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이야기 - The Story of Modern & Contemporary Art
신일용 지음 / 밥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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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이들에게 현대미술은 불편하다. 신일용은 이 불편함을 덜어주려고 이 만화책을 만들었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인상파 그림이라고 하며,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린 사실화보다는 약간 변형한 인상파 그림에 재미와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극도로 신경질적인 뭉크 그림이나, 소변기를 가져다 놓고 미술이라고 한다든지, 포르말린 어항에 상어를 넣은 것 등을 보면 당황하고, 본심과 다른 얘기를 해야하는 것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신일용은 이러한 불편함을 이해한다. 그도 우리와 같이 그러한 불편함을 가지고 출발하였던 것 같다.

미술에 관한 만화책이지만, 베토벤이 어느 악보에 써놓았다는 ‘Mus es sein?’(꼭 그래야 하나?)로 시작해서, ‘Mus es sein?’으로 끝난다. 그러고 보면, 신일용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mus es sein인 것 같다. 이 책은 선형적으로 가지 않고 소용돌이형으로 상승하며 범위를 넓혀간다. 역사적인 순서보다는 논리적인 흐름과 인과관계가 중요하다. 미래의 일이 복선으로 깔리기도 한다. 전작인 ‘동남아 이야기’에서처럼 이번에도 겉모습보다는 그 아래에서 흐르는 시대 정신 또는 역사적 배경을 캐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노는 거 같지만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방법인 거 같다. 흥분하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겉모습에 속지 않으면서, 종합적으로 맥락을 잘 잡아서 한 가닥만 당기면 나머지 것들이 저절로 생각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여러분들도 신일용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기 바란다. 더 이상 현대 미술에 불편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의 원칙 1은 쉽게 하자, 원칙 2는 군더더기가 없게 하자라고 한다. 그렇게 했다.

미술의 3번의 혁명을 거쳤다고 한다. 1차 혁명은 5백여년전 르네상스와 같이 시작되었다. 신에게서 해방되어 종교적이지 않은 대상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2차 혁명은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이다. 사실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미메시스(mimesis)에서 해방되었다. 3차 혁명은 아름다움에서 해방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대략 1960년 이후로 본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경제 또는 사회적인 변화와도 때를 같이 한다. 1차 혁명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와 같이 시작되었다. 2차혁명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19세기 말 이후 소득이 급속도로 상승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모든 나라의 소득수준은 19세기까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을 하키 스틱 그래프라고 한다. 골프채 곡선이라고 해도 되는데, 헤드부분에서 갑자기 꺽이는 선이다. 대량생산이 시작되고,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정착되다가 전체주의가 발생하는 시점이다. 이때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 또한, 3차혁명인 포스트모던시대가 시작되는 1960년대는 2차대전후 베이비 붐이 끝나는 시기이며,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시작되고 공동체 의식이 축소되던 시기이다. 이 책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커머셜리즘으로 나뉜다.

1. 모더니즘(20C 초반)

귀족 중심에서 민중 중심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사진술의 발달로 사실화가 설 땅이 좁아지고, 그림의 대상에 서민의 삶이 포함되었고, 주석 튜브가 발명되어 야외에서 유화를 그릴 수 있게 된 환경에서 인상파가 등장했다. 인상파는 향후 여러 갈래로 영향을 끼친다. 면의 형체를 중시하는 폴 세잔의 그림은 피카소의 큐비즘을, 원시의 색채를 사랑한 폴 고갱의 그림은 색채 혁명아 마티스의 야수파에 영향을 미쳤다. 그 변화의 순간순간에 우리가 자주 보아오던 그림들이 등장한다. 신일용 책이 주는 재미중에 하나는 그 그림들에 들어간 능청스러운 신일용의 위트를 즐기는 것이다.

모더니즘에서는 ego의 등장이 중요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그런데, 각각의 생각은 다르고, 자기 생각을 크게 외치는 메니페스토의 시대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세계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할 때, 미술도 그랬다. ‘아름다운 시대, 라벨르 에포끄’의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무도한 나치에게 밀려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구겐하임이 미술 수집의 중심이 되고, 그린버그가 미술 비평의 거두가 되었다. 그의 판단으로 아방가르드(전위부대, 고급 문화)와 키치(저급 문화, 이발소 그림)가 구분되었다.

