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4집 - Shadow
이승기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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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승기를 보았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을 꿈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구나. 나는 그의 행동력이 부러웠다. 방송용 웃음을 짓든 드라마용 웃음을 짓든 그에게선 매번 노력하는 미소가 보였다. 드라마를 찍을 때도 항상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서야 촬영에 임한다는 그는 바쁜 스케쥴이 무색할만큼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으로서 멋졌고, 배울점이 많았다.그래서 자꾸 시선이 갔다. 데뷔때만해도 그는 학생이었기에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는데, 내가 수능을 치고 한움큼 여유를 마쉴때가 되자 그는 어느새 너무나 멋진 가수이고, 배우이자 다재다능한 예능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는 바로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은 주위 사람들이 가만 두질 않는다. 그건 그 사람에게서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뭐든지 경험삼아 해보려고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최근 몇 년간 이승기에게선 그 열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드라마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되고, 작곡가들이 서로 그와 함께 하려하고, 이따끔 선선한 미소로 예능에서 그의 얼굴을 자꾸 볼 수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그와 엮이려 하고, 그와 엮이면 다른 이도 함께 이미지가 좋아진다. 그렇게 그는 시너지 효과를 내뿜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비록 모든 것에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아주 튼튼한 길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그의 노래는 그의 인기만큼 종종 들려왔다. 그냥 나선 길가에서도 그의 노래가 울렸고, 연말에는 여차하면 그의 춤까지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귀에 많이 들린만큼 이따금 그의 노래는 히트송이 되었고, 어느 날은 한 예능 프로에서 유유히 그의 신곡들이 흘러나왔다. 산뜻한 멜로디에 그의 목소리가 더해지니 부담없이 듣기 좋은 곡이 되었다. 이승기의 노래는 거진 허밍하기에 좋은 곡들이었다. 따라 부르기 편안했다. 그런 노래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미소까지 더해지자 무언가 완성이 된 듯 햇다. 그에겐 능청스러운 센스가 뒤따랐다. 




<이승기 4집 - Shadow>에 담긴 노래들 역시 모두 듣기가 좋았다.  이승기의 1집 ’내 여자라니까’에 이어 5년 만에 음악적 호흡을 맞추게 된 선배 가수 싸이의 곡 <면사포>는 그와 싸이가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 다시금 보여주고 있었다. 타이틀 곡 <우리헤어지자>에서는 그의 맑은 목소리를 가장 잘 담아낸 것 같고, 가끔 그의 목소리가 노래의 포스에 짓눌려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곡도 있었지만 대개의 곡들이 그만의 색깔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이번 앨범은 조만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와 그 ost로 다시 찾을 이승기의 열정이 잘 드러난, 제 역할을 톡톡히 한 통로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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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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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정서 차이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보수적인 편인데, <버니먼로의 죽음>에서는 서구의 지나치게 개방적인 면모를 까발리고 있었다. 주인공 ’버니 먼로’자체부터 그러하다. 소설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는 온종일 불순한 생각만 한다. 그런 이야기를 조용히 참고 들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아마 그런 ’불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러한 불편은 소설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버니 먼로는 아내가 자신에 지쳐 자살을 하고, 어린 아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우면서도(남들이 보기에는 눈을 지푸릴 정도로) 불순한 상상과 그러 인해 피어오르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결말은 비극적인 죽음이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 당연히 있을 것만 같은 따뜻한 결말이 없자 나는 고전적인 소설의 독자로서 배신을 당한 양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토록 열린 결말에도 아직은 보수적인 독자였다. 


버니 먼로는 온갖 비난의 시선을 받으며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후, 아들과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는 화장품을 방문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고객을 고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늘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온갖 상상을 한채 바라본다. 그런 그의 눈빛에 동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당연스레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의 눈빛에 쉽게 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저쪽 세상’에 전혀 공감도 가지 않고 계속 지켜보기도 싫었다. 대체 버니 먼로가 세상을 사는 이유는 저런 상상을 죽도록 하기 위해서란 말인가. 



