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ㅣ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알고 있는 옛날이야기를 수수께끼투성이 추리소설로 변신시킨 흥미로운 책이다.

<엄지 동자의 부재 증명>, <꽃 피우는 망자가 남긴 말>, <도서 갚은 두루미>, <밀실 용궁>, <먼바다의 도깨비섬>, <꿩은 도깨비섬으로 향한다>. 이렇게 여섯 작품은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작품들끼리 연결 고리를 만들어 놓아 더 흥미로운 책이다. 작품끼리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찾아 읽는 것도 재미있다.

 

● <엄지 동자의 부재 증명>

<엄지동자>가 원작이다.

가미쿠리 마을에 사는 후유키치가 살해된다. 그는 우의정 댁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는 남자로 그것이 사실이라면 딸만 있는 우의정의 후계자가 될 인물이다.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검비위사의 수하 구로 미카즈키는 도깨비 방망이로 몸이 커져 우의정 딸과 결혼하는 엄지동자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우의정 댁 가신 에구치를 만나 함께 사건 현장을 방문한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목격자를 심문한 후 구로와 에구치는 엄지동자의 범행을 확신하고 우의정 댁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 진짜 검비위사와 사건 현장에서 마주친 에구치는 엄지동자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인 몸집이 커진 도마뱀붙이를 보고 난 후 범행 당시 도깨비 방망이가 사용된 것을 알게 된다. 우의정 댁에 도착한 에구치와 검비위사는 엄지동자의 악행을 모두에게 밝힌다. 도망가는 엄지동자를 공격한 하루 아가씨의 하얀 고양이를 보고 에구치는 구로 미카즈키의 정체를 알게 된다.

 

● <꽃 피우는 망자가 남긴 말>

전래동화 <꽃 피우는 할아버지> 가 원작이다.

모키치 할아버지는 한 겨울에 잿가루를 뿌려 꽃을 피게 한다. 떠돌이 개는 할아버지를 따라가 그 집에서 살게 되고, 지로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지로가 이 집에 오고 나흘 후 할아버지가 꽃이 핀 한가운데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굶주리는 어린 강아지를 데려와 시로라 이름 짖고 키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시로는 밭에서 보물 상자를 발견하게 해준다. 할아버지는 보물을 마을에 기부한다. 욕심쟁이 다사쿠 할아버지는 시로를 빼앗아 가고 보물을 발견하지 못해 화가나 시로를 죽인다. 죽은 시로를 묻어준 자리에서 자라난 소나무로 떡을 좋아하는 시로를 위해 절구를 만들어 찧자 황금이 쏟아진다. 할아버지는 이 황금을 절에 기부한다. 다사쿠 할아버지가 절구를 강제로 빌려가 찧지만 그 안에서는 뱀과 개구리, 벌레들이 쏟아진다. 화가 난 다사쿠 할아버지가 절구를 태워버리고 그 재를 모키치 할아버지가 가지고 오고, 바람에 날린 재가 나무에 뿌려져 꽃을 피운다. 다사쿠 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와 재를 빼앗는다.

모키치 할아버지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할아버지 허리춤에서 검은 주머니와 하얀 주머니가 발견된다. 검은 주머니에는 잿가루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흰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할머니도 모른다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범인으로 다사쿠 할아버지를 의심하지만 다사쿠는 영주의 아들을 다치게 한 죄로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모키치 할아버지의 손에 있는 냉이꽃을 증거로 용의자를 추론해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범인을 추적하던 지로는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고 복수를 위해 밭에 투구꽃을 심은 후 죽어간다.

 

● <도서 갚은 두루미>

전래동화 <은혜 갚은 두루미>가 원작이다.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아야 하는 야헤에에게는 빚을 갚은 능력이 없다. 베를 짤 수 있었던 어머니가 베짜는 건 여자가 할 일이라는 이유로 베 짜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아 빚을 갚은 능력이 없다. 어머니도 돌아가신 상황에서 빚은 온전히 야헤에의 몫으로 남았고, 빚을 갚으라 독촉하는 촌장을 죽이게 된다.

 

두루미 쓰우는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야헤에를 찾아간다. 무죽을 얻어먹은 후 길쌈을 해서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한다. 쓰우가 베를 짜는 동안 야헤에는 방안을 들여다보지 않겠다 약속하며 쓰우에게 장지문 안을 들여다보지 않을 것을 약속받는다. 야헤에는 쓰우가 베짜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쓰우가 짠 옷감은 두루미의 깃털로 짠 것으로 옷을 입으면 몸이 가벼워지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 야헤에는 옷감을 부잣집에 팔아 받은 돈으로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쓰우는 장지문 안이 궁금해 안을 들여다보려다 멈춘다. 야헤에는 쓰우에게 옷감을 더 짜줄 수 있는지를 부탁한다.

 

사라진 촌장을 찾기 위해 촌장 부인은 보상을 약속하며 마을 남자들에게 부탁한다. 다음 촌장 자리를 노리는 곤지로는 용의자를 찾아 나선다. 쓰우가 만든 옷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야헤에는 점점 변해가기 시작하고 쓰우에게 옷감을 짤 것을 강요한다. 계속되는 야헤에의 요구와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쓰우는 야헤에의 친구 간타의 도움으로 도망쳐 두루미가 되어 떠난다. 20년이 지나 간타와 부인이 죽고 난 후 혼자 된 간타의 아들 야헤에(친구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지어줌)를 쓰우가 찾아온다. 쓰우를 배신한 야헤에는 그 마을의 촌장이 되어 있었다. 쓰우는 은혜를 갚겠다 말하면서 간타의 아들 야헤에에게 괭이를 주면서 촌장이 다시 찾아오면 죽이라고 말한다.

 

<은혜 갚은 두루미>는 읽고 난 후 이야기가 뒤섞이는 느낌이 들었다. 덫에 걸린 두루미 쓰우를 구해준 야헤에는 촌장을 죽이고 시신을 유기한다. 쓰우가 만들어준 옷감으로 부자가 된 야헤에는 촌장이 되고, 쓰우는 야헤에의 친구 간타의 도움으로 야헤에에게서 도망쳐 나온다. 자신을 구해준 간타의 은혜를 갚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의 빚을 갚으라고 협박당하는 간타의 아들 야헤에를 찾아간다. 아버지의 친구 야헤에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간타의 아들 야헤에는 촌장을 죽이라 말하는 쓰우의 유혹에 넘어가고, 쓰우는 간타의 집에서 베를 짠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마지막 부분에 ‘1로 돌아가 3,5,7 순서로 읽는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이 순서로 다시 돌아가 글을 읽어보지만 두 명의 야헤에의 이야기가 뒤죽박죽되어 더 혼란스럽다. 헷갈리기는 하지만 그래서 또 재미있게 읽힌다.

(1로 돌아가 3, 5, 7 순서로 읽는다, 178페이지)

 

● <밀실 용궁>

전래동화 <우라시마 다로>가 원작이다.

마음씨 착한 어부 우라시마 다로는 연로한 어머니와 둘이 살아간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거북이를 구해준다. 이 거북이는 인간의 말을 하는 거북이로 용궁에서 용녀님을 모시는 궁녀였다. 은혜를 갚는다고 말하는 거북의 등을 타고 용궁으로 떠난다. 용궁에서는 거북이를 구해준 우라시마를 위한 연회가 열리고, 연회가 끝난 후 지정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려던 순간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끼는 항아리를 거북이가 깨트려 화가 난 문어가 먹물을 뿌리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경비병 무당게가 와서 문어를 제압한다. 용궁의 용녀와 함께 있던 방에 수상한 남자가 침입하고, 놀란 순간 닭새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닭새우가 발견된 겨울의 방은 안에서 잠겨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닭새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씩 나오는 증언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생각해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넙치를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 후 우라시마는 용녀의 요청으로 용궁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거북은 넙치가 범인이 아닌 이유와 함께 넙치와 닭새우의 모략으로 용궁에서 쫓겨난 복어의 이야기를 한다. 육지에 도착한 우라시마는 자신이 떠나고 400년의 시간이 흐른 것을 알고 놀란다. 홀로 남은 우라시마는 용녀가 준 옥수함을 열어 보고 그 안에서 흰 연기가 새어나오면서 늙어간다. 늙어가는 순간 우라시마는 닭새우의 살해범이 누구인지, 그의 범행동기와 범행 수법을 깨닫게 된다. 흰 모래가 눈부신 고요한 바닷가에서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간다. 두루미는 우라시마가 변한걸까?

 

● <먼 바다의 도깨비 섬>

전래동화 <모모타로>가 원작이다.

도깨비들이 모여 살던 섬에 폭풍우가 몰아친 후 논밭이 망가지고,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게 된다. 굶주린 도깨비들이 쓰러지자 이들을 구하기 위해 붉은 도깨비 오니조가 인간들의 땅으로 가서 식량과 금은보화를 얻어 온다. 이날 이후 오니조를 중심으로 뭉친 도깨비들은 반대하는 장로와 도깨비들을 가두고 매일 놀고먹으면서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의 배가 도깨비 섬으로 들어온다. 인간이 동물들에게 도깨비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인간에게서 식량과 보물을 받아왔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동안 오니조는 인간의 땅에 가서 식량과 보물을 약탈해 온 것이었다. 오니조는 인간 모모타로에게 죽임을 당한다. 감옥에 갇힌 도깨비들을 찾아낸 모모타로에게서 남은 도깨비를 보호하기 위해 도깨비 장로는 자신을 희생해 보물이 있는 곳으로 모모타로를 안내하고 죽임을 당한다. 모모타로에게서 살아남은 도깨비들의 후손들이 태어나고 평화를 되찾은 도깨비 섬에서 오니타와 싸우고 갇혀 있던 오니시게가 살해된다. 오니히로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덴구 괭이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오니타를 용의자로 몰아세운다. 오니히로가 덴구 괭이, 두루미의 옷, 요술 방망이를 사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니타를 범인으로 몰아세웠고 이 말을 믿은 도깨비들은 오니타를 가둔다. 오니타가 갇힌 후 오니오바바 할머니가 살해된다. 오니타는 범인으로 모모타로 일당을 지목한다. 여자 도깨비들이 살해되고 그들이 독에 의해 살해된 사실을 발견한다. 도깨비들이 살해된 후 남은 도깨비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서로를 의심한다. 모두가 죽고 난 후 오니타만 남았다. 홀로 된 오니타 앞에 나타난 사람은 오니타를 죽인다. 도깨비 섬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도깨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 번외 단편 특별수록 : <꿩은 도깨비섬으로 향한다>

모모타로와 함께 도깨비 섬을 토벌해 도깨비를 죽인 꿩은 원숭이와 개와 함께 인간들의 땅으로 돌아와 보물을 인간들에게 돌려준다. 섬에 남은 모모타로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에 꿩은 혼자 모모타로를 찾아 도깨비 섬으로 들어간다.

