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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아무래도 정서 차이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보수적인 편인데, <버니먼로의 죽음>에서는 서구의 지나치게 개방적인 면모를 까발리고 있었다. 주인공 ’버니 먼로’자체부터 그러하다. 소설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는 온종일 불순한 생각만 한다. 그런 이야기를 조용히 참고 들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아마 그런 ’불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러한 불편은 소설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버니 먼로는 아내가 자신에 지쳐 자살을 하고, 어린 아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우면서도(남들이 보기에는 눈을 지푸릴 정도로) 불순한 상상과 그러 인해 피어오르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결말은 비극적인 죽음이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 당연히 있을 것만 같은 따뜻한 결말이 없자 나는 고전적인 소설의 독자로서 배신을 당한 양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토록 열린 결말에도 아직은 보수적인 독자였다.
버니 먼로는 온갖 비난의 시선을 받으며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후, 아들과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는 화장품을 방문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고객을 고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늘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온갖 상상을 한채 바라본다. 그런 그의 눈빛에 동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당연스레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의 눈빛에 쉽게 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저쪽 세상’에 전혀 공감도 가지 않고 계속 지켜보기도 싫었다. 대체 버니 먼로가 세상을 사는 이유는 저런 상상을 죽도록 하기 위해서란 말인가.
하지만 소설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전개로 이어나간 것은 작가의 타고난 능력이었다. 꽤 두꺼웠지만 이 책을 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작가의 필력으로 퇴폐적인 버니 먼로의 시선을 담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많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토끼’라는 뜻의 귀여운 의미를 가진 ’버니’ 먼로는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시선이 아빠의 시선과 엇갈렸다. 그래서 버니 먼로의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 했다. 귀여운 토끼만 보이던 표지를 다시 보니 변기 위에 토끼의 모습이 보인다. 표지는 음침했고 제목과 소제목은 버니 먼로의 비극적인 결말을 직시하고 있었다. 작가는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개방적인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뮤지션이였으며 연기자이기 하였고 직전에는 우화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 그의 그러한 개방적인 마인드에 따르는 도전정신은 부럽지만, 나는 그의 열린 사고에는 많이 뒤쳐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