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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 -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 철학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5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평점 :
‘흄’은 도덕과 윤리, 철학을 배울 때 한번은 들어본 이름이다. 하지만 책에 실린 내용도 많지 않았고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아 잘 기억나지 않는 철학자 중 한 명이다. 데카르트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시험에도 출제되어 여러 번 들었지만 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렇기 때문에 줄리언 바지니의 『데이비드 흄』에 더 눈이 갔었나 보다.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를 만나고 그의 사상을 알 수 있을 거라는 흥분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 데이비드 흄
18세기 초 스코틀랜드는 세계 철학의 중심지로 성장한다. 에든버러는 지식의 수도로서 계몽주의를 주도하고, 근대 사상가 두 사람을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다.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1757년에 스코틀랜드인이야말로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문필의 대가라 부를 수 있는 민족이다.”(12페이지)라 말한다. 흄은 에든버러 구시가지에서 태어나 청년기 초반을 살았다. 에든버러대학교에서 공식 교육을 받고 에든버러 신시가지에서 인생 후반기를 보낸 흄은 올드칼튼묘지에 잠들었다. 에든버러는 흄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에든버러는 공존할 수 없다 생각되는 것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다. 흄의 전기를 쓴 어니스트 캠벨 모스너가 바라본 흄이 살았던 시대의 에든버러는 “금욕주의의 엄격함과 따스함, 고립주의와 코스모폴리터니즘, 시골의 소박함과 도시의 세련미, 구세계와 신세계가 공존하는 역설 가득한 도시, 과거에 묶여 있지만 미래를 향한 열망 또한 가득한 도시”(27페이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교양과 누추함, 격식과 불결함이 공존하던 곳’(27페이지), 에든버러에서 태어나고 대학교를 다닌 흄은 이 모순된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철학적 사고를 키웠으리라 짐작해 본다.
흄은 두 번의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고 그 여행은 흄의 사상과 저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기독교 문화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예수회대학이 있는 프랑스 라플레슈로의 여행이다. 이곳에서 <<인성론>>의 대부분을 썼다. 흄은 프랑스 사람들을 ‘예의바르고 사교적’이라 말하면서 프랑스인들의 환대에 감명을 받는다. 프랑스인들이 예의범절을 온전히 갖췄다고 칭찬한다. 흄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지식인들과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흄은 1763년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였던 허트포드 경의 비서가 되어 파리로 두 번째 프랑스 여행을 떠난다. 흄의 여러 저작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그는 프랑스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위한 지적 사교의 장으로 살롱이 유행했었고, 흄은 여러 살롱을 방문한다. 두 번째 프랑스 여행에서 흄은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글 외에는 저술한 책이 없었다.
흄은 고독을 즐겼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다. 변호사협회 도서관 사서로 지내는 동안 지식인협회 창립자로 이름을 올린다. 이 협회는 법조계, 대학, 교회의 주요 인물들 다수와 사교계에서 선발된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또 다른 모임인 포커클럽에서는 평민이건 성직자건 학식 있고 함께 어울리기 좋은 사람들이라면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말년에 스코틀랜드에 돌아온 흄은 식도락가로도 알려진다. 철학과 미식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흄은 ‘품격 있는 음식 때문에 진지함에 대한 나의 취향이 망가진 적도 없고, 유쾌함 때문에 공부를 망친 적도 없다’(234페이지)라 말한다. 새 집이 완공되고 얼마 후 흄의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흄은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 묘에 세울 기념비는 100파운드를 넘지 말 것이며, 비석에는 오직 이름과 생몰 연도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후대가 기록하도록 해야 한다”(248페이지)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친다.
