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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보이는 것만 믿니?
벤 라이스 지음, 원지인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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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친구 포비와 딩언을 보았던 켈리언이 자라 어른이 되었다면,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켈리언이 그려낸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켈리언의 과도한 상상이 없었다면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뻔뻔스러운 가상 친구들은 그녀의 동네에 떠돌아다니지 못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시름시름 앓던 켈리언이 죽은 일도 없었을 것이다. 켈리언이 이 소설을 그려낸 것처럼 켈리언 외에도 이 세상에는 ’켈리언’이 참 많다. 


강도하의 웹툰 ’세브리깡’에도 포비와 딩언과 같은 상상 속의 인물이 등장한다. 여주인공 세브리깡의 주위에는 항상 자신이 그려낸 선한 영웅과 악의 중심이 날아다니는 데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다. 하지만 세브리깡의 세계에는 실재한다. 켈리언의 동심을 조금 더 넓게 보면 세브리깡이 쓰고 있는 아동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더 나아가면 모든 이들의 상상력이 된다. 가상 속의 인물은 내가 생각하고 창조한 인물이기에 당연히 내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 준다. 동심을 약간 가미하면 포비와 딩언은 켈리언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이 글로 적히면 소설이 되고, 그림으로 그려지면 만화가 된다. 입으로 전해지면 설화가 되고 마음으로 품으면 친구가 된다. 어린 켈리언에게 그들은 마음 속의 친구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가족들은 어린 켈리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살면서 보이는 것만 믿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어린 켈리언은 감성은 남다르게 풍부하다. 가족에게, 동네 사람들에게 그 감성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잊어버린 감수성을 전해 받는 대다수는 뜬 구름 잡는 소리를 거부한다.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허구를 믿을 여유가 없다. 켈리언의 보이지 않는 친구는 허무맹랑한 소리다.


켈리언은 죽는다. 동심을 거칠게 힐난당하고 포비와 딩언의 죽음을 슬퍼하며 죽는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믿음보다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켈리언의 감성이 자유롭게 떠돌아 다닐 때, 그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할 때 우리는 과연 마을 사람들이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엇을 죽이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소설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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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시간들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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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 기운이 아슬아슬하게 코를 찌른다. 코를 간질간질하다 재채기를 하니 어느새 깜깜한 저녁이다. 누군가는 떠돌다가,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누군가는 여행을 하다 저녁이 되면 그네들은 하루의 먼지가 온통 들러붙은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다. 한 데 엉커 색이 바랜 찰흙덩이처럼 때가 묻은 옷들이 있다. 동전 하나를 넣고 세탁을 하고, 또 하나를 넣고 건조를 한다. 옷은 그때마다 무겁게 쥐고 있던 이야기를 살살 풀어낸다. 나는 원래 예쁜 옷이었어요. 그런데. 내 얼굴이 못나져도 무척 즐거웠어요. 슬펐어요. 지루했어요. 그렇게 빨래방에서 만난 달짝지근한 이야기들이 모여 김희진의 소설 ’옷의 시간들’이 되었다. 옷이 저마다의 모양새를 지닌 것처럼 그 옷을 입은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옷은 그 사람의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두런두런하는 옷의 소리가 들려 오는 듯 했다. 내가 그들의 세상에 잡임했고, 색다른 번역기를 착용하여 빙글빙글 도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옷이 왜 바랠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둘의 이야기가 모두 먼지 털어내 듯 가볍게 보여도 끝내 남아있는 뿌연 먼지덩이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잔뜩 묵어 있던 먼지는 그때그때 털리지 못하고 옷을 바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더 이상 옷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라고도 할 수 없는 잦은 일들이 세상의 흔적으로 거기에 남아 있었다. 옷이 바랠수록 주인공들의 시간도 흘러갔다.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같은 사람을 찾는 여자, 지문이 같은 사람을 찾는 남자.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서 그들의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다. 


한 세탁기에 두 사람의 빨래가 엉킨다. 완연히 양해를 구했을 때 배시시 웃으면서 한 사람의 빨래에 다른 한 사람이 자신의 구질구질한 빨래를 집어넣은 탓이다. 빙글빙글 세상만사의 이야기를 모두 휘젓고 나온 빨래는 내것네것 상관없이 똑같이 깨끗하다. 빨래방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꼭 그렇다. 소소한 이유로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다보니 서로의 마음이 후련하다. 옷의 시간이 멋지게 세탁되어 흘렀다. 틈틈히 등장하는 작가의 다른 소설, 언니의 소설의 인물들이 카메오로 등장하여 위트있게 소설의 쉼표를 찍어줄 때, 나는 세상의 옷 이야기를 탁탁 펼치고 옷이 보여준 푸른하늘을 볼 수 있었다. 톡톡 튀는 캐릭터에서 평범하다고만 생각했던 내 모습을 발견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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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고은옥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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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년이 서로의 눈을 진득히 바라보는 모습만으로 이 소설을 한달음에 읽어낼 수 있다.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는 이 책은 여타의 성장소설처럼 청소년의 마음을 휘어잡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진 않는다. ’성장’을 구지 이야기하자면 흑인 소년 무고와 주인집 아들인 백인 소년 매슈의 보일 듯 말듯 드러나는 우정에 관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무언가를 알리고 싶었으며, 그 시선이 어린 두 소년으로 번갈아 드러나 더욱 애처롭게 다가온다. 


