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소설로 읽는 20세기 수학 이야기 에듀 픽션 시리즈 7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살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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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소설이었다. 아직 풀리지 않는, 앞으로 풀어야할, 수학 난제를 두고 어쩌면 가치관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학적 논의가 소설의 흐름을 이끌었다. 1900년의 늦은 여름, 파리 국제 학술대회에서 연사로 초빙된 힐베르트 교수는 23가지의 난제를 던지면서 치명적인 수의 세계도 많은 수학도들을 자극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주인공 미카엘 이게리노스와 수학 교사인 스테파노스 칸다르트지스는 만나 열띤 수학적 논의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비록 처음 만나 ’그리스인’이라는 동질감으로 우연히 뭉치게 되었지만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스테파노스의 죽음에 앞선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관계는 지독하다고 할만큼 ’수학’, 그 자체로 얽혀 있다. 그로부터 장편 소설 한 권에 이르는 그들의 수학적 논의를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수학’은 조금 어려웠을 뿐이지, 지루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문과를 거쳐 문과계열의 대학에 진학하게 된 나는 한참만에 만난 지독한 수학이 낯설기도 하고 반가운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이 책은 수학문제를 겨우내 풀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을 신속하게 전해주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굉장히 이질감이 들었다. 그래서 사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보란듯이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누는 주인공이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지루한 틈새를 금세 알아챘다는 듯이 ’미술’의 세계를 한 발자욱 뒤섞여 보여주고, 오랜 기간 함께 논의해왔던 친구 스테파노스의 죽음을 급작스럽게 드러냈다. 경관은 여러 정황을 미루어 단번에 그의 친구였던 주인공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나’의 시선으로 쓰여져왔기에 얼마나 ’나’가 독자인 내게 많은 것을 숨겨왔는지 궁금했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한 편지는 순식간에 모든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심지어, 수학 명제에 담긴 낯선 물음까지도. 


교과서에 담긴 확실한 공식을 두고 숫자만 이리저리 바꾸어 푸는 고등학교 수학과 수학 명제를 두고 그 사실을 밝혀내거나 사실의 존재여부를 아는 것을 거부하려는 그들의 논의는 결국 하나의 문제로 압축되었는데, 아무리 간단한 수학문제도 명쾌하게, 또 완전히 끝난 문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은 수학적 문제도 다시 세대를 거듭해 손에 땀을 쥔 수학자들의 논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수학은 점점 열리고도, 닫히고도 있었다. 책 뒷면에 소개 된 ’20세기 유럽을 사로잡은 지성인들과 예술인들이 총출동한 지성적인 스릴러’라는 말이 딱 맞게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은 엄청난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었지만 흠뻑 수학의 매력을 제대로 담은 재치있는 지성적인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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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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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 명이 다리 아래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 (29쪽)

사건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연히 그 사건을 보게 되었던 수사 주니퍼는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눈 앞에 펼친 이 기막힌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왜 이러한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나야 한단말인가, 라고 외치면서. 그리고 우연히 그 다리를 그 시간에 지났던 불운한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파헤친다. 어쩌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지, 정말 우연일까. 다섯 사람의 운명이 한 자리에서 마감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수사 주니퍼도 합류하기 시작한다. 


다섯 사람의 운명적 죽음을 두고 그 다리가 있던 마을 리마의 사람들은 묵념을 하기 시작한다. 안타깝다고도 하고 진실된 마음을 담아 묵념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관습처럼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란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화요일에 널 볼 수 있겠다. 다리만 안 무너지면’, ’내 사촌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옆에 살아.’ 따위이다. 다섯 사람의 삶이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처럼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도 슬프고 무시무시하게만 남는다. 마지막 자신의 고아원 아이를 그 다리에서 잃었던 수녀원장이 남긴 생각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심지어 지금도, 나를 빼고 나면 에스테반과 페피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카밀라 홀로 그녀의 피오 아저씨와 그녀의 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여인 홀로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러나 곧 우리는 죽게 될 것이고, 그 다섯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을 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있으며, 그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유일한 의미인 사랑!" (212쪽)  


