마인가

 

 

 우리가 지금 만나는 <로마의 일인자> 제1권은 로마공화정 시기인 기원전 110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로마의 일인자>는 콜린 매컬로의 7부작 <마스터 오브 로마>의 첫번째 작품이며, 이 <로마의 일인자>도 한국어판으로 3권의 분량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 7부작 소설이 갖는 스케일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 방대한 소설이 다루고 있는 시기가 로마 공화정 후기로부터 공화정 체제가 무너지고 제정이 성립하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학계의 로마사 연구에 있어서도 이 시기에 관한 연구가 가장 많고,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이 시기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이런 사실에는 이 시기가 역사상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반영되어 있다.

 로마는 신화시대 이후 초기의 왕정 체제가 전복되고 공화정 체제가 성립한다. 그러다 한니발의 침략으로 로마는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가 다시 극복하고, 공화정 체제의 절정기에 이르는데, 바로 이 지점 이후가 <로마의 일인자>가 시작하는 지점으로서, 바로 공화정 체제가 내재적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때다.

 소설의 첫 부분은 기원전 110년의 로마인데, 이때 마리우스는 47세(기원전 157년 생)이고, 술라는 28세(기원전 138년 생)의 청년이었다. 마리우스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가문이 보잘 것 없어서 집정관에 당선될 꿈도 꾸지 못하는 신세이고, 술라는 잘 생기고 건장한 청년이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불안정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로마의 공화정 체제는 (마리우스의 경우처럼) 돈이 많아도 명문가문 출신이 아니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고, (술라의 경우처럼) 명문가의 사람이라도 돈이 있어야 공직을 노려볼 수 있는 사회구조였던 것이다. 또, 국제적으로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게르만 족이 로마를 위협하고 있었고, 아프리카 북부의 누미디아에서는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로마에서는 자영농이 몰락하고 소수의 대토지 소유자들에게 부가 집중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노정되어가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는 과제가 당시 지배층에게 주어져 있었고, 역사는 이런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이를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요구가 어떻게 충족되고, 역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7부작 <마스터 오브 로마>의 세계이다.

 이 시기는 근본적인 사회체제의 변경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되는 시기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대국가 로마의 시대정신이 실현될 기회가 부여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정신은 수많은 역사적 주체, 특히 '일인자'들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제1부에 해당하는 <로마의 일인자>에서 '일인자'들의 역할이 당연히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듯이 바로 당시 사회적 문제는 공화정 체제에서 제정으로의 시스템 변화를 야기했다.

 

 

로마의 일인자

 

 

그리고, 이 변혁의 시기를 이끌어가는 이를 바로 진정한 ‘로마의 일인자’라고 부를 수 있다. 매컬로는 소설에서 ‘일인자’의 의미를 직접 말하고 있다.

......가장 뛰어난 자가 로마의 일인자는 아니었다. 지위와 기회가 동등한 자들 사이에서 제일가는 자가 로마의 일인자였다. 로마의 일인자가 된다는 것은 왕이나 전제군주, 폭군 따위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이었다. 로마의 일인자는 본인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걸출한 자임을 증명해보임으로써 그 칭호를 유지했다. 또한 그 자리를 뺏으러 혈안이 된 자들, 자신이 지금의 일인자보다 더 걸출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합법적으로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자들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했다. (p.34)

  마리우스와 술라는 각각 율리우스 가문의 자매와 결혼함으로써(그리고 한편으로 술라는 같이 지내던 여성을 살해하고 재산을 상속받으며) 이 ‘지위와 기회’를 얻게 된다. 즉, 마리우스는 1권 후반부에서 집정관이 되고, 술라는 마리우스의 재무관이 되는 것이다. 둘 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이지만, 두 사람은 이제 ‘로마의 일인자’로 향한 길을 어느새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일인자’라는 것은 단순히 권력을 가장 많이 소유한 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세상과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고, 권모술수에 능란한 것 이상의 지혜가 있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인자’라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을 드러내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일인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오히려 ‘일인자’는 로마 공화정 후기에 이르러 집약된 로마의 정수 중의 정수로서, 그 시기의 모든 시대적 요청의 짐을 지고 있는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존재이다. 걸어다니는 역사적 정신. 이것을 드러내고 로마라는 것을 통해 다시 현대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콜린 매컬로의 위대한 업적이었고, 웅대한 구상이 흘러가는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맥에서 또다시 로마는 곧 현대 우리들의 역사이다.

