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리커버)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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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동안 서점을 기웃거릴 때 표지가 재미있어서 눈길이 갔었는데, 

그 후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누군가를 차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익히 배워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선량한 사람이라 믿는 우리 자신들이 평소에 행동하는

작은 일들 속에도 차별이 숨어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차별이란 것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명확한 선에서 그어지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손해와 이득, 불편과 불리의 상황에서 언제든 중심점이 이동할 수 있는 차별.


백조는 당연히 백조, 백색이어야 한다고 여겼지만 어느날 나타난 흑조로 인해 

사람들이 깜짝 놀라듯 우리에게도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것들 속에 검은 차별들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던게 아닐까.


장애인을 위한 복지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길에서 장애인을 발견하는 일이 흔하지 않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이 만들어진 지역이 아니기에 더더욱

장애인들의 이동 수단이 적다.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감수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했던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기에 늘 같은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나지만

딱 한번 버스가 장애인을 태우기 위해 멈춘 것을 봤다.

그 일은 장애인 동승자가 먼저 탑승을 한 이후 장애인을 태우기 위한

보조장비를 내려달라고 요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버스를 계속 앞뒤로 움직여 보도블럭에 맞추는 작업과 보도 블럭이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맞춰지자 난생처음 보게된 버스 아래의 무언가가 움직이며 다리가 되어줬다.

그것을 밟고 넘으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에 탑승하는 것을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보게되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예산을 들여 장애인 탑승이 가능한 버스를 들여 운행하면서

왜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는 일이 거의 없었을까. 

아마도 사람들의 눈총과 시간에 쫒겨 바쁜것을 먼저 떠올리며 장애인을 태우는 것을

어려워하는 버스측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사실 버스기사분들도 정해진 시간안에 운행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회사와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늦을수록 본인들이 쉬는 시간이나 배차간격이 줄어

연속 운행을 해야 하게 되면 화장실을 갈 시간도 부족해지는것도 사실이기에. 

평등을 위해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모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모두를 존중하기 위한 

조율이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어느 한쪽의 희생이 생기는 것은 아직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에 가까운 것 같다.

근처의 다른 지역에 지하철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장애인분들을 보며 내가 사는 지역의

장애인 분들이 좀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사람은 늘 희망의 길을 찾아낸다.

대신 내가 사는 지역은 장애인을 위한 이동차가 있고 그런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이 어디가기를 윈하면 그 근처에 계신 자원봉사자가 자동차로 찾아가

이동시켜주는 시스템이다.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희망이 아닐까.


관광지에 살고 있기에 여행객 그리고 외국인이 곧잘 오는 지역인데

어느날 출근길에 재밌는 일을 겪었다.

백인의 노부부와 중동쪽의 젊은 남성 여행객이었는데 동양인인 나까지

4명이 나란히 버스에 탑승했다. 백인이 먼저 의자에 앉았는데 캐리어를 가지고 있던

중동쪽 여행객이 백인의 바로 뒷자리에 앉자마자 백인 남성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겨

아주 먼 쪽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가 보란듯이 말이다.

중동쪽 여행객이 당혹스러움으로 바라보고는 외국인 특우의 제스츄어로 한숨을

내쉬는 것을 봤다. 백인의 노부인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남편과는 다르게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외국여행을을 와서도 백인우월주의 사상으로 행동하는 백인남성을 보면서 그가 과연

동양의 나라인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릿속에 복잡했었다.

문화제 등을 좋은 의미로 멋지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동양인은

속으로 비하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복잡하고 화가 나면서 자연스레 백인들에 대한 미움도 생겼었다.


영화 '그린북'에서도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것들을 잘 보여주는데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듯 흑인이 동양인을 또 비하하는 식으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베트남이나 필리핀인들을 백인보다는 무시하는 경향이

알게 모르게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참 기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린북에서처럼 처음엔 당연시 되던 차별들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서

무너지는 장벽들이 있다.

