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우울 - 김영찬 비평집
김영찬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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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나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바다를 짚고 일어나 육지가 아니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 사이로 나만의 생각을 갖는 사람이. 그러다 보면 이리저리 어지럽혀 있던 퍼즐같던 이야기가 문득 해답을 찾아 환한 봄 햇살을 받을 때도 있었다. 내가 투자한 생각 한 줌이 1등으로 당첨되었습니다. 내용만 쫓기 바쁘다가 그 글을 쓴 저자를 보게 되고 ’작가의 말’을 유심히 읽게 되고 뒤이어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었을 때, 소설은 그 내용만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제야 그 소설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2년 전에서야 배운 큰 깨우침이었다. 


우연히 현대 소설을 중심으로 갖은 토론을 하는 동아리에 들게 되었고, 나는 막연히 좇고 있던 소설에 대한 선망을 조금 구체적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동아리의 수업 방식에 따라 꾸준히 여럿 소설을 읽게 되었고 말할 거리를 쟁여놓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곤 했다. 그러다가 식상하지만 전형적인 생각을 나도 떠올리게 되고 넘어서 좀 더 논리적으로 생각을 풀어내다가 멀리 섬처럼 놓여있던 의문을 하나로 연결지을 때도 있었다. 소설은 생각이 모일수록 원숙한 세상이 되었다. 매번 사람들의 생각을 한마디씩 얹은 소설이 더 재밌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한두마디의 비평은 항상 소설의 길잡이가 되었다. 


소설의 자투리처럼 놓인 ’해설’이 아닌 비평만으로 이뤄진 비평집을 처음 보게 되었다. 부지런하지 못한 탓에 비평집에서 소개한 소설을 읽지 못하고 비평을 읽었다. 분명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소설만 읽다가 읽는 비평은 ’생각의 방법’을 쉽게 소개해주었다. 저자의 비평은 따라가기 쉬웠으며 내 생각을 갖기보다 저자의 생각을 배우는 식으로 비평을 읽어보았다. 아직 저자의 비평을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런 저런 말을 얹을 수 없지만 전문 비평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많은 배움이 있었던 것 같다. 능숙한 비평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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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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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 때도, 우울할 때도, 즐거울 때도, 여유를 만끽하고 싶을 때도 ’7년의 밤’을 건네고 싶다. 하나의 사건을 바탕으로 그려진 7년간의 침묵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역동적이면서도 소설 특유의 문학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7년의 밤을 풀어내는 구성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올가미가 되어 흥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멋진 소설이었다. 


서평을 쓰면서 이렇게 찬사를 담아내고 싶은 적은 처음이다. 그만큼 소설이 전해준 문학적 감동이 온 몸에 고스란히 남았으며, 처음 접하게 된 저자의 소설이 큼직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정유정, 그녀를 왜 몰랐을까. 그녀의 소설에는 세상에는 있지 않지만 더 진짜같은 공간이 존재했고, 그 곳에 그녀가 만들어낸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을 법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진실이고, 허구였다. 그 거대한 놀라움이 순식간에 덮쳐왔다.


소설의 구성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중심이 되는 사건을 적나라하게 소개해주다가도 이따금 나의 머리를 툭툭 쳤다. 뒷통수를 몇 번이나 맞았는지. 아, 그 말이었어. 그 이야기였어. 난잡하게 흩어져 있던 조각이 저 홀로 제자리를 찾고는 뒤따라오는 손에게 나 좀 봐라는 식이었다. 소설이 ’진실’을 들고 나를 재촉했다. 그 끝에는 조악한 사람의 본성과 세상의 이면에서야 볼 수 있는 진실이 놓여 있었다. 소설은 ’다른 시선’을 제공해줌으로써 매력적인 결말을 맺었다. 