이 책에서는 미국이 유럽에 가진 열등감, 미술계가 음악계에 가지던 열등감에 미술의 역사가 영향을 받는 것을 잘 표현하였다. 미술계의 알 카포네라고 할 수 있는 그린버스에게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것은 잭슨 플록이며, Jack the Dripper(뿌리는 잭)으로 불리웠는데 이는 Jack the ripper(미국 서부시절 총잡이 ‘목 따는 잭’)의 패러디이다. 그린버그는 formalism을 주장했는데 이는 자연이나 음악과 무관하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형체를 말한다. 추상이든, 구상이든 칸트가 말하는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으면 미술이다. 이 책에서 용어의 오역으로 아시아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을 지적한다. 앞서 큐비즘은 입체파의 ‘입체’와 관련이 없고, formalism은 형식주의라고 번역되었지만 형체주의라고 하는게 더 좋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2. 포스트모더니즘(1960~)

언어와 로고스간 위계질서의 파괴, 거대 담론의 파괴 등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을 설명하는데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현대 철학이 동원된다. 신화백은 어려운 철학을 차용한 어려운 미술 이야기를 그림으로 재미있게 풀어간다. 역시 그림은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은 거 같다. 남녀의 위계질서를 포커 카드에서 King과 Queen의 한끗 차이 순서로 풀어내는 것을 보고는 무릎을 치게 된다.

수많은 책에서 가장 액기스가 되는 명언들을 뽑아내어 일타강사처럼 설명한다. What you see is what you see, from purity to plurality, 작가주의 없는 minimalism, 모더니즘의 표현주의에서 포스트모던의 개념주의(conceptualism)의 차이 등등. 그런데, 개념미술은 뒷배경을 알아야, 이해가 된다고 하니 이렇게 만화책으로 이야기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백남준과 같이 플럭서스 운동을 한 것으로 유명한 요셉 보이스의 한 그림은 3페이지를 할애해서 배경을 설명한다. 2차대전때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오지에서 추락했는데, 유목민들이 살려내었다. 이것을 말로 하면 매우 지루했었을 것이다.

3. 커머셜리즘

여기서는 ‘브랜드’가 큰 글자로 다가온다. 장 보들리야드가 폼재며 설명한 ‘기호적 가치’가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같은 카르텔에 걸려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하는 가격으로 그림들이 팔리는 생태계를 조롱한다. 그 카르텔에는 갤러리, Saatchi(사치!)로 대표되는 콜렉터, 딜러, 경매, 아트 페어, 비엔날레, 도큐멘타, 뮤지엄 등이 포함되는데 이는 만화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수사관들이 칠판에 수없이 붙인 포스트잇과 연결된 선과 선으로 사건 개요를 파악하듯이... ‘좋은 미술이 비싼 게 아니라, 비싼 미술이 좋은 것이다’로 요약된다. 루브르나 구겐하임같은 뮤지엄도 유목민의 나라에 프랜차이즈로 생겨난단다. 맥도날드가 각 도시에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그야말로 ‘별 짓’을 다하는 재미있는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벽에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여놓은 작품이 어떻게 1억5천만원에 팔릴 수 있었을까? 그것을 낼름 집어먹은 이는 누구이며,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거대한 생태계를 신화백은 ‘거대한 주가 세력’이라고 일갈한다. 이른바 작전세력이 있고, 작전들이 재미있게 그려진다. 미술계뿐만 아니라, 돈과 인기는 있지만 고상함이 필요한 셀럽들도 가담하고, 갖가지 노이즈 마케팅도 등장한다. 마네는 앞치마에 물감자국이 가득했지만, 현대의 미술가는 말끔하게 차린 세일즈 맨 또는 그림 생산을 지휘하는 공장장으로 그려진다. 조영남의 화투 그림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해서 여러 번 등장한다. (허울좋은?) 개념이 중요한 시대이므로 대신 그리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 한다. 앞으로 chatGPT로 그린 그림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벌써 어느 미술전에서는 AI가 그린 그림이 상을 탔다고 하지 않는가?

