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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권력자 - 무도한 시대, 무도한 권력자들의 최후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2월
평점 :
KBS R에서 <아시아의 창>이라든가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등의 프로그램을 이끈 박천기 PD의 저서입니다. 세상이라는 게 항상 정도(正道)대로만 운항하는 게 아니라서 때로는 시대착오적인 독재자나 어리석은 고집쟁이가 분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들이 언제나 그 저지른 우행, 악행에 걸맞은 벌을 받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는 끔찍한 말로를 맞아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부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이런 무자격자들을 최고권좌에 올려 놓았던 그 백성들도 책임을 공유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도 이 책은 독자에게 일깨웁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에는 모두 19명의 독재자 그 사연들이 실렸습니다. 제12장과 17장에서는 여러 명이 함께 커버됩니다. 맨처음에 나오는 사람이 바샤르 알 아사드인데, 가장 최근에 운명이 바뀐 독재자라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입니다. 이 사람은 p18에 나오는 대로 2000년에 부친 하페즈 알 아사드를 이어 정권을 잡아 24년간 권좌에 있다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시리아의 군사적 균형이 깨어지자 갑자기 정권이 붕괴하여 현재 러시아에 도망한 처지입니다. 부친과는 달리 이미지도 샤프하고, 안과 의사라는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많은 교육을 받았기에 처음에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 하는 짓은 부친을 능가했는데, 특히 어린이들이나 무고한 자국민들을 상대로 화학 무기를 쓰는 등 정신이상을 의심케 할 만큼 악질이었습니다.
저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 3 비상계엄 사례를 거론하며, 비슷한 케이스로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과 현 아르세 대통령의 갈등 와중에 벌어졌던 2024년 6월의 호세 수니가 장군의 쿠데타 미수 사건을 제2장에서 분석합니다. 역사에서 어떤 정치적 교착 상태가 지속될 때, 최고권력자가 친위 쿠데타를 벌이는 건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났습니다. 성공시에는 무서운 독재가 시작되고, 이처럼 불발로 그칠 때에는 권력자가 그 자리에서 끌려내려집니다. 모랄레스는 4선을 시도하다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려 좌절했고, 그 여파는 현재의 정정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체 게바라가 잡혀 사살된 곳도 이곳 내륙국 볼리비아라는 점 다시 상기합니다.
공산권은 보통 1당의 독재이지, 어떤 카리스마적 리더가 개인 숭배(cult of personality)를 이끌며 나라와 체제를 장악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스탈린, 마오도 그래서 사후에 비판받았으며, 공산국가에서 이념과 명분이 아나라 사람이 독재를 한다면 그건 자기부정 자기모독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이하게 20세기 후반 공산 루마니아에서는 차우셰스쿠라는 개인이 공산당을 등에 업고 사실상 1인 독재를 펼쳤는데 국민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수완이 좋아서 브레즈네프 당시 소련 서기장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 때에는 소련의 지시를 무시하고 참가를 강행했는데 미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체조 종목을 휩쓸어 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경제난이 심화하자 그는 권좌에서 끌려내려와 일가족이 함께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자국민 수백만을 죽인 폴포트의 크메르 루즈가 저지른 만행은 1986년 <킬링 필드>라는 영화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폴포트 세력은 군사적으로 몰락하고 심판을 받았는데, 헹삼린, 시아누크 전 국왕 등과 함께 내전 당사자 중 하나였던 훈센은 1980년대에도 실권자였고 최근까지 나라를 다스리다가 작년 8월 그의 아들 훈마넷이 수상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p63). 과연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중일까요? 폴포트가 1998년에 없어졌다는 사실 하나에 캄보디아 국민들은 그저 만족해야 할까요?
중국의 마지막 황제를 선통제 푸이(부의)라고 보통 알고 있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대작 영화가 이런 인식 확산에 큰 몫을 했겠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p127에서 위안스카이가 1915년에 자칭 홍헌제로 황위에 오르니 그를 중국의 마지막 황제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독자인 저는 "푸이도 일인들에 의해 1930년대에 만주괴뢰국 황제가 되었으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저자도 p129에서 그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다시, 만주국은 China proper가 아니니, 한국과도 깊은 연이 있는(물론 악연입니다) 위안스카이에 마지막 황제 타이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농담이고, 그렇게 따지면 왕망, 원술, 이자성, 홍수전에게도 28사 본기를 따로 만들어 줘야 하겠습니다.
조지 W 부시는 부친의 후광을 입고 기행으로 사람들 관심을 끌어 재선까지 해냈는데 결국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등을 제외하더라도, 지금 공화당이 종래 아웃사이더였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이가 밀고들어와 완전히 그에게 장악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기존 공화당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런 사람들은 공화당 안에서 설 땅이 없지 싶습니다. 이게 다 조지 W의 어리석은 실정 때문 아닐까요? 1장의 바샤르 알 아사드에 대해 그는 자신의 임기 내내 적대적이었고 12장에 나오는 찰스 테일러(p173)에 대해서는 간접 축출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13장의 사담 후세인은 그가 직접 전쟁을 일으켜(p188) 사형에 이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유의 친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저자는 챕터 곳곳에 언론인으로서 방송 연출자로서 개인적으로 체험했던 여러 포인트를 회상하는데 이 역시도 흥미로웠습니다. 책 앞표지에 사진으로 게시된 자들 중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로 다가오는 건 무아마르 카다피(16장)인데, 6장의 베니토 무솔리니처럼 말년에 아주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무솔리니는 이 책에 실린 다른 잔챙이(?)들과는 급이 다르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악인으로서도 거품일 뿐 다른 멤버들의 한심한 그릇 그 수준을 결코 못 넘었던 작자다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