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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ㅣ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1970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온 몸을 불사지르며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했던 전태일의 삶이 100여년전, 미국에서 떠올랐다면 그들은 빵과 장미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는 용감하고 진실된 문구를 내세운채 한 곳에 모여 한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가장 여리고 정직한 시선을 가진 로사는 그러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내세웠던 행동을 모두 지켜보았다. 전태일이 하나둘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우리의 권리를, 한 명의 사람으로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던 것처럼, 미국의 노동자들도 입을 금세 맞추어 하나둘 뜻을 하나로 뭉쳐나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금세 광장에서 하나의 마음이 되어 모이기 시작했다. 이름하야 ’빵과 장미’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파업은 그들에겐 저 먼 이국의 땅에서 살고 있는 내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장면이었다. 노사분쟁이 심화된다는 말은 지금도 흔히 쓰이는 말이었고, 사회적 이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금보다 더 과거에는 빵과 장미 파업이 연상될 정도의 큼직한 노사분쟁이 무던히도 일어났다. 그러한 것이 우리 역사의 한 구석으로 자리잡은만큼 우리 소설에서도 노동분쟁의 장면이 많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소설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이 소설에서는 삼남매의 시선으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노동자 가족의 삶을 잘 다루고 있다. 방현석의 ’새벽출정’에서는 노동자들이 연대를 이루어 함께 싸우는 ’빵과 장미’와 흡사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파업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가난을 고민하는 장면이라든가, 그러한 가난때문에 빠져나가는 사람을 두고 배신자를 용서하지 못한다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새벽출정에서나 빵과 장미에서나 익숙한 모습이다. 비교적 빵과 장미의 모습이 좀 더 따뜻하게 그려진 듯도 했지만, 그건 그려진 것일뿐 그네들의 삶이 똑같이 처절했던 것은 사실이다. 처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의 삶이 적나라하게 연이어졌다. 다만, 착하디 착한 한 소녀의 시선이 ’빵과 장미’의 무서운 현실을 잠시 녹여주었을 뿐이다.
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거둔다. 집이 없는 알 수 없는 소년을 위해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를 도와주고, 사람들이 다치고 급기야 죽기까지하는 파업 속에서 거기에 참여한 엄마와 언니 애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마음으로 거두고 진심으로 도와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소녀는 이렇게 파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옳은 것인지, 무조건 파업에는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고, 그에 따른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파업의 구석구석을 지켜볼때쯤 소녀는 안전한 곳인 버몬트로 잠시 보내진다. 그곳에서 자신을 잠시 맡아준 선량한 노부부 앞에서 소녀, 로사의 마음씨는 더욱 빛이 난다.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꼭 맞게 여린 소녀와 소년이 다친 마음을 치유해가기 시작하면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이는 항상 돈을 벌어오면 빼앗은 채 술을 사먹고 자신을 때리기만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 제이크를 통해 더욱 잘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어 툭하면 돈과 물건을 훔친채 자신의 마음을 채우지 못하던 소년은 계속되는 소녀, 로사의 친절에 점차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멋모르는 소녀, 소년의 관계에서 버몬트에서는 가짜이지만 오빠, 동생 사이가 되어 서로를 돌보며 소녀는 제이크가 따뜻한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범행을 목격했음에도 인자한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용서해주고 길러준 노부부를 통해 드디어 제이크의 마음에 천사가 내려앉게 된다. 드디어 소년의 마음에도 장미 한 송이가 툭, 떨어졌다.
소년에게도 닿았던 진실된 소녀의 마음이 감정의 골이 깊어만 가는 노동자들과 지배단체에게도 전해졌으면 싶었다. 웅성이는 소리에 눈물짓는 소리가 파묻히는 파업 현장이 금세 일단락되고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러한 훈훈한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다만, 세상이 그리 나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 소녀와 그를 배운 소년의 미소가 서로 전해지면서 노동자들의 그런 마음도 누군가 알아줄 것이라는 희망이 전해질 뿐이다. 내 마음에는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장미가 조심스레 놓였다. 금세 그 장미가 그들에게도 전해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