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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평점 :
경찰 공무원 지망으로 공부하고 있지만 형의 날이선 걱정소리를 들어야 하던 형진은 어느날 자신의 집앞에서 무언가를 뿌리는 항공점퍼 입은 사내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이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을 앗아가고 많은 것을 바꿔놓는 순간이 되고 만다. 사내와의 실랑이 중 형진은 얼굴이 불타는 고통을 겪고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자신들이 살던 작은 집은 불타사라지고 그 안에서 잠들었을 어린 여동생 또한 영영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자신이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심지어 그 방화범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해 얼굴까지 잃었지만 경찰들은 단순 화재사고로만 결론 내리고 형진은 그렇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홀로 노숙자로 살아간다.
그 방화범의 소행으로 보이면 앞뒤 구분하지 않고 불난 곳으로 동분서주하던 그였지만 어느새 잠잠해진 방화범으로 인해 형진은 더더욱 세상속에서 외로이 하루 하루를 벼텨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형진을 찾아온 여성은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하며 형진과 그 방화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함께 이런 저런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위험이 다가오는데...
한국의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일본 소설보다는 독자가 탄탄하지 않다는게 나의 생각이지만 점점 많은 작가들의 노력으로 인해 한국의 추리소설도 점차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곡의 경우는 꽤 탄탄하면서도 시선이 이어지는 가독력이 있는 책이다. 정의감이 컸지만 그 정의감이 짓밟히고 야금야금 삶에게 먹혀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형진을 통해 그럼에도 자신의 정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나를 지키는 일임을 다시금 통감한다. 부조리함을 헐뜯으면서 결국은 누구나 너도나도 하니까 부조리에 수긍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부딪혀봐야 계란에 바위치기, 깨지기만 할뿐이라는 경험을 통해 쉽게 포기해버리는 정의를 형진은 온몸으로 부딪혀 맞선다. 그 끝이 결코 행복한 해피엔딩이라고만은 할수 없기에 서글픔이 더 해지는 결말이었지만 말이다.
일본의 소설에도 [정]이란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문화와는 조금 다르다.
일본은 작게 흐느끼며 마음이 울리는 식의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한국은 대성통곡을 하며 가슴이 쩌릿하게 아플만큼 뜨거운 식의 스토리를 좋아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뜨끈한 국밥같은 [정] 말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정혜가 울때는 왜 그리 나도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던지..
그 사람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그 아픔의 무게를 통감하는 부분은 참 우리네 정서란 생각이든다. 정혜라는 캐릭터 덕분에 좀더 활기차게 재밌게 스토리를 읽어내릴수 있어서 좋았다.
작은 폭력은 폭력일 뿐이야. 시정잡배나 불량 경찰들이 휘두르는.
그러나 큰 폭력은 명분이자 정의일세. 성폭행범 하나를 피땀흘려잡고 고생끝에 형을 때려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수십명을 태워 죽이니 민중의 영웅이 됐네. 그들을 위애 분골쇄신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
명분이자 정의라는 명복으로 행사되는 큰 폭력이 얼마나 잔혹한 결말을 가져오는지를 이미 우리 역사를 통해 많이 배워왔다. 폭력이 누군가의 명분이자 정의로 포장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현 사회를 살짝 비꼬아 갈아넣은 듯한 느낌도 들어서 읽는내내 많은 생각들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때, 진주 방화 살해사건이 일어났다. 뉴스에 막말을 일삼은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나왔다. 참담하면서 현실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한숨이 나온다.
형진을 통해 정의감이 영화처럼 많은 드라마틱한 해피엔딩을 주지 않는다는 현실감과 그럼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살아갈 사회를 위해 정의감을 상실하지 말아야 할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씁쓸하다. 그럼에도 지켜야 할 것들을 우리의 손으로 왜 지켜야 하는 것인지를 수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