  이 소설은 문학작품으로서도 탁월하고,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엄격한 고증으로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런 재미와 동시에 긴 서사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현재를 돌아보고 그 역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기를, 우리의 역사적 상황과 과제를 읽고 대처할 수 있기를 콜린 매컬로가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역사적 실존으로서 책임감을 지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모든 이들은 ‘일인자’의 자격이 있다. 매컬로 가도(via McCulloughia)를 따라 의미심장한 진실을 향해 전진해보자. 열심히 읽으며 나아가자. 우리의 레기온은 <로마의 일인자>가 이끌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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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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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 와일드의「심연으로부터」: 심연에서 건진 예술가의 초상

 

 

 

   「심연으로부터」는 아일랜드 출신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의 긴 편지글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길다는 것 말고도 독특한 특징이 있다. 우선 이 글은 오스카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수감 중인 때에 쓴 글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과거 1950년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옥중기(獄中記)’라는 제목으로 수차례 번역이 되기도 했다(물론 삭제판을 원본으로 해서). 그리고 이 편지의 수신인이 와일드의 동성의 연인이라는 것도 이 글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편지글은 하루에 한 페이지만 쓰는 것이 허락되었고, 일단 쓴 편지는 소장에게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와일드가 출소할 때 소장은 모아놓은 편지글을 와일드에게 돌려주었으므로 수신인에게 발송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편지는 메시지의 전달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와일드의 내적 상태에 대한 고백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지도 모른다.

 

   오스카 와일드가 수감된 것은 그가 동성애를 했다는 혐의를 받아서이다. 즉, 이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불과 120여년 정도 전인 당시만 해도 청교도적 윤리관과 편협한 가치관에 사로잡혀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당시 오스카 와일드는 시대를 풍미하던 천재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그는 어두운 심연으로 떨어졌고 출소 후에도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 속에서 다시 작가로 재기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와일드가 이런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영어(囹圄)의 나날을 살아갔는지, 이 글을 통하여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글이 연인에 대한 편지인 만큼 연인에 대한 와일드의 마음이 주로 이 글에 명백히 드러나 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뛰어난 예술가로서 와일드가 힘든 시기를 경험하며 예술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연인에게

 

   편지의 수신인은 앨프리드 더글러스라는 16살 연하의 시인이었다. 그는 와일드가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에 비추어보면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배려심이 부족할 뿐 아니라, 변덕이 심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와일드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혹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편지의 서두는 더글러스에 대한 불평과 비난으로 가득하다.

 

이 편지 속에는 당신의 오만함에 깊은 상처를 낼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자주 나올 거야.(p.44)

 

……절대 혼자 있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성격, 지적이고 일관된 집중력의 부족, 불행한 사고로 인해 지적인 문제에서 ‘옥스퍼드적인 기질’을 갖추지 못하게 된 사실. (p.48)

 

……당신은 내 예술에 절대적인 재앙으로 작용했지.(p.49)

 

   이외에도 와일드는 더글러스가가 심한 낭비벽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사치스럽게 지출한 것들을 자신이 언제나 지불해야만 했다고 말한다. 와일드는 이런 그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의 강요는 점점 더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지. 당신의 더없이 비열한 동기,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욕구, 지극히 저속한 열정은 당신에겐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언제나 따라야 하는 법칙이 되어버렸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 법칙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삶이 가차 없이 희생될 수도 있었지. (p.54)

 

 

   와일드에 의하면 자신에 대한 영장 청구가 받아들여진 시점에 더글러스와 상의를 하고 싶던 때에도 더글러스는 몬테카를로에 데려다달라고 졸랐다. 더글러스는 그곳에 가서 와일드는 제쳐두고 도박에 열중했고, 호텔 숙박비와 도박으로 잃은 돈은 고스란히 와일드가 지불해야만 했다. (p.57 참조) 더글러스가 와일드에게 무심하게 행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와일드가 이 편지에서 언급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거의 와일드와 함께 있었던 기간 내내 이런 식의 행동으로 와일드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다른 예로, 더글러스가 인플루엔자에 걸리자 와일드는 작품을 집필하던 것도 중단하고 성심껏 그를 간호했다. 간호중에 와일드가 인플루엔자에 전염되는데, 회복된 더글러스는 와일드를 간호하기는커녕 와일드의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나날을 보낸다. 병상에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해도 거짓말로 일관할 뿐이었다. 와일드는 고통 속에서 그와 헤어질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p.71~74 참조) 그러나 와일드는 그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글러스의 큰형이 의문스러운 사고로 사망하여 슬픔에 빠진 더글러스에게 연민과 애정을 다시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오스카 와일드가 그와 헤어지려고 시도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와일드가 말하는 것을 보자.