한 쪽 시선에서는 조악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 다른 시선에서는 사랑을 마음 속 깊이 지닐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고 소설에서는 그 시선들이 자꾸 넘나들었다. 그래서 자꾸 궁금했다. 진실은 얼마나 더 풍부할 수 있는 것이며, 또 순식간에 거짓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우리가 세상의 악당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악당이 악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교차될 수 있는지 ’7년의 밤’은 섬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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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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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이 훌쩍 날아갔다. 1회초, 1회말, 2회초 그리고 9회말을 넘어 선 연장전까지. 누군가 그 공을 잡아채 경기가 끝날 염려도 없이 연이은 포물선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었다. 관중들의 환호는 계속해서 열띠었고 주인공을 비롯한 원년 서울대 야구부의 얼굴에는 적지 않은 나이까지 꿈을 지켜온 주장 태성의 열정에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조금은 긴 홈-런! 


박수가 절로 나오는 서울대 야구부의 감동이야기 전에는 더 많은 추억과 많은 이들의 인생이 얽혀 있었다. 1회부터 무려 9회까지 이어지는 야구의 흐름이 한 사람의 삶에 버무려지면서. 소설은 흔히 말하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서로 데굴데굴 굴러갔는데, 나는 작가가 일부러 짠 듯한 그 정직한 흐름을 자연스레 따라 이야기를 하나둘 짚어 나가고 있었다. 마치 부러 끔뻑 속고 싶다는 듯이.


이재익의 소설은 이처럼 짐작이 가면서도 일부러 속고 싶은 매력이 있었다. 소설의 리얼리티가 뛰어났기에 소설에 빠져들기 쉬웠고 그 흐름만 잘 따르면 보장된 재미가 아낌없이 뒤따랐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역시 지웅의 시선을 따라 작가의 흔적을 엿보게 되면서 금세 그쪽 세상에 빠져들었다. 간간히 지웅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지 독자를 이끌어주었고 그 때문에 소설을 읽다가 길을 잃어 헤멜 필요가 없었다. 한마디로 쉽고 재미났다. 진작에 기대하게 했던 감동 결말은 알고도 속게되는 멋진 골인 지점이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야구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는 열광할 수 없는 그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이 멋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잘 모르는 야구가 우연히 눈에 닿으면 보게 되고, 야구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하는 친구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이재익의 야구 소설이 궁금했고, 읽고 나서는 큼직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만족감을 성큼 느낄 수 있었다.  낯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매력으로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은 ’이재익의 소설’이라는 만족감으로 다가왔다. <카피오페아 공주>, <압구정 아이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작가 이재익의 색깔이 점차 갖추어 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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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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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좋다. 홀로 버스를 기다릴 때도 비가 내리는 날엔 우산 위로 얼룩지는 빗방울의 모양이 다채로워 시간이 훌쩍 뛰는 것 같다. 펄쩍 펄쩍 톡톡 으스러지는 빗방울이 물체에 닿는 소리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 나는 자연이 시끄러운 그 고요함이 좋다. 테마소설집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에는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여류작가들이 ’비’를 소재로 쓴 단편을 소중하게 모아놓았다. 톡톡톡톡톡톡톡. 일곱 번의 독특한 비가 연이어 내린 것 같다. 소설을 읽을 동안 내내 일곱 빛깔의 비가 내렸다. 


작가의 ’비’가 개성을 담고 오면 빗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빗소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 꾸물꾸물 피어올랐다. 나의 빗소리는. 


내가 보았던 비는 모두 붉은 빛깔과 함께였다. 붉은 들꽃 사이로 물방울이 담겨, 붉지 않아도 붉게 보이는 작은 물방울이 내 걸음을 이끌었다. 어둑어둑하면서도 붉게 빛나는 하늘이 아름다울 때 역시 눈가에 이따금 빗방울이 쳐들어와도 나는 한참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보았던 세상을 의심해야할 정도로 붉어진 세상은, 세상에 잠들어있던 빨간 물감을 찾아내어 스스로가 물통이 된 듯 물방울을 휘저으며 하나씩 붓을 데고 있었다. 물론 색을 지니지 않았던 물이 빨간 빛에 닿음으로서 점점 탁해져 갔는데, 그 빗물을 받은 세상이 탁해져 가는 것은 빗방울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빗방울은 그렇게 점점 붉어져 갔다. 누군가의 색색의 우산 위에도 떨어지고, 초록빛으로 가득 찬 풀숲 한 가운데에서도 떨어졌다. 심지어는 안경과 눈 사이에도 툭, 하고 차디찬 제 존재를 알리곤 했다. 마치 눈물이 되어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는 듯이.