언젠가 읽은 책 ‘혁명을 팝니다.’가 생각난다. 체 게바라의 파란만장한 스토리의 힘을 스타벅스 홍보에 사용하였다. 미술계에서 뿐만아니라 이제 모든 그럴듯한 스토리(텍스트)는 상품화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화백이 소개한 일화 중에 얼굴없는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 얘기가 재미있다. 뱅크시가 그린 종이 그림이 경매에 붙여진 적이 있단다. 경매 낙찰 후 분쇄기 동작하도록 해놓았다. 그런데, 그 분쇄기가 중간에서 멈추어 일부만 분쇄가 되었다. 몇 년 후 그 그림의 가격은 18배로 뛴다. 어디까지가 작전이었을까?

책을 덮고 신화백이 얘기해준 미술의 커머셜리즘이 우리에게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Mus es sein? 내가 읽은 ‘모든 것이 가상이다’ ‘한계비용제로시대’에서는 디지털 시대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한다. 고흐의 해바라기의 진품은 수백억원에 팔리지만, 복제품은 거의 무료로 구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이다. 즉, 음악은 연주되고 사라지므로 소유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미술의 ‘진품 아우라’도 사라진다. ‘디지털 아우라’의 시대에는 소유(to-have)의 의미가 사라지고, 존재(to-be)가 중요해진다는 낙관론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나아가, 게임을 즐기는 MZ들은 감성(to-feel)과 경험(to-experience)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누구나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기술이 급하게 바뀌고 있다. 메타버스는 이를 도울 것이다. NFT(Non-Fungible Token)는 이를 방해하는 도구일 수도 있고, 이를 도우는 도구가 될 수 도 있다. 미술가들은 시대를 앞서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ego를 감상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 보통 사람들의 ego 하나하나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베토벤이 그랬고, 신화백이 이 책을 쓰면서 그랬듯, 우리도 항상 이 말을 기억하며 힙하게 살아보자. Mus es 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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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아일랜드 시인동네 시인선 210
강성철 지음 / 시인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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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우리에게서 무엇이 빠져나간단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란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다가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단다. 근육세포가 1년이면 10%가 빠져나가면서 팔과 가슴에 뼈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근육이 빠지면, 관절에 무리가 가서 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무릅이 아프다. 뇌세포도 점점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흔히 알고 있던 연예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아주 친숙한 영어 단어의 스펠링이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심지어는 평생 같이 살아온 마누라의 존함까지도 언뜻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이것은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행이 긴장과 자극을 주면 늦춰진다. 70대, 80대인데도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울퉁불퉁한 근육위에 올려져 있는 쭈글텅 얼굴이 기괴하기도 하지만, 그 미소는 부럽다. 70대의 패션모델은 백발과 주름과 균형잡힌 몸매가 젊은 패션모델이 주지 못하는 원숙미를 풍기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적절한 긴장과 자극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가는 자신의 선택이 되었다. 그 선택은 노욕이라고 하는 대책없는 욕망의 결과일 수도 있고, 품위있게 익어가고 싶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66세의 강성철 시인이 ‘슬픈 아일랜드’라는 시집을 내었다. 그런데, 그 시집은 슬프지 않다. 그리고, 아일랜드처럼 외롭게 떠 있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간, 자식과 부모 모두가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린다. 이것은 같은 나이의 우리들에게 긴장을 요구하며, 크나큰 자극이 된다. 원숙하게 늙자고 한다. 나에게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허용하지 말자고 한다.

그림으로 비교하면, 그래피티에 비교하고 싶다. 경찰이 오는지 망을 보아가며, 급하게 그리는 그래피티. 도시의 음침한 골목의 벽을, 흉물스럽게 서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현란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거리의 그림. 고상한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사용하여 그린 그 그림들. 이 시들은 또한 소변기를 걸어놓고 예술이라고 했던 뒤샹의 ‘샘’을 생각나게 한다. 이것도 시인가? 시에 이런 단어가 들어가도 되는가? 시인이 국문학과를 나오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도, 강 시인은 우리나라 시단에서 방귀깨나 뀌는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단다. 피카소의 그림이 초등학생 그림보다 무엇이 나은지 모르는 나야 받아들일 수 밖에...

‘슬픈 아일랜드’는 우리가 어릴 적에 명절이면 받는 종합선물과 같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과자가 들어있다. 각자 좋아하는 과자를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도 ‘어여와, 아무 거나 골라서 하나 먹어봐’하고 있다. 그 과자의 성분이나, 유해 색소가 있는지 없는지, 당뇨에 좋은지 나쁜지 생각할 거 없이 그냥 덥썩 입에 물고 먹기 좋게 되어있다. 그래서, 잠들어가는 뇌세포를 쉽게 자극한다. 현란한 말장난에 어느덧 내 뇌세포들은 춤추고 있다.

