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건축기행 - 유토피아를 디자인하다 My Little Library 7
강영환 지음 / 한길사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거기에 왕이나 대사제의 영웅적 서사나 권위 따위는 없다.

많은 사람의 희생이나 고통을 강요해 만든 것도 아니다.

아마도 민초들이 지극한 정성과 염원을 담아 목탁처럼 정을 두드려 새겼을 것이다.

그 부처는 새긴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남산골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우리 모두의 구원자로서 한없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것은 지난 천여 년의 세월을 이기며 종교와 예술, 건축적 수준을 초월하는 위로와 평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걸작임에 분명하다.

47p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지극히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나와 비슷한 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구의 침략이 만든 우월주의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저자는 인도부터 시작해 스리랑카,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네팔 지역 등 일반적인 건축구조, 역사의 주제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곳들을 찾아 여행하며 그 감상을 말한다. 건축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일 때도 있고 주변 자연 풍경에 대한 감탄일 때도 있다. 한국 건축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틈틈이 언급하며 오랜 시간 건축의 세계에서 일해온 저자의 연륜을 발휘한다.




불치사원 앞의 도시는 너무나 이국적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호텔과 상업건물들이 그대로보존되어 상업지로서 활기를 지속하고 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제 나라의 건축양식보다 식민시대의 건축들이 더 잘 보존되어 있다니 당혹스러운 일이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광화문을 헐 때는 한 마디도 못하다가,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릴 때는 적극 반대하며 보존의 당위성을 부르짖지 않았던가.

동남아시아의 식민주의 건축들이 대부분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99p



유럽건축과 대조되게 대부분 외부공간과의 관계에서 탁월성을 가진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인도의 기차부터 안나푸르나까지 동남아시아, 인도양 지역을 누비며 그는 곳곳을 관찰한다. 앙코르와트 일출일몰, 돌을 깎아만든 부조, 라오스의 느긋함 등 처음 도착했을 때 받앗던 불쾌감부터 예상을 깨고 나온 광경에 대한 감탄에 대한 솔직한 기록들이다. 도시이름이 당연히 모두 생소한 외국어라서 재밌기도 했는데 또 이상하게 한 나라의 지역들의 이름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주는 건축물을 보는 재미도 있다. 사람은 참 대단해.




아유타야의 폐허 위에서 도시의 흥망을 생각한다.

짓는 것도 역사고, 허무는 것도 역사다.

지을 때 지을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허물 때도 허물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유타야에서 타이인들은 부처와 함께 사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간에서 미얀마인들이 꾸었던 꿈과 다를 바가 있을까.

그것을 파괴한 것은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배타와 증오를 무기로 한 인간의 탐욕일 뿐이다.

218p



캄보디아의 경우 옛 건축물 복원에 가장 먼저 나선 곳이 식민지배했던 프랑스라는 역설이 씁쓸함을 안긴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움을 느꼈던 듯 싶다. 밀림의 근압으로 파괴된 타 프롬 사원 유적의 모습이 슬프고 미얀마군의 침공으로 파괴왼 왓 마하탓 사원의 경우 파괴된 불전 뿐만 아니라 불상의 목을 자르고 불을 지른 흔적을 그대로 보존된 모습은 충격적이다. 건축물은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는 존재라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카트만두도 '기형적인 근대도시'로 표현되는데 자본주의로 망가지는 경관의 파괴성을 알지만 공적 시스템으로는 다 막을 수 없다. 그 중요성에 대해 우리가 먼저 인식해야 가능한 일들이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은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을 꿈꾸곤 했다.

그러나 그 집은 저 푸른 초원 위에 있거나 그림 같은 집이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바로 '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좋은 집이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를 궁구하기에 앞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할 때 유토피아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252p




루앙프라방 허름한 트로피칼 카페에서 저자는 유토피아를 생각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은 '공간'에서 존재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부탄의 왕추크는 유토피아의 대안을 어느정도 제시한다. 궁벽한 산골의 왕이 국민의 행복을 생각한 지점이 인상깊다. 이 작은 나라의 소중한 역사를 그동안 얼마나 몰랐던가. 물론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서도 아주 작은 비중으로 등장해 스쳐지나갔음이 너무나 아쉽다. 저자는 부탄의 모습들과 자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 건축물들을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지음으로써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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