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읽는다 삼국지 100년 도감 지도로 읽는다
바운드 지음, 전경아 옮김, 미츠다 타카시 감수 / 이다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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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너무도 많은 "삼국지 마니아"들이 계십니다. 우리 북뉴스 카페에도 삼국지를 사랑하시는 뛰어난 전문가급 회원들이 많으시고요. 이때 "삼국지"라 함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부정확하게 일컫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이겠고요. 다른 하나는 본 명칭이 그것인 진수의 정사서입니다. 명청대에 완성된 모습을 갖춰간 삼국연의를 너무도 열독 애독하기에, 많은 이들은 진수의 정사서에까지 관심을 넓혀 가며 픽션에 대한 본문비평까지 시도하시는 모습도 종종 봅니다. 어떤 분들은 사마광의 자치통감 중 해당 대목까지 대조해 가며 독창적이고 예리한 평설을 짓기도 합니다.

꼭 이처럼 전문가급으로 연의, 혹은 정사서를 열독하는 분들이 아니라도, 즉 아직은 중국 역사의 가장 역동적이었던 그 시대에 대해 낯설어하고 한문 지명 인명의 행진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지금 이 멋진 책처럼 복잡한 사항들을 간단하고 명쾌한 도식화로 간추려 놓은 "컴패니언"이 혹 곁에 있다면, 훨씬 쉽게 본문을 읽어 나가실 수 있겠습니다. <삼국지연의>를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대개 인명, 지명이 헷갈리거나, 아님 그 단계는 넘어섰어도 장군들(과 그들의 책사)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구체적인 전장의 전략에서 어떻게 효력을 발휘한다는 건지 서술을 따라가기 힘들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남보란 듯 삼국지연의의 구체적인 사건, 정황 묘사를 즐겨 입에 올리는 이들도 다른 장면의 디테일을 짚어 가며 누가 질문, 논쟁을 시작하면 시원한 답을 못 내어 놓는 수가 많습니다. 마음에 드는 몇몇 장면에 마니아처럼 몰입하여 전문가처럼 해설할 수도 있지만, 이 방대한 소설 전편을 놓고서 일관된 부연 설명과 주석을 달 만한 도사님들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혹 삼국연의를 통독한 이들 중, 이 책 한 권만 곁에 있어 준다면, 도원결의에서 오장원의 장렬한 폐막까지, 혹은 관도에서 적벽까지, 어느 한 지점을 턱 짚어도 진정 제갈량이나 순욱 주유 사마중달처럼 청산유수 같은 변설이 입에서 술술 나오게, 텍스트에 대한 안목이 훤히 밝아질 듯합니다. 정말로요. 그만큼 자세하고 내용이 알차며, 수회독을 마친 마니아들이 항상 헷갈릴 만한 사항을 잘도 알아서 긁어 주는 놀라운 "족집게 참고서"입니다.

우선 pp. 64~65를 좀 보죠. 연의에서 사실상 주인공이라 할 유비가 자립 기반을 (無로부터)일궈나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혹 명청대 이전에 생존하여 역사 전반에 달통한 교양 높은 선비라고 해도, 정사서만 읽어서는 유비에 대해, 마치 성장 소설의 히어로처럼 인생의 성취를 가꿔 나가는 과정을 놓고 감정 이입을 하긴 힘들 것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벌써 조선 후대 이래) 그토록 연의에 열광하는 건 "주인공" 유비의 매력이 그만큼 크게 작용해서입니다. 헌데, 왜 유비가 손바닥만한 땅뙈기 하나를 마련 못 해 그처럼 고생했는지, 왜 특정 시점부터는 운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는지는 사실 누구 눈에도 의문입니다. 심지어 조조마저도 그의 그릇과 인품과 웅대한 포부를 인정했는데도 말입니다. 이 배경은, 당대 중국 대륙 구주가 어떠어떠한 세력가들에 의해 과분되었는지를, 지도를 통해 살펴 보아야만 정확한 파악이 가능합니다.



조조는 부친의 원한을 갚는다면서 서주에서 대거 학살을 저질렀고, 이 경위는 비교적 상세히 연의에도 기술되어 있습니다. 헌데 이 사건과 장평관 전투, 이각-곽사의 난, 예주 정벌과 무평 전투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는 소설을 꼼꼼히 읽어도 이해가 분명해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건은 삼국연의에 생략되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연의는 독자(청중)이 충분히 감정이입할 만한 인물을 중심으로, 의리와 충절의 승리, 악인스러운 잔꾀의 패배 등에 드라마틱하게 초점을 맞추긴 하나, 서사의 흐름에 몰입하는 중 맥락을 잠시 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하긴 이처럼 다양한 목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텍스트 포맷이란 존재가 불가능하겠지만요. 이 때문에 이런 멋진 책이, 도표와 지도를 통해 일목요연히 정리해 주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죠.