시에 문외한인 내가 시를 읽은 감상을 써보고자 한다. ‘슬픈 아일랜드’에는 크게 나눠서 3종류의 시들이 내게 다가왔다. 첫째는 깔깔거리는 시들, 둘째는 피식피식대는 시들, 셋째는 마음이 좀 아려오는 시들.

먼저, 깔깔거리는 시들을 한번 보자.

...

허수아비 노총각들이 낄낄거리면서 바지춤을 내리고 소피를 본다.

오줌 줄기를 쳐다보며 눈이 휘둥그래진 처녀 들국화들

그들의 봉긋한 젖가슴을 허수아비들이 쳐다보자

싫지않은 듯 호호호 웃으며 흰 눈을 치켜뜨는 처녀 들국화들

...

이 시는 ‘들국화 운동회’라는 시이다. 가을들판에 나가면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운동회를 하듯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부는 가을 들판에서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대개 슬픔을 씹게 될텐데, 왁자지껄한 운동회가 생각나다니 시인이 자연에 가지는 애정이 놀랍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넘어 ‘나는 경탄한다. 고로, 나는 살아있다.’라고 하고 싶다. 이런 류의 시로 ‘칠월 칠석’에서는 별이 초롱초롱한 밤하늘이 왁자지껄한 잔치판이 되고, ‘샤려니 숲길’은 더이상 조용한 숲길이 되지 못 한다. 치톤피드는 그만 됐고, 삼나무들과 손잡고 춤을 주자고 한다.

내 뇌세포를 자극하여 빠져나가지 못 하게 강력한 힘을 준 두 번째 종류의 시들은 피식피식거리는 시이다.

...

소크라테스가 퇴계에게 줄을 대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고,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자와 칸트를 비롯한 대륙의 합리주의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에피쿠로스학파의 소피스트들, 영국의 실용주의자인 밴덤, 흑묘백묘론으로 중국을 실용주의로 몰고 간 덩샤우핑은 현실적으로 율곡에게 줄을 대었다. ... (슬픈 아일랜드 4)

...

이른바 슬픈 아일랜드 연작이다. 시집에는 슬픈 아일랜드 8까지 나온다. 이 시들은 내가 요즘 관심가지고 보는 메타버스를 생각하게 한다. 메타버스는 가상세계인데, 여기서 버스는 universe에서 따왔다. 강성철의 메타버스에서는 과거와 현재, 조선과 그리스, 자연과 인간이 마주잡이로 뒤섞인다. 메타버스를 넘어 멀티버스이다. 슬픈아일랜드에서도 나왔지만 프르스트의 의식의 흐름이랄까, 새벽녘에 가끔 꾸는 꿈처럼 엉망친창으로 느낌과 연상들이 뒤섞인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 아, 우리가 이렇게 화합할 수도 있는 걸 공연히 뭘 나눠서 싸우고, 울고 웃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잭슨 플록의 흩뿌린 페인트보다는 생각을 하고 배치한 단어들이다. 박정희가 시저가 되고, 김재규가 블루투스가 된다. 그 사이에 심수봉도 끼어든다. 시인의 머리에서 출격을 가다리며 넘실대던 생각의 파편들이 봇물치듯 터져나와서 축제의 행렬처럼 골목을 꽉채우며 넘쳐난다. 알고봤더니, 시간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도,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도, 사상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던 것들도 다 친구였여! 이 시들은 문명과 역사에 대한 시이다. 전문가의 시평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시는 문명/역사를 등한시 해왔다. 관심밖이라기 보다는 시적 형상화가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 정작 이 시들은 내게 무지무지 쉽게 읽힌다는 게 그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세 번째로 다가오는 시는 마음을 아리아리하게 하는 시들이다. 그가 등단하던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느낌이다. 1991년 첫 시집 ‘아담아, 네 어디 있느냐’에 실린 ‘아버지 술 드세요’와 비슷한 맥락의 시이다. 30년이 지난 후 그 느낌이 많이 익어서 승화되었다.

...

아버지는 대나무였다 ... 머릿살, 장살... 나의 뼈대를 만드셨다.

...