 

내(와일드) 잘못은 당신(더글러스)과 헤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과 너무 자주 헤어졌다는 거야. 내 기억으로는, 난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당신과의 관계를 끝냈어. (p.58~59)

  

   이 문장이 블랙유머에 가깝게 여겨질 정도로 와일드의 마음은 심하게 더글러스에게 흔들렸던 것 같다. 혹자는 이해할 수 없는 변덕이라고 할지 모르나, 와일드가 극히 섬세한 감성을 지닌 예술가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연인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연인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편지글 전체에 비추어보아도 명확하다. 와일드는 더글러스를 향해 수많은 비난과 질책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더글러스가 법의 처벌을 받기를 바라거나, 증오심을 드러내거나, 출소 후에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겠다고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더글러스에게 감정적으로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더글러스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태도, 마치 서로 다툰 연인 간에 있을법한 그런 심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와일드는 직접 자신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아주 길게 편지를 쓰는 것은, 내가 수감되기 전 당신과 3년간 치명적인 우정을 나누는 동안 당신이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제 만기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내 수감 기간 동안 당신이 내게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출옥 후에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야. (p.219)

 

   그러나 이 편지의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와일드가 출소하기까지 그는 와일드에게 편지 한통도 쓰지 않았다. 대신 와일드는 심연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고 자신이 예술가로서의 혼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예술가 와일드

 

   「심연으로부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다른 것은 감옥이라는 일종의 지옥에서도 꺼지지 않은 예술가로서의 불빛이다. 평소 유미주의의 사도로 자처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여주던 그로서 이런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을 갉는 고된 노동과 처벌이 일상인 감옥에서 이런 섬세한 정신은 오히려 더 고통을 안겨줄 것이니, 이런 처지를 고려하면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명백히 감옥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크나큰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이 고통은 그에게는 단순히 파괴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삶과 예술 모두에서 지고한 전형이 될 수 있지……고통에 비견할 수 있는 진실은 세상에 없어. 때로는 고통만이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삶의 비밀은 고통이기 때문이야. (p.153~154)

 

 

   그에게 고통은 예술에서의 진실로서 거의 유일한 진실이기도 하며, 삶의 비밀도 바로 고통으로 파악된다. 즉, 고통은 그의 예술론에서 거의 근본적인 자리에 있는 개념으로 자리매김 되며, 이런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의 현모습은 완전한 예술가의 고뇌하는 영혼일 수 있다. 그런데 ‘예술가는 오직 표현을 통해서만 삶을 상상할 수 있’다.(p.170) 따라서 현재 창작을 할 수 없는 와일드는 예술가로서의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새로운 ‘그리스도論’을 통하여 예술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다.

 

 

   즉, 그리스도는 자신을 고통의 인간의 이미지로 구현했다. 자신을 통하여 예언이 실현되도록 함으로써 하나의 아이디어(이를테면 이사야의 예언)를 하나의 이미지로 변화시킨다. 그런데, 이 예언의 실현은 본질이 예술과 같은 것이다.(p.172 참조) 그리스도는 상상력에 의해서 로맨스의 중심인물이 되고(p.174 참조), 낭만적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연민을 가진 존재였으며, 사상이나 도덕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의해 인간의 삶이 희생되는 것을 거부했다. (p.180 참조) 상상력에 의해 일깨워지지 않은 이런 시스템은 속물주의적인데, ‘상상력은 단지 사랑의 발현’이기 때문이다.(p.181 참조) 그리스도는 상상력과 사랑으로 충만했고, 그의 삶은 한편의 시와 같다.