장벽이 무너질때는 바로 차별을 일삼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아닐까.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혐오스럽도록 잘못된 것임을 인식했는데 그 행동들이

나 역시 했던 행동일 때 사람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변할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우리사회는 점점 변화하고 있다.

아직은 서로를 혐오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분명히 바뀌어가기 위한

일종의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색이 전혀 다른 것들이 섞이기 위해서는 한참을 휘저어야 한다.

머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고의 팔젓기가 필요하듯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힘든 뒤섞임이 지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투명하고 미끄러운 계란 흰자가 하얗고 몽글몽글한 머랭을 위한 거품이 되듯이

사람은 내가 알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일 수 있고

그 차이를 차별이 아닌 이해로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흑인을 노예로 하던 시대,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서 점점 바뀌어 왔듯이

분명 우리는 찾아내어 해결해 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평등'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 본문 --------------


고정관념은 자신의 가치세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중간생략)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의 말)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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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이은선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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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수업에 열정적이었던, 교감을 나누며 수업을 하고 있다고 

믿게 해준 아름다운 여학생의 자살로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이 가장 중요한 '사랑'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사랑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연애 감정의 사랑뿐만 아니라

더 깊은 포괄적 의미의 사랑인 타인과의 사랑과 함께 더 나아가

바로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교수.

사랑이란 단어자체가 낭만인데 그의 강의는 

삶의 아름다운 낭만을 잃지 말라는 메세지를 준다.


교수의 강의라면 어려운 용어와 어려운 말들이 난무할것 같지만 

그의 강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자신도 말하기를 괴짜이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강의를 받을 상대를 배려한 부분이 아닐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교사들은 의례 권위의식이 강해서 

교사는 어려운 말을 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가벼운 사람은 괴짜로 보이기가 일쑤였고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은사님들을 떠올리면

그런 권위적이었던 교사나 교수보다 인간적이었고 학생들과 잘

소통했던 친근한 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알 것 같다. 

그 소통과 친근함은 바로 사랑에서 비롯되어 우리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책을 읽으면서 로빈윌리엄스가 열연한 유명한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 책을 소재로 영화화가 되었다면 아마 사랑을 전하는 교수는

키팅 선생님같은 분이 아니었을까.

지식만을 가르치는 학교와 교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아야한다고 고민하고 또 생각하며

바뀌어야 가야하는게 맞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사랑이 데우고 간 자리에 자리 잡은 지혜가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란 걸 알려준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책을 다 읽고나니 제목이 더 멋지게 보인다.

삶에서 배움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 이후 배움이 오는 것과

삶 자체가 끝없이 나를 찾아가는 배움의 항해다.

배움, 지식이 사랑보다 우선이었던 세상의 시대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끝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과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누군가를 해치는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난다. 그것은 사랑을 먼저 가르치지 않은

지난날의 참혹한 슬픔의 값들이다.


이책을 읽고 있던 때에 우연히 tv에 방영된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봤다.

독일 나치의 만행을 부정하는 역사학자와 그 역사학자에게

고소를 당한 홀로코스트 역사학자와의 법정공방 영화다. 

홀로코스트와 일본이 전쟁에서 행한 많은 과오들 역시

사람으로서 사랑을 없앤 결과이기도 하다.

사랑을 잃은 시대의 가장 슬픈 첫 표본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랑의 부재는 많은 삶들을 앗아가고 있다.


영화속 홀로코스트를 반대하며 나치 만행을 부정하는 역사학자는

배우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딸에게 노래를 가르쳤는데 인종차별적인 시를

외워 부르게 했다. 잘못된 배움이 본인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세에 자연스레 되물림 되고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은

등골이 오싹할만큼 무서운 일인 것이다.


얼마나 잘 배운 지식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찬 지혜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 죽음을 향해 항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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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걱정하는 일 중 90퍼센트가 

단지 상상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

"기쁨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즐겨야 하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가 행복해야 할 시간이라고요"

-

난 모든 걸 알고 싶어. 모든 걸 느끼고, 만지고, 맛보고 싶어

그걸 모두 다 하려면 시간이 없으니 당장 시작해야 해

-

삶이란 선택하기 나름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쁨이 되기도 하고

분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매일 행복해야할 시간을 충전받고 있다. 