하늘로 비상해야만 했던 시절엔

뻥 뚫린 가슴으로 바람이 자꾸 빠져나가

...

뻥 뚫린 가슴으로 인해 남보다 쉽게 하강할 수 있음을

...

끈질긴 인연의 팽팽한 연줄 끝에 매달려 있는 아버지가

... (방패연)

나는 잘 공감하기 어려운 슬픈 가정사가 있었고, 그것을 삭혀내는 과정이다. 그중에 ‘재산 상속 포기 청구’는 절창이다. ‘구절초 어머니’와 ‘물고기 아버지’가 비슷한 감성에서 쓰인 시이다.

강성철의 시는 시를 모르는 내게도 감상문을 쓰게한다. 전문가인 우대식(시인)의 시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의 시적 전범을 마치 자신의 시로 착각하여 뻐꾸기를 자기의 친자식처럼 키우는 미친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팽팽한 시적 긴장을 유지한다. 이것은 참다운 삶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걸림없는 자유자재, 종횡무진의 필법으로 읽는 이들은 모처럼 색다른 체험을 할 것이다.”

‘걸림없는 자유자재, 종횡무진’은 다음 구절을 보면 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시집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에서 ... 지나가는 계집애들 뒷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커피있으면 시간 좀 마실까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적 긴장은? 상징은? 운률은? 그런 거 다 빼고 언어유희로만 시가 되는가? 모든 사람은 시인인가? 그럼 내가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도 시가 되겠네?

아마 그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어하는 거 같다.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에 만화가 들어간 건 새발의 피이다. 단어 차별 금지! 즉, 시어와 시어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않고 시가 된다고 주장한다. 킹 목사의 연설을 생각나게 한다. “I have a dream, that one day right down in Georgia to Mississippi and Alabam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live together as brothers.” 그에게 모든 단어는 평등하게 시어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도 시이다.

이번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둥글다는 것’이다. 둥근 것중에 ‘어머니의 등’은 시인의 다른 시에서 같은 의미로 나온다. 이 시에서 먼저 몇 가지 둥근 것을 얘기한다. 아침이슬, 노래기와 쥐며느리, 노숙자, 그들을 일일이 돌아본 뒤,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다음 구절을 썼다. '가슴 뭉클'도 감정 근육을 튼튼히 하는 좋은 '자극' 아니겠나?

“둥글다는 것은 모난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방어일 것이다”

"둥글다는 것은 모난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방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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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셰익스피어 -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 꺼내 읽는 삶의 지혜 한 학기 한 권 읽기 1
한기정 지음 / 그린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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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37편의 희곡을 썼고, 그 속에 1200명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중 한 등장인물일뿐인 햄릿을 연기하는 방법이 1000가지가 있다고 한다. 16세기에 활동한 지구 반대편 먼 나라 영국의 작가의 작품이 내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한기정은 셰익스피어 전문가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모든 희곡을 대부분 16세기 영어 원문으로 다 읽었을 뿐아니라,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후대 사람들이(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 칸트, 사르트르 등) 분석한 글들까지 대부분 섭렵하였다. 한기정은 오늘날의 대중이 삶에서 부딪치는 인간관계를 그가 가진 셰익스피어 렌즈를 통해 보았다. ‘요즘으로 말하면...’이라고 하면서 지금의 나와 연결하는 통로를 제시한다. 그래서, 그동안 소문으로 셰익스피어를 들었거나, 학교 다닐 때, 셰익스피어를 좀 읽었다는 분들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

 

16세기적인 시각으로 해석하지 않고, 철학이나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의 시각으로 볼 때, 셰익스피어의 선구자적 통찰력이 더욱 드러난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나 베니스의 상인의 포샤는 최근의 페미니스트적인, 또는 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햄릿을 우유부단의 대명사로 인식한다거나, 샤일록은 인정머리 없는 냉혈한으로 간단하게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기정은 셰익스피어가 그렇게 단순한 작가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바보나 광대에 대해서 한기정이 제시하는 새로운 해석은 대중민주주의에서 민중의 역할과, 문화의 맹아인 놀이가 지닌 허세, 조롱, 자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콩쥐팥쥐의 계모나 춘향전의 변학도를 얘기하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려는지 안다. 글을 쓰고 읽고,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뜻에 대해서 서로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좀더 큰 것이 속담이고, 그것보다 좀더 큰 덩어리는 이야기이다. 서로 공유하는 이야기 덩어리를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원형이라고 하였고, 이는 집단 무의식속에 자리잡는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는 서구문화에서 중요한 원형이라고 한다. 그 원형들이 다양하고, 인간사()의 다양한 면을 담고 있을수록 그 문화의 두께는 두터워진다.

