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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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을 몰랐다가, 책을 통해 알고 그로 인해 검색을 통해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솔직히 겁이 났다. 아직도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찝찝한 구석으로 가득차 있었다. 마치 전쟁끝이 아니라 ’휴전중’ 인 우리나라의 모습처럼, 완연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은 진실이 아쉽고 무서웠다. 알 수 없는 ’진실’이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소설 <A>에서는 유독 반복되는 문장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 모두, 그 사건의 되풀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삼촌’이라고 불리던 남자가 한 명 뿐이었던 신신양회에 다른 남자아이들은 모이지 않아 ’기태영’만이 남자인 듯한 어머니와 이모들의 자식들의 모임도 그러한 순차를 그대로 밟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주는 오싹하게 다가왔다. 대담하게만 보이는 소설 속 ’나’라던가 정인언니, 은영언니 등의 모습은 모두 너무 멀어보이기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소설 초반까지만 해도 이 소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녀들의 삶은 내게서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고, ’나’가 품어야 했던 의문의 시선은 내가 전혀 품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공감할 것들이 없었고, 점차 ’나’에게 놓인 의문투성이의 하루나 엄마나 이모의 삶은 반감만 들었지, 결코 동화되고 싶지는 않았다. 디데이를 손에 꼽는 것처럼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이 다가왔다. ’내’가 세상을 볼 수 없게 되고,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나는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다. 향수를 떠올리듯, 시골에서의 푸근했던 하루하루는 소설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눈을 잃은 ’내’가 되풀이하며 내내 추억하듯이 길게 느껴졌고, ’그 일’과 이후 어머니와 이모들의 자식들이 모이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신기하게도 소설의 쪽수에 상관없이 소설 속 내용이 품고 있는 시간에 따라 소설이 흘러갔다. 나는 그부분에서 하성란 작가의 소설에 큰 별을 주고싶다. 



소설 중간 쯤에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숨어있다가 큰 줄기를 드러낸 ’최영주’의 시선이다. 그는 그가 쫓고자 하는 사건의 모호성처럼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다. 나는 소설을 설읽다가 그가 누구인지 놓쳐버렸다. 그러자 오대양 사건도 함께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연예인 김준과도 연관이 있고 그는 누구보다 오대양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 사건을 파헤쳐가는 그의 시선을 따라 읽다가 나는 얽히고 얽힌 지구의  인간망에 꼼짝없이 걸리고 말았다. 그네들이 얽힌 그물은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기 위한 갑작스런 전개처럼 얽히고 얽혀 있었다. 지구본을 뜯어내면 사람들의 관계로 지독하게 얽힌 묵직한 실뭉터기가 들어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하성란의 소설 <A>에서는 그랬다. 



그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는 ’시선’ 또한 무던히도 엉켜 있다. 나는 분명히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기태영’의 눈을 갖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신신의 다른이의 눈을 갖기도 하고 그들을 쫓는 ’최영주’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모두 진실을 알지 못하고 쫓는 사람들의 시선이 번갈아 이어지자 초반에 느꼈던 그 오싹한 기운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답답했고, 진실을 알고 싶었다. 세상에는 덮어두어야 더 나은 진실이 많은데도. 어쨋든 그러한 ’시선’은 오대양 사건을 쫓기에 큰 공을 세웠다. 앞이 보이지 않아 제3의 눈이 있다면서 자세하게 전달한다는 듯이 깜박 속이면서 모호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나’를 주요 화자로 삼은 점도 소설의 ’정답’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소설 <A>를 덮었다. 덮고 나니 여러모로 얽혀 있는 표지의 일러스트가 보였다. 처음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고, 곳곳에 아가들이 숨어있는 듯한 이 표지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은 신신양회를 대표하고 있었고, 나아가 극악무도하고 진실을 알기 힘든 사건이지만 ’오대양 사건’의 을 나타내는 듯한 표지가 제일 먼저 놓여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아름답고 잘 디자인 된’ 표지로는 부족했다. 하성란 소설 <A>를 한 장면으로 표현했다면 다음의 일러스트가 톡 튀어나올 것 같았다. <A>는 여러모로 오대양 사건의 미스터리와 아픔을 잘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남긴 뒷 이야기를 애잔하게 잘 이야기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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