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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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군가와의 만남은 우리가 매일 겪는 일이다. 이 사실을 반영하듯이 그냥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관계가 요즘 노래가사들 속에서 넘쳐난다. 그러나 쉬운 만남의 기회가 풍족할수록 만남의 의미는 더욱 빈곤해지는지도 모른다. 많은 현대인들은 타인이라는 존재를 만남에서 소외시키고, 자신 또한 만남으로부터 소외되는 상실을 겪게 되었다. 만남에서 남는 것은 의미가 아닌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세상에는 이미지가 넘쳐나지만 의미는 시각의 즉물적 자극 속에서 잠시 명멸할 뿐이다. 과연 이 시대에 진정한 만남이란 가능한 것일까? 정민 교수의 책 <삶을 바꾼 만남>은 만남의 의미가 퇴색된 지금,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하고, ‘너와 나가 우리가 되는’ 만남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2) 많은 만남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지는 허상이지만, 만남은 진정 우리를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다. 정양용과 황상의 만남이 그러했다. 어린 소년 황상이 자신을 가르치게 된 대학자 정약용에게 묻는다.

 

   제게 세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p.35)

 

그러자 정약용은 오히려 황상이 그런 점이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한다...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p.35-36)

 

    이렇게 격려의 말을 들은 황상은 평생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만남이 전인적인 교육의 기회가 되었고, 이로서 한 아이가 새로운 인생의 길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공부에 대한 황상의 열정은 대단한 것이 되었다. 학질을 앓을 때에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정약용은 이런 그에게 <학질 끓는 노래>라는 시를 지어주며 격려한다. 이후 1803년 노전리에서 관아의 횡포에 못견뎌 한 남자가 자해를 하는 일이 일어나자 스승과 제자가 시를 지어 울분을 토했다. 이렇게 시를 지음으로 먼저 지어진 제자의 시를 스승이 간접적으로 평하기도 하고,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의 정신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황상을 가르치는 정약용은 다정하게 대하다가도, 필요하면 엄하게 혼내기도 하고, 황상이 뉘우치면 다시 어버이같이 대하며 공부를 격려했다. 다산이 보여주는 것은 권위와 과시가 아니라, 진정한 내면의 애정이 행동으로 우러나온 것이었기에 황상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3)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책이 다루는 주요한 만남은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이다. 그러나 정약용의 만남은 황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황상 외에도 이청과 황경, 황지초와 김재정 등의 제자를 가르쳤고, 외로운 유배생활에 지적인 교류를 나누던 혜장이란 승려가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정약용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 형제도 찾아와 오랜만에 인사를 올리고 아버지 다산과 함께 공부를 하고 돌아갔다. 정약용과 이들의 만남에 공통적인 것은 바로 ‘공부’였다. 경전공부가 아니면 한시를 지었다. 작은 만남이나 소소한 일상의 일을 시로 지어 타인과 나누었다. 다산의 시를 받은 제자들도 답시를 쓰거나 차운한 시 등을 숙제하듯 적어서 보냈다. 스승 다산은 좋은 시를 받으면 그 문재(文才)를 칭찬하고 흐뭇해하였고, 나무랄 점이나 모자란 점이 있으면 역시 적절히 가르쳤다.

     

    자신의 두 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농사를 짓느라 공부를 소흘히 한 아들을 엄히 가르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분부를 내렸다. (「答二兒」에서는 ‘父子而師弟, 不亦 樂乎. 즉, ’부자간에 사제가 되는 것이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고 전한다.) 아들에게 친히 「주역」과 「예기」를 교육시키고, 촌수와 상을 당한 경우의 예법을 상세히 밝혔다. (「승암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서를 통한 독서법을 아들에게 편지로 자세히 쓴 것은 차라리 강의록에 가깝다. 이 모든 일들에서 학자이자 스승으로서 다산의 면모가 드러난다.

