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감 국어 비문학 350제 (2018년) - 제대로 분석하고 훈련하는 수능국어 기출 N제 수능국어 기출 N제 시리즈 (2018년)
김건우 외 지음 / 레드카펫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비문학(공식 명칭으로는 "독서" 과목) 영역 지문은 많은 학생들에게 좌절과 근심을 안기는 수능의 큰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제가 참 이런 문제를 볼 때마다 놀라는 건, 어른들이야 그간 관련 분야에서 소양과 지식을 쌓고 사유를 거쳤기에 풀어낸다고 해도(그나마 못 푸는 사람이 99%죠. 주워들은 풍월로 모집인처럼 어처구니없이 아는 척 흉내, 시늉을 낼 뿐이지), 애들이 이런 걸 어떻게 손대느냐는 아찔한 만한 난이도입니다. 사실 어떤 문항은 설령 내용을 몰라도 개념 표지 방향성만 분석하면 답이 절로 나옵니다. (이전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일종의 IQ 테스트이며, 이런 성격으로 이른바 "수학 능력 검증"이라는 명분을 교육 당국이 마련하는 겁니다) 그렇다 쳐도, 이처럼이나 까다로운 사항 설명과 취급은 그 겉모습만으로도 어린 수험생의 기를 죽이기 충분합니다.



그래서 기출 문제는 그 선별도 중요하고(수능이 실시된지 24년이 지났으므로 기출 자료 자체가 방대하게 축적되었습니다), 해설도 중요합니다. 수험생들은 아직도 기출을 반복 풀이하면 감각이 쌓이리라는 막연한 미신에 사로잡혀 있지만, 누차 강조하건대 한 문제를 풀어도 열 문제 스무 문제를 푸는 효과를 보아야 시간을 올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레드카펫 기출보감은 문제의 선별, 출제 의도를 올바로 파악한 해설, 나아가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비전과 지침 제공" 면에서 정말 탁월합니다. 애들에게, 이 참고서 좋은 걸 친구한테 절대 소문 내지 말고 혼자서만 알고 있으라고 단단히 다짐을 주고 싶은 생각이 다 듭니다. 아, 하긴 그럼 출판사에선 안 좋아하시겠네요 ^^ 그런데 수험 세계에서는 이기적으로 구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서 말이죠 ㅎㅎ

자기지시적 명제의 오류는, 20세기 전반 유럽 지성계를 거의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간 충격적 발견이었습니다. 물론 "크레타 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이미 당대부터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래 이성과 과학으로 우리 사는 세계의 의문과 모순을 남김 없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확고히 자리잡았더랬습니다. 이런 믿음을 불과 수백 년 만에 뿌리부터 흔들어 놓은 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이며, 그 발상의 기초는 저 에피메니데스 역설에 어떤 진릿값도 부여할 수 없다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충격적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이 자기지시적 문장이 논리학이건 수학이건 모조리 도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괴델에 앞서 이미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이 주목한 바 있었습니다. 그게 그저 걱정이 아니라 치명적 균열의 징후라는 건 괴델이 증명해 냈지만 말입니다.

p104에서 소개된 2017년 9월 모평 문제는 이런 고전파의 한계 봉착 사실과, 그레이엄 프리스트가 제시한 비(非) 고전논리학의 한 입장을 설명합니다. 그레이엄 프리스트는 영국의 논리학자인데, 이른바 paraconsistent logic의 전도사 중 한 명입니다. (이걸 한국학계에서는 "초일관성주의"로 번역하는 듯합니다) 간단히 말해, 자기지시적 문장 중 역설을 초래하는 이른바 "거짓말쟁이 문장"에 대해서는, 참과 거짓이라는 진릿값을 동시에 부여하자는 제안입니다. 참이면 참이고 거짓이면 거짓이지 그 중간이나 동시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전학파의 대전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학파죠.

문제는, 이 지문을 인문이나 철학 영역에 분류한 게 아니라, 이 책에선 "과학" 영역에 넣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지문이, 논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게 주 목적이 아니라(물론 그 용도로도 훌륭하지만), 바로 양자역학의 경험적 타당성을, 전혀 다른 분야에서 뒷받침하는 사례로 성격 규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프리스트 자신도 "특정 위치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확률분포상으로만 존재하는) 입자 상태를 서술한 양자역학에의 한 방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 대목은 이 지문 중에도 나옵니다.

이처럼, 어떤 지문에 포함된 방대한 정보의 나열에 휩쓸릴 게 아니라 제대로 맥을 잡고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야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음은, 이 책이 편집 단계에서부터 벌써 학생들에게 귀띔해 주는 셈입니다. 맥락을 파악할 때에는 그 양에 현혹될 게 아니라, 질적인 부분에 정확히 과녁을 잡아야 함정에 안 빠질 수 있습니다. 답은 ②입니다만, ⑤가 꽤 매혹적인 오답이죠. 책에서는 "LP가 언제나 타당한 건 아니"라고 한 대목을 근거로 듭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것보다 "모든 자기 지시적 문장" 부분이 더 결정적인 잘못이라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 "모든"이 아니라 "거짓말쟁이"가 문제거든요.



흔히 출간되는 대중 과학서처럼, 심오한 원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간단간단히 뇌과학 최근 연구 성과를 사항식으로 나열하는 지문입니다. 이런 건 영역이 뇌과학이라고 해서 대뜸 괜히 겁만 먹지 않으면 누구나 쉽게 한눈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경제나 인문 등 문과 영역 문항보다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그저 과학 기술 지식이 난해하고 우월하다는 어리석은 대중의 통념 때문에 수험생들이 위축될 뿐입니다. 그래서 대중서로부터 몇 문장 뽑아내어 소화도 안 된 지식을 토해 놓고 잘난척하는 사기꾼들이 설치는 거죠.

이 책은, 해설에서 지문의 "문제 부위"를 일일이 짚어가며, 왜 그 대목에서 문제를 푸는 결정적 단서가 발견되어야만 하는지 아주 친절하고도 정확히 설명합니다. 1번 문항의 경우도, 특히 ⑤에서 "...형태면 유사성만 지적했을 뿐 기능성 언급이 없다"며, 고민깨나 했을 학생들의 가려운 대목을 아주 시원하게 긁어 줍니다. 해설이란 이처럼, 빙빙 돌려가며 문제를 문제로 답하는 게 아니라, 한 마디 말로 핵심만 명쾌하게 지적해야 제 할 일을 다하는 겁니다. 대성학원 박우섭 강사님처럼 전국구 베테랑만이 증명할 수 있는 명강사의 스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매 문제 세트마다 1차 풀이 시간, 2차 풀이 시간을 따로 기록하는 란이 있어서, 학생 자신이 얼마나 수월하게 문제를 정복했는지 향상 여부를 점검할 수 있게 돕습니다. 해설 코너에서는, 이 책의 최고 장점인 "오답 팩트 체크" 박스를 반드시 정독하십시오. 오답이 왜 오답인지 올바로 알아야, 정답이 손쉽게 눈에 띄는 법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