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라
정명섭 지음, 이희수 원작자문 / 청아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의 세계는 역사적으로 실존하지만 그래도 시대적으로 너무 멀어서인지 느낌은 신화 같다.

이 책도 그렇다. 페르시아 대서사시 《쿠쉬나메》에 기록되어 있다는 바실라. 신라를 뜻한단다. 이름도 비슷하다. '바...실라'와 '신라'.

7세기 중엽이라니 까마득하다. 고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은 문헌을 1차 원전으로 하겠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은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쳐야 한다. 《쿠쉬나메》는 서사시이니 주로 영웅담을 기술했을 터이다.

정명섭의 《바실라》는 《쿠쉬나메》에 나와 있는 패망한 페르시아 제국의 왕자, 아비틴의 모험담을 다룬다. 혹독한 시련, 적과 조력자, 도전, 성장, 극복, 영광스러운 결말은 전형적인 신화의 서사구조를 따른다. 스테레오타입과도 같은 이런 구조의 소설은 평범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는 반면, 그 재료를 어떻게 버무리느냐에 따라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최상의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탄탄한 스토리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망국의 왕자란 설정부터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보트피플처럼 다른 나라로 밀입국한 망국의 백성들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가는가. 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그 정체성이 부서졌으니 말이다. 백성들의 삶은 더 고달프겠지만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 백성들의 고통 때문에 망국의 지도자라는 신분이 한층 더 무거울 것이다. 갓 스무 살의 왕자가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 멀고 먼 바실라에 도착하여 와신상담하는 과정은 지난하다. 하지만 똑똑하고 잘생기고 비록 망해버렸지만 다이야 수저를 물고 태어난 기품 있는 한 청년이 정금처럼 단련되어 가는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버지의 죽음, 적의 추격, 동지들의 죽음, 신라 화랑 원술과의 우정, 신라 공주 프라랑과의 사랑과 결혼,  거듭된 전쟁...

머리맡에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황금이 가득한 고대국이나 처절한 전투 현장, 혹은 애틋한 연인의 밀회 장소 한가운데 쑥 들어와 있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