    다산의 이런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다산이 혜장과 아들 학연, 그리고 제자 황상이 함께 돌림노래를 짓는 장면일 것이다. (p.198~204) 옹기 그릇 안에 같은 운목(韻目)에 속한 한자를 적어 넣고 네 사람이 한자씩 돌아가며 뽑은 한자를 운자로 삼아 두 구절을 짓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들은 모두 연결하여 하나의 완성된 시가 되어야 한다. 돌림노래 중에 황상이 지은 마지막 부분은 달관의 경지가 엿보인다. 어쩌면 다산의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이만하면 쾌락을 이루었거니

   벼슬아치 부러울 것 하나 없지요.

 

   이 연구시(聯句詩)짓기는 시를 짓는 예술이자 창작이라는 작업이 놀이와 훌륭하게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대목은 결코 정약용은 고루한 유학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정약용이 공부를 그렇게 강조한 것에서 따분하고 완고한 학자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교육제도와 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과 아들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양과 학문을 전수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심지어 그는 당시의 등용문인 과거시험을 대비해서 제자들에게 시를 짓는 연습도 시켰다. 결코 허황된 명분을 위한 공부를 강조한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다산이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만난 것은 결코 금전적 이득이나 명성을 원해서가 아니었고, 귀양 온 사람으로서 어떤 세력을 키우고자함도 아니었다. 학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용히, 따뜻하게 만남을 통하여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만남은 다산 자신의 마음이 진실하게 밖으로 드러나는 기회였다.

 

   (4)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만남은 귀양온 사람으로서의 자기자신을 생각하는 다산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다산이라는 인간은 자신의 내면의 자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반성하였던가, 자기 자신과는 어떻게 만났던 것인가. 그는 시를 많이 지어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멀리 있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탄식하기도 하고(‘蚜生’이라는 시를 참조하라), 오는 근심을 시로 맞이하고(‘憂來’), 시름을 시로 풀어서 보내기도 했다.(‘遺憂’) 너무도 힘들었던 것인가. ‘세가지 소리(三詞聲)’에서는 세 수의 구절이 모두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어떤 때 맘 가누기 어렵던가? (何處難爲情)

 

    한편으로 그는 여전히 여러 가지 계획과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상적인 삶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다산초당을 자신의 이상에 맞게 꾸민 것도 그 한 모습이다. 그는 자신 때문에 폐족이 되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에게 미안했던지, 길러야 할 야채와 그 취급법을 상세하게도 편지에 적어 보냈다. 귀양온지 두 번째 새해에 그는 봉놋방 서당에 <사의재(四宜齋)>라고 써 붙였다. 이는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말이며,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을 반성한다는 뜻이다.(p.53) 그가 죄를 지어서 강진에 유배된 것이 아니라 벽파가 일으킨 신유사옥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한이 클 것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포기하지 않았고, 유배시절부터 해배가 된 이후 생을 다하기까지 학문을 연구하여 <일표이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등의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어쩌면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3일 전에 지은 시에서 그가 마침내 자기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만 재촉하고

   짧은 근심 긴 기쁨에 임금 은혜 감격하네.

   이 밤에 목란사는 가락이 더욱 좋고

   그 옛날의「하피첩」엔 먹 자국이 남았구나.

   갈라졌다 되합쳐짐 내 형상 그대로라

   합환 술잔 남겨두어 자손에게 주리라.

                                                                        (<회근시> 중에서)

 

「하피첩」은 아내가 시집올 때 입은 치마로 만든 공책에 아들에게 보내는 글을 적은 것이다. 마지막 구절에서 다산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다 이루었다. 다음 세상은 자손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넘겨주어도 되겠다’라고.

 

    (5) 유배지의 다산과 여러 인물들간의 만남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갑자기 곤경에 처하고 정적에게 밀려난 지식인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위기의 시대에 지성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혹은 진정한 스승이란 무엇이며 어버이란 무엇인지, 또는 한 인간으로서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지에 대해서 정약용은 그의 삶 자체로서 메시지를 전한다. 이 모든 삶의 과정은 만남, 너와 나의 만남,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긴 조우의 여정이었다고.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세가지 문제를 말하고 답을 얻은 어린 황상처럼 기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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