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2 1 - 인생의 거칠기가 사포의 그것과 같다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 그림 / 씨네21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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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솔깃솔깃 소설에 기울어지던 관심이 웹툰으로 쏟아졌다. 매일매일 클릭하다보니 호감웹툰 몇 가지가 생겼고 출석도장이라도 찍듯 매일 찾게 되었다. 그 중 생활툰은 보던 흐름이 끊겨도 부담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낢이 사는 이야기는 스쿨홀릭과 함께 그 양대산맥이었다. 아무래도 내 주변의 삶이 만화 속에 그대로 펼치기에 공감요소가 작용해서 한번 그리고 두번 그렇게 계속 보게 되는 걸까. 웹툰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옛이야기도 끄집어내고, 내가 모르는 작가의 이야기를 보며 웃기도 했다. 생활툰은 작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재치있게 그려내기에 현실성 있고 진솔하다.

 

 

'낢'은 서나래 만화가의 애칭이자 별명이다. 갈색머리를 질끈 묶고 '인생의 거칠기가 사포의 그것과 같다'며 평범한 삶을 다이나믹하게 내보인다. 캐릭터가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눈을 하고 반짝거리면 웃음 일발 장전이다. 시즌 1에서 대학생인 낢의 모습과는 달리 시즌2의 낢은 조금 더 다양한 방면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일기장을 뒤적일 때 낢은 일기장 대신 웹툰 혹은 웹툰을 책으로 내놓은 만화책을 본다. 일기장과 다름 없는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 아까운 줄 모르게 우르르 흘러갔다. 아직 시즌1에 머무르고 있는 나는 그녀의 직장생활이 남다르게 보였다가도 그녀가 일상으로 오면 깨알같은 잔상에 생활의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어지럽혀진 방 한 구석에 편하게 쪼그라든 내가 누워 있다.

 

 

내가 그녀처럼 생활툰을 그린다면 오늘 동생이 치르는 수능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가족이 함께 동생을 시험장으로 데려다 주는 동안 기분은 정말 미묘했다. 몇 해 전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던 내 수능날과 시시각각이 오버랩되었다. 대부분의 회사나 공기업에서 출근시간이 10시로 늦춰졌기에 차로 수능장을 향하면서 이 도로위에 같이 달리고 있는 차가 모두 수험생을 태운 차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수험장 입구에 서니 교문을 따라 들어가는 수험생들에 눈길이 갔다. 아나운서는 수험생 부모들에게 현재 심경을 묻는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다양한 봉사단체에서 추운날씨에 시험을 치는 수험생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님들, 그들을 격려해주러 나온 선생님들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입실시간이 다가오자 미리 닫히던 교문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의 반발로 다시 열렸고, 정확하게 8시 10분이 되어 교문이 닫히고 사람들도 돌아갔다. 이상하게 떨리는 시간이었다. 그 때 난 7시 쯤엔 무얼했고, 7시 반에는, 8시가 넘었을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언어 영역 시간, 수리 영역 시간에는, 쉬는 시간에는, 같은 학교 친구들과 먹던 점신시간에는, 듣기가 신경쓰였던 외국어 영역 시간에는, 마지막 이렇게 이제까지 공부했던 것이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사회 탐구 시간에는.

 

낢이 전하는 이야기처럼 내가 사는 이 시간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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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차일드
팀 보울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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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적(幻想的) : 생각 따위가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고 헛된. 또는 그런 것.
 · 순수03(純粹) : (1)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또렷한 현실을 의뭉스럽게 이야기하고 그 속면에는 결국 순수가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에는 언제나 마음을 두드리는 여린 망치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읽고 나면 크게 또 길게 여운이 남았다. 이따금 몇몇 소설이 그랬다.

 

꼭 그랬다. 복잡했다. 아무리 걸어들어가도 해답은 커녕 작가가 더 깊히 파놓은 한덩이 구멍만 함정처럼 놓여있었다. 작품의 주인공에게도, 그 이야기를 읽는 나에게도 현실인 그곳이 자꾸 짜부러지고 있었다. 원래는 없던 공간이었는 것처럼 무너져내렸다.

