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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 일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잘잘법>이라는 유튜버 채널의 영상들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일반적인 이성과 철학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무조건 ‘믿슙니다’하는 신앙을 나는 위험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전에 어느 신학교수가 직관없이 이성적인 논리로도 믿음에 이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나는 좋아한다. 따라서, 읽는 글이 성경밖에 없다면 오히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철학을 비롯해서, 소설이나 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의 얘기이며, 그것들이 인간과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믿슙니다’만 하게 되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에서 벗어나 고립된 섬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의 건물과 비교할 때, 일반적인 이성과 철학이 성경과 함께 기본적인 뼈대를 형성하며, 그 뼈대가 튼튼해야 제대로 된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은 가슴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팔다리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서 나는 김기석 목사의 설교를 좋아한다. 설교에 일반 소설과 시를 많이 인용하는 김기석 목사가 읽어보라고 두 권의 책을 권했는데, 하나는 이승우의 소설책 <사랑이 한 일>이고 또 하나는 르 클레지오의 책이다.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생명력이 넘치는 한 소녀의 일생을 그린 <황금 물고기>가 대표작이다.
<사랑이 한 일>은 신앙 서적과 일반 소설의 중간 지점에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묵상하는 과정을 소설집으로 만든 것이다. 몇 천 년전 일어났던 일이 성경에 적혀있다. 대부분 중요한 내용만 간결하게 기술하고 빠르게 얘기가 전개된다. 작가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입장에서 여러 갈래로 자세히 상상해본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입장에서 소돔성에 천사가 찾아 온 날을 생각해보는 ‘소돔의 하룻밤,’ 하갈입장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쫒겨난 날에 오고 간 생각을 그린 ‘하갈의 노래,’ 이삭의 입장에서 자신이 제물로 바쳐지는 일을 회상하는 ‘사랑이 한 일,’ 야곱이 속임수로 축복을 받아내간 일을 분석해보는 ‘허기와 탐식,’ 그리고, 야곱이 들판에서 천사를 만난 이야기 ‘야곱의 사다리’가 나온다. 각각이 완결된 단편 소설이지만, 다섯 편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장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돔의 하룻밤’은 하나의 동기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변주곡이 나타나는 흥미로운 형식으로 쓰여있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되는데 각 장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2~4개로 변주된다. 인간의 원죄가 군중심리로 증폭되는 것을 보여준다. 교만해져서 외부의 판단을 무시한다. 군중은 욕망의 기계(또는 노예)가 되어 그들과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때 그들은 죄의식이 마비된다. 마비된 죄의식을 생각나게 하는 낯선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이다. 도시와 산에서 산을 택했던 아브라함이 10명의 의인이 있으면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겠냐고 하나님께 물었을 때, 그 10인에 도시를 택했던 롯이 포함되어 있었을까? 운명의 하룻밤의 다음 날 롯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소돔을 빠져나가면서도 도시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인간이 욕망의 기계가 되어 가는 것을 깨닫지 못 한다. 그러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고, 두 도시가 유황불로 멸망하자 ‘아주 작은 성‘을 떠나 산으로 숨는다.
’소돔의 하룻밤‘과 ’하갈의 노래‘의 공통점은 무리를 떠난다는 것이다. 롯이 천사의 충고에 의해 무리를 떠나지만, 하갈은 아브라함의 비정한 결정에 따라 무리를 떠난다. 이 이야기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하갈은 사막 한가운데서 쓰러져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녀는 평평한 것을 좋아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심하게 굴곡진 인생으로 밀어넣었다. 아브라함은 신에 기대어 자신을 변명한다. ‘신이 너를 사랑하는 것을 잊지 마라’라고 했지만, 그의 신을 믿지 않는 그녀와 이스마엘에게는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잊지마라’라는 말이 더 필요하다. 아브라함은 고통을 위장한다. 하갈은 믿지않는 신, 즉, 아브라함의 신은 아버지(아브라함)의 사랑을 아들(이스마엘)에게 보여주는 막는 신이다. 사라의 질투와 그에 따른 아브라함의 비정함을 허용하는 신이다. 그런데, 그 신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타나 삶을 포기하려는 하갈에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우물을 주시고, 이스마엘의 자손이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 없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이 돌보신다.
‘사랑이 한 일’은 사랑의 역설에 대한 얘기이다. 이 이야기는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모두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한 것이 이삭이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반으로 갈라 자신에게 바치라고 한다. 가장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바친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했다. 그 시험은 하나님이 자유로움을 버리고 아브라함의 결정에 종속되는 부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이삭은 어땠을까? 소설에서 이삭은 진작부터 아버지의 고통을 눈치채었지만, 예배를 ‘함께’했다.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마라’로 아버지와 하나님 간의 사랑이 확인된 후,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가고, 이삭은 혼자 그 산에서 밤을 새웠다. 그날 밤 하나님은 많은 얘기를 이삭에게 한다. 이삭은 사색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얘기는 성경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삭은 말로 설명하는 순간 달아나 버리는 진실을 간직한 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가지게 되었다.
‘허기와 탐식’에서는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이삭이 어느 날 맏아들인 에서를 불러 말했다.’로 시작하는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야곱, 에서, 리브가의 입장에서 좀더 자세히 들어간다. 왜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 요리를 좋아했을까? 자신이 태어남으로써 버림을 받은 이스마엘에 대한 죄책감때문이라고 한다. 에서의 쌍둥이 형제 야곱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것에서 기시감을 느껴서 맏아들에 대한 동정이 생겨난다. 이에 더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아브라함이 버린 이스마엘과 버릴 뻔한 자신은 동병상린을 느낀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과의 최고의 사랑을 위해 인간의 법과 도리가 훼손된 경우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이삭은 광야에 사는 이스마엘을 찾아가서 야생고기의 맛을 본 후 야생고기를 탐식하게 되었다. 에서는 이 아버지를 위해 야생 고기를 항상 구해온다.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섬길 것이다’라는 눈에 보이지 않은 약속의 세계를 인정은 하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 계속 탐식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선택을 받은 야곱은 고난의 길로 접어든다. 노숙하는 그에게 ‘야곱의 사다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하늘과 닿는다는 면에서 비슷하지만, 아래에서 올라간 바벨탑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었다. 하나님의 진노때문이었는지 인간간에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불화가 일어났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는 자기보다 자기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있으며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명령하고 약속을 한다. ‘명령은 듣는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고, 약속은 말하는 사람의 자유를 제한한다.’ 하나님은 명령하고 약속함으로써 야곱과 서로 자유를 제한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도 하나님의 사다리는 내려올 수 있다. 야곱은 그 지역의 이름을 배델,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 그곳이 베델이라면 어느 곳이나 베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택하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