소설에서 죽은 이들의 삶 하나하나를 볼 수 있기에 더욱 감명 깊다. 하나의 연작 소설처럼 에스테반 형제의 이야기와 후작 부인과 그녀를 돌보던 페피타의 삶과 여배우 카밀라와 그녀를 진정어리게 생각하던 피오 아저씨와 그녀의 아들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모두 그리 잘나지도 않고 특이하다면 특이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였다. 사연은 깊었고 그 사연이 속 시원하게 풀리기도 전에 어떤 징조도 없던 다리는 우르르 무너져 그들의 이야기를 앗아갔다. 저자가 담담한 말투로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오래도록 회자된 것처럼 내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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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지는 식사법 - 자연주의 식습관이 내 몸을 바꾼다
나카 미에 외 지음, 정유선 옮김, 이와사키 유카 감수 / 아이콘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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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뻐지는 식사법>을 읽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오랜만에 외식이었고, 가을하늘이 너무 맑아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 햇살이 은은하게 내리쬐었지만 그리 덥지도 않았으며 볕이 닿는 부분은 따뜻했다. 일석이조로 바람까지 산들산들 불었다. 높다란 하늘을 볼때면 늘 피로했던 눈도 미소를 되찾은채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사라진 것 같았던 봄과 가을이 다시 찾아왔다는 데에 그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맛난 음식에 배도 빵빵 하겠다 계산대로 향하던 차 계산대 옆에 놓인 무료 후식 자판기가 눈에 들어왔다.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판기 커피였다. 습관적으로 손을 내미려다가 그냥 음식점을 나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따끔한 충고를 들은 덕이었다. 


습관적으로 먹던 커피를 먹지 않고서야 내가 얼마나 심심풀이로 몸에 그리 좋지 않은 음식에 손을 대었는지 알게 되었다. 평소에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이거 하나만 하고 내밀었던 손은 모두 내 몸을 무겁게 만드는 식품들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요즘 그 맛을 알게된 커피, 커피우유 등 커피 관련 제품, 점심 무렵이면 거의 밥과 비슷한 양으로 택하는 빵제품(샌드위치, 햄버거, 빵 등등)은 모두 내 피부를 푸석하게 하고 얼굴에 여드름을 남겼으며 묵직하고 피곤한 몸을 만드는 주범이었다. 좋아하고 맛있는거만 먹고 몸을 소홀히 생각하고 관리했던 내게 자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도 모르는 마음속의 적신호가 <예뻐지는 식사법>을 집어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말그대로 ’마크로비오틱’ 식사법을 소개하면서 내가 예뻐질 수 있는 비법을 원리부터 요리법까지 담고 있었다. 눈이 작아보이는 이유는 무엇때문이며 커질 수 있는 비법은 어떤 음식을 추천하며 피부색, 입술 상태, 볼 상태, 눈의 모양새 등을 미루어 우리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 책은 혼자 사는 여성이나 자신이 식단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이 책에서 추천하는 현미나 기타 식단이 평소에 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재료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직은 가족끼리 밥을 먹으며 홀로 다이어트 식단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사들일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책에서 추천하는 마크로비오틱 식사법을 살짝 포기해야 했다. 대신 저자가 추천해준 간단한 몸의 원리와 팁들을 상기하며 되도록 내게 맞는 음식을 먹는 방향으로 이 책에서 남긴 배움새를 활용하기로 했다. 한 주 내내 일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못 하는 직장 여성들을 위해 주말을 이용해 몸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해준다. 몸도 건강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볍고 활기찬 몸의 균형을 맞춰주는 그녀의 팁을 솔깃하게 들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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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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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1970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온 몸을 불사지르며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했던 전태일의 삶이 100여년전, 미국에서 떠올랐다면 그들은 빵과 장미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는 용감하고 진실된 문구를 내세운채 한 곳에 모여 한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가장 여리고 정직한 시선을 가진 로사는 그러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내세웠던 행동을 모두 지켜보았다. 전태일이 하나둘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우리의 권리를, 한 명의 사람으로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던 것처럼, 미국의 노동자들도 입을 금세 맞추어 하나둘 뜻을 하나로 뭉쳐나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금세 광장에서 하나의 마음이 되어 모이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빵과 장미’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파업은 그들에겐 저 먼 이국의 땅에서 살고 있는 내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장면이었다. 노사분쟁이 심화된다는 말은 지금도 흔히 쓰이는 말이었고, 사회적 이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금보다 더 과거에는 빵과 장미 파업이 연상될 정도의 큼직한 노사분쟁이 무던히도 일어났다. 그러한 것이 우리 역사의 한 구석으로 자리잡은만큼 우리 소설에서도 노동분쟁의 장면이 많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소설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이 소설에서는 삼남매의 시선으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노동자 가족의 삶을 잘 다루고 있다. 방현석의 ’새벽출정’에서는 노동자들이 연대를 이루어 함께 싸우는 ’빵과 장미’와 흡사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파업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가난을 고민하는 장면이라든가, 그러한 가난때문에 빠져나가는 사람을 두고 배신자를 용서하지 못한다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새벽출정에서나 빵과 장미에서나 익숙한 모습이다. 비교적 빵과 장미의 모습이 좀 더 따뜻하게 그려진 듯도 했지만, 그건 그려진 것일뿐 그네들의 삶이 똑같이 처절했던 것은 사실이다. 처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의 삶이 적나라하게 연이어졌다. 다만, 착하디 착한 한 소녀의 시선이 ’빵과 장미’의 무서운 현실을 잠시 녹여주었을 뿐이다. 
 


