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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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12년, 취재 11년, 집필 7년

작가의 시간들은 그렇게 천천히 그럼에도 빠르게 다듬어져 아름다운 선율을 글자로 한음 한음 지어냈다.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는 네명의 주인공들과 그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

그리고 스텝들의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담아냈다.

벌을 싫어하는 나지만 제목의 한 단어인 "꿀벌"과 "피아노"를 보았을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막심 므라비차의 왕벌의 비행이였다.(여왕벌의 비행이라고도 한다)

피아노를 배워본 적도 없거니와 피아노의 그 흔한 클래식 음악들 조차 이름을 모를 정도로 클래식에는 문외한 나였지만

우연히 듣게 된 막심의 왕벌의 비행은 한동안 매일 듣던 피아노 곡이였을 정도로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주었다.



양봉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피아노를 가젼본 적이 없는 소년 진.

한때는 천재 소녀로 명성을 떨쳤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피아노계에서 모습을 감췄던 소녀 아야.

늦은 나이지만 다시금 도전하는 청년 아카시.

그리고 스타성이 충분한 그럼에도 교만하지 않은 혼혈소년 마사루.



중점이 되는 네명의 이야기와 더불어 피아노를 위해 살아가는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피아노 선율과 함께 아프기도 슬프기도 그리고 즐겁기도 했다.



저들은 어렸을 때부터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저 무서운 검은 악기를 마주하며 보냈을까

아이가 누려야 할 즐거움을 얼마나 참아가며 부모와 어른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왔을까.



이 대목에서 떠올린 것은 무수히 많은 한국의 천재들이였다.

어린나이에 성악에 두각을 나타낸 임형주와 조수미, 발레리나 강수진

그리고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피겨의 김연아와 수영의 박태환 등 많은 스포츠 선수들

그들의 영광이 누군가에게는 쉬이 어린 나이에 얻은 영광이라고 해도 그들의 연습량을 본다면 그들은 결코 쉽게 얻은 것들이 아님을 안다.


매일 매시간 매초 그들은 자신들의 꿈에만 몰두한다.

피아노에 몰두하는 이 많은 이들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극히 일부만 그 노력과 재능을 인정받는다.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 


소진 증후군, 스무살이 넘으면 일반인..

예술이나 스포츠에는 특히나 이 공식이 많이 사실화되어 많은 재능자들을 슬럼프와 고독의 길로 안내하곤 한다.

어릴 적 두각을 나타낸 재능이 끝까지 그 사람에게 남아있어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들어보렴. 세상은 음악으로 가득하단다.

들어보렴, 진. 귀를 기울여봐. 세상에 가득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음악을 낳을 수 있는 법이니까.



생전에 피아노에서는 전설로 남을 피아니스트이자 많은 이들이 스승이 되어주길 바란 유지 폰 호프만은 쉽사리 제자를 키우지 않았다.

하물며 부탁을 하는 재능있는 이들에게 조차도 스스로 찾아가서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그가

딱 한 번, 딱 한 명 스스로 찾아가 피아노를 가르친 이가 있다. 열여섯세의 가자미 진. 

호프만은 그를 피아노계에 들이닥칠 폭탄이라며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도록 친히 추천서를 써 보낸다.

그리고 그가 준비해둔 폭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탄이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다.


천계영 만화가의 오디션이 간간히 떠올랐다. 특히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진 캐릭터인 황보래용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흔한 소년이 막대기로 난간기둥을 치며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음악가에게 그것은 천재성이 드러나는 박자감각의 음악이였다.

황보래용은 그저 즐겁게 난간기둥을 치며 스스로가 내는 음악에 즐거워하던 아이였다.

천재도 대단하지만 그런 천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이들도 대단한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던 예술, 특히 피아노에 관한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잘 모르는 분야이기에 알게 모르게 접하거나 듣게 된 장면들로 책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받아들일수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은 누군가에는 어려울 수도 있을거라 예상한다. 

방대한 약 7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과 피아노 선율을 문장으로 글로 나타낸 부분들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책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읽다보면 금방 이 책을 읽어내릴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곳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 특히 콩쿠르 4인방이 정말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 피아노계에서, 아시아계에서 많은 비율의 천재들을 양성하고 있는 우리 한국에 경의를 표해본다. 

한국이 피아노계에서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인정 받고 있음에 자랑스럽기도 하고 

피아노 이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존재함에 가슴이 뜨겁다.

지금도 연습에 매진하며 소진 증후군에 불안해 할 많은 천재들, 그럼에도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많은 피아노계의 천재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아름답기만 하기보다 피아노계의 이면도 보여주며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수 있게 해준 작가의 책이 고맙다.

사실 나는 주변으로 부터 "너무 캐릭터에 몰입하지 마"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야의 담담한 듯 보여주는 그녀의 상황들에 사실 책을 읽다 자주 티슈로 눈가를 훔쳐야했다. 


경기 도중 혹은 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가족의 죽음을 겪은 선수나 예술가들은 사실 굉장히 괴로움 속에서 자신의 길을 걷는다.

당장 가족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과 이 날을 위해 노력한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도움을 생각하며

많은 갈등을 겪고 그로 인해 자신의 컨디션을 이어가지 어렵다.

대중들의 관심과 기대도 한 몫을 한다.

그들의 삶이지만 오롯이 그들만의 삶이 아니다. 

예전에 김연아가 어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는 제 꿈이기에 달리지만 제 꿈을 위해 움직여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다. 

그들분들의 꿈이 아닌데 내 꿈을 위해 노력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고 참 감사하다.


아야가 짊어진 마음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피아노계를 도망치듯 떠난 자신을 아직까지 기억해주는 많은 이들.. 

그녀가 다시 피아노계로 돌아오길 바라고 도움을 주는 이들..

대중들은 어떤이는 악의로 어떤이는 호의로 그녀의 부활을 숨죽여 지켜본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지구 차원의 가십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정보들과 가십들이 가득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넘어지더라도 가십에 상처받지 않고 일어서는 힘이 

대중에 노출된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지도 모른다.

인생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의 삶에서 넘어지고 도망치고 그러다가도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들이라도 다르지 않다. 그들도 우리도 상처로 넘어지기도, 나이에 절망하기도, 재능에 위구심을 갖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이야기지만 결코 예술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웃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특히 아야와 마사루의 어린시절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의 어린시절의 귀여움도 책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너무해 너무해 함께 라흐마니노프를 연탄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자고 했잖아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던 

어린 아야가 너무 사랑스러워 슬퍼하는 아야에겐 미안하지만 웃음이 났다.


누군가의 인생의 고통이 녹아있어 무겁고 슬프기도, 그리고 순수함에 사랑스럽기도 한 소설이였다.


온다리쿠의 책은 유명함에도 사실 제대로 읽어본 것은 꿀벌과 천둥이 처음이였다.

그녀의 문체가 이런 따스함이라면 앞으로 그녀의 책을 좀더 믿고 접할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어쩌면 온다 리쿠가 그들 피아니스트들의 삶에 박수와 용기 그리고 존경을 표하는 사랑의 헌정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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