 

●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엄지동자의 부재 증명>은 재산을 노린 엄지동자의 음모를 파헤쳐 주인집 하루 아가씨를 구한 하얀 고양이 구로의 이야기다. <꽃 피우는 망자가 남긴 말>은 배고픈 자신을 구해준 모키치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떠돌이 개 지로의 이야기이다. <도서 갚은 두루미>는 덫에 걸린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깃털을 뽑아 옷감을 짜는 두루미 쓰우는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자신을 배신하고 이용만 하는 야헤에에게서 도망친 쓰우는 20년 후 도망치는 것을 도와준 은혜를 갚기 위해 간타의 아들을 찾아간다. 간타의 아들을 돕는 방법이 과연 은혜를 갚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고 주인이나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복수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동화 속 이야기임에도 마음을 울린다. <밀실 용궁>에는 용궁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어부를 용궁으로 데리고 간 거북이야기. 용궁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어부는 한 용의자를 지목해 범인임을 밝히고 육지로 돌아온다. 이틀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육지는 400년이 지나버렸고, 열지 말라는 옥수함을 열어 늙어가는 어부는 닭새우 살인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 거북의 은혜갚음은 우라시마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먼 바다의 도깨비섬>에는 원숭이, 개, 꿩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 모모타로를 도와 인간과 동물을 괴롭힌 도깨비를 해치우기 위해 도깨비 섬으로 떠난다. 도깨비 섬에 도착한 모모타로 일행은 도깨비들을 죽인다. 살아남은 도깨비들은 다시 아이를 낳아 섬을 유지하지만 결국 인간과 도깨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의해 모든 도깨비들이 살해당한다. 도깨비 섬에 더 이상 도깨비는 없다.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전래동화 원작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은혜 갚음과 원수 갚음이 함께 나오고 은혜를 갚으려는 선한 마음과 욕심을 채우려는 악한 마음이 모두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은혜갚음이 정말 은혜갚음이 맞는지도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옛 이야기 속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살인자를 찾아가는 과정은 추리소설과 범죄 소설을 함께 읽는 것과 같이 흥미진진하다. 어떤 이야기는 범인을 예상할 수 있지만, 어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범인을 이야기의 마지막에서야 겨우 알 수 있는 것도 있어 더 흥미롭게 읽었다. 옛 이야기 속 범죄·추리 소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를 읽으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표지 안쪽으로 ‘번외 단편 특별수록’ 작품 <꿩은 도깨비섬으로 향한다>를 실어놓았다. 지금까지 읽던 책들 중 이런 방법으로 이야기를 수록해 놓은 책을 처음 만났다. 독특하고 신선해 즐겁게 읽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는 이야기와 여러 기법 등 모두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다.

 

■ 발췌글

“언뜻 교훈적인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라는 생물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순수하면서도 교활하고, 탐욕스러우면서 잔인한. 이토록 현명함과 어리석은 면모를 두루 갖춘 동물은 없다고 느껴질 정도야.(책 표지, <꿩은 도깨비섬으로 향한다> 중 갈매기가 옛 이야기를 수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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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 -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 철학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5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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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은 도덕과 윤리, 철학을 배울 때 한번은 들어본 이름이다. 하지만 책에 실린 내용도 많지 않았고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아 잘 기억나지 않는 철학자 중 한 명이다. 데카르트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시험에도 출제되어 여러 번 들었지만 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렇기 때문에 줄리언 바지니의 『데이비드 흄』에 더 눈이 갔었나 보다.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를 만나고 그의 사상을 알 수 있을 거라는 흥분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 데이비드 흄

18세기 초 스코틀랜드는 세계 철학의 중심지로 성장한다. 에든버러는 지식의 수도로서 계몽주의를 주도하고, 근대 사상가 두 사람을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다.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1757년에 스코틀랜드인이야말로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문필의 대가라 부를 수 있는 민족이다.”(12페이지)라 말한다. 흄은 에든버러 구시가지에서 태어나 청년기 초반을 살았다. 에든버러대학교에서 공식 교육을 받고 에든버러 신시가지에서 인생 후반기를 보낸 흄은 올드칼튼묘지에 잠들었다. 에든버러는 흄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에든버러는 공존할 수 없다 생각되는 것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다. 흄의 전기를 쓴 어니스트 캠벨 모스너가 바라본 흄이 살았던 시대의 에든버러는 “금욕주의의 엄격함과 따스함, 고립주의와 코스모폴리터니즘, 시골의 소박함과 도시의 세련미, 구세계와 신세계가 공존하는 역설 가득한 도시, 과거에 묶여 있지만 미래를 향한 열망 또한 가득한 도시”(27페이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교양과 누추함, 격식과 불결함이 공존하던 곳’(27페이지), 에든버러에서 태어나고 대학교를 다닌 흄은 이 모순된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철학적 사고를 키웠으리라 짐작해 본다.

 

흄은 두 번의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고 그 여행은 흄의 사상과 저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기독교 문화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예수회대학이 있는 프랑스 라플레슈로의 여행이다. 이곳에서 <<인성론>>의 대부분을 썼다. 흄은 프랑스 사람들을 ‘예의바르고 사교적’이라 말하면서 프랑스인들의 환대에 감명을 받는다. 프랑스인들이 예의범절을 온전히 갖췄다고 칭찬한다. 흄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지식인들과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흄은 1763년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였던 허트포드 경의 비서가 되어 파리로 두 번째 프랑스 여행을 떠난다. 흄의 여러 저작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그는 프랑스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위한 지적 사교의 장으로 살롱이 유행했었고, 흄은 여러 살롱을 방문한다. 두 번째 프랑스 여행에서 흄은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글 외에는 저술한 책이 없었다.

 

흄은 고독을 즐겼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다. 변호사협회 도서관 사서로 지내는 동안 지식인협회 창립자로 이름을 올린다. 이 협회는 법조계, 대학, 교회의 주요 인물들 다수와 사교계에서 선발된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또 다른 모임인 포커클럽에서는 평민이건 성직자건 학식 있고 함께 어울리기 좋은 사람들이라면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말년에 스코틀랜드에 돌아온 흄은 식도락가로도 알려진다. 철학과 미식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흄은 ‘품격 있는 음식 때문에 진지함에 대한 나의 취향이 망가진 적도 없고, 유쾌함 때문에 공부를 망친 적도 없다’(234페이지)라 말한다. 새 집이 완공되고 얼마 후 흄의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흄은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 묘에 세울 기념비는 100파운드를 넘지 말 것이며, 비석에는 오직 이름과 생몰 연도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후대가 기록하도록 해야 한다”(248페이지)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친다.

 

고독과 친교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흄은 인간본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사람들에게 공감할 줄 아는 친절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흄도 자신의 사상과 다른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흄을 철학적 지성인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프랑스인들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공격하는 원정대에 참여했고, 명분 없는 공격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손에 권력을 넘기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공화정을 반대하고 군주제를 지지했다. 흄은 지성을 갖춘 여성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했지만, 남녀가 동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은 남성의 육신과 정신을 더 강하게 만듦으로써 여성보다 큰 우위를 부여했다”(156페이지)라고 말하면서 남녀 차별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당시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자유와 음식을 사랑한 흄은 사람과 철학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인간과 철학에 대한 것을 연구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사람에 대한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한 철학자 흄은 고독한 삶을 갈망함과 동시에 지식인들과의 시간을 사랑했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 흄의 생각들

인간 본성을 살피는 것을 공부의 목적으로 삼은 흄은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를 이용해 탐구했다. 흄이 살던 당시에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는 책과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오늘날은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책을 읽거나, 직접 교수자를 만나 강의를 듣거나, 인터넷을 활용해 더 많은 정보와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를 이용해 탐구를 하기에 오늘날은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에 흄이 살았다면 어마 어마한 양의 정보를 보고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흄은 학자이자 철학자가 되기 위해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우울감에 빠진다. 흄은 자신의 병을 ‘지식인의 병’이라 칭한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은 공부량을 줄이고 매일 운동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인간 오성 연구>>에서 흄은 이 때의 교훈을 “일정 정도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정신이 주의력과 근면함을 늘 뒷받침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32페이지)이라고 적는다. 이때부터 흄은 여가와 운동과 공부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생활했다. 휴식의 중요성에 대한 흄의 깨달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깨달음이다. ‘번아웃증후군’에 걸리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던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소진되어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천천히 가면 두 시간이 걸릴 거리를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은 네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다’는 말처럼 오직 꿈과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흄의 말처럼 여가와 운동과 공부의 균형이 필요하다.

 

흄은 합리주의 철학자의 전형인 데카르트의 주장에 반발한다. 데카르트는 인간 지식의 안정적 기반을 선천적 인식 능력인 순수이성에 국한하고자 했다. 데카르트는 “사과 바구니에 가득 들어 있는 사과들 중 일부가 썩어 나머지까지 썩게 만드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미 썩은 사과를 빼내는”(49페이지)사람과 같다고 비유한다. 데카르트가 주장한 ‘회의론 프로젝트’는 썩은 사과를 빼내는 것처럼 “틀린 생각을 옳은 생각과 분리하여 틀린 생각이 나머지를 오염함으로써 생각 전체를 불확실성에 빠뜨리는 일을 예방해야”(49페이지)한다는 논리다.(방법적 회의) 데카르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합리주의’라 불린다.