하지만 소설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전개로 이어나간 것은 작가의 타고난 능력이었다. 꽤 두꺼웠지만 이 책을 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작가의 필력으로 퇴폐적인 버니 먼로의 시선을 담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많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토끼’라는 뜻의 귀여운 의미를 가진 ’버니’ 먼로는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시선이 아빠의 시선과 엇갈렸다. 그래서 버니 먼로의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 했다. 귀여운 토끼만 보이던 표지를 다시 보니 변기 위에 토끼의 모습이 보인다. 표지는 음침했고 제목과 소제목은 버니 먼로의 비극적인 결말을 직시하고 있었다. 작가는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개방적인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뮤지션이였으며 연기자이기 하였고 직전에는 우화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 그의 그러한 개방적인 마인드에 따르는 도전정신은 부럽지만, 나는 그의 열린 사고에는 많이 뒤쳐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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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 할인행사
로만 폴란스키 감독, 벤 킹슬리 외 출연 / 팬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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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올리버를 보았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연민이 들었고, 올리버가 드디어 잘 되었을 때는 조금 부러웠다. 어쩌면 올리버와 같은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때 만화로 된 올리버 트위스트를 가장 먼저 접했는데, 그 만화에서는 올리버의 선한 품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찰스 디킨스의 명작의 스토리성은 무엇보다 잘 담겨 있었던 것 같았다. 오늘 영화에서 본 올리버 역시 꼭 같이 행동하고 있었으니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하니 내가 올리버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정작 원작인 책에서의 모습이었다. 곧 책을 보면서는 영화에서는 볼 수 있었던 올리버의 선한 표정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올리버는 무척 착했다. 그러나 올리버가 놓인 상황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올리버는 부모가 없는 고아였고, 그는 개나 고양이가 팔리듯이 여기저기 넘겨지곤 했다. 그 속엔 도둑 소굴과 같은 벗어나기 힘든 곳도 있었다.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은 찾기 힘들었고 대개 낡은 옷을 입고 온 몸이 새까만 올리버를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올리버는 바른 마음씨와 선한 눈망울을 잃지 않고 있었다. 보통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면 그 사랑에 보답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법이 대다수 일텐데도 올리버는 그렇지 않았다. 나쁜 상황 속에서도 바른 생각을 할 줄 알았고, 살아남기 위해 행해야했던 나쁜 일에도 쉽게 동화되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올리버는 여린 아이였다. 



나는 올리버의 그런 마음씨가 좋았다. 어쩌면 현실성이 없다고도 할지도 모르지만, 도둑 소굴에서도 나쁜 일에는 무섭게 눈을 부라릴 줄 아는 올리버는 모든 사람들이 꼭 지녔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소년이었다. 그래서 그 여린 몸에서 얼토당토않게 오해를 사게 되는 상황에 놓이자 소리를 버럭 질렀고, 자신의 어머니를 무작정 욕해대는 녀석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올리버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아낌없이 나누어줄 가족이 나타난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올리버가 힘들 때 불쌍하게 여기고, 고급 음식을 먹으며 고급 침대에 누워있을 때 부럽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올리버가 이제는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심리를 속속들이 파고든 찰스 디킨스의 글은 괜히 명작이 아니었다. 소설을 잠시 옮겨온 것처럼 담아낸 영화 역시 명작을 잇고 있었다. 



아마 올리버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올리버의 마음씨 또한 그대도 새록새록 전해 온 걸지도 모른다. 나는 올리버의 이야기를 보았고, 그 마음씨를 그대로 전달받았다.  우중충한 뒷골목의 모습은 익숙치 않았고, 우리와 다른 옷을 입은 서양의 이야기도 사실은 낯설었다. 그 중에 더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의 어린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올리버의 얼굴이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어린왕자의 모습처럼 올리버 역시 그렇게 남아 앞으로도 세계의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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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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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을 몰랐다가, 책을 통해 알고 그로 인해 검색을 통해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솔직히 겁이 났다. 아직도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찝찝한 구석으로 가득차 있었다. 마치 전쟁끝이 아니라 ’휴전중’ 인 우리나라의 모습처럼, 완연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은 진실이 아쉽고 무서웠다. 알 수 없는 ’진실’이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소설 <A>에서는 유독 반복되는 문장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 모두, 그 사건의 되풀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삼촌’이라고 불리던 남자가 한 명 뿐이었던 신신양회에 다른 남자아이들은 모이지 않아 ’기태영’만이 남자인 듯한 어머니와 이모들의 자식들의 모임도 그러한 순차를 그대로 밟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주는 오싹하게 다가왔다. 대담하게만 보이는 소설 속 ’나’라던가 정인언니, 은영언니 등의 모습은 모두 너무 멀어보이기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소설 초반까지만 해도 이 소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녀들의 삶은 내게서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고, ’나’가 품어야 했던 의문의 시선은 내가 전혀 품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공감할 것들이 없었고, 점차 ’나’에게 놓인 의문투성이의 하루나 엄마나 이모의 삶은 반감만 들었지, 결코 동화되고 싶지는 않았다. 디데이를 손에 꼽는 것처럼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이 다가왔다. ’내’가 세상을 볼 수 없게 되고,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나는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다. 향수를 떠올리듯, 시골에서의 푸근했던 하루하루는 소설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눈을 잃은 ’내’가 되풀이하며 내내 추억하듯이 길게 느껴졌고, ’그 일’과 이후 어머니와 이모들의 자식들이 모이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신기하게도 소설의 쪽수에 상관없이 소설 속 내용이 품고 있는 시간에 따라 소설이 흘러갔다. 나는 그부분에서 하성란 작가의 소설에 큰 별을 주고싶다. 