죽기 직전까지는 무상으로 주어지는 시간들이다.

당연히 분노나 슬픔, 좌절보다 우리가 더 많이 채워야 할 것은

행복이지 않은가.


기회만 주어진다면 저는 여러분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제가 갖고 있는 

사랑의 양과 사랑할 수 있는 힘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그 이외의 사랑도 모두 똑같이 

우리는 무한의 양으로 사랑할수 있다.

왜 이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도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걸까.

삶에서 사랑을 가득 채우고 그 사랑만큼 많은 것들을 

몸으로 마음으로 배우며 행복하자.

그것으로 이룬 모든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이 된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한 나 자신'이 되자.

나의 행복은 분명 좋은 삶의 유품이 되어주고

유산이 되어 줄 것이다.


버스카글리아 교수의 부모님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난하지만 행복을 남겨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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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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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서점가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tv를 통해 책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인 

<요즘책방 : 책을 읽어드립니다> 덕분이다.

그런데 여기, 그 이전부터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알기 전까지는 오디오클립의 책 읽어주는 남자를 몰랐다.

나의 생각보다 요즘의 간단한 통신매체에는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만 정작 다양하게 사용하진 않는 편이기에..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좋은 정보였을거라 생각한다.


책을 읽어주는 남자 전승환 작가의 첫번째 인문 에세이라는 부재를 

달고 세상에 나온 책,

읽는 내내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놀라웠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책의 이야기와

구절들이 그 단락의 이야기에 맞게 들어가 있는데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많은 시들까지 알게 되어서 좋았다.

마음이 외로울 때 어떤 사람은 음악을 찾고, 

어떤 사람은 즐거울 게임을 찾고,

어떤 사람은 여행을 찾으며, 또 어떤사람은 책을 찾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그 중 책과 음악을 찾는 것 같다.

그 모든 것들에 사람이 녹아있고 사랑이 녹아있으며 

삶의 위로가 녹아 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있기에 듣는 사람이 있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있으니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여행을 가면 자연스레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게되고 

책 속에도 그 책을 읽을 이를 생각하며

많은 이야기를 남겨준 작가가 있는 것이다. 

외로워 혼자 있을때 혼자임에도 우리는 오롯이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작은 의미로나마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때로 위로가 되고 사람이란 존재들이 가진 

불특정 타인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최근의 경험으로 사람은 자신이 알게된 감정만큼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을 동경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외로워보아야 누군가의 외로움이 보였고, 내가 슬퍼보아야 

남의 슬픔이 보였다.

그래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은 쉽게 어떠하다는 말을 건내기보다

그저 묵묵히 손을 잡아주고 함께 마음으로 울어줄수 있나보다.

여러가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들이 생긴다.

어릴적에는 한없이 따스하고 즐겁기만했던 시간들이 어른이 

되어갈수록 슬픔과 외로움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우리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 들일 뿐 

세상에는 언제나 슬픔과 외로움들이 존재해왔었다.

전혀 새로웠던 것들이 아니라 그제서야 자신이 느끼게 된 것 뿐이다.

그리고 결코 우리가 자랐다고 해서 우리가 어릴적 가졌던 

행복한 즐거움들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하지 않을까.