흄은 <<인성론>>에서 데카르트의 이론에 반대하는 내용을 적는다. 흄은 ‘보편적 의심’에 기반을 둔 회의주의는 사유와 탐구를 통해 결론으로 귀결되는 의심이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에서 모든 것을 불신하는 종류의 의심이라 말하면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선행적 회의주의’라고 비판한다. 흄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적 방법이 인간본성의 불완전함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다양한 주제에서 망상과 오류가 나타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흄은 인간을 아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며, 인간 본성은 추상적 개념이 아닌 물적 실재이므로 경험과 관찰을 통해 사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런 흄의 이론은 ‘경험주의’라 불리게 된다. 흄은 “인간을 아는 것이야말로 다른 것을 알기 위한 유일한 기초이며” “인간을 알기 위한 유일한 기초는 경험과 관찰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인간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경험과 관찰을 강조한 그의 이론은 ‘경험주의’라 알려지게 된다.

 

흄의 철학이 아이스토텔레스와 공자의 사상과 비슷한 점은 도덕과 정중함과 예절을 윤리의 전체이자 본질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흄이 <<인성론>>을 쓴 목적은 경험에 기반을 둔 잠정적이고 불확실한 결론을 내리는 일을 철학의 과제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관념들의 관계를 추론하는 일과 사실 문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논리만으로는 세계의 운행방식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 흄은 관념들의 관계와 사실을 구분함으로써 사실 문제에 절대적인 확실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말한다. 논리라는 것은 논리적 증거를 통해 증명을 하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개연성과 증거를 평가하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과 행위는 개연성과 증거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개연성 있는 주장은 과거의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정해서 말한다. 흄은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 벌어질 일의 증거는 될 수 없지만, 과거의 경험과 미래에 벌어질 일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하리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 말한다.

흄의 주장에 따르면 인과의 작용을 관찰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우리가 본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 후에 일어난 다른 사건뿐이라고 말한다. 인과를 구성하는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연관성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인과 결과의 작용을 실제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본능적인 정신 작용’(74페이지) 때문이다. 정신이 연속적인 두 사건의 틈새를 느끼지 못하고 실제로는 관찰할 수 없는 연관성을 직접 부여하기 때문이다. 인과에 대한 지각이 상상 작용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흄은 이런 상상에 의한 지각에 얼마나 굴복해야 하는가에 대해 딜레마에 빠진다. 상상을 섣불리 받아들인다면 오류와 모순과 모호함으로 인한 맹신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이성으로 확실하게 입증된 것만 믿으면 일반적인 사실마저 믿을 수 없게 되어 완전한 회의론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적 추론의 한계에 대해 이성만으로 지식의 토대를 세울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경험에 기댈 수 있음을 깨닫는다. 흄의 사상은 논리적 타당성은 빠졌지만, 그의 사상의 타당성은 경험으로 증명한다. 세계를 관찰해보면 사실의 문제에 대한 추론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험을 유용하게 만들어주고, 사건의 연속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관습 혹은 습관이라는 원칙뿐이다. 흄은 ‘원인에서 결과로, 결과에서 원인으로의 습관적 이행’을 ‘영구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인 원리’라 주장한다. 실재란 것이 관습, 습관, 본능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 원리로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흄은 이성 자체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이성이 모든 사실을 밝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했을 따름이다. 즉 이성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다시 검토해보자는 것이었다.(81페이지) 인간 본성은 물적 실재이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므로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실험 방법을 따르고 특정한 사례들을 비교하여 일반 원리를 끌어내야만 비로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52페이지)고 주장한다. 흄은 자연과학의 실험 방법을 철학의 영역으로 도입한 셈이다. 흄의 사례로부터 더 나은 이성 추론을 위한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성 추론을 시작해서 결론을 끌어내기 전에 자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를 통해 흄은 인과의 작용을 실제로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 합리적 주장을 믿게 하려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흄은 인류 대다수가 더 오랜 시간 한 경험이 소수의 사람들이 그 경험에 반대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그럴듯한 확률이 높다는 말로 기적에 대한 믿음에 반론을 제가한다. 이것은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원리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이성 추론에서 특정 논증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은 논증이 스스로에게 강력하게 느껴지느냐 아니냐의 여부뿐이라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자신이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반론에 귀를 기울이면서 논쟁을 해야 한다.

 

흄은 타인의 철학적 확신을 의심하듯 자신의 철학적 확신 또한 의심하라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철학적 확신뿐만 아니라 철학적 의심까지도 의심해야 한다고 한다. 철학의 확실성을 의심하면 철학의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철학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철학을 하지 않으면 철학이라는 것이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게 되거나, 철학을 아예 포기해 버리게 된다.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학의 확실성을 의심하면서 철학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전제하고 증거에 기초하여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적 문제에 대한 사유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일차원적인 욕구를 넘어 사유하고 질문하고 앎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흄은 지각의 모든 것을 ‘정신의 지각’이라 부르고,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한다. 인상은 직접적인 지각, 관념은 정신이 직접적 지각을 간접적으로 복제한 복제물이라 전제한다. 인상과 관념의 차이를 지각 자체의 성질에서 끌어오고 싶어 했던 흄은 지각의 생생함과 선명함, 즉 지각의 선명성 정도로 판단했다. 인상은 강하고 격렬하고, 관념은 인상보다 희미하고 약하다. 흄은 ‘공감’을 ‘관념을 인상으로 바꾼 것’이라 정의한다. 감정은 일종의 전염에 의해 퍼지기 때문에 타인의 특정 감정을 지각하고 그것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게 된다. 이 관념을 통해 타인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흄은 “어떤 감정이나 정념에 대한 관념이 생생해지면 곧바로 그 감정이나 정념이 될 수 있다”(92페이지)라고 말한다. 시나 소설에서 전하는 강력한 슬픔에 대한 관념은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감정은 상상으로, 우리가 감정에 대해 형성하는 관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된다. 정신은 인상에서 유래한 관념들로 가득 찬다. ‘시공간의 인접성, 유사성, 인과’는 정신이 관념을 조직하는 연합의 원리이다. 흄은 관념과 인상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철학 체계의 기초로 간주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 기반을 두고 철학을 연구하고자 했던 흄에게 인간이 관념을 어디서 얻는지를 찾는 것이 중요한 연구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 모든 앎의 원천이 경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이 중요했다.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내재적 관념의 존재를 믿었다. 인간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관념을 발견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보다는 생각과 추론만으로 실재의 성질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경험주의를 옹호한 흄은 내재적 관념을 멀리하고, “어디서 정신은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구하는가? 내 대답은 한 마디다. 바로 경험이라는 것이다.”(94페이지, 흄)라며 ‘경험’을 강조한다. 흄은 자신의 경험주의가 성립하려면 내재적 관념을 모조리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흄은 우연을 거부하면서 우연이나 운은 앎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나오는 판단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흄이 우연과 운을 바라보는 시선은 모순적인 면도 보인다. 원인 없는 결과라는 의미의 우연은 믿지 않았지만, 물질적 부는 행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서 운이라는 우연에 대해서는 믿는 모습을 보인다. 흄은 <<인성론>>을 발표한 후 위험한 사상가로 낙인 찍혀 대학 교수가 되지 못한다. 흄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수입과 명성을 보장해주는 교수직을 원하기도 했었다. 우연을 거부했던 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으로 인해 교수가 되지 못했다.

 

흄은 인간의 행동과 선택은 자유의지가 아닌 사전 원인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원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원인이 눈에 쉽게 띄지 않았을 뿐이라 말한다. 흄은 자유의지에 관한 무분별한 생각의 원인을 ‘자발적 자유’와 ‘무차별적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자발적 자유’는 강요 없이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고, ‘무차별적 자유’는 인과의 필연성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자유는 ‘자발적 자유’ 뿐이다. 인간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의지가 아닌 사전 원인이라는 흄의 주장은 계속 읽다보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행동 자체는 비난할 만하다. 행동은 도덕과 종교의 규칙에 위배될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을 한 사람은 그 행동에 책임이 없다.’(111페이지)라는 내용을 읽다보면 나의 이해력의 부족으로 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동의 주체에게 행동의 책임이 없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 필연성에 의한 사전 원인으로 인해 행동을 선택했더라도 결국 그 행동을 하기로 선택한 것은 자신일 것인데 왜 행동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하는지 의문이 든다. 도덕과 종교의 규칙에 위배된 행동을 한 범죄자에게 행동의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벌을 주면 안 되는 것일까? 흄의 자유의지에 관한 철학을 ‘자유와 필연’의 화해 프로젝트로 표현하고 무차별적 자유에 대한 잘못된 믿음 없이도 자유의지라는 관념으로부터 원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줄리언 바지니는 적고 있다. 이 접근법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함께 양립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얕은 지식을 가지고 흄의 이론을 본다면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조화가 아닌 결정론만을 주장한다고 잘못된 해석을 할 수도 있을까 우려된다.

 

흄은 심리학적 통찰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폭을 확장시킨다. 최근에 행한 행동이 기억에서 잊힌 행동보다 생각과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흄의 생각은 ‘최신효과 현상’으로 판단의 오류를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이와 비슷한 개념은 ‘인지편향 중 과도한 가치 폄하’이다. 미래에 받을 보상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도 즉각적인 보상을 위해 가까이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력과 구속력을 갖춘 법과 계약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흄은 인간본성의 원리 중 인간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림짐작에 의지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자신의 속성이나 성격에서 찾는 성향이 있는데 이런 편견을 ‘귀인오류’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적능력을 이용해 기존의 편견을 합리화한다.

 

흄은 정의가 인간의 삶과 독립되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미덕, 순수이성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정의는 인간이 조화로운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정의가 인간에게 맞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인간의 능력이 주는 이점은 첫째, 자원의 공동 관리를 통해 사회는 개개인이 자원을 관리할 때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 둘째, 노동의 분업을 통한 전문화는 사회 구성원의 능력을 증대시킨다. 셋째, 인간은 사회라는 집단을 통해 상호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에 어느 때건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은 부유한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225페이지)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투명성, 일관성,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225페이지) 투명한 사회, 일관성을 갖춘 사회,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 정의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흄은 에든버러에서 브리스클, 라플레수, 영국, 파리를 거쳐 마침내 에든버러로 돌아와서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인간이었다.(123페이지)

줄리언 바지니는 철학자의 이론을 연구하기 위해서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흄이 내세운 철학은 그의 모든 삶과 존재의 모든 측면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그의 생애와 저작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바지니의 의견이다. 짧은 글 속에도 글을 쓴 사람의 경험과 생각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쓴 작가의 생애와 다른 작품들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양 철학의 한 획을 그은 흄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바지니의 생각처럼 흄의 생애와 저작을 모두 알아야 된다는 것에 찬성한다.