 

無. 그렇게 답답한 이름으로 소년 윌은 찾았다. 이 곳은 이상해요. 당신은 제 말을 믿지 않겠죠. 그렇지만 바다는 핏빛으로 얼룩지고, 천사의 자태를 지닌 소녀가 보이고, 그리고 나와 비슷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먹이 여기 있어요. 이 곳은 정말 이상해요. 무엇이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선명해지는 핏빛 기운을 따라 윌은 마을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잠깐이나마 그 이상한 기운의 정체가 선명해질 즈음 한 번씩 죽음에 가까운 위험이 윌을 찾아 온다. 간신히 도망친 다음 날 동네의 떠돌이였던 크루가 시체로 발견되고, 발코니에서 쉬고 있던 윌을 누군가 접근하여 내던지려고 한다. 기억을 잃게 되었던 의문의 사고도 알고 보니 누군가 윌을 작정하고 죽이려고 트럭을 돌진한 살인미수였다. 아직 어린 윌에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그러나 굳건하게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환영을 따라 윌은 진실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보았던 그림자 얼굴은 무엇인지, 먹의 정체는 무엇인지, 누군가가 왜 자신을 헤치려고 하는지. 반전이 거듭할수록 마을은 아슬아슬하게 버팀질을 한다. 어른의 시선으로 추악하게 그려졌을 이야기가 환영을 보는 윌의 시선으로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그 속에 살아 있는 순수는 마음을 쿵쿵쿵쿵쿵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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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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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 가아씨요. 카알 가아씨요.

복천 영감이 시원하게 소리를 쭉 뱉을 때부터 속이 시원했다. 토속적인 단어는 줄을 어찌나 잘 섰는지 맛깔나기 그지 없었고 신이 얼쑤 났다. 복천 영감이 골병이 들어가면서 칼을 갈기 시작했던 내력을 들려주었는데 그 한탄은 시골과 다르게 일일이 값을 매기는 매정한 서울의 세태로부터 시작 되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옛말처럼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어린 촌뜨기들은 기껏 훔쳐 온 밑천마저 이삼일만에 떼이기 일쑤였고, 복천 영감의 젊은 시절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쌀쌀해진 가을 바람따라 구르는 낙엽처럼 이렇게 저렇게 구르다가 칼갈이로 정착한 복천 영감이었다.

 

 

우렁차게 내뱉는 복천 영감의 소리를 듣고 같은 고향씨의 말이구나 반가워 그네를 붙잡은 사람이 바로 금자였다. 씨가 많은 가난한 집안에서 서울로 올 수 밖에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연은 한달음에 내놓고 같은 말씨를 지닌 복천 영감을 그렇게 반가워했다. 금자만큼 반가움을 표했던 복천영감이었다. 몇날이 지나고 그 마을을 다시 돌면서 카알 가아씨요, 를 외치던 복천영감은 금자가 일하는 집을 기웃거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술집에서 일하게 된 금자를 다시 만났을 때 역시 눈 감고 코 베인 금자의 구슬픈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주인집 삼촌에게 성적으로 농락당하고 순결을 빼앗긴 금자가 결혼을 해 달라고 떼를 부리자 소문이 무서웠던 주인집에서는 그녀를 속인 채 결국 빚을 떠민채 술집에 보낸 것이다. 역시 고달픈 인생이었다.

 

 

복천 영감에 들러붙은 지독스러운 가난 이야기가 참 많다. 일찍이 아내의 병을 발견하지 못한 의사때문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아내와 가난한 환경 아래에서도 의젓하고 똑똑하게 자라는 딸애와 막내. 시골에 살 때 일찍감치 서울에 상경한다고 집을 떠나버린, 여지껏 소식이라도 알았으면 하는 큰애. 우연스럽게 도와 줄 수 있었던 며느리 삼고 싶은 복권 처녀. 서울에 상경한지 얼마 안되는 복천 영감네 가족을 도와 주던 떡 팔고 장사하는 내외. 그러다가 결국 연탄가스로 싱겁게 눈물나게 생을 마감한 친철했던 그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복천 영감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온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달려온 오누이는 이제 비렁뱅이로 살면 된다고. 아비가 비렁뱅이라고 자식까지 비렁뱅이는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서로의 울음을 나눈다. 조정래가 절절하게 전해준 시대의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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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미
고예나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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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노골적이다. 현대의 가벼운 성 문화를 살짝 꼬집으면서 20대 여성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 책은 노골적이다. 클릭 미는 랜덤 채팅 사이트로 가벼운 클릭 하나로 젊은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hi로 시작해서 약속장소로 끝나는 그들의 대화는 무미건조하다. 관계를 가진 후에 그들의 사이에는 아무런 끈도 없다. 쿨하게 뒤돌아서면 된다. 얼마 전, '강심장'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에프터스쿨의 멤버 중 한 명인 레이나의 이같은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레이나는 조심스럽게 3년간 연락을 했던 첫사랑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점점 의문스러웠다. 전화와 문자로만 3년을 통화했고 결국에는 교제까지 하게 된 그들은 그때까지 직접 만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화가 난 그녀가 연예인이 되기 직전 그 사람의 집 앞에 찾아가니 직접 만날수는 없고 전화로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의심하냐며 왜 찾아왔냐며 도리어 역정. 이 이야기를 듣던 주변 연예인들의 탄식이 들려오고 '클릭 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와 유사했다. 클릭 클릭 가벼운 물꼬가 진심을 바보로 만드는 격이었다.