혹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저만의 세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멍하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비는 고요한 소리와 함께 그에게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 정도의 소리는 빗물에 반사되어 다시 돌아왔다. 마치 물방울에 닿는 무언가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겠다는 듯이, 소리는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소리도 함께 빨려 들어갔다. 지금은 자연이 조금 시끄러울 때였다.


또 다른 빗소리를 적어보아도. 


하나밖에 없는 버스정류장, 그곳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침묵의 장소였다. 대개 가만히 서서 눈앞에 놓인 바다를 응시한다던가, 의자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흥얼흥얼 자신만의 노래를 듣곤 했다. 그러다 간혹 비가 올 때면, 투명한 위쪽 지붕을 올려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정류장에 놓인 작은 쉼터는 윗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 그래서 비가 올 때면 항상, 세상의 비가 가장 먼저 그곳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물이 차오르다 쓸려 나가면 그곳은, 이를테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심장과도 같았다. 비가 올 때만 끊임없이 뛰는 심장이었다. 첨벙 첨벙, 심장은 낯선 소리를 내며 자그마한 아이도 조용히 매료시키곤 했다. 그 곳은 침묵의 장소였다. 


내 빗소리는 침묵으로 끝을 맺었다. 여덟가지 빛깔로 내리는 비.

이 책의 연장선상으로 ’눈’을 주제로 하는 테마소설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형형색색의 눈을 보기만 하더라도, 나아가 혹여 나만의 눈을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을 것 같다. 

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또 좋아하는 작가의 글일 실렸기에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는 한눈에 바라는 테마집이었고,
그 중에서도 마음에 꼭 와닿았던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장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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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딸 루이즈
쥐스틴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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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책 속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놓여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다만, 예상을 빗나갔던 것은 내가 생각했던 꼬꼬마 딸 루이즈가 아닌 성인의 입장이 되어가는 딸 루이즈와 암으로 죽기 직전인 엄마의 이야기라는 것. 딸 루이즈가 또 하나의 생명을 품게 되었을 때, 그녀의 엄마는 병마에 맞서 생명을 점점 잃어가게 되었다. 더 이상 엄마에게 예전에 지니고 있었던 활력을 볼 수 없었고 곧이어 그녀는 딸 루이즈와 친구와 다름없이 생활하던 그 삶, 그 정겨운 삶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순식간에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담백하고 정곡을 찌르는 저자의 말투에 뚝, 눈물이 떨어질 뻔 했다. 그녀의 글에서 엄마와 딸 사이에 있을 법한 시간의 흐름이 눈에 읽혔다.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학창시절,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회생활에 적응해내가는 지금. 순간순간의 나와 엄마와의 관계가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달랐고, 엄마도 달랐다. 마주치는 눈이 달랐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사랑이 달랐다. 엄마와 나의 눈은 시간이 흐르면서 훨씬 더 깊고 복잡해졌다. 엄마와 나의 다크서클이 서로가 주었을 검은 상처를 숨긴 그 흔적이 되었다.


정말 나쁜 것이 아니라, 딸로서의 죄책감이 낳은 외마디 ’나쁜 딸 루이즈’는 내 가슴을 쓸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나는 루이즈의 입장까지는 되어보지 못했지만 엄마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기만하는 나를 보면서 공감할 것들이 자꾸만 더해갔다. 그러다가 소설은 내 이야기가 된 것 같고. 루이즈가 자신을 나쁜 딸이라고 자책하며 엄마의 이야기를 마구마구 쏟아내는 것처럼, 나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의 나쁜 딸 이야기를 고스란히 모울 수 있었다. 한두 장의 편지로는 모자랄 법한. 눈물 함박울 엮음. 


미안해요. 사랑해요. 루이즈가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후 마음을 담담히 삭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나쁜 딸이라고 생각했던 루이즈에게서 ’나’를 발견했을 때, 그래서 이 책이 세상의 모든 딸과 어머니를 위한 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제야, 그제야. 지금의 나와 엄마에게 끼워맞춰야 할 퍼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언젠가가 아닌 지금 당장 내뱉어야할 진심을 전하는 한 마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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