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메트로
카렌 메랑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가족, 일에 대한 열정, 진정한 사랑의 의미, 재는 것 없는 우정, 그리고 일상적이나 특별한 지하철.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활기차게 버무려진 이 소설은 갖가지 색깔로 플레이팅을 한 접시들이 가득한 뷔페와도 같다.

가볍고 상큼한 맛으로 입안을 한번 각성시키고, 배를 든든하게 해주는 묵직한 요리까지 선보이면서 '어때? 맛있지?' 하고 묻는 셰프의 목소리가 음성지원되는 듯한 느낌? 

마음을 들뜨게 하는 웃음이란 소스에, 생각이라는 양념을 적절히 배합하여 조화롭게 만든 음식~

머리 복잡한 요즘, 읽기에 딱 좋은 재미진 소설.

 

 

그리고 이젠 지하철을 타면 즐길 거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하다. ^^

주말의 지하철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평일 아침의 승객들은 대부분 조용했지만 토요일의 승객들은 훨씬 활기차 보였다. 긴장이 풀린 얼굴들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장소로 향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린의 시선
서미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왠지 아릿아릿한 느낌에 책을 들고 첫 장을 폈다가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가독성이 장난 아니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사람이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사건은 아린이란 여자의 꿈을 통해 드러나고 밝혀지니까. 하지만 이 세계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면 그 모든 미스터리와 신비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과학적인 치밀함과 정교한 수사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무의식을 통한 새로운 시선은 인간이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얼마전 영화 〈극비수사〉를 보았다. 33년 전 부산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유괴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사주풀이를 통해 아이를 구하는 얘기다. 이 책의 주인공 아린은 어릴 적 일가족이 살해당하고 스스로도 온몸에 스물일곱 번의 칼상을 입고 죽다 살아난다. 그리고 〈극비수사〉에서처럼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된다.

끔찍한 일을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경험상, 기억은 자의적으로 봉인이 가능하다. 좋지 않았던 일들은 더는 생각지 않고 현실에 몰두하여 살다보면 괴로웠던 기억마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어떤 계기에 의해 기억의 끄트머리를 잡고 꺼내다보면 전혀 예상치도 않게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나고 그때의 상처가 현실인 양 비명을 지른다.

그러니 아린이 기억을 스스로 봉인한 건 살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 기억을 마주 대하는 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끝내기 위해서고, 다른 이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목적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돈, 광기, 배신, 복수, 용서, 사랑이라는 진부한 주제가 세밀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를 덧입어 애잔하고도 아픈, 그러나 희망을 주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공포, 두려움, 불신으로 어두웠던 아린의 시선에 연민과 온기를 주기 위해 작가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아린에게 덮어씌운다. 그렇게 지독하게 벼려져야만 순전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정화된다는 듯이.

한참 빠져 읽었더니 눈알은 빠질 듯 시큰했지만 마음은 서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실라
정명섭 지음, 이희수 원작자문 / 청아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의 세계는 역사적으로 실존하지만 그래도 시대적으로 너무 멀어서인지 느낌은 신화 같다.

이 책도 그렇다. 페르시아 대서사시 《쿠쉬나메》에 기록되어 있다는 바실라. 신라를 뜻한단다. 이름도 비슷하다. '바...실라'와 '신라'.

7세기 중엽이라니 까마득하다. 고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은 문헌을 1차 원전으로 하겠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은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쳐야 한다. 《쿠쉬나메》는 서사시이니 주로 영웅담을 기술했을 터이다.

정명섭의 《바실라》는 《쿠쉬나메》에 나와 있는 패망한 페르시아 제국의 왕자, 아비틴의 모험담을 다룬다. 혹독한 시련, 적과 조력자, 도전, 성장, 극복, 영광스러운 결말은 전형적인 신화의 서사구조를 따른다. 스테레오타입과도 같은 이런 구조의 소설은 평범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는 반면, 그 재료를 어떻게 버무리느냐에 따라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최상의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탄탄한 스토리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망국의 왕자란 설정부터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보트피플처럼 다른 나라로 밀입국한 망국의 백성들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가는가. 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그 정체성이 부서졌으니 말이다. 백성들의 삶은 더 고달프겠지만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 백성들의 고통 때문에 망국의 지도자라는 신분이 한층 더 무거울 것이다. 갓 스무 살의 왕자가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 멀고 먼 바실라에 도착하여 와신상담하는 과정은 지난하다. 하지만 똑똑하고 잘생기고 비록 망해버렸지만 다이야 수저를 물고 태어난 기품 있는 한 청년이 정금처럼 단련되어 가는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버지의 죽음, 적의 추격, 동지들의 죽음, 신라 화랑 원술과의 우정, 신라 공주 프라랑과의 사랑과 결혼,  거듭된 전쟁...