 

 

가벼운 세태를 다루었기 때문인지 작가의 소설은 구렁이 담 타듯이 진행된다. 채팅으로 여러 남자와 연락은 하지만 정작 그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지현, 낮에는 온라인 논술강사로 밤에는 키스방 직원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연희(나), 겉으로 보기에는 매너있는 스마트남 알고보니 변태남을 만나고 있었던 유리, 가벼운 만남을 즐기는 성아. 그녀들이 현대의 20대 전체를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과거에는 없었던 현대에는 자자한 가벼운 풍조를 나타내고 있었다. 20대 여성의 입장이지만 그녀들의 '일상'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네 명의 주인공들 사이에서 공감되는 바로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신경써주는 진솔한 친구 관계에서 그칠 뿐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학비를 벌기 위해 키스방에 다녔던 연희를 보면서 자기 몸 돌볼 새 없이 건전한 알바를 몇개씩 하는 친구들이 떠올랐고, 채팅으로 두서 없는 짧은 관계를 탐색하는 지현을 보면서 당당하게 공식적인 모임의 우두머리를 맡고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 바이러스를 내뿜는 롤모델격인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누군가, 이 책을 두고 21세기 20대 문화를 유려하게 잘 다루었다 할까 겁이 났지만, 내가 보지 못한 다른 20대의 모습이 빠르기만 한 인터넷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속도위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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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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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후 10년, 역사학자 이덕일은「윤휴와 침묵의 제국」을 내놓았다. 송시열과 윤휴는 젊어서부터 우애가 깊었으며 서로의 학문을 거짓없이 논하곤 했는데, 정치에 나서고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이 엇갈리면서 아쉬운 정적이 되었다.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오른 둘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꽤나 거대했다. 당시 민감한 문제였던 주자에 대한 생각과 북벌 문제를 놓고 윤휴의 대대적인 개혁은 시작된다. 송시열로 대표되는 세력이 주자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고, 북벌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북벌을 감행해야한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북벌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반면 윤휴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천하의 이치는 무궁무진한데 주자의 생각이 절대적일 수 없으며, 북벌은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송시열과 윤휴 사이에 얽힌 17세기 조선에서 벌어졌던 정쟁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풀어냈다. 처음에는 요즘 많이 볼 수 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 즉 팩션을 생각했다. 더구나 평소에 잘 알지 못하는 그리고 잘 알 수 없었던 윤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냈기에 우리 역사를 한꺼플 더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그를 뒤엎는 상상력으로 역사를 재해석한 여타의 팩션과 다르게 방대한 양의 사료를 바탕으로 실제적인 윤휴의 삶을 재구성해 놓은 이덕일의 책을 읽었을 때 사실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전에 이와 같은 제대로 된 역사서를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역사적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쓰여진 윤휴에 대한 논문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장편 소설 한 권 분량의 책에 윤휴의 일생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단번에 신뢰가 생겼다. 책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저자가 왜 이와 같이 과거의 인물의 삶을 묶어왔는지 뚜렷한 핵심 줄기가 있었으며 그에 대한 사료가 근거가 되었다.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윤휴 역시 학식이 깊었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정 틀에 묶어 있지 않고 자신이 잣대가 되어 세상을 볼 줄 알았다. 송시열이 당시 조선의 패러다임의 강자였다면, 윤휴는 송시열이라는 바위를 강철주먹으로 깨뜨릴 새로운 패러다임과 같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윤휴는 근 300년 동안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금지되었지만, 그의 깊이 있는 학식을 바탕으로 그려낸 깨어있는 사고는 충분히 조선의 뚜렷한 획을 그을만했다. 이전에 대부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은 팩션을 읽고 재미는 있지만 허무맹랑할 때가 많았는데, 윤휴와 침묵의 제국은 달랐다. 겉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보니 속이 꽉찬 판도라의 상자를 발견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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