소설 중간 쯤에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숨어있다가 큰 줄기를 드러낸 ’최영주’의 시선이다. 그는 그가 쫓고자 하는 사건의 모호성처럼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다. 나는 소설을 설읽다가 그가 누구인지 놓쳐버렸다. 그러자 오대양 사건도 함께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연예인 김준과도 연관이 있고 그는 누구보다 오대양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 사건을 파헤쳐가는 그의 시선을 따라 읽다가 나는 얽히고 얽힌 지구의  인간망에 꼼짝없이 걸리고 말았다. 그네들이 얽힌 그물은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기 위한 갑작스런 전개처럼 얽히고 얽혀 있었다. 지구본을 뜯어내면 사람들의 관계로 지독하게 얽힌 묵직한 실뭉터기가 들어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하성란의 소설 <A>에서는 그랬다. 



그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는 ’시선’ 또한 무던히도 엉켜 있다. 나는 분명히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기태영’의 눈을 갖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신신의 다른이의 눈을 갖기도 하고 그들을 쫓는 ’최영주’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모두 진실을 알지 못하고 쫓는 사람들의 시선이 번갈아 이어지자 초반에 느꼈던 그 오싹한 기운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답답했고, 진실을 알고 싶었다. 세상에는 덮어두어야 더 나은 진실이 많은데도. 어쨋든 그러한 ’시선’은 오대양 사건을 쫓기에 큰 공을 세웠다. 앞이 보이지 않아 제3의 눈이 있다면서 자세하게 전달한다는 듯이 깜박 속이면서 모호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나’를 주요 화자로 삼은 점도 소설의 ’정답’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소설 <A>를 덮었다. 덮고 나니 여러모로 얽혀 있는 표지의 일러스트가 보였다. 처음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고, 곳곳에 아가들이 숨어있는 듯한 이 표지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은 신신양회를 대표하고 있었고, 나아가 극악무도하고 진실을 알기 힘든 사건이지만 ’오대양 사건’의 을 나타내는 듯한 표지가 제일 먼저 놓여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아름답고 잘 디자인 된’ 표지로는 부족했다. 하성란 소설 <A>를 한 장면으로 표현했다면 다음의 일러스트가 톡 튀어나올 것 같았다. <A>는 여러모로 오대양 사건의 미스터리와 아픔을 잘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남긴 뒷 이야기를 애잔하게 잘 이야기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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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고양이 우리 시대 우리 삶 2
황인숙 지음, 이정학 그림 / 이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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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양이가 보였다. 생각보다 길거리에는 고양이들이 많이 떠돌고 있었다. 주택가에 살아서 그런지 이따금 눈을 돌리면 마주치는 고양이들이 강렬한 레이저빔을 쏘는 듯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네들은 내가 눈을 거두기 전에는 절대 먼저 눈을 돌리는 일이 없었다. 따뜻한 시선이 아닌 저리가, 하고 숨어있던 내 마음이 들킨 것처럼, 고양이들은 따사로운 시선을 보냈다. 내가 그들을 경계하니깐, 그들도 성심껏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우리 동네의 ’네로’나 이름도 없는 각양색색의 고양이들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전에 고양이 가족을 보았다. 우리 집은 3층인데, 옆 집은 2층이라 옆 집 옥상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 그 곳에 집주인 허락도 없이 고양이가 살금살금 들어섰다. 그런데, 얼씨구? 그 고양이 뒤로 그 고양이를 똑닮은 작은 새끼들이 살그머니 따르는 것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 모두 다섯 마리나 되었다.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어미를 둘러싼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애처롭게 울어댔다. 고양이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한 행동이라고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왜 이렇게 줌기능이 떨어지냐며 자세하게 찍히지 않는 고양이 사진을 보며 투덜대는 일이었다. 그 동안도 미약하게 고양이 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울렸다. 미야오오오옹.

 

 

그 고양이들은 순식간에 자랐다. 하나도 귀엽지 않았다. 냄새나게 똥만 여기저기에 싸댔다. 어느 날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자기들이 스스로 도망쳤는지 주인이 쫓아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자그맣게 자신의 존재를 울어대던 고양이들은 또다시 길고양이가 되어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만약 작가의 집과 우리집이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어쩌면 작가는 내가 자라는 모습을 모두 보아온 그 고양이를 보고 애처롭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한테 그렇게 호의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지금도. 작가가 바라본 고양이들은 모두 ’친구’ 같았다. 그렇게 조용하고 애교있는 녀석들이 없었다. 얼마전에 본 웹툰 ’어서와’에서도 사람으로 변신하는 고양이를 보았다. 여기저기에 있는 고양이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소소한 작가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내가 무관심했기에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소소하게 다가오니 더욱 친근했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이젠 작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고양이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앞발을 귀엽게 문지르는 고양이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곳곳에 깔려있는 주황색의 일러스트들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물들였다. 시인의 이야기들은 모두 깔끔하면서도 미소를 지을 정도의 가벼운 웃음을 건네주고 갔는데, 그래서 더욱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모두 시인인 작가가 담백한 언어로 내 놓은 노을지는 저녁에 조심스레 귀가한 따뜻한 마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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