고독과 친교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흄은 인간본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사람들에게 공감할 줄 아는 친절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흄도 자신의 사상과 다른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흄을 철학적 지성인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프랑스인들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공격하는 원정대에 참여했고, 명분 없는 공격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손에 권력을 넘기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공화정을 반대하고 군주제를 지지했다. 흄은 지성을 갖춘 여성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했지만, 남녀가 동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은 남성의 육신과 정신을 더 강하게 만듦으로써 여성보다 큰 우위를 부여했다”(156페이지)라고 말하면서 남녀 차별적 발언을 하기도 한다. 당시 사회의 가부장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자유와 음식을 사랑한 흄은 사람과 철학에 대한 사랑으로 평생을 인간과 철학에 대한 것을 연구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사람에 대한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한 철학자 흄은 고독한 삶을 갈망함과 동시에 지식인들과의 시간을 사랑했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 흄의 생각들
인간 본성을 살피는 것을 공부의 목적으로 삼은 흄은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를 이용해 탐구했다. 흄이 살던 당시에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는 책과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오늘날은 정보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책을 읽거나, 직접 교수자를 만나 강의를 듣거나, 인터넷을 활용해 더 많은 정보와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를 이용해 탐구를 하기에 오늘날은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에 흄이 살았다면 어마 어마한 양의 정보를 보고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흄은 학자이자 철학자가 되기 위해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우울감에 빠진다. 흄은 자신의 병을 ‘지식인의 병’이라 칭한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은 공부량을 줄이고 매일 운동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인간 오성 연구>>에서 흄은 이 때의 교훈을 “일정 정도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정신이 주의력과 근면함을 늘 뒷받침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32페이지)이라고 적는다. 이때부터 흄은 여가와 운동과 공부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생활했다. 휴식의 중요성에 대한 흄의 깨달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깨달음이다. ‘번아웃증후군’에 걸리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던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소진되어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천천히 가면 두 시간이 걸릴 거리를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은 네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다’는 말처럼 오직 꿈과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흄의 말처럼 여가와 운동과 공부의 균형이 필요하다.
흄은 합리주의 철학자의 전형인 데카르트의 주장에 반발한다. 데카르트는 인간 지식의 안정적 기반을 선천적 인식 능력인 순수이성에 국한하고자 했다. 데카르트는 “사과 바구니에 가득 들어 있는 사과들 중 일부가 썩어 나머지까지 썩게 만드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미 썩은 사과를 빼내는”(49페이지)사람과 같다고 비유한다. 데카르트가 주장한 ‘회의론 프로젝트’는 썩은 사과를 빼내는 것처럼 “틀린 생각을 옳은 생각과 분리하여 틀린 생각이 나머지를 오염함으로써 생각 전체를 불확실성에 빠뜨리는 일을 예방해야”(49페이지)한다는 논리다.(방법적 회의) 데카르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합리주의’라 불린다.
흄은 <<인성론>>에서 데카르트의 이론에 반대하는 내용을 적는다. 흄은 ‘보편적 의심’에 기반을 둔 회의주의는 사유와 탐구를 통해 결론으로 귀결되는 의심이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에서 모든 것을 불신하는 종류의 의심이라 말하면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선행적 회의주의’라고 비판한다. 흄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적 방법이 인간본성의 불완전함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다양한 주제에서 망상과 오류가 나타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흄은 인간을 아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며, 인간 본성은 추상적 개념이 아닌 물적 실재이므로 경험과 관찰을 통해 사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런 흄의 이론은 ‘경험주의’라 불리게 된다. 흄은 “인간을 아는 것이야말로 다른 것을 알기 위한 유일한 기초이며” “인간을 알기 위한 유일한 기초는 경험과 관찰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인간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경험과 관찰을 강조한 그의 이론은 ‘경험주의’라 알려지게 된다.
흄의 철학이 아이스토텔레스와 공자의 사상과 비슷한 점은 도덕과 정중함과 예절을 윤리의 전체이자 본질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흄이 <<인성론>>을 쓴 목적은 경험에 기반을 둔 잠정적이고 불확실한 결론을 내리는 일을 철학의 과제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관념들의 관계를 추론하는 일과 사실 문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논리만으로는 세계의 운행방식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 흄은 관념들의 관계와 사실을 구분함으로써 사실 문제에 절대적인 확실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말한다. 논리라는 것은 논리적 증거를 통해 증명을 하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개연성과 증거를 평가하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과 행위는 개연성과 증거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개연성 있는 주장은 과거의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미래를 추정해서 말한다. 흄은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 벌어질 일의 증거는 될 수 없지만, 과거의 경험과 미래에 벌어질 일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하리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 말한다.
