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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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마침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싶다고 하길래, 아이들용이 아닌 셰익스피어 정식 번역본을 사보자해서 산 책이다.  

이 책의 번역을 추천한 글이 있길래, 좋은 번역본일거라 믿고 샀다.  

번역의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 타문화권의 언어를 알고 사용하고, 읽고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언어의 구조가 확연히 틀린 동서양어를 서로 번역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니까. 

번역하신 분은 영문학 전공교수님이고,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을 번역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애정을 갖고 이 책을 번역하셨을 것이다. 원문에 맞춰, 글의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십분 노력하신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희곡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한국의 어느 연극무대에 올린다면, 과연 이 책을 그대로 대본으로 쓸 수 있을까... 처음부터 낯설고 불편한 한국어들의 향연은 일관되게 이 책을 끝까지 관통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등장인물들은 문학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박제된 언어로 숨쉬고 있는 것인가. 위대한 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문으로 읽어보지 못한 독자로서 감히 평하긴 그렇지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셰익스피어가 한국어를 사용했다면 이런 식으로 작품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위대한 문인의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몇 세기 전의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번역본이란 번역언어를 사용하며 현재 살고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다. 삼국지를 현대어로 번역해내듯이, 셰익스피어도 현재 살아 숨쉬는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추구했던 문학 정신과 감동은 좀 더 정련되고 현대어에 맞는 언어를 사용할 때 번역된 도서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스며들 것이다. 

일례로, 다음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줄리엣 창가 베란다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p. 108.  

유모: 아가씨! 

줄리엣: 유모? 

유모: 마님께서 아가씨 방으로 오십니다. 동텄으니 조심하고 주변을 살피세요.(퇴장) 

줄리엣: 그럼 창아, 낮 들이고 생명은 내보내라. (? 문장이 영 어색하다. 원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심히 궁금함. 직역한 것인지?)

로미오: 잘 있어요! 한 번만 키스하고 내려갈게. (내려간다) ('내려갈게요.' 라고 끝까지 존칭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줄리엣: 가셨어요, 여보 당신, 네, 남편이자 애인이여! 한 시간 안에도 매일매일 소식 줘야 합니다. 단 일 분 안에도 여러 날이 있으니까. 오, 이렇게 셈을 하면 내가 당신 로미오를 또다시 보기 전에 늙어 버리겠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16~17세 아니던가? 아무리 남편처럼 여긴다 해도 청소년들이 여보 당신 호칭을 쓴다는 건 이해가 안 감. 차라리, '유모는 갔어요, 내 사랑.' 이 정도가 낫지 않을까... 그리고 '한 시간 안에도, 일 분 안에도...' 이건 어느 나라 문법인지... 아... 정말 머리에 우뚝우뚝 소름 돋는 대사들...)

로미오(아래에서): 잘 있어요! 여보, 내 인사를 당신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 어 떤 기회도 놓치지 않을게요. (--> 잘 있어요! 사랑하는 줄리엣.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부를 전할 게요.)

줄리엣: 오, 당신은 우리가 다시 볼 것 같아요? (-->오, 로미오! 우리가 다시 보게 될까요?)

로미오: 반드시 그럴 거요, 그리하여 이 모든 한탄은 우리의 미래에 달콤한 얘깃거리 될 거예요. ('한탄 '이 주어가 되는 순간 기괴해지는 문장... 문장을 뒤튼다고 시적인 것인가? '미래엔 이 모든 탄식이 달콤한 추억이 되겠지요.'-->이게 더 한국말스럽지 않은지?)

줄리엣: 맙소사, 내 영혼이 액운을 점치네! 내 생각엔 당신이 너무 아래 있으니까 무덤 안에 누워 있는 죽은 사람 같아요. 내 시력이 갔거나 당신이 창백한 거곘지요. (내 영혼이 액운을 점치다니... 불길한 일을 예감한다는 뜻이겠지만, 이다지도 신선한 표현이라니...ㅠㅠ 그리고 '내 생각엔'이란 말은 사족임. 이하 코멘트 생략...)

로미오: 여보, 내 눈엔 당신도 그렇게 보여요. 갈증 난 슬픔이 우리 피를 마셨어요, 안녕! (퇴장) 

줄리엣: 오, 운명, 운명아! 모두가 널 변덕스럽다 한다. 네가 변덕스럽다면 신의로 유명한 사람을 어디다 쓰겠느냐? 운명아, 변덕을 부려라. 그럭하면 그이를 오래 아니 붙잡고 돌려보낼 테니까. 

(중략)

6학년 때, 삼촌의 서재에 있던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으면서 감동받았던 생각이 난다. 비록 글이 세로로 되어있고, 깨알 같은 글씨였지만, 초등학생이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의 번역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셰익스피어의 번역이 낯설고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내가 문장을 보는 방법이 달라져서인지? 운문의 형식도 중요하여 그렇게 번역했다는 역자의 친절한 설명이 있지만, 형식에 치우쳐, 오히려 한국어의 묘미를 잃어버리는 우가 되지는 않았는지...  

혹, 우리 딸아이처럼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싶은 초등생이 이런 번역본을 보고 셰익스피어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는 건 아닐지 심히 걱정된다. 사실, 우리 딸은 이 책을 한 페이지만 보고, 재미없다며 팽개쳐버렸다. 만화나 동화가 아닌, 정식 번역본으로도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내용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그런 셰익스피어 번역본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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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 2020-03-1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세계 최고라하는건 읽자마자 머리에 문장이 쏙들어오는게 아니고, 한문장 한 문장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을 여러번 생각하게 만들도록 해서인데요.. 그래서 번역할때 쉽게, 간단하게 읽히도록 의역 하지를 않는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