   이런 사유를 바탕으로 와일드는 유미주의적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기를 바라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와일드는 출소 후 수도원에서 머물기를 희망하기도 하고, 죽기 전에 세례를 받는다. 이런 와일드의 모습은 단지 정신적 도움이 필요한 지친 남자의 모습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와일드는 출소 후 거의 창작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는데, 이것만으로 영혼이 예술가인, 너무나도 예술적 영혼을 지닌 그의 모습을 단정 짓기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 예술과 진실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예술에서의 진실이란 결국,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내면을 표현하는 외형, 인간의 모습을 한 영혼, 정신이 충만한 육체, 형식이 내용을 드러내는 삶”이 아닐까? (p.172)

 

   감옥이 와일드를 한없이 피폐하게 했지만, 이런 예술에서의 진실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심연으로부터」자체가 증명한다. 그토록 어떤 책도 읽지 못하고 종일 계속되는 중노동을 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편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예술에서의 진실을 완전히 실현했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그는 이 진실을 평생 간직했고, 이 진실이 육화(肉化)된 사람으로 살았다. 「심연으로부터」에는 앙드레 지드가 쓴 글도 함께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지드는 와일드가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고 말한다.(p.248 참조) 그러나 이런 평가에 상관없이 와일드는 자신이 말한 예술가의 모습을 지키려 평생 노력했고, 예술가로 죽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결어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서는 그가 살아있던 시기부터 수많은 악평과 의도적인 험담이 가하여졌고, 그의 스캔들은 자극적인 가십의 주제로 애용되기도 했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하였고, 그것은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훌륭한 번역으로 출간된 「심연으로부터」를 통해 이런 오해가 해소되고 와일드의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되기를 바란다. 로마시대의 시인 테렌티우스는 말했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어떤 것도 나에게는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와일드 역시 인간으로서 인간의 예술적 본질과 사랑을 추구하며 살았고, 이 점에서 그는 ‘철저한 인간’이었다. 그는 예술을 실현하는 삶을 살았고, 그의 삶은 한편의 시와도 같았다. 심연에 있어도 건져 올릴 수 있는 그런 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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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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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군가와의 만남은 우리가 매일 겪는 일이다. 이 사실을 반영하듯이 그냥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관계가 요즘 노래가사들 속에서 넘쳐난다. 그러나 쉬운 만남의 기회가 풍족할수록 만남의 의미는 더욱 빈곤해지는지도 모른다. 많은 현대인들은 타인이라는 존재를 만남에서 소외시키고, 자신 또한 만남으로부터 소외되는 상실을 겪게 되었다. 만남에서 남는 것은 의미가 아닌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세상에는 이미지가 넘쳐나지만 의미는 시각의 즉물적 자극 속에서 잠시 명멸할 뿐이다. 과연 이 시대에 진정한 만남이란 가능한 것일까? 정민 교수의 책 <삶을 바꾼 만남>은 만남의 의미가 퇴색된 지금,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하고, ‘너와 나가 우리가 되는’ 만남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2) 많은 만남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지는 허상이지만, 만남은 진정 우리를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다. 정양용과 황상의 만남이 그러했다. 어린 소년 황상이 자신을 가르치게 된 대학자 정약용에게 묻는다.

 

   제게 세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p.35)

 

그러자 정약용은 오히려 황상이 그런 점이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한다...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p.35-36)

 