슬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눈앞을 가로 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그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문 중 -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


삶이 나를 잊지 않았고 나의 손을 잡고 나의 마지막까지 간다면 분명 삶의 주변에는 아픔과 슬픔 고통만큼 즐거운 것들도 같이 있을 것이다. 때론 삶이 남의 편 같아 보일때가 있지만 결국은 미움도 내 삶의 일부이고 삶이 내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수 밖에 없다. 삶을 버리는 순간 나는 존재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작가 자신의 친구들과 찰나의 만남에도 손수 악수를 하며 체온을 나눠주셨던 이야기를

말하며 성인이 된 자신이 친구를 만나는 내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도 않고 익숙함이란 실례를 범한 일을 들려주었다. 삭막하다라고 할 정도로 요즘의 우리들은 익숙함의 실례를 범한다.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익숙하다며 만나는 자리에서도 묵묵히 스마트폰에만 정신을 빼앗기곤 한다. 바로 앞에 친구를 두고도 스마트폰 속 활동하는 카페의 회원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며 웃고 있었을 어느날의 나를 떠올리니 당연함이 부끄러움이 되었다.


바로 앞에 존재하는 행복을 눈먼 장님처럼 못찾고 멀리서 행복을 찾으려 하니 행복이 먼것처럼 보이는 것이리라.

친구를 만나면 친구와의 행복한 시간에 좀더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서로 많은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

취향을 넓혀주고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

내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성장시켜줄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당신 곁에 언제나 함께하기를.

[본문 중 ]


그런 친구를 소중히 할수 있는 내가, 

그런 친구 곁에서 함께하며 행복하기를 바래본다.


세상은 우울증으로 넘친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

그건 그저 우울하기 때문은 아니다. 뇌가 보내는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신호다.

그걸 고백한다는 건, 병원을 제 발로 찾는다는 건,

자신을 다시 다듬어서 세상과 다시 연결지점을 찾겠다는 의욕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당신의 친구들을 구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다정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본문 중 - 김도훈 작가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일부 ]


자신을 다시 다듬어 세상과 다시 연결지점을 찾겠다는 의욕이라는 말과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이라는 말.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다정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와 닿는다.

최근의 내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인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트라우마로 한동안 마음의 병이 들었을 때, 나는 매일밤 나의 어떤 부분이 죽음을 당하는 기분을 당했다.

매일밤 나의 중요한 어떤 감정이 자꾸만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 스스로가 아프다는것을 인정하고

병원에 찾아가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지금은 왜 그런 고민을 했을까 싶을만큼 마음이 밝아졌다.

살다보면 별일이던게 별일 아닌 날이 온다고 했던가.

그렇게 삶의 불안을 안고 죽음까지 생각하던 날들에서 지금은 다정함과 의지를 안고서 삶의 낭만을 생각하게된다.

좀더 행복해질거라는 낭만.


나는 다정함을 좋아하고 다정함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우리 모두다.

어느 한사람 다정함이 필요하지않은 사람이 없다.

우리 모두는 다정함을 필요로 한다.

인정하자.

지금 우리가 미워하는 누군가에게도

사실은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은 알게된 것 같다.

삶의 행복과 다정함, 그 낭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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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어린 시절이 울고 있다 - 몸에 밴 상처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심리학
다미 샤르프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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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나뭇가지와 눈물같은 비, 그리고 그 아래 고양이를 안은 소녀가 있다.

자세히 보면 마른 나뭇가지는 소녀의 머리에서 돋아나 있다.

흘려서 보면 모르겠지만 가까이 살펴보니 여러가지 함축되어 있는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치료사이자 트라우마 치료사인 작가는 저명한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제자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이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인간의 심리와 그 속에 남겨진 아픔들을 위해부던히도 노력하며 

세상에 마음을 다친이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함을 알리고 있다.


이 책은 트라우마, 특히 당사자들이 기억을 하는 시기든 못하는 시기든 

어린시절부터 이어져왔을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머니의 뱃속에서 부터 생성되었을 우리가 가진 많은 두려움과 

슬픔의 원인을 알려준다.


읽으면서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나의 부모 세대의 일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전쟁을 겪거나 전쟁을 경험한 바로 윗 세대의 부모의 영향을 받았을 부모님, 그만큼 그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많은 트라우마 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되물림 되어온 경우도 많지 않을까.


