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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삶과 기록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중의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삶이 자기네들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낀 중년 남자들은 비탄에 빠져 탄식했다.
남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퍼지기 시작했고, 초점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대한민국의 현실로 옮겨갔다.
어쩌다 이런 일들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소설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넣어놓았구나라고 라는 생각에 혀끝이 쓰다..
내가 아직 한참 어릴적에는 뉴스에 살인사건이 한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엄청난 이슈가 되던 시절이였다.
살인사건은 의례 치정사건이라던지 돈문제가 엮인 사건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길가다가 모르는 이들에게 칼부림을 당할수도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어릴적 일본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출근길에 트럭으로 지나가던 행인을 치고 차에서 내려 칼로 무작위로 사람들을 해친 사건..
전혀 모르는 사람을 길, 그것도 대로에서 여럿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이였다.
하지만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적잖이 일어나는 하루 이틀 정도만에 잊혀지는 기삿거리다.
타인의 행복을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보던 질투의 시대에서
이제는 정당한 폭력의 대상으로 가해자들이 난무하는 폭력의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마치 술을 먹은것이 자랑이라도 되는 듯 피해자들이 행복해 보이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듯...
소시민이 소시민을 폭행하고 살해한다...정말 그 피해자는 행복하기만 했을까?....
똑같이 힘들었지만 그들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좀더 긍정적이려고 노력하고
더 웃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였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너무 힘든 육아에 지치고 지쳐 괴롭다가도 아이의 웃음 한번에 해맑게 얼굴 가득 웃음을 짓는 어머니라던지,
거칠대로 거칠어져 투박해진 손이 그간의 고생을 보여주듯 관절염으로 퉁퉁 부어 아프지만
자식의 애정어린 전화 한통에 웃음을 짓는 노모라던지,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당장이라도
어딘가에서 떨어져 사라지고 싶지만 친구의 작은 위로에 눈물 대신 웃음을 짓는 학생이라던지...
나이가 어리든 적든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다 힘들다..
그럼에도 행복하려 노력을 하는 것이지 절대 매순간 매일 평생을 행복하게만 지내는 이들은 없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가해자들의 사냥감이 되어야만 할까... 원망스러운 사회다..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싶어 늘 노력한 한사람이였던 그들이 왜 피해를 입어야 할까..
여기 그런 가해자 남자에 의해 가족을 잃은 소년이 있다.
알렉시티미아.
그럴듯한 멋진 말 같겠지만 감정 표현 불능증이란 이름의 병을 소년은
태어난 순간부터 타인과의 감정 교류에 투명한 벽이 존재한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소년에게 끝임없이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한 공부를 시킨다.
남들에게 평범한 것들을 소년은 습득을 통해 습관으로 만들어야만 남들과 같아 보일수 있다.
남들과는 다른아이..
남의 슬픔과 분노에 대한 공감이나 누군가와의 이별이 얼마나 아픈지에 대한 부재는 소년으로 하여금 남들과는 다른 비정상이란 단어를 심어준다. 그래서 노력하려 했다. 평범함을 배우기 위해.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내게 그 지난한 교육을 시킨 것도, 내가 그 희생양이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사귀어 무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다니며 무리를 짓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희생양을 찾는다.
본능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확하게 찾아낸다.
그래서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더더욱 무섭다.
괴롭힌다는 문제에 대해 악의성이나 얼마나 잔혹한지에 대한 강도를
아이들 기준으로는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유달리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대게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학우이거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이거나
집안 사정으로 좋은 옷 좋은 학용품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였다.
처음엔 머리를 톡톡 때리는 것을 시작으로 어느새 발길질이 나오고
당시에는 겨울이 되면 뒤에 난로를 피우던 시절이였는데 난로 위에 달군 십원짜리를
아이의 얼굴에 던지는 강도로 점점 폭력성이 짙어졌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웃는다..그런 지독한 짓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장난이라며 웃는다.
나는 따지고보면 방관자였다. 내가 괴롭힘당하기 싫어서였지만 어린 맘에 죄책감이 남았다.
그래서 그 친구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한다.
성인이 된 후에 우연히 길에서 그 친구를 만났을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당연하게도 그 친구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내가 인사를 했다는 것에 기쁜지 웃으며 우리가 학교 친구였느냐
그랬구나 너는 잘지내? 고마워 잘지내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누군지 기억도 못하는 학창시절의 친구에게 마음을 다해 기쁜듯이 말이다.
때리는 것과 친해지는것. 미워하는것과 용서하는것. 미움받는것과 용서받는 것은
정말 작은 찰나의 순간의 오차에서 온다..
그러니까 나는 길에서 그 친구를 보는 순간 용서 받는것과 나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항상 옳은 선택에서 갈려 옳음과 나쁨을 오가는 것 같다.
곤이라는 소년이 나온다.
그는 주인공을 심하게 때리지만 결국 남들과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과 가까이 지낸다.
서로가 평범치 않아서 끌리는 건지도 모른다.
곤이와 주인공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자꾸만 웃음이 터져 애를 먹었다.
진지한 두 소년의 대화가 왜 이다지도 개그프로같은지..
작가는 슬픔을 덤덤하게 만들면서 읽히게 하면서도 덤덤하게 웃겨주기까지 한다.
몰론 두 소년은 청중들이(독자들) 웃을줄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보면서 단순히 알렉시티미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일상에서 저지르는 많은 오류들 부끄러워해야 할 습성들이 차곡 차곡 메모되어지는 기분이 든다.
주인공을 보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곤이를 보는 것도 가슴 아프다.
특히 주인공에게 자기 엄마와 만났을때 어땠는지를 물어보는 그 대화들이..
안아주셨다는 말에 그 품이 따뜻했느냐고 물어보는 작은 음성이 꼭 귀에 들리는 것 만 같았다.
부모 멋대로 아이를 판단하는 일... 어른들의 기준에서 아이를 내려다보는 일... 그로 인해 멍드는 이들이 있다.
이 책은 세상의 어떤 이들이 우리와는 조금 다름을...그럼에도 그 다름이 사실은 정상적임을 보여주는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다르고 그렇게 다른것 또한 정상이니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자고 말해주는 것 같다.
너무 잘 알지만 우리는 쉽게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릴적부터 무리를 지어 우리는 그렇게 다름을 배척하고 이상히 여기고 괴롭힌다..
언제 끝날수 있을까...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엔... 아마 그런 오류는 늘 불가항력으로 일어날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곤이가 주인공을 변화시키고 주인공이 곤이를 변화시켰듯이..
먹먹하면서도 미안하고 그럼에도 따뜻한 책이다.
사실 초반에 표현불능증이라고 해서 사이코패스같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 못하는 것에 관한 지독한 책일지도 모를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따스함을 안겨준 책이라 이 책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널 그런 책이라고 속단해서 미안하다..
알렉시티미아..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