    이렇게 격려의 말을 들은 황상은 평생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만남이 전인적인 교육의 기회가 되었고, 이로서 한 아이가 새로운 인생의 길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공부에 대한 황상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 되었다. 학질을 앓을 때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정약용은 이런 그에게 <학질 끓는 노래>라는 시를 지어주며 격려한다. 이후 1803년 노전리에서 관아의 횡포에 못견뎌 한 남자가 자해를 하는 일이 일어나자 스승과 제자가 시를 지어 울분을 토했다. 이렇게 시를 지음으로 먼저 지어진 제자의 시를 스승이 간접적으로 평하기도 하고,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의 정신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황상을 가르치는 정약용은 다정하게 대하다가도, 필요하면 엄하게 혼내기도 하고, 황상이 뉘우치면 다시 어버이같이 대하며 공부를 격려했다. 다산이 보여주는 것은 권위와 과시가 아니라, 진정한 내면의 애정이 행동으로 우러나온 것이었기에 황상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3)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책이 다루는 주요한 만남은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이다. 그러나 정약용의 만남은 황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황상 외에도 이청과 황경, 황지초와 김재정 등의 제자를 가르쳤고, 외로운 유배생활에 지적인 교류를 나누던 혜장이란 승려가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정약용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 형제도 찾아와 오랜만에 인사를 올리고 아버지 다산과 함께 공부를 하고 돌아갔다. 정약용과 이들의 만남에 공통적인 것은 바로 ‘공부’였다. 경전공부가 아니면 한시를 지었다. 작은 만남이나 소소한 일상의 일을 시로 지어 타인과 나누었다. 다산의 시를 받은 제자들도 답시를 쓰거나 차운한 시 등을 숙제하듯 적어서 보냈다. 스승 다산은 좋은 시를 받으면 그 문재(文才)를 칭찬하고 흐뭇해하였고, 나무랄 점이나 모자란 점이 있으면 역시 적절히 가르쳤다.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농사를 짓느라 공부를 소흘히 한 아들을 엄히 가르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분부를 내렸다. (「答二兒」에서는 ‘父子而師弟, 不亦 樂乎. 즉, ’부자간에 사제가 되는 것이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고 전한다.) 아들에게 친히 「주역」과 「예기」를 교육시키고, 촌수와 상을 당한 경우의 예법을 상세히 밝혔다. (「승암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서를 통한 독서법을 아들에게 편지로 자세히 쓴 것은 차라리 강의록에 가깝다. 이 모든 일들에서 학자이자 스승으로서 다산의 면모가 드러난다.

    다산의 이런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다산이 혜장과 아들 학연, 그리고 제자 황상이 함께 돌림노래를 짓는 장면일 것이다. (p.198~204) 옹기 그릇 안에 같은 운목(韻目)에 속한 한자를 적어 넣고 네 사람이 한자씩 돌아가며 뽑은 한자를 운자로 삼아 두 구절을 짓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들은 모두 연결하여 하나의 완성된 시가 되어야 한다. 돌림노래 중에 황상이 지은 마지막 부분은 달관의 경지가 엿보인다. 어쩌면 다산의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이만하면 쾌락을 이루었거니

   벼슬아치 부러울 것 하나 없지요.

 

   이 연구시(聯句詩)짓기는 시를 짓는 예술이자 창작이라는 작업이 놀이와 훌륭하게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대목은 결코 정약용은 고루한 유학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정약용이 공부를 그렇게 강조한 것에서 따분하고 완고한 학자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교육제도와 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과 아들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양과 학문을 전수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의 등용문인 과거시험을 대비해서 제자들에게 시를 짓는 연습도 시켰다. 결코 허황된 명분을 위한 공부를 강조한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다산이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만난 것은 결코 금전적 이득이나 명성을 원해서가 아니었고, 귀양 온 사람으로서 어떤 세력을 키우고자함도 아니었다. 학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용히, 따뜻하게 만남을 통하여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만남은 다산 자신의 마음이 진실하게 밖으로 드러나는 기회였다.

 

   (4)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만남은 귀양온 사람으로서의 자기자신을 생각하는 다산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다산이라는 인간은 자신의 내면의 자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반성하였던가, 자기 자신과는 어떻게 만났던 것인가. 그는 시를 많이 지어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멀리 있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탄식하기도 하고(‘蚜生’이라는 시를 참조하라), 오는 근심을 시로 맞이하고(‘憂來’), 시름을 시로 풀어서 보내기도 했다.(‘遺憂’) 너무도 힘들었던 것인가. ‘세가지 소리(三詞聲)’에서는 세 수의 구절이 모두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어떤 때 맘 가누기 어렵던가? (何處難爲情)

 

    한편으로 그는 여전히 여러 가지 계획과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삶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다산초당을 자신의 이상에 맞게 꾸민 것도 그 한 모습이다. 그는 자신 때문에 폐족이 되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에게 미안했던지, 길러야 할 야채와 그 취급법을 상세하게도 편지에 적어 보냈다. 귀양온지 두 번째 새해에 그는 봉놋방 서당에 <사의재(四宜齋)>라고 써 붙였다. 이는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말이며,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을 반성한다는 뜻이다.(p.53) 그가 죄를 지어서 강진에 유배된 것이 아니라 벽파가 일으킨 신유사옥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한이 클 것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포기하지 않았고, 유배시절부터 해배가 된 이후 생을 다하기까지 학문을 연구하여 <일표이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등의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어쩌면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3일 전에 지은 시에서 그가 마침내 자기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만 재촉하고

   짧은 근심 긴 기쁨에 임금 은혜 감격하네.