『데이비드 흄』은 흄의 생각과 생애와 관련된 장소를 연결해서 설명하고 사진을 함께 실어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에필로그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과 <데이비드 흄 사상의 키워드>, <데이비드 흄 생애의 결정적 장면>에 흄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 놓았다. 흄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어놓은 글을 읽으면서 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난 후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흄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배우지 못했고, 교육은 왜 우리에게 흄을 더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았을까? 데카르트와 흄, 두 철학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데카르트만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 의문은 책을 읽은 후 더 강하게 들었다.

■ 발췌글

26

철학을 해결해야 할 독립적인 지식의 문제라고 본다면 철학자를 굳이 살펴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철학이 부분들을 한데 엮어 일관된 전체를 구성하는 종합적 학문이라고 간주한다면 철학자를 무시하는 태도는 이치에 맞지 않다. 더욱이 일관된 전체라는 것이 철학자의 생애와 저작, 사상과 실천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태도는 더더욱 난센스다.

 

30

흄은 인간의 본성을 살피는 과제를 공부의 목적으로 삼았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를 이용해 탐구했다.

 

33

철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82

독단적 의견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적 한계를 더욱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204

흄은 인간 본성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철학의 기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당시에는 정념이라고 불렀다-을 온전히 수용하지 않는 도덕철학은 무엇이건 근본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26

“안정은 법에서 나오고, 호기심은 안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식은 결국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252

“정말이지 인정 많은 성정을 타고났다. 그의 인류애는 넓고 깊었다. 그는 늘 사람들을 쾌활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그의 마음은 따뜻하고 친근했으며 박애심이 지극했다.”(작가이자 출판업자 제임스 콜필드가 말한 흄의 모습)

 

■ 흄의 금언

개인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면 배울 점이 있는 모든 것에서 가르침을 얻으라.(30페이지)

제대로 사유하려면 생각하지 않는 시간,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32페이지)

인간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철학자들의 상상대로 다룰 때 철학은 실패한다.(33페이지)

생이 제공하는 만족을 다 누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타인이나 운에 기대지 말라.(36~37페이지)

이성에 대한 태도와 이성 추론의 방식에서 극단은 금물이다.(82페이지)

경험과 경험의 재현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므로 더 잘 알려 해야 한다.(97페이지)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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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킬 줄이야
류쉬안 지음, 마르코 천 그림, 임보미 옮김 / 다연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삶은 행복과 불행이 함께 이어지면서 진행된다. 행복만 가득하길 상상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불행을 겪을 때 사람들의 대처는 각각 다르다. 불행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켜 해결해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느 유형의 사람일까를 돌아보면 불행의 강도와 상황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오히려 큰 불행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내일을 위해 삶을 준비했다. 하지만 오히려 작은 불행 앞에서는 좌절하고 화내면서 회피할 때가 종종 있었다. 결국 불행한 일에 대해 해결은 하게 됐지만, 부정적인 마음에 빠져 며칠을 괴롭게 보냈었다. 지나보면 별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바보같이 행동했을까 후회된다. 『심리학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킬 줄이야』은 긍정심리학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같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나이고, 선택에 따라 마음의 상태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떤 마음을 가질 때 삶이 더 행복해질까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매일 15분씩 읽고, 생각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다.’(259페이지)

 

『심리학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킬 줄이야』는 총 3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가짐이라는 렌즈를 닦자>, <잠재의식 속 시나리오>, <중요한 일에 매진하라>, <몸의 에너지를 제어하라>, <바른길을 간다는 건 그리 간단치 않다>, <당신의 초능력을 믿어라>’의 6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각 소제목 별로 다섯 개의 장(총 30장)으로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한 자아 훈련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부록에 <VIA 성격적 강점 리스트>에서는 6개의 핵심 미덕을 정의하고, 24개의 성격적 강점으로 세분화해서 설명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여행 방법’은 매일 15분씩 조용한 곳을 찾아 심호흡과 함께 가슴을 쫙 편 뒤 몸과 마음을 안정시킨 뒤 책 한 장을 읽고 그와 관련된 행동을 실천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매일 자신과 대화하는 의식을 실천해가기를 권장하고 있다.

● <마음가짐이라는 렌즈를 닦자>

‘인생이 여행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목적지는 어디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나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그 답은 계속 바뀐다. 지금 현재 나의 목적지는 ‘배움’과 ‘독서’로 이룰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은 현자이다. 이것이 목적지가 될 수 있다면 말이다.(19페이지, 보딩패스)

 

‘주제통각검사’라는 심리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세상을 들여다본다. 사진(21페이지)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자신의 느낌을 써보는 것이다. 마음 속 생각, 가치관, 편견 등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테스트다. 이 실험을 통해 같은 상황을 사람들마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의 생각을 생각하라!’(23페이지)

이 테스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을 다시 생각하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왜 하는지,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에 대해 자각하고 반성할 수 있게 해준다. 생각이란 것이 진짜 나의 생각인지, 주입된 것인지를 되돌아보면서 잘못된 편견이 나의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도 자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틴 셀리그만은 개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학습된 무기력’을 발표한다. 무기력을 학습한 개들은 탈출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전기 충격 앞에서 무기력하게 울부짖기만 했다. 사람들도 부정적인 평가를 계속 받을 경우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져 포기해버린다. 하지만 실험 대상의 1/3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고통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를 찾았다. 좌절을 극복해본 경험이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셀리그만은 학습된 무기력도 학습되지만, 낙관주의 역시도 학습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학습된 낙관주의) 어떤 상황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 언짢은 일이 발생했을 때 긍정적인 마음과 반응을 할 것인지 부정적인 마음과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나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나의 것이다. ‘학습된 낙관주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반응의 반복된 학습이 필요하다.(ABC이론과 ABCDE이론)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동기’이다.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왜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그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일을 하게 한 것이 ‘자신을 위해서였는지(자아),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 한 결정이었는지(임무), 혹은 이상적인 목표로 접근하기 위한 것이었는지(접근),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는지(회피)’(55페이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이 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은 왜 하지 않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 현재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마음가짐이라는 렌즈를 닦자>에서는 심리 상태가 비관적인지 낙관적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자신의 심리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말한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자각하고 반성할 때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의 동기는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렸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가?>에서 QR코드를 스캔하면 캐럴 드웩의 TED강연을 볼 수 있다.)

 

 

● <잠재의식 속 시나리오>

내가 살아온 과거는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하고 있는 나의 행동도 시간이 지난 후 과거가 되어 미래에 영향을 준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이 경험들이 마음에 쌓여 어떤 결정들을 하게 만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한다.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고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을 했고, 앞으로도 많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선택의 순간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과거에 내가 했던 결정들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스탠퍼드대학교의 필립 짐바르도는 ‘시간조망이론’을 제시한다. 사람의 시관관념이 매일 이뤄지는 결정, 판단,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 유형은 과거는 재앙이라 생각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생명을 바라본다. 쉽게 우울감, 근심, 자신감 결핍으로 인해 자기 제어를 힘들어한다. ‘과거 긍정적 시간관’ 유형은 행복했던 과거에 심취해 현재에 불만을 느끼기도 한다. 비교적 활발하고 우호적이며 긍정적이다. ‘현재 쾌락적 시간관’ 유형은 현재의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고 현재를 살면서 활력이 넘친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 유형은 습관적 무기력에 빠지기 쉽고,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쉽게 걱정하고 우울해한다.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경향을 갖는 유형이다. ‘미래 지향적 시간관’ 유형은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며, 목표 의식이 뚜렷하다. 지나치게 미래만 생각해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 다섯 가지 시간관 유형 중 나는 ‘현재 쾌락적 시간관’과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 ‘미래 지향적 시간관’의 특징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즐기면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현재 쾌락적 시간관),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 되는 일이 없다고 걱정하고 우울해한다’(현재 숙명론적 시간관), ‘계획 짜기를 좋아하고 야심과 목표의식이 있다’(미래 지향적 시간관)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의 시간관이 아닌 여러 개의 시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과거’적 시간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하다. 짐바르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볼 줄 아는 두 눈으로 자신의 시간을 통해 지금에 주목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긍정적인 동력을 찾는 것이다.”(84페이지)라고 말한다. 과거의 삶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받고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건강한 심리 시간관’이라는 것이 짐바르도가 ‘시간조망이론’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나친 행복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말에 공감이 된다. 행복하고 평탄한 삶을 살아가면서 갈수록 걱정이 늘어난다. 걱정이 커질수록 불안감도 커지고 심해지면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현재만을 생각하자’이다. 닥치지 않은 미래의 불행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괴로운 순간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과거는 흘려보내고 현재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려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때그때 하나씩 해결해 가려 한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방법이 내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해답이다.