야생의 동물들은 부상을 입으면 고통의 울부짖음을 짖지만 

이내 자신의 상처가 무리로부터의 배척이나 죽음위기에 놓이면 

자신을 보호하려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예전에 햄스터를 키운적이 있는데 햄스터의 경우는 다리를 다쳐도 

오히려 자신이 건강함을 과시하려고 다친 다리로도 쳇바퀴를 돈다고

들어서 놀랐던 적이 있고 실제로도 부상을 입은 햄스터가 무리해서

쳇바퀴를 계속 도는걸 발견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는 신체는 아니지만 마음의 상처로서 그런 양상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 트라우마라는 것은 마음이기에

스스로도 자각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아닐까.


본문 중에 상담사가 나와 같은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가 

내담자에게 꽤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 심리상담을 받아본 나로서는 매우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나의 경우는 동성의 상담사 선생님으로 같은 동성으로서 가진

불안감등을 잘 이해하며 대화가 잘 통한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안심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반면 주변 지인의 경우는 다니는 병원이 별로라는 반응을 보이며 

병원을 끊은 경우가 있는데 혹시 몰라 내가 다니는 병원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할수 있다는건 내가 그만큼 그곳이 믿음직스럽기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처음부터 나와 맞는 상담가를 잘 찾은 모양이다.

상담을 받으며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작은 일에는 그러려니 하며

웃어 넘길수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예전에는 작은 일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아 혼자 울적해하고 

슬퍼하고 불안해하기 일쑤였고, 때로는 쉽게 광분해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고나면 그 후에 꼭 짜증을 덮어쓴 상대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나를 미워하고 나는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구나하는 마음이

덮쳐왔다. 그런 감정들이 오래되다보니 자연스레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고 죽고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우리는 어쩔수 없이 쌓이는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있다. 

특히 서비스직은 심한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사회생활'이라는

일종의 사회룰 때문에 자신이 아프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자신의 나약함으로 몰아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결국 병이 나고 병이 난 이후에는 고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일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렵고 난해하고 재미가 없는 소재일수 있다. 

그럼에도 프로이트의 책이라던가 많은 심리전문가들, 

신경전문가들이 책을 내놓는다. 이런 류의 책이 필요한 이들도 분명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차 병든 사회속에서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읽은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도 심리와 신경에 관한 동화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렵다는 사람들 읽어보니 좋았다는 사람들 반응이 판이하게 다르다.

나의 경우는 아픔을 겪은 직후였기에 많은 공감을 하며 읽었었다. 

이 책 역시 나의 아픔이라는 공통분모에서 나는 많은 생각들을 하며 

읽어 내릴 수 있었다.


나와 나의 부모님, 나의 부모님과 그 윗대의 부모님이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들을 생각하며 어렸던 엄마도 아팠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미 지나간 어린시절을 알아서 뭘하나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역사를 배우 듯, 우리 자신의 과거를 아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나 자신을 좀더 이해하고 사랑할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고 

더 나아가 가정을 일굴 사람들이라면 어린시절의 나 자신을 이해한 만큼 

내 아이를 잘 이해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없는 과거는 없다.

나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들이 내가 기억 못한다고 해서 절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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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으로 존재감을 무시당하거나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도 트라우마는 남는다.

이것이 발달 트라우마의 특징이다. - 본문중


나의 생각 :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사나 윗사람을 통해 습관적으로 당하는

무시들이나 상처들이매일 매일 쌓여가는데 정작 우리는 느끼지 못하다가 

(혹여는 누구나 그런거지 라며 쉽게 생각하고 지나칠때) 나중에 크게

아프게 될 때에야 비로소 알게된다. 

그것이 깊게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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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슬픔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즉,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본문중


나의 생각 : 아무리 튼튼한 댐도 무너지는 때가 있다. 

너무 많은 폭우가 쏟아져 방류량을 넘어섰을때 벽에 균열이 가게 되면

결국 댐은 무너지고 모든것을 삼켜 엉망으로 망가트려놓는다. 

트라우마는 그런 댐과 닮았다.


