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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평점 :
『노마드』, 앤서니 새틴, 이순호 옮김, 까치글방, 2024
왜 우리는 유목민의 역사가 아닌 정착민의 역사를 배울까? 유목의 역사는 왜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을까? 역사는 ‘기록의 결과물’이다. 역사적 기록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문자의 발명이 큰 몫을 차지한다. 선사시대 기록 중 암각화나 동굴벽화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기호로만 역사적 사실을 상상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해서 완벽한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유목민의 역사는 기록이 되지 않았거나 제국을 세운 유목민의 기록된 역사를 의도적으로 누락해 가르쳤거나 등의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다. 『노마드』는 누락되어 잊혀져 가는 유목민의 역사를 알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유목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유목민과 정착민, 옥토에 사는 사람들과 황무지에 사는 사람들의 투쟁, “최초의 형제 살해”를 범한 오시리스와 세트, 그리고 카인과 아벨의 투쟁 사이에는 두드러진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세트와 카인에 대한 평가에는 중차대한 차이가 있다. 카인은 추방된 반면, 세트는 수천 년간 이집트인들의 숭배를 받은 것이다. 이는 이집트인들의 숭배가, 그 투쟁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만 이해했던 로마와 기독교 시대보다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며 미묘한 반응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그보다 1000년 앞선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강력한 왕 길가메시와 그를 억제할 야생의 인간 엔키두가 모도 필요하다고 인식했듯이, 초기 이집트인들도 비정착민들의 창의력과 땅의 경작자들이 가져온 질서와 다양성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경작자와 목축인, 정착민과 유목민. 이집트인들이 직면했던 중요하고 영속적인 도전은 이 둘 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었다.’(92페이지)
정착을 대표하는 카인과 길가메시와 자연 또는 유목을 대표하는 아벨과 엔키두. 유목 생활을 하던 아벨은 카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엔키두는 자연을 버리고 정착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자연 혹은 유목,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이들이 정착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정복당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오시리스와 세트, 호메로스 이야기 등 다양한 텍스트에 등장하는 인물을 정착민과 유목민으로 연결하고, 다시 수렵채집과 농경으로 확장한 앤서니 새틴의 역량이 놀랍다. 서로 별개일 거라 생각했던 부분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해 글을 읽는 독자의 생각을 확장하는 책이다. 발상의 전환인가, 사고의 확장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우리는 우리 각자의 역사관이 우리가 거둔 업적과 우리가 실현시킨 비전 쪽으로 기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중략-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에는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316페이지)
『노마드』는 우리가 배웠던 역사와 더불어 배우지 않았던 누락된 역사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유목민의 역사를 적고 있는 노마드는 유목민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세계사 전체를 시간대별로 서술하고 있다. 신화와 전설, 종교, 역사기록 등의 자료를 근거로 유목민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잊힌 역사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역사적 기록은 기억될 때 가치가 있다. 누락되고 잊혀졌던 역사를 읽으면서 닫혀있던 생각이 더 폭넓게 열리는 느낌이다. ‘새롭게 사고하는 방법’(332페이지)를 알려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