흄의 주장에 따르면 인과의 작용을 관찰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우리가 본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 후에 일어난 다른 사건뿐이라고 말한다. 인과를 구성하는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연관성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인과 결과의 작용을 실제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본능적인 정신 작용’(74페이지) 때문이다. 정신이 연속적인 두 사건의 틈새를 느끼지 못하고 실제로는 관찰할 수 없는 연관성을 직접 부여하기 때문이다. 인과에 대한 지각이 상상 작용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흄은 이런 상상에 의한 지각에 얼마나 굴복해야 하는가에 대해 딜레마에 빠진다. 상상을 섣불리 받아들인다면 오류와 모순과 모호함으로 인한 맹신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이성으로 확실하게 입증된 것만 믿으면 일반적인 사실마저 믿을 수 없게 되어 완전한 회의론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적 추론의 한계에 대해 이성만으로 지식의 토대를 세울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경험에 기댈 수 있음을 깨닫는다. 흄의 사상은 논리적 타당성은 빠졌지만, 그의 사상의 타당성은 경험으로 증명한다. 세계를 관찰해보면 사실의 문제에 대한 추론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험을 유용하게 만들어주고, 사건의 연속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관습 혹은 습관이라는 원칙뿐이다. 흄은 ‘원인에서 결과로, 결과에서 원인으로의 습관적 이행’을 ‘영구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인 원리’라 주장한다. 실재란 것이 관습, 습관, 본능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 원리로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흄은 이성 자체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이성이 모든 사실을 밝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했을 따름이다. 즉 이성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다시 검토해보자는 것이었다.(81페이지) 인간 본성은 물적 실재이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므로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실험 방법을 따르고 특정한 사례들을 비교하여 일반 원리를 끌어내야만 비로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52페이지)고 주장한다. 흄은 자연과학의 실험 방법을 철학의 영역으로 도입한 셈이다. 흄의 사례로부터 더 나은 이성 추론을 위한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성 추론을 시작해서 결론을 끌어내기 전에 자신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를 통해 흄은 인과의 작용을 실제로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 합리적 주장을 믿게 하려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흄은 인류 대다수가 더 오랜 시간 한 경험이 소수의 사람들이 그 경험에 반대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그럴듯한 확률이 높다는 말로 기적에 대한 믿음에 반론을 제가한다. 이것은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원리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이성 추론에서 특정 논증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은 논증이 스스로에게 강력하게 느껴지느냐 아니냐의 여부뿐이라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자신이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반론에 귀를 기울이면서 논쟁을 해야 한다.