   이 밤에 목란사는 가락이 더욱 좋고

   그 옛날의「하피첩」엔 먹 자국이 남았구나.

   갈라졌다 되합쳐짐 내 형상 그대로라

   합환 술잔 남겨두어 자손에게 주리라.

                                                                        (<회근시> 중에서)

 

「하피첩」은 아내가 시집올 때 입은 치마로 만든 공책에 아들에게 보내는 글을 적은 것이다. 마지막 구절에서 다산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다 이루었다. 다음 세상은 자손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넘겨주어도 되겠다’라고.

 

    (5) 유배지의 다산과 여러 인물들간의 만남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갑자기 곤경에 처하고 정적에게 밀려난 지식인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위기의 시대에 지성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혹은 진정한 스승이란 무엇이며 어버이란 무엇인지, 또는 한 인간으로서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지에 대해서 정약용은 그의 삶 자체로서 메시지를 전한다. 이 모든 삶의 과정은 만남, 너와 나의 만남,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긴 조우의 여정이었다고.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세가지 문제를 말하고 답을 얻은 어린 황상처럼 기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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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하늘은 흐렸고 날은 타는 듯이 더웠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시원하련만, 하루 종일 비는 내리지 않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까지 앉아만 있으니 온몸이 찌뿌듯하다. 이제 퇴근하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한 뒤 푹 자면 딱 맞을 것이다. 오늘도 그저 그런 형사의 하루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늦게 부두 관리자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이 날을 내 기억에서 잊을 수 없는 날로 만들었다.

 

    관리자 말로는 부두 냉동 창고에서 사망한 사람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이경사와 함께 즉시 현장에 가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러야 다음 날 오후까지 한나절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사망자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의 품안에서 신분증이 꽂힌 지갑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형우.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다 큰 빚을 지고 종적을 감추었는데, 사기혐의로 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와 함께 소지품이 든 가방도 발견되었는데, 가방 안에는 다 닳은 연필과 노트 하나가 있었다. 노트에는 이 냉동 창고에 들어와서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약 일주일 동안의 그의 심경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 노트가 그의 상태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노트는 사실 아주 길고 난삽해서 여기에 전문을 다 옮길 수가 없다. 여기에 내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극히 일부분만을 옮겨보기로 하겠다.

 

#1. 내가 이곳에 들어올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 단지 채권자 정만수가 고용한 해결사가 나를 잡으러 왔기 때문에 주위에 도망갈 수 있는 곳으로 숨어야만 했고, 뒤늦게 알고 보니 내가 숨은 곳이 냉동 창고였던 것이다. 문은 해결사가 밖에서 잠그고 간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모든 것을 포기할 때는 아니다. 나는 약간의 물과 손전등, 그리고 작은 칼 하나가 있다. 점퍼도 입고 있으니 당분간 버틸 수 있다. 밖의 동향을 주시하며 도움을 구해보자.

 

#2. 차가운 공기가 나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다. 몸이 조금씩 굳어가는 느낌이 든다. 몸이 굳어버리면 안되다. 내가 일어나지 못하면 잠들거나 쉽게 정신을 잃을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다. 수진아 그리고 내 딸 민정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미안하다. 내가 살아 돌아가서 다시 너희를 볼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너희를 생각하며 힘을 내겠다.

 

#3. 손전등으로 가방 안을 살피니 빵 하나와 삶은 달걀 두 개, 과자 한 봉지가 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아껴서 먹어야한다. 오늘은 밖에 누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고 차가운 창고 벽을 두들겼다. 그러나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확실히 이쪽은 인적이 뜸한 것 같다. 그래도 조만간 지나가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늘 힘을 많이 썼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잠들면 끝이다! 다리를 찔러가면서라도 깨어있어야 한다.

 

#4.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 안에 있으니 시간을 알 수가 없다. 밖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이곳이 혹시 지옥은 아닐까? 차가운 얼음의 지옥 혹은 영원히 혼자 버려진 감옥에 살게 되는 고독의 지옥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최대한 아껴서 먹었는데도 벌써 빵 하나를 다 먹었다. 아마도 내가 들어온 지 5일은 되지 않았을까? 혹시 하루밖에 안 된 것은 아닐까? 잠을 안 자려고 버티다보니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인다. 처음엔 계속 손전등을 켰지만 지금은 노트를 기록할 때만 키고 바로 불을 끈다. 건전지를 아끼려고 손전등을 끄고 있으면 내 앞의 어둠은 뿌옇게 변했다가 한 덩어리가 되어 그 찬 기운으로 나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그래,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 내가 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차피 난 지금도 지옥 안에 있는데, 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5. 발에 감각이 없다. 동상에 걸린 것 같다. 큰일이다. 걸어 다닐 수가 없으면 도움도 청할 수 없다. 온 몸이 조금씩 얼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몸을 움직여서 몸에 열이 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힘이 없다.