삼국지에는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유표는 의심 많고 안정감이 떨어지는 인물로서, 유현덕에게 대승적 관점에서 일정한 정치 기반을 양보하지도 못하고, 기량이 떨어지는 후계자를 내세운 탓에 결국 영지가 와해되는 운명을 자초한 정도로 우리 인상에 남습니다.



허나 사료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면, 그는 (마치 이후에 위나라에서 실권자로 군림한 사마의처럼)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청류파 관료 출신이었고(사마의와는 대략 부자지간 정도 나이 차가 납니다), 형주로 부임한 후에는 일거에 정치적 평화를 도모한 효융의 면모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정확하고 공평한 면모를 독자에게 고루 소개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책은 정확하고 상세한 지도를 담았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실질적이고 유기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인물 사전 구실을 겸합니다.

관도의 전투 대목을 읽으신 분들은, 이 대회전이 이후 중원의 역사 향방을 가름한 이정표와도 같다는 평가에 다들 동의합니다. 어떤 이는 "당대 인류가 짜낼 수 있는 모든 꾀와 책략, 문명의 이기가 모두 동원된 일대 결전"으로도 비정하는데, 역시 그 과정을 살펴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책에서는 관도전투가 종료된 후, 원소는 허도로귀환하고 유현덕은 예의 그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는 대목을, 상세한 지도와 함께 설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나 치명적이고 규모 큰 패배를 당한 후에도 아직(비록 잠시 동안뿐이지만) 세력을 유지하는 원소의 정치적 자산이 얼마나 방대했었는지 다시 감탄하기도 하죠. 단 왜 이 시점에서 유현덕이 조조에게 다시 몰리게 되고, 처참한 양상으로 패주했는지(그래서 형주로 향했는지)는, 지도를 함께 고찰해야 그 정확한 동기와 추세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면, 공도와 유비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배경, 조인의 승리가 얼마나 향후 판세에 크게 기여했는지의 판단, 패주한 유현덕이 그마나 악조건에서 세력을 추스려 피해를 최소화한 후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과정이 눈에 선히 그려지는 듯합니다.

이미 쓰러진 자에 발길질을 가하거나, 시체에 대고 부관참시를 하는 격 아닌가 같은 빈축을 사기 일쑤이지만, 조조는 원소 세력의 잔당을 토벌하는 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원소의 두 아들이 소모적인 내홍을 피하고 단결했다면 추이가 어찌 변전했을지 모를 형국이었고, 지도를 보면 설령 둘로 갈려 파쟁을 벌일망정 일거에 이를 진정시키는 게 만만치 않았겠다는 짐작이 절로 듭니다. 다시금, 조조가 얼마나 열악한 기반에서 시작한 입지전적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연의>만 읽다 보면, 뻔한 결과론이나 승자 위주의 선입견에 함몰되어 정사(正史)에의 바른 접근이 힘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예쁘고 정확히 뽑힌 최고의 지도 중 하나를 꼽으라면 p131의 컷입니다. 예전에 나온 책들에서 흐릿한 흑백 도판으로 작성된 구주(九州)의 지도는,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지명 표시가 오류를 낸 부분이 많았습니다. 허나 이 책은, 일단 거의 모든 컷이 아홉 고을의 영역과 판도를 일관되고도 선명히 포착합니다. 그뿐 아니라 색상 배치도 센스 있게 이뤄져서, 책을 열독하고 나면 눈을 감고도 중원의 강역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눈호강이란 실로 이런 경지를 두고 이르는 말이죠.



정확하게는 pp. 130~131 양쪽에 걸쳐 실린 도판인데, 왼쪽에서는 원씨 형제의 골육상쟁 과정과 몰락 개요를 텍스트와 함께 요약합니다. 오른쪽 페이지에서는 같은 시기(204~206 CE) 다른 군웅들은 어디서 뭘 했는지의 국면 포착이 역시 입체적으로 이뤄집니다. 저자는 소설상으로 과장, 극화한 승자 위주의 동선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 최고 최대의 기반을 갖춘 거대 정치 세력이, 무너질 때도 어떤 경위와 곡절을 거쳤는지 실증적으로 조망합니다. 마치 이때로부터 1200여년 후 일본 열도의 최고 실력자 중 하나인 이마가와 가문의 쇠퇴를 보는 듯도 한데, 역사의 정확한 이해와 평가는 역시 잘 고안된 지도의 도움이 필수임을 다시 실감합니다.


