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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손
오드리 펜 지음, 루스 하퍼.낸시 리크 그림, 최재숙 옮김 / 사파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책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이 필요한 세상의 모든 어린이에게'
범상치 않은 제목에 서두에 깔려진 의미심장한 말.
표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가슴 저 깊고 낮은 밑바닥에서 뭉클한 덩어리가 느껴졌다.
솔직히, 제목과 책 소개를 보고, 엄마인 나는 무척 마음에 들고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다섯 살 사내아이인 내 아이에겐 너무 유치한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다. 유아들이 좋아할 만한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야기이겠거니 한 것.
하지만, <뽀뽀손>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목소리가 젖어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도 그저 사랑스러운 이야기이고, 너구리 체스터와 엄마의 사랑 담긴 뽀뽀손은 따뜻하고 귀엽기까지 한데, 나는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까.
너구리 체스터는 엄마와 집에 있는 게 좋다.
내 장난감, 내 책, 내 친구들, 내 '엄마'가 있는 편안한 안식처인 집에서 엄마와 하루종일 놀고만 싶다. 학교는 새로운 친구, 새 장난감, 새 그네, 새 책이 기다리는 곳이지만, 체스터에겐 그저 낯설고, 경쟁해야 하고, 내내 긴장해야 하는 곳일 뿐이다. 낯설고 새로운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오죽할까.
그런 체스터에게 엄마가 처방한 비밀스런 묘약이 바로 '뽀뽀손'이다.
단순히 손바닥에 뽀뽀하는 동작일 뿐이지만 거기에 '엄마의 사랑'이 더해져 심장부터 안경 털까지 체스터의 온몸과 마음이 사랑으로 전율한다.
체스터가 어디에 있든 어딜 가든 엄마의 사랑이 뽀뽀손과 함께 한다는 이야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진 이유는 체스터의 눈물 맺힌 눈에서 내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곁에서 돌보지 못하고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아이. 다섯 살이 되었다고 제법 의젓해지긴 했어도 한동안 어린이집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아침마다 물었던 아이.
지금도 아침에 눈 뜨면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를 먼저 물어보는 아이.
30여 명의 아이들과 하루종일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신경이 곤두선 하루를 보내야 하는 아이.
이따금 안쓰러움을 못견뎌 집에서 쉬게 하는 날에는 엄마 일할 수 있게 혼자 놀겠다며 엄마 사정을 먼저 헤아리곤 하는 아이 생각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을 삼켜야 했다.
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유아기의 동심은 또 살짝 비껴간 터라 체스터처럼 '뽀뽀손' 주문이 고스란히 통하지는 않지만, 함께 읽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책이다.
"하루종일 엄마는 너를, 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슴담아 두면 하루종일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네 가슴 이 깊은 곳에 엄마 마음을 담아 둘 거니까."
아이가 뽀뽀손을 이해했을까.
주문을 걸듯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아이와 체스터의 뽀뽀손을 몇 번이나 하는 동안 내내 쑥쓰러워 하는 아이가 뽀뽀손의 주문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더라도 엄마 마음은 이해해 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너구리 체스터의 눈망울부터 아이들이면 누구나 극복해야 하는 성장통을 그린 예쁘고 사랑스런 이야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쩜 이렇게 예쁘고 행복한지!
한편 읽어 주는 엄마의 마음은 뭉클하게 적실 수밖에 없는 이야기.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학교든 익숙한 것으로부터 떨어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책머리처럼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아이들에게 꼭 들려 주고 싶은, 진심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