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 완전한 휴식 속으로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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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친구(바위)랑 요시고 사진전에 다녀왔다. 다음날이 도서 검토서 마감이었고, 물리적으로만 보면 겨우 70% 남짓 끝낸 상태였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야 나머지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고 우겨본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한 10분쯤 늦을 것 같아서 연락을 남겼더니 그럼 그김에 가보고 싶던 카페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서 만나서 한참 얘기도 하고(어쩌다보니 대부분 검토서 얘기랑 YA 문학 이야기였음) 이번에 출간된 바위의 따끈따끈한 번역작도 선물 받았다.


한두 시간쯤 지나서 요시고 사진전에 가서 즐겁게 전시도 구경하고 아무 말로 감상도 떠든 다음 장소를 이동해서 맛있는 피자도 먹고 맥주도 마셨다(우리는 만나면 웬만하면 맥주를 꼭 마신다). 앞으로는 맥주 메이트에 이어서 한 달에 한 번쯤은 함께 전시를 보는 전시 메이트가 되기로 협정(?)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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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수다를 한창 떨고 재미있게 놀다 저녁쯤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니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검토서 마감이 샐쭉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같으면 밖에 나와 있으면서도 마감 생각에 마음 한켠이 불안해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을 텐데(그래서 사실 애초에 마감이 잡혀 있으면 외출을 거의 못한다), 이날만은 어쩐지 별 생각없이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어쩐지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관해 함께 이야기한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이동 중에 바위의 집에서 연락이 한 번 왔기에 마침 제가 느낀 묘한 기분에 관해서 바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나도 이날 외출하러 나서며 엄마한테 들은 "(그렇게 나가 놀면) 일은 언제해?"하는 물음에, "갔다와서 하지~~"하고 답했던 일화를 전했었다. 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 산다면, 왠지 뭔가 열심히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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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돌고 있던 시점에 《풍덩!》의 저자가 올린 트윗을 읽고 갑자기 홀린듯이(?) 이 책을 세 권 주문했다. 한 권은 내 거. 나머지 두 권은, 가위와 바위의 몫으로.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난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던 몇 달간 내내,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결과를 낼 것인가에 관해서는 열심히 고민했지만, 제대로 쉬는 일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애나 아카나 프로젝트가 끝난 지는 이제 꽤 몇 달이 흘렀지만 뒤늦게라도 성황리(?)에 끝난 가위바위보 프로젝트에 청량한 휴식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저자를 몇 년 전 여름, 《혼자 있기 좋은 방》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던 우지현 작가의 이미지는, 화가가 어떻게 이렇게 글까지 잘 쓰지?" 정도였다(지금은 이를 논리적인 인과 관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딱히 행사에 참여한다든지, 어느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든지 하는 일을 거의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는데, 북토크에 당첨되어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뭐라도 한 마디 전하고 싶어서 염소 소리로 용기내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원고를 구성할 때 그림을 먼저 고르고 글을 썼는지, 글 내용을 먼저 정하고 그림을 골랐는지, 뭐 그런 걸 물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책에 저자 사인을 받았을 텐데, 하는 은은한 아쉬움이 새삼 남는다.


전작에 비하면 《풍덩!》은 글 분량이 조금 더 간소하고 여백이 많다. 하지만 짤막짤막한 원고 내용에 쓰나마나하게 뻔한 장식형 문장은 전혀 없다. 대신 이 한 권에는 글과 여백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 있다(작품 속에 또 다른 그림 작품이 들어 있는 구성이니 일종의 액자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여백에는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휴식을 찰랑이듯 듬뿍 담았다. 너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칠 요소들이 많아서(나도 몇 번이나 그럴 뻔하다가 돌아가 다시금 속도를 늦춰가며 읽었다). 이 책을 펼쳐드는 독자들 모두 모쪼록 이 달콤하고도 청량한 휴식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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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책은 물과 그림, 수영을 소재 삼아, 휴식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따금 '수영'에 관해 생각할 때면, 언젠가 초경을 하기 전이자 아직 운동화 끈을 리본 모양으로 맬 줄 몰라 혼란스럽던 4학년 여름방학 때 딱 한 달쯤 수영을 배운 흐릿한 기억과,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미묘한 문제--어느 부위를 얼만큼 제모하고, 대체 어떤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해야 하는가, 피카소의 그림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감상해도 괜찮은가 등등을 고민하느라 잠시 딴길로 새기도 했지만, 대체로 읽는 내내 기분 좋은 휴식과 피서가 되어 주었다.


휴식의 해답은 '현재'에 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현재에 두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직 오늘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즐기는 것이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오롯이 쉴 수 없다.

언제나 휴식은 현재 시제에서만 가능하다.

―《완전한 휴식 속으로, 풍덩!》 p. 66


그렇게 책장을 덮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내 곁에는 '휴식'이 있었다. 요시고 사진전을 보고, 맛있는 피자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바위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일만 보쯤 걸었던 어느 날처럼. 자연히 내 곁에는 '현재'도 있었고, 또, 무엇보다 찰나의 '여름'이 있었다. 늘 빠르게 흘러가버리기만을 바랐던 이 계절과 처음으로 마주보며, 그 속에 오롯이 담겨 충만한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이따금 뒷목으로 오소소 소름이 돋기도 하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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