한국 독자에게 낯설기 짝이 없는, 1950년대 케냐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저자인 베벌리 나이두는 이렇게 말한다. “백인 아이로서 저는 이 나라(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불평등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비로소 이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저항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저 또한 그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 아래 그녀는 인종차별정책에 대해 저항운동을 한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겼으며, 당시 백인들이 마우마우족을 필두로 케냐 원주민들에게 자행한 일을 사실적으로 옮긴 것이 ’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이다. 


이 글의 제목을 보면서 두 소년의 고민을 겹쳐 보았다. 두 소년은 비록 어렸지만 뜨거운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 필사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고의 뜨거움은 원인 모를 억압에 눌러 쉼없이 이글거렸다. 허수로운 이유로 감옥에 잡혀들어가야 했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아빠와 이별해야 했던 흑인소년 무고의 눈과 실은 자신의 잘못으로 무고가 잡혀들어간 것을 아는 백인소년 매슈의 눈이 맞닿을 때 수만개의 감정이 오갔다. 그들은 얼마나 화끈거려야 했을까? 친구가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두 소년 사이에 놓인 장벽은 답답하게 놓여 있었다. 


단순히 제목만 보고, 두 소년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의 꿈 이야기를 내어 놓으면 그뿐인 줄 알았다. 그러나 두 소년은 또 다른 꿈을 품기도 전에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야했으며 살기 위해 발버둥쳐야했다. 그들이 뜨거워야 되는 이유는 ’삶’ 그 자체였다. 한걸음 물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살기 위해 뜨거워야했던 그들의 상황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왜 친구가 될 수 없었는가. 매슈의 아버지가 내놓은 답은 너도 크면 알게된다는 답답한 진실뿐. 저자는 그 답답한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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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사랑이다 1
피에르 뒤셴 지음, 송순 옮김 / 씽크뱅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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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한 죄가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교사 다니엘과 제자 제라르의 사랑은 표면적으로는 교사가 학생을 꾀어 불륜을 저지른 불순한 사건이었으며, 그렇기에 사회의 지탄을 곧이곧대로 받아야 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잡혀갈 때 수근거리기 바빴으며, 제자 제라르의 행동을 철없게만 여겼다. 즉, 그들의 사랑은 세상에 알려진 순간 달궈진 돌덩이가 되어 아프지만 견뎌야하는 사랑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렇게 다니엘은 다니엘대로, 제라르는 제라르대로 아픈 사랑을 했다.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그곳에서만은 세상이 조용했다. 법만 따지는 법관도, 그들이 악질의 범죄자인 양 거칠게 다루는 경찰도, 비난의 눈길을 보내던 시민들도 그들의 바깥 세상에서 수근거렸다. 그들의 말소리가 오두막에는 닿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은 순식간에 마녀가 되어 그들을 사냥했고, 마법을 부려 능력있는 교사와 모범적인 학생을 비루한 처지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에 수긍하고 한걸음 물러나도 그들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수의 시선에 갇힌 둘의 사랑을 보면서 정유정의 장편소설 ’7년의 밤’이 생각났다. 주인공 ’최서원’은 세상에 알려진 살인마의, 평범한 아들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평범한 삶이 아버지의 살인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로 서원에게 얼룩졌다. 그가 가는 곳엔 어디든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덧붙었고, 그가 머무르는 곳엔 그 아이를 쫓아내려는 따가운 눈빛이 있었다.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그 자식이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세상의 눈은 한가지 필터를 끼고 서원을 바라봤다. 마치 여교사와 제자의 사랑이 1960년대 프랑스 사회에서 쉽게 용납이 되지 않은 것처럼.


서원의 속이야기로부터 세상의 거대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얻어낼 수 있었듯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서도 열정을 간직했던 그들의 사랑은 감동을 전해줬다. 독자에겐 감동이었지만, 그들에겐 죽음과 상처로 남은 사랑은 제라르의 말에서 더욱 진실되게 다가왔다. 

"어째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가 됩니까? 저는 우리들의 사랑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 ’아프니까 사랑이다’는 진실한 사랑을 나누었던 다니엘(실명 가브리엘)과 제라르(실명 크리스티앙)의 이야기였고, 독자의 마음 속에서 그들의 사랑이 다시 한 번 심판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사랑은 무죄, 사회는 유죄인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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