제가 이 책을 보며 또 한 번 놀란 건, p146의 이민족 지도입니다. 사실 이무렵은 고조선이 망한 후 대략 300여년이 지난 시점이며, 아직도 한사군의 잔재가 남아 활동했으며, 이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나면 위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쳐 동천왕에게 큰 고초를 안기기도 합니다(그래서 조조의 위나라가 한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없거나 원성을 사는지도?) 아무튼 우리 민족 역시, 중원 북방의 위와 밀접히 교통, 항쟁한 역사가 있기에, 이 지도는 더군다나 예사로 봐 넘길 수 없는 면이 있죠. "한 제국에 반역과 복종을 거듭했고, 위나라와도 대항했으며, 7세기까지 살아남았다."는 저자의 요약이 인상적입니다. 외부에서는 그리 본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고, 우리의 역사에 우리가 따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정리할지는 우리의 별개 과제입니다.

서량을 보면 마치 중국집 배달원들이 한 손에 높이 쟁반을 들고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는 모양 같습니다. 험준한 지형 때문에 두루 중원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고, 용맹스러운 유목 민족 사이에서 걸출한 호걸과 용맹한 기마 병력이 자주 배출된 지역. 물론 우리는 마등의 아들인 미소년 마초의 존재로 더욱 깊은 인상이 남은 곳이기도 하죠. 이 지도는 특히나 잘 봐 두어야 하는 게, 이후 역사인 5호 16국사를 살필 때 매우 중요한 연계점을 갖기 때문입니다.

211년쯤으로 넘어가면 조조의 기세는 더욱 거침없습니다. 위나라를 중원의 정통으로 두는 이유는, 중국인들은 그들의 인구 주류가 거주하고 물산과 시스템과 문화의 중추가 놓인 지역을 누가 다스렸는지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수완이 좋았고 단호한 결단력을 지녔으며, 이 무렵이면 지난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중원의 주요 지역이 확고한 그의 장악 하에 떨어집니다. 오, 촉과의 대립, 항쟁뿐 아니라 크고작은 반란이나 할거가 빈발했는데, 강장 밑에 약졸 없다고 여러 우수한 장수나 관료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여 질서와 안정을 찾습니다. 한편, 강남의 오 역시 여몽(우리에게는 괄목상대의 고사로 잘 알려져 있죠) 등의 활약으로 번영과 활력을 이뤄갑니다. 이 모든 과정이 역시 지도에 잘 표시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장군 칭호가 절제되어 쓰이는 편인데, 막부의 집정 총책임자에게 "정이(征夷)"다음 그저 큰 대(大) 한 글자만 달아 "쇼군(將軍)"을 일컫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특히 우리의 경우 고려 시대로 가면 상장군, 대장군, 장군 등의 직함이 매우 남발되는 걸 봅니다. 이 책 pp 238~239에는 그런 호칭 이슈에 대해, 저자의 명쾌한 관점과 분류를 통해 독자의 혼선을 정리합니다.

공명의 출사표는 유교적 질서 하에서 인신(人臣)된 자가 보여 줄 수 있는 처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는 명문입니다. 오로지 주군에 대한 충의의 표상으로 신료의 길을 곧게 걸은 그는, 국력을 총동원하여 선대로부터의 영원한 과업이었던 북벌을 도모하는데, 이때 북벌이란 대개 왕화가 미치지 못한 미개한 오랑캐에 대한 토벌을 일컫는 말이었으므로, 그와 촉한의 관료들이 스스로 자부한 정통의 긍지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짐작게 합니다.

육출기산이란 한자 성어로도 잘 알려져 있듯, 공명의 군사 원정은 실로 집요했으며, 기변의 책략이 부족했다는 등 정사서 저자 진수의 박한 평가도 남았지만 사마의가 그처럼이나 야전 대결을 회피한 걸로 보아 여튼 용병 솜씨도 사람의 한계를 넘었음이 분명합니다. 책에는 대체 기산이 어디이며, 마속의 실수가 얼마나 뼈아팠기에 이후 정세의 대종이 이 무렵 사실상 결정되고 말았는지, 천고(千古)의 후(後)에 우리 독자들의 이해를 돕습니다.

삼국지는 비록 중국 명대의 창작 문학이지만, 특히 조선 후대에 수입되어 지식층, 관료, 평민 계층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급되어 큰 인기를 누렸으며, 현재도 처세와 책략과 수신의 원칙 마련에 있어 수도 없이 인용되는 지혜와 영감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픽션의 신 나는 내러티브와는 달리, 실제 역사의 고증과 정확한 이해를 기하려면, 인명 정보의 파악과 경제, 물산의 판도까지도 함께 접근해야 합니다. 이 모든 부가 작업은, 도대체가 깔끔하고 권위 있는 지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책은 그래픽 컴패니언으로서 단 한 권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되며, 앞으로도 종이책 포맷으로는 이를 능가하는 레퍼런스 북이 나오기 힘들 듯합니다. 최고의 독서 체험이었으며, 차라리 감동적인 여행 한 꼭지를 마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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