흄은 타인의 철학적 확신을 의심하듯 자신의 철학적 확신 또한 의심하라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철학적 확신뿐만 아니라 철학적 의심까지도 의심해야 한다고 한다. 철학의 확실성을 의심하면 철학의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철학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철학을 하지 않으면 철학이라는 것이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게 되거나, 철학을 아예 포기해 버리게 된다.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학의 확실성을 의심하면서 철학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전제하고 증거에 기초하여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적 문제에 대한 사유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일차원적인 욕구를 넘어 사유하고 질문하고 앎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흄은 지각의 모든 것을 ‘정신의 지각’이라 부르고,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한다. 인상은 직접적인 지각, 관념은 정신이 직접적 지각을 간접적으로 복제한 복제물이라 전제한다. 인상과 관념의 차이를 지각 자체의 성질에서 끌어오고 싶어 했던 흄은 지각의 생생함과 선명함, 즉 지각의 선명성 정도로 판단했다. 인상은 강하고 격렬하고, 관념은 인상보다 희미하고 약하다. 흄은 ‘공감’을 ‘관념을 인상으로 바꾼 것’이라 정의한다. 감정은 일종의 전염에 의해 퍼지기 때문에 타인의 특정 감정을 지각하고 그것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게 된다. 이 관념을 통해 타인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흄은 “어떤 감정이나 정념에 대한 관념이 생생해지면 곧바로 그 감정이나 정념이 될 수 있다”(92페이지)라고 말한다. 시나 소설에서 전하는 강력한 슬픔에 대한 관념은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감정은 상상으로, 우리가 감정에 대해 형성하는 관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된다. 정신은 인상에서 유래한 관념들로 가득 찬다. ‘시공간의 인접성, 유사성, 인과’는 정신이 관념을 조직하는 연합의 원리이다. 흄은 관념과 인상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철학 체계의 기초로 간주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 기반을 두고 철학을 연구하고자 했던 흄에게 인간이 관념을 어디서 얻는지를 찾는 것이 중요한 연구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 모든 앎의 원천이 경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이 중요했다.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내재적 관념의 존재를 믿었다. 인간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관념을 발견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보다는 생각과 추론만으로 실재의 성질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경험주의를 옹호한 흄은 내재적 관념을 멀리하고, “어디서 정신은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구하는가? 내 대답은 한 마디다. 바로 경험이라는 것이다.”(94페이지, 흄)라며 ‘경험’을 강조한다. 흄은 자신의 경험주의가 성립하려면 내재적 관념을 모조리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흄은 우연을 거부하면서 우연이나 운은 앎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나오는 판단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흄이 우연과 운을 바라보는 시선은 모순적인 면도 보인다. 원인 없는 결과라는 의미의 우연은 믿지 않았지만, 물질적 부는 행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서 운이라는 우연에 대해서는 믿는 모습을 보인다. 흄은 <<인성론>>을 발표한 후 위험한 사상가로 낙인 찍혀 대학 교수가 되지 못한다. 흄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수입과 명성을 보장해주는 교수직을 원하기도 했었다. 우연을 거부했던 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으로 인해 교수가 되지 못했다.
흄은 인간의 행동과 선택은 자유의지가 아닌 사전 원인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원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원인이 눈에 쉽게 띄지 않았을 뿐이라 말한다. 흄은 자유의지에 관한 무분별한 생각의 원인을 ‘자발적 자유’와 ‘무차별적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자발적 자유’는 강요 없이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고, ‘무차별적 자유’는 인과의 필연성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자유는 ‘자발적 자유’ 뿐이다. 인간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의지가 아닌 사전 원인이라는 흄의 주장은 계속 읽다보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행동 자체는 비난할 만하다. 행동은 도덕과 종교의 규칙에 위배될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을 한 사람은 그 행동에 책임이 없다.’(111페이지)라는 내용을 읽다보면 나의 이해력의 부족으로 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동의 주체에게 행동의 책임이 없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 필연성에 의한 사전 원인으로 인해 행동을 선택했더라도 결국 그 행동을 하기로 선택한 것은 자신일 것인데 왜 행동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하는지 의문이 든다. 도덕과 종교의 규칙에 위배된 행동을 한 범죄자에게 행동의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벌을 주면 안 되는 것일까? 흄의 자유의지에 관한 철학을 ‘자유와 필연’의 화해 프로젝트로 표현하고 무차별적 자유에 대한 잘못된 믿음 없이도 자유의지라는 관념으로부터 원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줄리언 바지니는 적고 있다. 이 접근법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함께 양립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얕은 지식을 가지고 흄의 이론을 본다면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조화가 아닌 결정론만을 주장한다고 잘못된 해석을 할 수도 있을까 우려된다.