 

● <중요한 일에 매진하라>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집안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비우고 공간을 비우고 정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리 전과 정리 후의 모습은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완전히 바뀌어 있다. MC는 ‘비워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물건과 마음을 비워야 할 때 비울 수 있어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공간을 비웠다면 온전하게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마다 원하는 ‘나만의 공간’의 조건은 다를 것이다. 신박한 정리에 출연자 중에서도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크기와 상관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

※ <나만을 집중을 위한 앱, ‘mynoise.net'> QR코드

 

불필요한 일을 줄이기 위해 미국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이 일간 계획을 세웠던 방법인 ‘아이젠하워 매트릭스’ 기법을 활용한다. 해야 할 일을 ‘긴박하고 중요한 일(조속히 해결), 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일(언제든 해결할 것으로 결정),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다른 이에게 넘김), 긴박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삭제)’로 분류한다.(121페이지) ‘아이젠하워 매트릭스’ 기법을 활용해 해야 할 일을 분류했더라도 계획에 없던 변수가 발생할 때가 있다. 긴박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라 생각해 삭제하려는 순간 주변 사람들에 의해 갑자기 그 일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나에게 긴박하고 중요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의해 나에게는 긴박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거절하지 못하고 하고 있으면 마음은 불안하고 짜증이 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이런 상황에 자주 놓였었다. 하지만 조금씩 상대방이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착취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을 터득해가는 중이다.(139페이지, 현명하게 거절하는 방법)

 

● <몸의 에너지를 제어하라>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릴 때 심리적 에너지의 상태는 생각하는 속도와 인내심에 영향을 준다.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되어 ‘의사결정피로’의 상태에 놓이게 되면 생각하는 속도는 느려지고 인내심은 바닥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정신적 컨디션이 가장 좋은 때로 선택해야 한다. 의사결정피로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의지력을 높여줘야 한다. 의지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당한 운동과 잘 놀고, 잘 먹어야 한다. 뇌는 집중과 휴식이 똑같이 중요하다. 집중만 하고 휴식을 주지 않으면 뇌의 피로도는 높아져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 <나의 수면 사이클> QR코드 (171페이지)

 

뇌를 쓸수록 정신적 피로로 인해 의사결정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것에 예외가 있다. 1975년 칙센트미하이는 ‘플로우’라는 특수한 정신 상태를 발표한다. 극도의 집중력이 발휘될 때 그 대상에 빠져들면서 효율과 창의력이 상승한다. 동시에 시간도 배고픔도 그 자체와 무관한 심신의 모든 시그널도 잊게 된다.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갈증과 허기를 느낀다.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맑고 심리적 컨디션도 좋다.(175페이지) 뇌를 사용할수록 정신적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에 비해 ‘플로우’ 상태에서는 오히려 정신적 컨디션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플로우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 적당한 능력, 도전정신, 피드백과 보상, 명확한 목표’(180~181페이지)의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플로우 상태’에 빠지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몰입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삶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 <바른길을 간다는 건 그리 간단치 않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일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을 ‘시각화’라 한다. 꿈은 삶의 상황과 시작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꿈만 꾼다고 상황과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꿈을 시각화 한 후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한 후 실행에 옮겨야 삶은 변한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구체적인 목표, 정량화된 진도, 실천을 통한 실현 가능성, 현실성, 목표기한’(192페이지)을 나타내는 SMART원칙을 활용해 구체적인 내용을 상상해본다. 상상력에 동력을 주어 실천력을 주었을 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목표를 세운 후 장애 요소를 제거해 나간다면 목표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나의 꿈을 상상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실행할 때 마음먹은 대로 술술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중간 중간 돌발 상황과 방해요소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다. 꿈은 꿈만 꿀 때는 망상으로 남겠지만 목표를 세우고 실천할 때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 <당신의 초능력을 믿어라>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을 연구할 때 ‘지속 가능성’의 목표를 추구한다. 셀리그만은 한 사람이 행복한 미래를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5가지를 말한다. ‘PERMA', ’P는 긍정적 감정, E는 대상에 대한 몰입, R은 좋은 관계, M은 생명 존재의 의미, A는 성취감‘(226페이지)이다. 자신의 ‘PERMA'를 점검해 보고 행복한 미래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성격적 강점을 찾는 방법을 적고 있다. 강점이란, ‘심리적 건강과 행복감을 쉽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243페이지)을 의미한다. 얼마 전 강점 검사를 한 적이 있다. 나의 대표 강점은 ‘탐구’(VIA성격적 강점리스트에서는 ‘학구열’이 비슷한 의미라 생각한다)가 나왔다. 궁금한 것이 많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고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나에게 어떤 이들은 ‘그렇게 배워서 어디다 쓸 거냐’며 묻는다. 누군가의 눈에는 단점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강점이 될 수 있다. 결국 강점이란 것은 내가 가장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등등을 말하는 것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긍정적 사고를 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 행복을 지속시키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책을 읽을 때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들을 만든다. 『심리학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킬 줄이야』는 그런 질문들이 책 속 여기저기에 들어있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질문들이 있어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에게 한 질문을 적어볼 수 있어 계속 두고 활용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했다. 심리란 어렵다. 하지만 일상에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심리학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킬 줄이야』는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 각 장마다 질문과 심리 테스트가 실려 있어 나의 심리 상태와 생각, 마음 등을 적어볼 수 있다. QR코드로 되어 있는 강연, 심리테스트, 앱 등도 있어 핸드폰으로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를 활용해 자신을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가이드 해주는 책이다.

 

 

■ 발췌글

8

마음가짐은 세상을 보는 렌즈이다. 마음가짐은 우리의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 감각은 판단에 영향을 미치며, 판단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또다시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52

인생 계획을 말한다면 그 동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인생은 그저 앉아서 일이 목전에 닥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쟁취하고, 설계하며 행동에 옮겨야 한다.

 

83

우리의 뇌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 또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활용하여 판단하고 생각한다.

 

84

어느 시공간이든 지나친 집착은 좋지 않다. 우리의 뇌는 유연한 기기와 같다. 유연성을 유지해야만 적절하게 조절하며 대응해갈 수 있다.

 

101

주변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어떤 가치관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112

소비하려는, 구매하려는, 소장하려는 ‘잠재력 있는 물건’이 앞에 있다면 먼저 두 가지만 자문해보자. 첫째, 순수하게 직감적으로 정말 ‘좋아’하는가? 둘째, 순수하게 이성적으로 ‘어떻게 사용’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에 답할 수 없다면 세 번을 생각해보길 제안한다.

 

113

책장의 책이나 옷장 속의 옷 혹은 수납장 안에 넣어두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장식품도 좋다. 물건들을 손에 들고 두 가지를 자문해보자. 첫째, 정말 이 물건이 좋은가? 이 물건에 대해 강렬한 느낌이 있는가? 둘째, 나 자신에게 이 물건을 사용한 시간을 말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문제에 답하는 동시에 앞으로 이 물건을 사용할 시간 계획을 세워야 한다.

 

140

우리는 ‘지금의 결정’과 ‘인간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부당하고, 돌발적이며,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고, 나아가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가까운 사이라도 분명히 거절할 수 있는’ 연습을 통해 더 이상 감정적으로 피동적인 위치에 놓이지 말아야 한다.

 

216

어떤 일이나 목표가 있다면 이를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구분하고 통제 범위를 넘어선 부분은 받아들이면서 가능한 부분에 온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점, 이와 함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최선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259

무슨 일을 하든지 더 이성적으로 더욱 정확하게 자신의 성격적 강점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계획을 세우고, 낙관적으로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미래를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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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ㅣ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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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혼돈 속이었던 격동의 20세기. 『방구석 미술관 2, 한국』은 그 시대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신과 시대의 정수를 작품에 녹여냈던 예술가의 이야기를 풀어준 책이다. 『방구석 미술관 2, 한국』을 통해 근현대 미술 100선에서 만난 화가들과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가는 책이다. 화가의 생애와 작품을 분석하고 뒷부분에 <더 알아보기>에서 예술가의 ‘미술사적 의의’와 예술가의 또 다른 면모를 설명하고 있다. 페이지 오른쪽 윗부분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방구석 미술관’으로 연결되어서 예술가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들을 수 있다.

 

● <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

가족과 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

6.25전쟁을 피해 제주도로 피난 간 이중섭의 가족은 힘든 삶을 살았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아내가 폐결핵에 걸리고,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리면서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아이들은 일본으로 떠난다. 홀로 남은 이중섭은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면서 그림을 계속 그린다. 물감과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속 은박지에 음각해서 그림을 그린다(은지화). 일본을 잠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가족을 만나고 다시 돌아온 이중섭은 통영으로 옮긴 후 그림 그리는 것에 온 힘을 쏟는다. 서울과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었지만 사기꾼들에게 속아 그림 값을 받지 못해 좌절한 이중섭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마지막으로 그린 <덤벼드는 소>는 어둡고 생명력이 결여된 화가 자신의 모습을 닮아 있다. 삶을 포기한 화가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 이중섭의 <덤벼드는 소>를 보는 내내 화가의 삶의 고단함과 좌절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원조 신여성, 나혜석>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나혜석은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신여성이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다. <경희>, <이상적 부인>, <잡감> 등의 작품을 기고하면서 여성운동과 양성평등을 주장한다. 김우영과 결혼해 삼남매를 낳은 나혜석은 육아와 일을 함께 하면서 힘들어한다.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남편 김우영이 일본 외무성에서 준 포상으로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남편을 따라 떠난다. 남편의 친구 최린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부부간 사이에 금이 간 채 귀국한다. 귀국 후 나혜석은 홀로 시댁에 남아 시부모와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은 서울로 올라가 변호사 개업을 한다. 집안 경제가 기울면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나혜석은 최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로 인해 남편 김우영과 이혼을 하게 된다. 결혼부터 이혼까지의 과정을 쓴 <이혼 고백장>과 최린에게 위자료 청구소송을 한 일로 인해 나혜석은 세상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 떠돌던 나혜석은 서울시립자제원에서 53세의 나이에 무연고자로 사망한다.

 

● <한국 최초의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변화하는 시대에 전통만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변화를 따라가기로 마음먹고 그림을 그려주고 받은 품삯으로 19살에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에 도착해 당대 최고의 서화가 중 한 사람인 김규진을 찾아간다. 문전박대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간청한 끝에 김규진의 제자로 들어간다. 1~2년 동안 동양화를 배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청죽>으로 입선하고 그림을 반대하던 아버지의 인정을 받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보고 ‘자신의 눈으로 본’ 실제 대나무를 그린 <청죽>과 <풍죽>으로 다시 한 번 조선미술전람회에 특선, 입선에 오른다.

이응노는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추상화를 접목시켜 ‘문자추상’을 새롭게 창조한다. 재료의 종류를 한정하지 않고 모든 재료로 문자 추상 작품을 만든다.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던 이응노는 고국의 대통령이 초청한다는 말을 듣고 귀국한 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가장 힘든 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나오는 음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때의 경험으로 ‘사람과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사람을 위한 예술’로 나아간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아우르는 작품 활동을 한 이응노의 작품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처럼 삶의 굴곡이 있을 때마다 작품세계에도 반영되어 평생 동안 작품을 변신시키면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낸다.