 

#6. 좀 전에 사람 소리를 들었다. 남자의 웃음소리가 분명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기어가서 소리를 지르며 언 주먹으로 창고 문을 쳤다. 손이 터지고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가 창고 옆을 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것이 나를 구하러 오겠다는 뜻이리라. 나는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 나갈 수 있겠구나. 이 안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사랑하는 내 가족! 그들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작은 고난은 얼마나 하찮은 것이 될 것인가!

   나는 사람이 와서 문을 열어줄 것을 숨죽여 기다렸다. 30분? 한 시간? 그 정도가 흐른 것 같은데, 아직 기척이 없다. 그들간에 서류작업이나 담당자 보고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늦어지는 것이리라. 적어도 4시간이 더 지나갔다. 입으로 1부터 15000까지 세었다. 나는 아직 그대로 이곳에 있다. 혹시 내가 아까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사람이 있지도 않았는데, 환청을 들은 것일까? 이 안에 있다 보니 감각이 이상해진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얼어서 죽는 것인가?

 

#7. 나는 이제 모든 희망을 버리기로 했다. 이미 온 몸에 동상이 퍼져서 더 이상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다. 나에겐 약간의 손전등 불빛이 있을 뿐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 빛이 있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나에게 고통을 준 모든 이를 용서한다. 나도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한다. 또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아! 정말 열심히 살 텐데……삶이란 너무나도 덧없고, 욕망은 허상과도 같다.

 

    이형우의 기록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삶이란 너무나도 덧없고, 욕망은 허상과도 같다.’는 깨달음이 담긴 문장으로 끝났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부검의가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했지만 그의 기록을 보면 그는 분명 얼어 죽은 것이다. 그가 갇힌 냉동 창고는 근래 일주일 동안 수리를 위해 가동이 정지된 상태였는데 말이다.

 

    그를 죽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냉동 창고인가? 그 자신의 생각인가? 아니면 탐욕과 부정에 물든 이 세상 모두인가? 나는 대답을 담뱃불을 붙이고 다시 비오는 거리로 나가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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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한쭈니씨 2014-04-2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알려진 소재를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심리상태를 기록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엮었네요. 부럽습니다, 이런 능력^^

Bomisl 2014-04-25 19: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속편한 쭈니님^^ 많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무서운 이야기로는 좀 약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도 드네요.

2014-04-25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26 0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집은 황량한 서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 있다. 사람들과 말을 타고 동쪽 뉴잉글랜드로부터 신대륙을 횡단해온 것은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나의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시기는 수많은 모험담을 만들었던 인생최고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난 이 작은 마을과, 마을 구석에 위치한 나만의 통나무집에서 ‘평생의 친구’톰과 함께 한가로이 여생을 보내며 지난 일들을 추억할 뿐이다.

 

   과거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는 것은 늙은이의 특권이다. 그리고 나의 추억들이 각별한 이유는 내가 노예들과 인디언들과 언제나 좋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말을 말하고 읽는 법을 가르쳤고, 그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도 쉽게 매를 들지 않았다. 특히 톰은 명목상으로는 나의 노예였지만 실제로는 나의 친구이자 큰 형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나는 그를 각별히 대했다. 이런 나를 다른 백인들이 ‘자비로운 제임스’라며 조롱하듯 말했지만 나는 이 별명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주의 말씀인 마태복음 5장 7절에서 ‘자비로운 자들은 복되도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자비함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비로운 제임스’라고 불리던 무렵부터 동료 백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 시작한 것을 부정할 순 없었지만, 오히려 나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인디언들과의 전쟁에 나가는 대신 여자들과 노인들을 지키는 일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머릿속에 깊이 박힌 이 구절을 반복하면 나는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었다.