 

16세기에 인류는 새로운 원형탄생의 빅뱅을 일으킨 위대한 작가를 만났으니 셰익스피어이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새로운 단어중 옥스퍼드 사전에 등록된 것이 1700개이고(manager, gossip, critic, hurry, bedroom, fashionable 등등), 원래 있던 단어들에 새로운 뜻을 추가한 것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하나님 다음으로 사람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간관계의 조합은 더욱더 큰 수가 된다. 그 관계가 시작되고 진행되고 끝을 맺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이 아니고 희곡이므로 모든 내용이 대사로 전달된다. 소설과 달리 희곡에서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사와 몸짓으로 그들의 속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희곡은 소설보다 오늘날의 MZ 세대에게도 중요하다.

 

오늘날의 MZ는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가상공간에서 만난다. 게임의 한 종류인 MMORPG은 수천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게임이다. 게임은 다양하고 한기정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선악, 사랑, 복수, 야망, 질투, 명예, 권력, 위기, 배신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인간의 문제가 농도깊게 나타난다. 더군다나, 최근에 Z세대들이 많이 참여하는 메타버스에서는 자신의 아바타(‘부캐라고 한다.)를 만들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다. 부캐는 다른 부캐를 만난다. Z세대를 모르는 윗 세대들은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이기적이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지만, Z세대들은 전 세대들이 같은 나이대에 만났던 사람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또는 부캐들을 만나고 있다. 게임에서, 메타버스에서... 여기에서 인싸(인사이더)’인프루언서가 되는 것이 Z세대들의 꿈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그들에게 중요한 재료를 제공할 수 있다. 세련되고 깊이있는 부캐나 메타버스속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만드는 원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를 위한 작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한 작가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Z세대에게 셰익스피어를 소개할 것인가이다. 이번 책에서 한기정의 고민은 여기 있었다. 작은 폰트로 464쪽이었던 전작 셰익스피어를 읽자가 학문적 가치가 있는 셰익스피어 연구서였다면, 셰익스피어와 인사하기 정도되는 이번 책이 나온 배경도 아마 그런 고민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하고 싶으면 또 죽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라는 폭탄을 그들에게 터트리기 위해 심지가 필요하다. 모쪼록, 한기정이 원하는대로 셰익스피어가 그들에게 꼭 찾아보아야 할 성지(聖地)’가 되고, 그들의 대화에서 셰익스피어가 상식적인 원형이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2, 3의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뻥뻥 터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가장 강조하는 인간의 품성이 공감이라고 한다.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라는 책도 있지만,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공감이다. 그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를 통해서 MZ세대들이 공감의 능력을 키워, 무게감 있고, 깊이 있고, 향기로운 삶을 살면 좋겠다. 한기정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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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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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65세 부머세대 남성이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진보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대책없는 꼰대이거나, ‘해맑은 낙관주의자일 수 있다. 작가가 UndoOK boomer의 아빠에게, ‘김일성..’의 엄마에게 “OK boomer~”라고 해주어서 고맙다. 이 책에 있는 여러 소설은 결국 가족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그린다. 그런데, 세상은 급하게 변하고 있으므로, 그 끈을 살리는 것이 저절로 되지 않고, 과거의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이 멀티버스의 시대에서 이미 우린 다른 행성에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나의 가족이 나에게서부터 저만치 떨어져 나가게 하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제 그 거리가 아주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다가가고 대화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두 개의 행성간에 순간이동이 가능한 웜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작가는 얘기한다. 그것이 another ‘아프니까 청춘이다일까? 그것은 이 책을 읽으며 판단해보기 바란다.


가족들의 구성원 각자각자는 변화된 세계에서 서로 다른 면을 부딪히고 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모두 변화의 속도에 적응할만하면 또 변화하므로 안정된 숙성에 도달하기 전에 먹어치우고 마는 김치와 같다. 이들간의 갈등을 그릴 때, 기득권자인 부머에 대한 원망이 될 가능성이 큰데 이 책에서는 이해의 손을 뻗어준다. 관계가 파괴한 관계를 회복하는 관계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않다. 나는 대책 없는 속물이라 작품을 망치더라도 손쉬운, 그리고 통속적인 해피엔딩으로 맺었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죽은, 또는 우리가 죽인 파랑새를 살리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쳇바퀴를 또 다시 돌릴 뿐이다. 거의 평행으로 달리는듯하나 나선형으로 같이 상승하는 시스템을 상상해야 한다.