 

●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뛰어난 사업 감각을 지닌 ‘사업천재’

유영국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외부의 사물을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만의 추상적 언어를 만들기 위해 어떤 재료가 어떤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그 재료를 어떤 색채와 형태로 가공해야 하는지, 재료들을 어떻게 배치해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일본 군국주의가 극에 달하던 때 일본은 ‘전위’, ‘자유’, ‘독립’을 나타내는 미술을 금지시키고 국가를 찬양하고 전쟁에 찬성하는 그림을 제작하게 한다. 유영국은 자유가 없는 예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하고 절필을 선택한다. 해방이 된 후 1947년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가 된 김환기가 전임강사직을 제안해 유영국은 서울로 올라간다.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은 ‘신사실파’라는 모임을 만들어 추상화 화가로서의 길을 걸어간다.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유영국은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을 피해 숨어 지내다 고향 울진으로 피난을 떠나 양조사업을 시작한다. 예술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돈이라는 수단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유영국에게 사업은 가족을 지키고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는 ‘한국의 자연’, 그 중에서도 고향 ‘울진의 자연’에서 그림의 영감을 얻는다. 자연에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려 나가던 유영국은 단 하나의 대상인 ‘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가장 근원적인 조형요소들을 산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는 유영국, 겸재 정선, 폴 세잔이 대표적이다. 이 세 화가의 ‘산’ 그림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큰 즐거운 감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176페이지, 폴 세잔)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178페이지, 유영국)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았던 두 화가는 실존하는 산을 대상으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산’을 표현한다. 겸재 정선 또한 금강산을 대상으로 자신 안에 존재하는 ‘산’을 화폭에 표현했다.

 

● <아이의 낙서처럼 심플한 그림, 장욱진>

유영국은 현실에 발을 딛고 이상을 추구했지만, 장욱진은 현실을 벗어나 이상만을 추구했다.

평생 동안 수표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재물 욕이 없었던 장욱진은 욕심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예술만을 추구하는 외골수 화가로 살아간다. 무욕의 삶을 살고자 평생 그림을 그리며 수행하는 삶을 살아간 화가 장욱진의 그림에는 ‘가족’과 ‘자연’, 그리고 ‘무욕의 삶’이 들어있다.

 

●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

역대 가장 비싼 한국작가의 작품 10점 중 9점이 김환기의 작품이다. 그 중 <우주>는 201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에 낙찰되면서 한국작가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이 되었다. 김환기는 유영국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며 단색화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화가로 한국 20세기 현대회화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김환기는 관객이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을 그리는 ‘구상’과 화가의 머릿속 상상력으로 색채와 형태를 캔버스 위에 구성하는 ‘추상’을 조화롭게 섞어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창조한다.(반추상) ‘조선이 가진 미의 정수’를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고향 안좌도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다. 조선의 미를 탐구했던 김환기는 오랜 탐구 끝에 조선의 미를 대표하는 대상으로 ‘조선의 백자’를 선택한다.

“나는 조형과 미와 민족을 우리 도자기에서 배웠다.”(242페이지, 김환기)

평범하고 흔한 백자항아리가 같은 듯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환기는 백자항아리 속에서 자연의 모습을 발견한다. 평범함 속에 담긴 아름다음을 찾아낼 줄 아는 김환기는 평범한 백자항아리 속에서 조선의 미를 찾아 표현한 화가다.

파리에 가고 싶어 했던 김환기는 아내 김향안의 노력으로 파리에 도착한다.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그의 그림에 ‘조선의 미, 민족의 미’가 더 짙게 표현된다. 고국으로 돌아와 그림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성공을 거둔 김환기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그린 ‘점화’로 뉴욕 생활 8년 만에 화랑에서 개인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생긴 디스크 수술을 받은 후 병원의 실수로 침대에서 떨어져 뇌사상태에 빠져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 <서민을 친근하게 그려온 국민화가, 박수근>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270~271페이지, 박수근)

밀레의 영향을 받은 박수근은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면서 그들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림 속에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최영림, 황유엽, 장리석 등 유학이 아닌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는 국내파들의 모임 ‘주호회’를 만든다. 주로 판화 작업을 하고 있던 주호회 멤버들의 영향으로 박수근의 회화세계는 ‘판화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주호회 멤버들과 함께 떠난 경주 여행은 박수근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신라인이 만든 석물에 매료되어 신라의 미를 찾아 석물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경주 남산에 자리한 석불에서 영감을 얻은 박수근은 불상이 새겨진 화강석 표면의 오돌토돌한 질감을 재현하기 위해 석물을 탁본을 하면서 연구를 계속한다. 화강석의 질감과 단색조의 미, 그 위에 새긴 선의 미에 집중한다.

6.25 전쟁 이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수근은 그림 속에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 평범한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는다. 박수근은 자신의 ‘반복적인 그림 그리기’와 서민들의 ‘반복적인 일’, 모두가 ‘가족을 위한 노동’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 행위를 박수근은 ‘최상의 미’라고 생각했다.

 

● <독보적 여인상을 그린 화가, 천경자>

‘찔레꽃 향기 밑을 스치는 두 마리 실뱀, 비단 허리띠 같은 독사.’(315페이지)

천경자는 그림으로 마음을 치유한다. ‘X’자, 즉 ‘뱀’이 이때 등장한다. 천경자에게 뱀은 ‘저주를 불러오는 악한 것’이었다. 자신의 삶 속에 자리한 저주를 물리치기 위해 뱀을 통해 모든 불행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여동생의 죽음 이후 그리기 시작한 뱀 그림은 불행으로 인해 망가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천경자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서른다섯 마리의 뱀을 그린 <생태>는 천경자의 마음을 치유해주었고, 동시에 그녀의 작품의 핵심 주제를 발견하게 해준다. 이 그림을 본 김환기에게 홍익대 동양학과 교수직을 제안 받고 서울로 올라온다. 1957년 유영국, 이규상, 한묵, 박고석 등이 소속된 모던아트협회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한다. 유일한 동양화가였던 천경자는 유화물감으로 그리는 작업 방식에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비 개인 뒤>를 완성한다. 대학교수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천경자는 창작을 위한 영감이 사라져 혼란을 겪으면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다시 ‘뱀’에서 예술의 영감을 가져온다. 다시 그린 <사군도> 속 뱀은 자신을 정화시키는 뱀이다. 이 그림을 그린 후 천경자는 세계 여행을 떠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프리카 여행을 단행하게 된 광기는 오직 더 살고 싶은 집념에서였다.”(327페이지, 천경자)

살기 위해서 홀로 떠난 세계 여행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새로운 그림을 창작한다. 이 과정에서 20년간 이어오던 김남중과의 관계를 청산한다. 시간의 굴레 없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난 천경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세계 여행의 경험은 많은 작품에 영감이 되어준다.

 

●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콜라주 기법이 오일페인팅을 대신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340페이지, 백남준)

작곡가 이건우의 소개로 접하게 된 쇤베러크에게서 백남준은 예술에 절대적 규칙은 없다는 것과 내가 규칙을 만들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음으로 접하게 된 인물은 존 케이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음악에 가지고 와서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음악가다. 케이지의 영향을 받은 백남준은 케이지에게 바치는 행위음악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을 만든다. 이로 인해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 공연 후 행위음악을 계속한 백남준은 공연장에 찾아온 ‘샤머니즘 예술가’ 요셉 보이스와 친분을 이어가게 된다. 백남준과 보이스는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안티 예술’을 외치는 ‘플럭서스’라는 모임을 만든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논리 속에 예술을 상품 취급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플럭서스 예술가들과의 활동 이후 백남준은 전위미술가로 불리기 시작한다. 미술계에 전자 기술을 적용한 작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최초가 되고자 마음먹는다. 2년간 TV를 연구한 끝에 최초의 TV작품을 선보인다.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을 만나 뉴욕으로 온 백남준은 무어만과 함께 나체 상태로 첼로를 연주하는 공연을 한 후 경찰에 체포된다. 이 공연은 ‘외설인가, 예술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온다. 재판까지 받게 된 공연은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 친구들과 예술가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승소한다. 이어 백남준은 무어만과 비디오아트 작업을 함께 해 <TV첼로>를 만든다.

전위예술을 계속하면서 고국의 토속 신앙 무속에서 예술의 영감을 얻어 비디오아트로 인류평화를 염원하는 굿판을 벌인다. 이후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

 

● <돌조각을 예술로, 모노파 대표 미술가 이우환>

음악, 문학, 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 관심이 많았던 이우환은 작곡가를 꿈꿨지만 재능이 부족함을 느끼고 문학가를 꿈꾼다. 미술로 나아갈 길을 정한 이우환은 ‘철학하는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철학적 미술비평문’을 발표해 일본미술계를 놀라게 한다. 비평문에서 근대와 근대미술을 비판한 후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신의 조각과 회화로 제시한다. 이우환은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에 치우친 인간의 사고방식을 근대의 한계로 제시한다. 근대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작품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 결과 근대미술 작품은 공장의 기계로 인쇄한 듯 차갑고 매끈해져 갔다. 자연으로 나가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우환은 자연을 작품 제작을 위한 부품으로 보고 마음대로 파헤치고 잘라내는 행태가 자연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다. 근대주의 사고방식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타자는 인간과 동등하게 가치 있는 것이므로 타자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우환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이 ‘타자와의 만남’을 직접 체감해볼 수 있기를 원했다. 그 타자의 대상으로 ‘돌’을 설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돌을 보면서 타자인 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인간에게 타자 역시 인간과 동등하게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우환은 자신의 자아를 줄이고 작품에 최소한의 개입만 하려 노력했고, 타자와 자아, 자연과 산업사회, 너와 내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면서 조각과 회화를 만들었다.