 

   비가 후드득 쏟아지는 여름 아침이나 서쪽 지평선이 붉게 타오르는 가을이면 난 외로움에 가슴이 시려오곤 한다. 이따금 가족이 그립지만 어렸을 적 가족에 대한 기억이 나에겐 별로 남아있지 않다. 어머니의 이름이 ‘메리’였다는 것, 내가 아버지의 이름 ‘제임스’를 물려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어느 날 소리 없이 사라졌고 나는 서부로 가는 사람들과 섞여서 고향을 떠났다는 사실 이외엔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톰은 나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를 이따금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집은 미소가 아름다운 어머니, 엄격하지만 정의로운 아버지, 그리고 항상 시끄럽게 노는 두 남동생이 살았던 단란한 가정이었다고 했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엔 맛있는 음식을 노예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던 추억이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다. 내가 어떻게 그 가정이 사라져버렸는지를 물으면 톰은 그저 큰 사고가 있었다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럴 때마다 그가 나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고 난 깊이 따지진 않았다. 톰과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며 노인이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일부러 기억해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저 눈앞의 일만을 처리하는 것만도 나에겐 벅찼고, 알 수 없는 지난 일에 매달리기보다 현재를 더욱 충실히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집에서 멀리 산책을 나왔다. 나이가 많아도 다리가 아직도 튼튼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부터 매일 아무도 없는 너른 들판을 거닐며 하늘과 바람을 즐기면 몸과 마음 모두에 좋을 것 같았다. 한참 걷다가 돌무더기 위에 앉아 점심을 먹고 더 걸어갔다. 이 광야가 어디로 연결되어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무작정 걸어갔다. 돌아갈 길이 걱정되기보다는, 오히려 모험을 하는 듯한 쾌감과 상쾌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바닥에 무언가 물컹한 것을 밟았다. 쉬익하는 소리가 나더니 내 발등이 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나는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며 점점 정신을 잃었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저 앞에 꽤 괜찮은 집이 보인다. 나는 그곳에 이미 들어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굉장히 익숙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년 남자가 어떤 여성을 메리라고 불렀다. 그 여성은 부엌에서 무엇을 만들다가 나를 제임스라고 부르며 미소 지었다. 이곳은 우리 집, 그리고 그들은 나의 부모님이 분명하다. 구석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남자아기 둘은 내 동생들이리라. 나는 쿠키 몇 조각을 들고 잠시 뒷문으로 나가서 놀았다. 밖은 시원하고 상쾌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밖에서 한참 있어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서 난 불안해졌다.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다가가 무슨 일이 있는지 집안을 살펴보았다. 거기에선 젊은 톰과 몇 명의 사람들이 중년 남자와 여자를 묶고, 저항하는 그들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다른 백인들은 집안을 약탈하고 있었다. 어린이 두 명은 자는 듯이 쓰러져있었다.

   “증거를 없애야 해. 너희 같은 노예는 잡히면 바로 죽을 테니.”

   어떤 젊은 남자가 흥분해서 말했다.

   나는 놀라서 얼어붙었고 급히 정신을 차린 후에 뒤를 향해 무작정 뛰었다. 그러나 톰이 어느새 따라와 억센 손으로 나를 잡아들고서 말위에 태웠다. 뒤로는 불에 탄 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톰이 미친 듯이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 기억을 영원히 머릿속에서 추방해야했다.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돼!”

   “진정하세요. 이제 일어나셨군요.”

   깨어나니 나는 간이 침대위에 누워있었고, 내 앞에는 인디언 주술사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당신은 뱀에 물렸고, 3일 만에 깨어났어요. 사람들이 일찍 발견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동안……정신을 잃은 사이 본 것은 뭐죠?”

   “당신은 잠시 뱀의 정령에 사로잡혔던 거예요. 가장 끔찍한 기억을 일깨우는 영이죠.”

 

   나는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기운을 회복했고, 며칠 뒤 무거운 걸음으로 다시 집을 향하여 걸어갔다. 이제 나에게 남은 한 가지 과제를 처리해야 한다.

   추억들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는 감상적인 늙은이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나는 더 이상 ‘자비로운 제임스’도 아닐 것이다.

   또다른 이 톰, 너에게 오직 끔찍한 기억만을 남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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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한쭈니씨 2014-04-2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Bomisl 2014-04-25 19:53   좋아요 0 | URL
속편한 쭈니님. 좋은 일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