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거둔다. 집이 없는 알 수 없는 소년을 위해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를 도와주고, 사람들이 다치고 급기야 죽기까지하는 파업 속에서 거기에 참여한 엄마와 언니 애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마음으로 거두고 진심으로 도와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소녀는 이렇게 파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옳은 것인지, 무조건 파업에는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고, 그에 따른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파업의 구석구석을 지켜볼때쯤 소녀는 안전한 곳인 버몬트로 잠시 보내진다. 그곳에서 자신을 잠시 맡아준 선량한 노부부 앞에서 소녀, 로사의 마음씨는 더욱 빛이 난다.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꼭 맞게 여린 소녀와 소년이 다친 마음을 치유해가기 시작하면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항상 돈을 벌어오면 빼앗은 채 술을 사먹고 자신을 때리기만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 제이크를 통해 더욱 잘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어 툭하면 돈과 물건을 훔친채 자신의 마음을 채우지 못하던 소년은 계속되는 소녀, 로사의 친절에 점차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멋모르는 소녀, 소년의 관계에서 버몬트에서는 가짜이지만 오빠, 동생 사이가 되어 서로를 돌보며 소녀는 제이크가 따뜻한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범행을 목격했음에도 인자한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용서해주고 길러준 노부부를 통해 드디어 제이크의 마음에 천사가 내려앉게 된다. 드디어 소년의 마음에도 장미 한 송이가 툭, 떨어졌다.
 



소년에게도 닿았던 진실된 소녀의 마음이 감정의 골이 깊어만 가는 노동자들과 지배단체에게도 전해졌으면 싶었다. 웅성이는 소리에 눈물짓는 소리가 파묻히는 파업 현장이 금세 일단락되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러한 훈훈한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다만, 세상이 그리 나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 소녀와 그를 배운 소년의 미소가 서로 전해지면서 노동자들의 그런 마음도 누군가 알아줄 것이라는 희망이 전해질 뿐이다. 내 마음에는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장미가 조심스레 놓였다. 금세 그 장미가 그들에게도 전해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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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엑스포메이션
하라 켄야.무사시노 미술대학 히라 켄야 세미나 지음, 김장용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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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사실 조금 당황했다. 이 책은 무사시노 미술대학 하라 켄야 세미나에서 ’알몸 엑스포메이션’을 주제로 한 연구 성과를 담은 책이었는데 그 내용이 ’알몸’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적나라하다는 생각에 선뜻 아무 곳에서나 책을 펴고 읽을 수 없었고, 괜히 옆에 앉은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여 혼자 뜨끔했다. 그러나 엑스포메이션이라는 단어를 만나면서 알몸은 색다른 개념으로 변신한다. 엑스포메이션(ex-information)은 늘, information으로만 접하던 세상 모든 정보에 대해 어떤 대상물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알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모르는지에 대한 것을 알게 하는"것에 대한 소통의 방법이다. 즉, 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그 근원으로 되돌아가 자신이 그 모든 것에 대해 사실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자각하는 행위를 주제로 다루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나 주름투성이의 아기는 흰 천에 감싸여 얼굴만 쏙 내민 모습이 아닌 알몸이 되어 다시 보여졌다. 꽃, 금박, 설탕, 콘크리트, 나무 등 다양한 모습으로 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아기의 알몸은 더없이 순박해보였다. 알몸을 벗고 다른 알몸을 입힘으로써 아기의 이미지는 굉장히 다양해진다. 투박해보이다가도 순해보이고 알몸으로 자신도 몰랐던 원초적 이미지를 하나하나 드러낸다. 다양하게 벗겨진 동시에 다른 무언가로 입혀진 아기의 모습을 직접 한 눈에 보면,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궁금해졌다. 원래 알몸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원초적 질문으로부터 작은 생각의 틀에서 한발자욱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들을 훌러덩 벗겨진 모습으로 한 데 보여준다. 얇은 동그라미의 고무줄이 되지 전에 평범한 고무호수와 같은 그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아이스크림 속에 숨겨진 가지를 잔뜩 펼친 나무 모양의 막대를 보면서 여저에 던져진 세미나생들의 궁금증과 함께 생각의 꼬리를 물 수 있다. 알몸 엑스포메이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제작 의도와 하라 켄야의 강평이 함께 소개되어 작품을 보고 마냥 당황할 일도 거의 없다. 독자가 조용히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와 동시에 그들이 함께 탐구하였던 본질적인 의미를 함께 소개해준다. 이는 생각의 전환이 가져온 색다른 작업이었고, 예술이 원초적 물음으로 다가가 놀랍도록 깊은 다양성을 밝힌 뜻깊은 작업이었다. 독자로서도 낯선 물음에 신비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즐거웠다. ’알몸’은 더 이상 벌거벗겨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매개체가 아닌 예술의 한 종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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