 

Undo 되지 않는 건 가족관계이다. 위선이라도 하려 하는 친구 노력이 봐줄만하지 않나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이 우월과시로 느껴져서 벽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비겁해지지 못한 엄마는 누구나 귀환할 수 있는 가정을 지킨다. 6개월에 한번 정도 돌아오는 아빠도 ONS(one night stand) 앱을 이용하는도 언제나 돌아와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도호에게서 보듯 그것은 오징어 배와 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짓누르기도 한다. 왜 좋기만 한 것은 없을까?

 

화양(花樣)이 화양연화花樣年華에서 나온 것이라면 역설적 제목이다. ‘화양연화는 성숙한 여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은유한다고 한다. 초기 스턴트우먼 괜찮습니다를 달고살아. 다시 돌아가면 내 표현하고 살고 싶어, 그래도 뜻대로산 70대 바지씨와 임용고시 9수의 삼십대도 빛을 걷으면 빛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을 빛이라 믿는 것일 뿐일까?

    

OK boomer

94년생 작가가 그린 60대의 전교조 진보교사와 MZ의 갈등교육학자들은 대책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라고 하고, boomer는 그래도 대학원에는 가라고 한다. 그 사이에서 아들은 대책없는 인디 뮤지션이 된다현재 나의 상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좋은 어른이고 싶다. 그걸 위해 많이 노력하고 양보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등을 긁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을 보면 안타깝고, 부인과는 따로 살고 있고, 나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는 없다. 여전히 등은 가렵다.

   

괸당

4.3에선 우익에게 죽고, 연해주에서 공산당에 죽은 조상을 가진 괸당(친척)이 만난다. 괸당의 과거 형식에 매달리면 그것은 괸당을 파괴하고, 새로운 화합을 방해하는 덫이 된다. 그러나, 신 술로만 남은 고야주에서 미래세대에게 화합가능성이 보인다.

 

소돔

소돔을 줌인해서 보니 4대째 젠틀하게 웃고 있지만, 악몽에 시달리는 군상들이 나온다. 그들은 욕망 때문에 또는 외부의 폭력 때문에 굴복한다. '나'도 그렇다.

 

당춘

서울대 박사 해맑은 낙관주의자와 2-3년전까지만 그와 잘 어울렸던 2명의 취준생이 노인학생 3명을 만난다. 언제나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는 것은 패배주의자의 변명일까? 풀들이 겨울을 나는 방법인 숙근(宿根)일까? , 하나하나 포즈를 보면 모두가 엉망이다. 그러나, 모두가 앵글에 들어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

 

오즈(poo) ㅡ 오즈의 마법사

오즈의 중의적 의미는 상처를 상처로 덮는 타투로 구현된다. 노인돌보미로 주거해결하는 복지제도가 소금과 배추를 섞어놓으면 김치로 숙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어도 떨어진 꽃잎을 줍는 포근한 장면을 건질 수 있다.

 

김일성 죽은 해

꿈이 무엇이니? 이 말은 다른 소설에서도 거의 한번씩 등장한다. 작가는 그래도 꿈을 놓지 말자고 한다. 엄혹한 시절에 노동자 시쓰기가 등단 작가를 낳는 태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후에 싹을 틔우는 숙근처럼 말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에 30대였던 것처럼, 30년 후에 지금의 60대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꿈이 무엇이니?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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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 신학과 인문학이 만나다
오형국 지음 / 글과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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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먼저일까? 종교개혁이 먼저일까? 이 책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사이에서 요즘으로 말하면 인기 최고의 유튜버 또는 인플루언서라고 할 수 있는 칼뱅에 대한 얘기이다. 오형국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였다고 하는만큼 오목사가 오랜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온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목사가 최근에 벌이고 있는 일을 보면 어느 정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지난 2년간, 그가 활동하는 청년신학아카데미에서 매학기 여는 강의를 들었다. ‘일의 영성’  ‘공공선과 희년’, ‘한국사와 신학’, ‘기후위기와 일반은총’ 등등 기존의 교회에서는 가까이 하지 않는 주제들을 심도있게 다룬다. 그냥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토론도 한다. 약 500년전 칼뱅이 제네바에서 했던 일이다. 그 칼뱅이 교회사에 남는 큰 일을 해내었고, 아직도 그 영향력이 식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