흄은 심리학적 통찰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폭을 확장시킨다. 최근에 행한 행동이 기억에서 잊힌 행동보다 생각과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흄의 생각은 ‘최신효과 현상’으로 판단의 오류를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이와 비슷한 개념은 ‘인지편향 중 과도한 가치 폄하’이다. 미래에 받을 보상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도 즉각적인 보상을 위해 가까이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력과 구속력을 갖춘 법과 계약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흄은 인간본성의 원리 중 인간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림짐작에 의지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자신의 속성이나 성격에서 찾는 성향이 있는데 이런 편견을 ‘귀인오류’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적능력을 이용해 기존의 편견을 합리화한다.
흄은 정의가 인간의 삶과 독립되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미덕, 순수이성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정의는 인간이 조화로운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정의가 인간에게 맞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인간의 능력이 주는 이점은 첫째, 자원의 공동 관리를 통해 사회는 개개인이 자원을 관리할 때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 둘째, 노동의 분업을 통한 전문화는 사회 구성원의 능력을 증대시킨다. 셋째, 인간은 사회라는 집단을 통해 상호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에 어느 때건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은 부유한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225페이지)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투명성, 일관성,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225페이지) 투명한 사회, 일관성을 갖춘 사회,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 정의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흄은 에든버러에서 브리스클, 라플레수, 영국, 파리를 거쳐 마침내 에든버러로 돌아와서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인간이었다.(123페이지)
줄리언 바지니는 철학자의 이론을 연구하기 위해서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흄이 내세운 철학은 그의 모든 삶과 존재의 모든 측면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그의 생애와 저작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바지니의 의견이다. 짧은 글 속에도 글을 쓴 사람의 경험과 생각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쓴 작가의 생애와 다른 작품들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양 철학의 한 획을 그은 흄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바지니의 생각처럼 흄의 생애와 저작을 모두 알아야 된다는 것에 찬성한다.
『데이비드 흄』은 흄의 생각과 생애와 관련된 장소를 연결해서 설명하고 사진을 함께 실어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에필로그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과 <데이비드 흄 사상의 키워드>, <데이비드 흄 생애의 결정적 장면>에 흄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 놓았다. 흄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어놓은 글을 읽으면서 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난 후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는 흄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배우지 못했고, 교육은 왜 우리에게 흄을 더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았을까? 데카르트와 흄, 두 철학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데카르트만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 의문은 책을 읽은 후 더 강하게 들었다.
■ 발췌글
26
철학을 해결해야 할 독립적인 지식의 문제라고 본다면 철학자를 굳이 살펴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철학이 부분들을 한데 엮어 일관된 전체를 구성하는 종합적 학문이라고 간주한다면 철학자를 무시하는 태도는 이치에 맞지 않다. 더욱이 일관된 전체라는 것이 철학자의 생애와 저작, 사상과 실천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태도는 더더욱 난센스다.
30
흄은 인간의 본성을 살피는 과제를 공부의 목적으로 삼았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지적 방편과 도구를 이용해 탐구했다.
33
철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82
독단적 의견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의 지적 한계를 더욱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204
흄은 인간 본성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철학의 기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당시에는 정념이라고 불렀다-을 온전히 수용하지 않는 도덕철학은 무엇이건 근본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26
“안정은 법에서 나오고, 호기심은 안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식은 결국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252
“정말이지 인정 많은 성정을 타고났다. 그의 인류애는 넓고 깊었다. 그는 늘 사람들을 쾌활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그의 마음은 따뜻하고 친근했으며 박애심이 지극했다.”(작가이자 출판업자 제임스 콜필드가 말한 흄의 모습)
■ 흄의 금언
개인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면 배울 점이 있는 모든 것에서 가르침을 얻으라.(30페이지)
제대로 사유하려면 생각하지 않는 시간,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32페이지)
인간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철학자들의 상상대로 다룰 때 철학은 실패한다.(33페이지)
생이 제공하는 만족을 다 누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타인이나 운에 기대지 말라.(36~37페이지)
이성에 대한 태도와 이성 추론의 방식에서 극단은 금물이다.(82페이지)
경험과 경험의 재현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므로 더 잘 알려 해야 한다.(97페이지)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