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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후 10년, 역사학자 이덕일은「윤휴와 침묵의 제국」을 내놓았다. 송시열과 윤휴는 젊어서부터 우애가 깊었으며 서로의 학문을 거짓없이 논하곤 했는데, 정치에 나서고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이 엇갈리면서 아쉬운 정적이 되었다.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오른 둘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꽤나 거대했다. 당시 민감한 문제였던 주자에 대한 생각과 북벌 문제를 놓고 윤휴의 대대적인 개혁은 시작된다. 송시열로 대표되는 세력이 주자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고, 북벌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북벌을 감행해야한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북벌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반면 윤휴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천하의 이치는 무궁무진한데 주자의 생각이 절대적일 수 없으며, 북벌은 지금 당장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송시열과 윤휴 사이에 얽힌 17세기 조선에서 벌어졌던 정쟁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풀어냈다. 처음에는 요즘 많이 볼 수 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 즉 팩션을 생각했다. 더구나 평소에 잘 알지 못하는 그리고 잘 알 수 없었던 윤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냈기에 우리 역사를 한꺼플 더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그를 뒤엎는 상상력으로 역사를 재해석한 여타의 팩션과 다르게 방대한 양의 사료를 바탕으로 실제적인 윤휴의 삶을 재구성해 놓은 이덕일의 책을 읽었을 때 사실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전에 이와 같은 제대로 된 역사서를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역사적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쓰여진 윤휴에 대한 논문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장편 소설 한 권 분량의 책에 윤휴의 일생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단번에 신뢰가 생겼다. 책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저자가 왜 이와 같이 과거의 인물의 삶을 묶어왔는지 뚜렷한 핵심 줄기가 있었으며 그에 대한 사료가 근거가 되었다.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윤휴 역시 학식이 깊었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정 틀에 묶어 있지 않고 자신이 잣대가 되어 세상을 볼 줄 알았다. 송시열이 당시 조선의 패러다임의 강자였다면, 윤휴는 송시열이라는 바위를 강철주먹으로 깨뜨릴 새로운 패러다임과 같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윤휴는 근 300년 동안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금지되었지만, 그의 깊이 있는 학식을 바탕으로 그려낸 깨어있는 사고는 충분히 조선의 뚜렷한 획을 그을만했다. 이전에 대부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은 팩션을 읽고 재미는 있지만 허무맹랑할 때가 많았는데, 윤휴와 침묵의 제국은 달랐다. 겉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보니 속이 꽉찬 판도라의 상자를 발견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