머리맡에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황금이 가득한 고대국이나 처절한 전투 현장, 혹은 애틋한 연인의 밀회 장소 한가운데 쑥 들어와 있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리캉맨의 연쇄살인 사건으로 서막을 열고 다섯 개의 다른 사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1막에서 5막까지 보여주다가 서막의 사건을 종결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이 책은 종합추리선물세트이다.

추리소설의 여러 형태를 다양한 방식으로 진열하여 '어디, 맘에 드는 거 하나 골라보슈?'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둥그런 레일 위를 칙칙폭폭 달려가는 장난감 기차가 어디로 갈지 뻔히 알면서도 눈을 못 떼고 계속 들여다 보듯 이 책도 그런 힘이 있다.

추리하는 박희윤과 몸 잘 쓰는 갈호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각기 좌뇌와 우뇌를 담당하며 샴쌍둥이처럼 떨어질 수 없는 명콤비로 활약한다. 바리캉맨에게 옛 애인이 살해당해 괴로운 전직 기자 박희윤과 성추행 파문으로 모가지가 잘린 전직 형사 갈호태. 그래도 이들은 꿋꿋하게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사건들을 풀어간다. 속도는 너무 과하지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다. 두 콤비가 주고받는 대화는 경쾌하고 발랄하다. 위선의 탈이 느껴지지 않는 민낯의 생활 언어 그대로라고나 할까?

 

이 소설의 하일라이트는 〈고도리 저택의 개사건〉. 뚱땡이 경찰총장의 개 실종사건은 엉뚱하게도 더 커다란 사건과 연결되어 이를 멋지게 해결한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미래에도 한줄기 빛을 선사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어릴 때 재미있게 읽었던 《에밀과 탐정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기차에서 돈을 도둑맞은 에밀이 도시에서 알게된 친구들과 힘을 합쳐 도둑을 잡았더니 은행강도 현상수배범이었다는...

물고기를 낚아올렸는데 훨씬 큰 물고기가 딸려왔다는 느낌...

종막은 바리캉맨의 범인이 드러나는 것인데... 결국 깨닫는 건 모든 일이 돌고도는 인연의 고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쯤? 책을 읽고 굳이 뭘 깨달을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과자를 맛본 느낌. 한 여름밤의 꿈 같기도 하고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희극 한 편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개처럼 본능적인 후각이 발달해 사건의 냄새를 맡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풀어내는 두 주인공은 멋진 연극의 훌륭한 배우였다. 무대를 장악하며 동그랗고 노란 스포트라이트 밑에서 빛을 발하는... 마치 표지 그림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정말 무언가에 씌인 것처럼 책을 펼쳐들자마자 빠져들었다. 

심상치 않고 독특한 인트로부터 가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는데,

이어지는 매혹적인 문장들에 홀린 듯이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모네의 마을과 주인공들의 심리와 사건의 정황까지 화가의 화폭에 담긴 하나의 그림 같다.

 

묘사가 뛰어난 책이라면 문체에 치중하느라 스토리가 진부해질 수도 있는데,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방식이 너무나 독창적이고 퍼즐의 단서를 배치하는 방식이 가히 천재적이라 지루할 새가 없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스릴러라는 소리가 아니다.

각각 다른 화자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그 이야기들이 다양한 색과 음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마치 한 편의 교향곡처럼 제각각의 음들이 강렬한 도입부에 이어 갑자기 숨을 죽이며 서정적이고 느리게, 때로는 발랄하게 이어지다가 어느새 점차 빨라져 심장을 세차게 두드린다 생각하는 순간, 심벌즈며 북이며 온갖 악기가 최고의 절정을 맞아 폭발적인 화음을 선사하는 힘이 있었다. 폭죽 같은 음이 끝나고 나면 그 여운이 귓속에서 길게 남는 것처럼 책의 예상치 못한 놀라운 엔딩에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속은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트릭으로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았는데...

아아...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다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내게는 기대 그 이상의 책이었고 이제껏 읽은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는데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눈은 모두 비슷할 테니 말이다.

미셸 뷔시. 지리학과 교수라는데 이렇게 멋진 소설을 써내다니!

좋은 작가를 알게 되고, 좋은 작품을 읽게 되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