 

『방구석 미술관 2, 한국』에 실린 10명의 예술가는 일제식민지 시대를 살았고, 6.25전쟁의 참상을 겪은 사람들이다. 수탈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격동기를 살아가면서 예술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친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문화는 꽃피울 수 있었다.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획은 그은 예술가들이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에 모두 싣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방구석 미술관 2, 한국』은 최대한 많은 내용을 알려주려 노력한 모습들이 보인다. 이 책은 10명의 예술가를 이야기하지만 이 안에 더 많은 예술가들과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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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마다 겐지 지음, 김석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나의 양명학 자체에 대한 연구는 대략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나의 본래의 의도는 “명·청의 정신사는 연속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학계의 풍조를 의심하고 “명·청 사상사의 정당한 연계를 이해”하고자 한 것이었다.(232페이지, 저자후기)

시마다 겐지는 중국사상과 동양사를 전공하고, 교토대학에서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중국 근세·근대 사상사 연구를 시작한 이후 일본 중국 근세·근대 사상 분야를 이끈 인물이다. ‘명·청 사상사의 정당한 연계를 이해’하려는 의도를 증명하기 위해 주자학과 양명학을 이야기한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어려운 학문이다. 『주자학과 양명학』을 읽으면서 쉽지 않은 학문의 세계에 한 발짝 들어가 본다.

 

유교의 핵심적인 교의는 인이며, 그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96페이지)

유교의 핵심적인 교의는 ‘인’이며, 의미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한유는 <원도>에서 인을 ‘널리 사랑하는 것, 이를 인이라 한다’고 말한다. <<맹자>>에서는 ‘측은한 마음은 인이다’라고 정의한다. 정이천은 인을 ‘공정히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체득하게 하는’(98페이지)것이라 한다. 정이천은 사랑과 인을 ‘사랑’은 이미 발한 ‘정’이고, ‘인’은 아직 발하지 않은 ‘성’으로 나눈다. 이 개념은 주자로 넘어가 ‘마음’은 ‘성’과 ‘정’으로 나뉘고, ‘성’은 아직 발하지 않은 것으로 ‘체’가 되고 ‘정’은 이미 발한 것으로 ‘용’이라 한다.(‘인’이 ‘체’, ‘사랑’이 ‘용’)

유교의 핵심적인 교의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인’에 대해 말하면서 시작하는 것은 모든 학문과 배움의 의미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고 갈고 닦는 것이 먼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송학의 형성

송학 최초의 선구자는 주렴계(주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가 사후에 송학의 창시자로 숭배 받게 된 것은 주자에 의해서다. 주자는 맹자 이후 1400년 동안 매장되어 있던 도통을 다시 잇고, 성인의 학문을 다시 명확하게 내세운 인물이 주렴계라 말한다. 주렴계의 사상적 의의는 첫 번째 <태극도>와 <태극도설>이다. 주렴계의 ‘무극이태극’은 훗날 주자의 ‘리’이론의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두 번째, 주렴계는 인간은 배움에 의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필수조건은 ‘무욕’(욕망의 부정)이라 말한다. ‘성인은 배워서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은 송학 전체의 근본적 모티브이고 대전제다. 중국 사상에서 주렴계의 세 번째 공적은 ‘정’의 강조다. ‘무욕이기 때문에 정’(66페이지)이라는 표현은 <태극도설>에서 등장한다. 송학의 주류는 ‘정’이고, 그 흐름에서부터 ‘경’, ‘미발의 중’이 생겨난다. ‘정’은 ‘동’을 배제하지 않고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정’이다. 네 번째, ‘이윤(은나라 탕왕을 도왔던 재상)이 뜻했던 것을 뜻으로 삼고, 안자(안연, 공자의 제자)가 배우려고 했던 것을 배운다’(66페이지)라 말하며 이상적인 사대부의 이미지를 내세운다.

“그 임금이 요와 순에 미치지 못하고, 한 사람이라도 그 처소를 얻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를 시장에서 매 맞는 것처럼 여겼다.”(66~67페이지, 은나라 재상 이윤)

“학문을 좋아하고 노여움을 옮기지 않으며 또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고 3개월 동안 인을 어기지 않는다.”(67페이지, 공자의 제자 안연)

이윤과 안자는 내면적·도덕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인격자로 알려졌다. 성인을 추구하여 학문을 공부하는 사대부는 천자로 하여금 요순과 같은 성천자가 되게 하고, 아래로 서민의 한 사람이라도 그 처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위정자로서의 책임과 내면적·사색적인 인격이 융합된 사람이라는 것이다.(명체달용, 전체대용적 인간, 67페이지)

송학의 선구자 주렴계는 ‘성인’이 되기 위해 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천자(군주)를 좋은 군주가 되도록 받들고,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것이라 말한다. 위정자(사대부)로서의 의무를 ‘이윤’과 ‘안자’를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

 

송학은 사대부의 학문이며 사대부의 사상이다. 사대부란, 당나라 시대 과거 제도의 확립과 더불어 송나라 시대에 확고부동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지배계급이다. 경제적으로 대체로 지주이지만, 이것이 필수조건은 아니다. 사대부는 유교 경전의 교양을 지닌 지식계급으로 과거에 통과해 관료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송나라 이후 중국은 사대부 천하가 되어 사대부의 철학, 사상, 이데올로기가 현대 중국철학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사대부 철학은 조선의 사대부 철학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 송학의 특징

정통주의의 확립을 강조하면서 유교의 정통성과 우월성을 주장한다. 그 근거로 도교, 불교의 일면성(내면주의)에 대해서 유교는 안과 밖을 합쳐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이상을 통해 도덕과 정치의 일치 혹은 철학과 정치의 일치를 말한다. 송나라 시대에 <<예기>>의 <대학>편이 사서의 하나로 중요시되는 것은 새로운 이상주의의 결과다. 이 당시에 “천하에 도가 있으면..., 천하에 도가 없으면...”이라는 식의 표현이 흔히 등장한다. 유교에서는 ‘부자천합’에 대해 ‘군신의합’이라는 명제(51페이지)가 있다. <<예기>> <곡례>편에 ‘부모가 잘못된 행위를 할 경우 자식은 세 번을 간청해도 듣지 않으시면 울면서 그에 따른다’(51페이지)는 말이 나온다. 이 말에 이어 ‘임금에 대해서는 세 번을 간해서 듣지 않으면 그를 떠난다’(52페이지)라는 구절이 있다. 유교의 천하는 국가와 가족(개인)이라는 두 개의 중심을 갖는 타원형이며,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이상은 이 타원의 형태를 유지시켜주는 이상주의이다. 송학에서는 이 이상주의가 도덕적이고 연속적인 성격을 갖는다. 사변주의를 지적하고, 지식을 구하는 것보다는 깊이 사색하려는 태도를 갖는다.

 

정이천의 사상을 이어받은 주자는 이천의 ‘성즉리’를 이어간다. 이천의 ‘성즉리’와 장횡거의

‘마음은 성과 정을 통괄한다’는 두 가지 말은 주자에게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커다란 진리’(104페이지)다. 주자의 윤리설 ‘성즉리’는 육상산, 왕양명의 ‘심즉리’와 서로 대립해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된다. 이천이 강조했던 것은 ‘경’이다. ‘경’은 마음을 어느 곳에도 가지 않게 하고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쏟고 집중시킨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것, 도덕법칙에 대한 정신 집중, 외경의 생각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다.

 

장횡거의 철학은 ‘기’의 철학이다.(112페이지) 현대에 중국철학은 크게 세 갈래의 흐름을 인정한다. 세 갈래의 철학은 이천과 주자의 ‘성즉리’의 철학을 객관유심론(객관적 관념론), 육상산과 왕양명의 ‘심즉리’의 철학을 주관유심론, 장횡거와 그의 사상을 계승한 명말청조의 왕부지(왕선산)의 ‘기’의 철학은 유물론이다. 이중 유물론 철학을 최고의 것이라며 장횡거의 철학을 높게 평가한다. ‘기’는 하나의 기이면서, 동시에 음양 이기이다.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본질적으로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존재가 ‘기’다. 삶은 기가 결집된 것이고, 죽음은 기가 흩어진 것이다.

 

소강절의 학문은 ‘도서상수’의 학문으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수학’이다. 소강절의 수학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황극경세서>>에 보이는 원, 회, 운, 세의 학설이다. 원, 회, 운, 세는1세가 30년, 12세가 1운, 12회가 1원, 즉 계산으로는 30×12×30×12이며, 1원은 12만 9,600년으로 그만큼 지나면 천지가 다시 새로워진다(125페이지)는 이론이다. 12만 9,600년 중에는 전반부가 위로 올라가고 후반부가 내려오며, 그 내려온 극에서 제 2의 원이 시작되어 다시 위로 올라가는 사이클이 진행된다고 해석한다.

 

● 제 2장 송학의 완성-주자학

주렴계를 지나 정명도, 정이천에 이어 장횡거로 이어져 간 사상은 주자에 이르러 주자학으로 완성된다. 주자학은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주자학은 크게 나누어서 다섯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존재론, 즉 ‘리기’설, 두 번째는 윤리학 혹은 인간학, 즉 주자학의 중심을 이루는 ‘성즉리’설, 세 번째는 방법론, 즉 ‘거경, 궁리’설, 네 번째는 고전주석학 및 저술로 <<사서집주>>, <<시집전>>, <<자치통감강목>>(역사책), <<문공가례>>, 다섯 번째는 과거에 대한 의견, 사창법, 권농문, 기타 구체적인 정책론이다.

 

모든 것이 기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생각이 유교 철학의 사변의 대상이 되고 철학적 체계의 원리로 자리 잡은 것은 정명도, 정이천, 장횡거의 영향이 크다. 주자는 이들의 이론을 이어받아 중국적 사변의 결정판으로 정립한다. 주자는 세계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생성된다 말한다. 최초에 있었던 것은 농후한 부분, 희박한 부분 등을 다양하게 포함하면서 끊임없이 운동해서 그치지 않는 기이다. 기는 회전하고 회전이 가속화되면서 마찰에 의해 안쪽에 찌꺼기가 쌓인다. 찌꺼기는 쌓여 땅을 형성하고 땅은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고 바깥쪽에서 정교한 기, 다시 말해 해와 달과 별이 회전운동을 하고 있다. 땅 위의 하늘이 회전하고 있기에 떨어지지 않고 자리를 유지한다.

