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픈 아일랜드 ㅣ 시인동네 시인선 210
강성철 지음 / 시인동네 / 2023년 8월
평점 :
가만히 있으면 우리에게서 무엇이 빠져나간단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란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다가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단다. 근육세포가 1년이면 10%가 빠져나가면서 팔과 가슴에 뼈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근육이 빠지면, 관절에 무리가 가서 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무릅이 아프다. 뇌세포도 점점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흔히 알고 있던 연예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아주 친숙한 영어 단어의 스펠링이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심지어는 평생 같이 살아온 마누라의 존함까지도 언뜻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이것은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행이 긴장과 자극을 주면 늦춰진다. 70대, 80대인데도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울퉁불퉁한 근육위에 올려져 있는 쭈글텅 얼굴이 기괴하기도 하지만, 그 미소는 부럽다. 70대의 패션모델은 백발과 주름과 균형잡힌 몸매가 젊은 패션모델이 주지 못하는 원숙미를 풍기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적절한 긴장과 자극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가는 자신의 선택이 되었다. 그 선택은 노욕이라고 하는 대책없는 욕망의 결과일 수도 있고, 품위있게 익어가고 싶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66세의 강성철 시인이 ‘슬픈 아일랜드’라는 시집을 내었다. 그런데, 그 시집은 슬프지 않다. 그리고, 아일랜드처럼 외롭게 떠 있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간, 자식과 부모 모두가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린다. 이것은 같은 나이의 우리들에게 긴장을 요구하며, 크나큰 자극이 된다. 원숙하게 늙자고 한다. 나에게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허용하지 말자고 한다.
그림으로 비교하면, 그래피티에 비교하고 싶다. 경찰이 오는지 망을 보아가며, 급하게 그리는 그래피티. 도시의 음침한 골목의 벽을, 흉물스럽게 서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현란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거리의 그림. 고상한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사용하여 그린 그 그림들. 이 시들은 또한 소변기를 걸어놓고 예술이라고 했던 뒤샹의 ‘샘’을 생각나게 한다. 이것도 시인가? 시에 이런 단어가 들어가도 되는가? 시인이 국문학과를 나오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도, 강 시인은 우리나라 시단에서 방귀깨나 뀌는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단다. 피카소의 그림이 초등학생 그림보다 무엇이 나은지 모르는 나야 받아들일 수 밖에...
‘슬픈 아일랜드’는 우리가 어릴 적에 명절이면 받는 종합선물과 같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과자가 들어있다. 각자 좋아하는 과자를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도 ‘어여와, 아무 거나 골라서 하나 먹어봐’하고 있다. 그 과자의 성분이나, 유해 색소가 있는지 없는지, 당뇨에 좋은지 나쁜지 생각할 거 없이 그냥 덥썩 입에 물고 먹기 좋게 되어있다. 그래서, 잠들어가는 뇌세포를 쉽게 자극한다. 현란한 말장난에 어느덧 내 뇌세포들은 춤추고 있다.
시에 문외한인 내가 시를 읽은 감상을 써보고자 한다. ‘슬픈 아일랜드’에는 크게 나눠서 3종류의 시들이 내게 다가왔다. 첫째는 깔깔거리는 시들, 둘째는 피식피식대는 시들, 셋째는 마음이 좀 아려오는 시들.
먼저, 깔깔거리는 시들을 한번 보자.
...
허수아비 노총각들이 낄낄거리면서 바지춤을 내리고 소피를 본다.
오줌 줄기를 쳐다보며 눈이 휘둥그래진 처녀 들국화들
그들의 봉긋한 젖가슴을 허수아비들이 쳐다보자
싫지않은 듯 호호호 웃으며 흰 눈을 치켜뜨는 처녀 들국화들
...
이 시는 ‘들국화 운동회’라는 시이다. 가을들판에 나가면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운동회를 하듯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부는 가을 들판에서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대개 슬픔을 씹게 될텐데, 왁자지껄한 운동회가 생각나다니 시인이 자연에 가지는 애정이 놀랍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넘어 ‘나는 경탄한다. 고로, 나는 살아있다.’라고 하고 싶다. 이런 류의 시로 ‘칠월 칠석’에서는 별이 초롱초롱한 밤하늘이 왁자지껄한 잔치판이 되고, ‘샤려니 숲길’은 더이상 조용한 숲길이 되지 못 한다. 치톤피드는 그만 됐고, 삼나무들과 손잡고 춤을 주자고 한다.
내 뇌세포를 자극하여 빠져나가지 못 하게 강력한 힘을 준 두 번째 종류의 시들은 피식피식거리는 시이다.
...