르네상스가 종교개혁보다 먼저였다. 이 책을 통해 겨우 알게 되었다. 내가 전자공학과 교수라는 것으로 나의 무지를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런데, 내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서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심상치 않다. 인터넷 혁명, 제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의 시대 등등으로 불리우고 있는 일들은 14세기 이탈리아의 문학가나 교육자들이 시작한 르네상스를 닮았다. 르네상스는 예술에 영향을 미쳤을뿐아니라 사회제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을 신학자들과 신부들이 이어받아 종교개혁을 이루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었을텐데 로마 카톨릭 입장에서는 이단이었다. 이것을 청년신학아카데미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대형 교회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심지어는 위험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한다면 지나친 비약인가?     


뜬금없지만 메타버스와 관련된 글을 한번 읽어보자. “본캐(실제 자아) 중심의 심리적 위계질서가 사라짐에 따라 부캐(가상의 자아)는 더는 부차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메타버스에는 부캐가 필요하다. 영화 매트릭스가 보여준 새로운 인간관은 인간의 존재를 육체적이고 물리적 차원의 범위로 국한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인간의 정념과 창의성 역시 부캐 창조의 원천으로서 긍정적인 가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사실 위 글은 이 책에서 나온 다음 문장에서 명사만 몇 개 바꾼 것이다. “이성 중심의 심리적 위계질서가 사라짐에 따라 몸은 더는 비천한 경멸의 대상이 아니었다. 행동에는 몸이 필요하다. 새로운 전인적 인간관은 인간이 가진 악의 성향을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차원의 탓으로 돌리지 않을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인간의 정념 역시 행동의 원천으로서 긍정적인 가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온 키케로의 얘기에서 몇 단어만 바꾸면, BTS의 얘기가 된다.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가 무슨 능력을 갖게 되었다면 대중음악가로서 그것은 음악 작업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아미(ARMY)들의 넓은 마당에서 온 것이다.” 나의 평행이론이 너무 억지스러운가?


마가복음 5장 13절을 보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아무 쓸데없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소금은 음식재료들이 어우러져 맛을 낼 수 있게 하는 조미료이다. 설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칼뱅은 신학의 교리라는 재료들을 가지고, 인문학이라는 소금(intellectual solvent)으로 요리하여,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래서, 캘빈은 신학적 인문주의자라고 한다. 이는 기독교적 인문주의자와 뉘앙스가 다르다. 둘다 하나님의 형상을 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런데, 기독교적 인문주의자들은 윤리나 덕성과 같이 비교적 말랑말랑한 주제를 다루는 반면에, 신학적 인문주의자들은 먹기에 단단한(히브리서 5:14) 신학적인 교리를 포함한다. 단단한 음식에 영양소가 고루고루 들어있고 오랫동안 건강을 지켜준다.


기후 위기 또는 메타버스 시대가 가져 올 충격에서 기독교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는 장성한 자라만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음식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칼뱅은 어려운 신학 교리라는 단단한 음식을 사람들에게 먹이기 위해, 그 시대의 메타버스였던 수사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것은 그가 구원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었을텐데 예술가가 가지는 선지자적 열정으로 고도의 문학적 텍스트로 신학을 설명하였다. 그것은 지금의 다원주의와 비슷한 환경에서 당시 경쟁자들과 ‘수사학적 전투’를 벌이는데 사용되는 무기이기도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성경이 가지는 간결함, 설득력, 문학성과 닮았다.  


이쯤되면 뉴노멀이 필요한 지금, 오목사가 이 책을 내는 이유가 짐작된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이해하면, 하나님을 더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을 이해하면, 인간을 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속한 환경은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부캐’의 정체성을 인문학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어떻게 신학적 교리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영감을 구해야 한다. 인문학을 시녀가 아니라, 기사(cavalry)로 삼아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인류를 구출해야 한다. 그 기사에게 입혀줄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하다. 이 시대의 패션으로...    


르네상스 뒤엔 종교개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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