 

“천하의 사물은 반드시 각각 그런 까닭과 그 당연히 그러해야 할 법칙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이른바 ‘리’인 것이다.”(147페이지)

있어야 할 모습을 갖추어주고 있는 것, 이것이 ‘리’다. ‘리’는 있어야 할 모습을 부여해주고 있는 ‘당연한 법칙’과 ‘그런 까닭’, 즉 근거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주, 만물의 근거이며 우주로 하여금 있어야 할 모습을 부여해주고 있는 원리, 개별적으로 말한다면 개개의 사물을 개개의 사물로 만들어주고 있는 원리, 그것이 ‘리’이다.(147페이지)

 

● 제 3장 양명학의 성립과 전개

양명은 마음의 본체인 천리를 어떤 경우이거나 어떤 사건에서나 현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것은 ‘치지’는 지식을 닦는 것이 아니라 ‘지’를 실현한다는 의미로 양명학이 ‘지행합일’의 학문이라 불리는 이유다.

“지는 행의 시작이며, 행은 지의 완성”(220페이지)

 

성인은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없애는 존재라는 생각은 양명학의 실천원리이다. ‘심즉리’라는 양명의 근본 명제와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없앤다”라는 실천 원칙은 양립할 수 있을까? 주자학의 ‘성즉리’와 ‘존천리와 거인욕’이라는 개념은 양립이 가능하다. 주자의 경우 심을 성과 정으로 나누고, 리는 성, 정 중에서 성뿐이며, 정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거부하면서 리를 가정하면, 인욕적인 부분까지 이론적으로는 리라고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심즉리’와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없앤다’라는 명제에 어긋나게 된다.

 

양명이 말하는 마음, 즉 양지는 인간에게 고유한 도덕적인 직관력 혹은 직관적 도덕력을 말한다. 심즉리와 지행합일에 이은 양명 사상은 ‘만물일체의 인’으로 이것은 정명도의 이론과 연결된다. 만물일체의 인은 양지를 말하고, 이는 심즉리와 결합된다. 양지는 지와 행의 통일이며, 이것은 자아와 타아가 통일된다는 원리이다. 양명은 백성들이 고통과 죄악에 빠지는 것을 마음 아파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를 받으면서도 양지의 학으로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했다.

‘그치고자 해도 스스로 그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양지다.(243페이지)

 

“천하에 어찌 마음 밖의 일, 마음 밖의 이치가 있겠는가.”(244페이지)

양명학에서는 ‘안’이 모든 권위를 갖는다. 양명학의 내면주의의 결과 주자학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들이 나온다. 첫째, 성인이라는 개념이 바뀌었다. 양명학에서는 범속한 사람도 성인이 될 수 있다 말한다. 한 근의 금이나 천근, 만 근의 금이나 분량만 다를 뿐 금이라는 질의 측면에서는 우열이 없다 말하면서 금을 예로 들어 성인의 개념을 설명한다. 둘째, 주자학은 물론 양명학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결론으로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욕망은 마음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긍정하기에 이르러 천리인욕설은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셋째, 육상산의 ‘육경은 곧 내 마음에 대한 각주’라는 설이 엿보인다.

 

양명은 ‘강학’을 중시했다. 서재에 파묻혀 공부하는 방식이 아닌 많은 학자들이 함께 모여 연구회, 토론회를 여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붕우를 중시했던 양명학은 좌파와 우파로 분열되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좌파는 사회적 통념과 권위에 도전하여 기존 도덕을 부정하면서 도덕적 혼미, 사회 불안을 초래한다. 우파는 정통적인 사대부파 혹은 명교 지지파라 불리면서 주자학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좌우파의 대립의 발단은 ‘4언교’를 둘러싼 논쟁에 의해서다. 4언교란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이며, 선이 있고 악도 있는 것은 의의 움직임이며, 선을 알고 악을 아는 것은 곧 양지이며,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 격물‘이라고 한 네 구절의 명제를 말한다. 4언교를 해석하는 좌우파의 의견은 나뉘게 되고, 우파는 스승의 말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좌파는 스승의 말이라도 모순이 있다면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백성들이 고통과 죄악에 빠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양명의 마음은 유교의 핵심적인 교의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즉 ‘인’ 연결된다.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자들과 학자들이 함께 모여 토론과 연구를 계속할 것을 주장했던 양명의 사상은 자유로운 토론 문화를 강조하는 현대인의 시각에서도 충분히 수요할 수 있는 것이다. 양명의 제자들이 같은 이론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좌우파로 나뉜 것 또한 자유로운 토론과 연구를 강조했던 양명의 영향일 것이라 생각한다. 논쟁으로 인해 분파가 나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로의 다른 의견을 나누면서 수용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학문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 태도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 사대부를 대표하는 학문은 유교다. 그 중 주자의 주자학과 왕양명의 양명학은 조선 유교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학문이다. 어렵지만 궁금하고 알고 싶은 주자학과 양명학 이론과 대표학자를 『주자학과 양명학』을 읽으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읽는 동안 ‘어렵다’와 함께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읽게 된다. 주자학과 양명학을 완성한 학자들과 각각의 학자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이론을 정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두 학문의 성장과 더불어 중국의 역사를 함께 알 수 있다. 어렵지만 손에서 놓지 않고 읽다보면 조금씩 어려운 용어도 익숙해지면서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시각에서 쓰인 ‘주자학과 양명학’ 이론서도 읽고 싶다.

 

쉽지 않은 내용을 읽고 이해하고 글로 옮긴다는 것은 어렵다. 주자학과 양명학을 일본 학자 시마다 겐지가 해석하고, 김석근 역자가 우리 글로 다시 번역한 글을 읽고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의 빈천한 지식은 잘못된 해석으로 빠질 위험이 크다. 하지만 『주자학과 양명학』을 읽으면서 여러 학자들의 이론을 반복하면서 읽다 보니 학자들을 조금은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글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럽지만 읽은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서 정리하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한다.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부분을 ‘생각해보기’에 따로 적어 놓았다. 양명이 ‘강학’을 강조했듯이 혼자 읽는 것보다는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더 깊이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 발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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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왕조는 명확하게 학술을 존중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과거는 전국적인 규모에서 부활되고, 목판인쇄술의 발달은 그것을 비약적인 추세로 보급시켰다.

- 중략-

유학은 하늘과 사람을 일관하는 규모의 웅대함에서, 또 현실적·정치적 활동을 회피하지 않는 착실함에서 불교와 도교를 훨씬 능가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송학이란 이와 같은 사대부의 고양된 의식과 교양이 이론화되고 조직화되었던 것일 따름이다. 불교의 ‘출가’, 도교의 ‘입산’에 대한 사대부의 생활양식은 이른바 ‘명분의 가르침’이다. 즉 자신의 삶의 양식을 명분을 가르침 체계로 하여 자각하려고 하는 사대부, 이들이야말로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주체였던 것이다.

 

128~129

그(소강절)를 주자학의 선구자들 속에 포함시켜서 주렴계, 정명도, 정이천, 장횡거 네 사람과 합해서 ‘북송의 다섯 사람(북송오자)’으로 부르기도 한다. 송학적인 사상을 범신론적인 세계관이라 특징지었는데,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이 바로 소강절이다.

 

155~156

주자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윤리학 혹은 인간학 부분이며, 존재론은 요컨대 그 밑바탕에 지나지 않는다. 주자의 윤리학 혹은 인간학의 원리는 정이천의 이른바 ‘성즉리’였다. 성이란 장횡거가 정식화한 “마음은 성과 정의 통일체”의 성, 개별적인 존재에서의 리를 말하는 것이다. 성은 내용적으로 인, 의, 예, 지, 신이라는 오상일 따름이지만, 아직 발하지 않은 것으로 고요함이며 체이다. ‘발하지 않은 것’은 ‘고요’한 중정을 얻은 본질태이며, 이것이 용으로 이미 발한 것이 되고, 동으로 되면 정이 나타난다.

 

157

성이란 물이 맑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정이란 그 물이 흐르고 있는 상태를 말하며, 욕심이란 물에 파도가 범람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 한다.

 

244

송대 이후 새로운 유학의 동향을 내면주의의 전개로 파악하고 그 내면주의의 절정을 양명학으로 보았다. 송학, 주자학은 필연적으로 양명학으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양명학에서는 ‘안’이 모든 권위를 갖게 되었다. “천하에 어찌 마음 밖의 일, 마음 밖의 이치가 있겠는가.”

 

272~273

유학자들은 억측해서 그렇게 말하고, 부모와 스승은 그 말을 그대로 답습해서 말하고, 어리아이들은 철없이 그렇게 듣고서는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니 그런 생각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천 년 이상을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저 내가 들은 말을 전할 뿐”이라 말하지 않고 “이미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굳이 내가 아는 척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고 “아는 것은 안다고 하는 것”이라 말한다.

 

276

송나라 이후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면은 객관유심론과 주관유심론의 갈등이었다. 주자학의 ‘성즉리’와 육왕학의 ‘심즉리’의 대립이었던 것이다. -중략-

장횡거와 주자의 정의를 빌리면 “마음은 성과 정의 통일체”일 따름이며 ‘성즉리’는 곧 이런 ‘심=성+정의 단순히 일부분, 즉 ’성‘만을 ’리‘라고 한 데 대해서 ’심즉리‘의 주장은 ’심‘ 전체를 ’리‘라고 한 것으로 봉건 윤리를 위한 새로운 직접적인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명은 모든 사물에 ’리‘가 있으며 그것을 궁극적으로 깨달음으로써 자기 내면의 ’성‘의 ’리‘를 검증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자의 격물설을 배격했다. 주자학은 결국 “리를 바깥에서 구하는 것”일 뿐이다.

 

326~327

장님이 코끼리 더듬는 식의 나의 양명학 연구에는 세 가지의 커다란 결함이 있다고 하겠다. 하나는 양명 사상론에서 만물일체설을 누락한 것이다. 둘째는 양명학과 주자학의 관계에 대한 파악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양명학에서 고증학으로 넘어가는 추이에 대한 파악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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