소크라테스가 퇴계에게 줄을 대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고,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자와 칸트를 비롯한 대륙의 합리주의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에피쿠로스학파의 소피스트들, 영국의 실용주의자인 밴덤, 흑묘백묘론으로 중국을 실용주의로 몰고 간 덩샤우핑은 현실적으로 율곡에게 줄을 대었다. ... (슬픈 아일랜드 4)
...
이른바 슬픈 아일랜드 연작이다. 시집에는 슬픈 아일랜드 8까지 나온다. 이 시들은 내가 요즘 관심가지고 보는 메타버스를 생각하게 한다. 메타버스는 가상세계인데, 여기서 버스는 universe에서 따왔다. 강성철의 메타버스에서는 과거와 현재, 조선과 그리스, 자연과 인간이 마주잡이로 뒤섞인다. 메타버스를 넘어 멀티버스이다. 슬픈아일랜드에서도 나왔지만 프르스트의 의식의 흐름이랄까, 새벽녘에 가끔 꾸는 꿈처럼 엉망친창으로 느낌과 연상들이 뒤섞인다.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 아, 우리가 이렇게 화합할 수도 있는 걸 공연히 뭘 나눠서 싸우고, 울고 웃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잭슨 플록의 흩뿌린 페인트보다는 생각을 하고 배치한 단어들이다. 박정희가 시저가 되고, 김재규가 블루투스가 된다. 그 사이에 심수봉도 끼어든다. 시인의 머리에서 출격을 가다리며 넘실대던 생각의 파편들이 봇물치듯 터져나와서 축제의 행렬처럼 골목을 꽉채우며 넘쳐난다. 알고봤더니, 시간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도,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도, 사상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던 것들도 다 친구였여! 이 시들은 문명과 역사에 대한 시이다. 전문가의 시평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시는 문명/역사를 등한시 해왔다. 관심밖이라기 보다는 시적 형상화가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 정작 이 시들은 내게 무지무지 쉽게 읽힌다는 게 그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세 번째로 다가오는 시는 마음을 아리아리하게 하는 시들이다. 그가 등단하던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느낌이다. 1991년 첫 시집 ‘아담아, 네 어디 있느냐’에 실린 ‘아버지 술 드세요’와 비슷한 맥락의 시이다. 30년이 지난 후 그 느낌이 많이 익어서 승화되었다.
...
아버지는 대나무였다 ... 머릿살, 장살... 나의 뼈대를 만드셨다.
...
하늘로 비상해야만 했던 시절엔
뻥 뚫린 가슴으로 바람이 자꾸 빠져나가
...
뻥 뚫린 가슴으로 인해 남보다 쉽게 하강할 수 있음을
...
끈질긴 인연의 팽팽한 연줄 끝에 매달려 있는 아버지가
... (방패연)
나는 잘 공감하기 어려운 슬픈 가정사가 있었고, 그것을 삭혀내는 과정이다. 그중에 ‘재산 상속 포기 청구’는 절창이다. ‘구절초 어머니’와 ‘물고기 아버지’가 비슷한 감성에서 쓰인 시이다.
강성철의 시는 시를 모르는 내게도 감상문을 쓰게한다. 전문가인 우대식(시인)의 시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의 시적 전범을 마치 자신의 시로 착각하여 뻐꾸기를 자기의 친자식처럼 키우는 미친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팽팽한 시적 긴장을 유지한다. 이것은 참다운 삶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걸림없는 자유자재, 종횡무진의 필법으로 읽는 이들은 모처럼 색다른 체험을 할 것이다.”
‘걸림없는 자유자재, 종횡무진’은 다음 구절을 보면 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시집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에서 ... 지나가는 계집애들 뒷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커피있으면 시간 좀 마실까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시적 긴장은? 상징은? 운률은? 그런 거 다 빼고 언어유희로만 시가 되는가? 모든 사람은 시인인가? 그럼 내가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도 시가 되겠네?
아마 그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어하는 거 같다.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에 만화가 들어간 건 새발의 피이다. 단어 차별 금지! 즉, 시어와 시어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않고 시가 된다고 주장한다. 킹 목사의 연설을 생각나게 한다. “I have a dream, that one day right down in Georgia to Mississippi and Alabam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live together as brothers.” 그에게 모든 단어는 평등하게 시어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도 시이다.
이번 시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둥글다는 것’이다. 둥근 것중에 ‘어머니의 등’은 시인의 다른 시에서 같은 의미로 나온다. 이 시에서 먼저 몇 가지 둥근 것을 얘기한다. 아침이슬, 노래기와 쥐며느리, 노숙자, 그들을 일일이 돌아본 뒤,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다음 구절을 썼다. '가슴 뭉클'도 감정 근육을 튼튼히 하는 좋은 '자극' 아니겠나?
“둥글다는 것은 모난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방어일 것이다”
"둥글다는 것은 모난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방어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