조금씩 차올라서 단지 위기 의식이 없을 뿐, 댐처럼 트라우마는 

언제고 우리를 범람해 우리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날이 오게될수도 있다. 

그것이 자신의 파멸이든 혹은 미움의 상대를 향한 파멸이든 혹여는 

그저 주변을 향한 분노이든 무엇이 되었든 그렇게 되기 전에 스스로가 

조절이 될수 있도록 살피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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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모든 주의력을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과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친절하고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저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 본문 중


나의 생각 : 나에게 나쁘게 한사람이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처럼 나 역시 그러한데 남에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나쁘게 한 사람과 끝까지 좋은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나에게 친절한 사람 혹여는 내가 먼저 친절하게 한 사람과는 꾸준히

좋은 관계이거나 좋은 관계인 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좋은것을 생각하며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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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감정 하나가 좋은 경험 아흔아홉개를 덮어 버리는 것을 경계하라!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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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 어른인 척 말고 진짜 느낌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기
박산호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어른이 되는건 어렵다.

이 문장을 듣고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미 스무살이 넘으면 어른인데 어른이 되는게 어렵다니 그 무슨 소린가 하고 말이다.

언젠가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아직 내가 어른이라는 자각이 들지 않는데 시간이 나를 등떠밀어 어른으로, 더 어른으로

계속 보내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네 부모님들 역시 이런 마음으로 어른이 되어 우리를 낳고 키우며

여전히 마음속에 어른 소녀와 소년의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부모님이 나보다 한참 어른이라도 내 눈에 어리숙하고 천진난만하며 또한 답답한 아이같은 모습이 보이는건

어쩌면 시간에 등 떠밀려 살아오며 아직 제대로 영글지 못한 부분이었던게 아닐까.

아이의 시점에서 어른은 이렇다라는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시준에서 벗어나면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어른도 우리가 만든 모든 기준에 100% 부합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교과서적인 어른의 기준은 말그대로 교과서적인 만점의 기준이니 말이다.

작가는 프리 번역가로서 이혼이란 아픔도 겪고 아이와 함께 타국에서도 생활을 해본 만큼

다양한 삶의 굴곡을 겪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오며 본인이 느낀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모습들을 자서전처럼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라는 부분들과 이런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들로 이런 어른이 되지 말자라는 생각들이 곳곳에 보였는데 공감되는 부분들이 참 많았다.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나의 경우도 때론 막무가내 꼰대 어른들 덕분에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고

반대로 어린 사람들에게 했던 내 행동들에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런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컨트롤이 어렵다. 그래서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몰론 내 기준에서도 한참 벗어난 상식밖의 어른들도 때때로 있는데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

단락의 시작 부분에 어느 작가, 혹은 어느 명인의 좋은 글귀들을 얹어둔 부분도 꽤나 마음에 들고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인생의 좋은 언니가 들려주는 '알아, 너도 어른으로 힘들지?'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아이의 시절은 고작 20~24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후의 삶은 오롯이 어른으로서 견뎌내고 걸어가야 하는 삶이다. 어릴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을 보며 아이일때가 좋은 거라던 어른들의 말이 떠오른다.

좋고 안 좋고는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일이지만 아이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 등떠밀리듯 어른이 되는 날이 오고야 만다. 그러니 아이일때는 아이로서 많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그렇게 즐거웠던 추억을 발판삼아 멋진 어른이 되어가면 좋겠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달라진게 없어도 좀 더 어른이 되고야 만다. 그러니 기왕에 어른에서 더더욱 어른이 되어야 하는게 세월이라면 좀더 현명하고 좀더 지혜로우며 좀더 여유로워보이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상하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힘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뭔가 좀더 강해보인다. 그런걸 연륜이라고 하는 걸까.

삶의 나이가 영글어 잘 익은 어른이 되는 것. 썩은 과일 같은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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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실패로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에 대한 공포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라도 되여야 할 것 같은 강박을 안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발더둥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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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망므 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 본문 중,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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