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성장 기업의 법칙 - 세계 100대 기업을 통해 살펴보는 21세기형 경영 전략
나와 다카시 지음, 오세웅 옮김 / 스타리치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글로벌 성장"은 오늘날 경제 주체(기업, 가계[혹은 개인], 정부)에 어떤 의미를 띨까요? 어떤 논자는 이미 성장이 끝났으며, 지난시대 들썩거리는 호경기, 두툼한 지갑에서 나오는 넉넉한 소비 등으로 상징되는 고성장 시대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도 장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장이 아쉽습니다. 정확하게는 호경기, 흥청거리는 번영이 그립습니다. 국가나 지역 경제 단위에서의 "풍성한 돈의 흐름"도 그립고, 적어도 내가 몸 담은 기업만이라도 캐시 플로우 콸콸콸이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글로벌 성장"은, 기업에 소속된 사원, 자영업자, 나아가 경제 참여 인구 모두에게 희망 가득한 불빛, 별빛과도 같습니다. "성장"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분은 과연 그게 진심일지 대뜸 의심의 시선을 받는 것도 당연하지 싶고요.

한편, 이미 넉넉히 몸집을 불린, 훤칠한 신장을 갖춘 성인더러 "성장"이 필요하다고는 자주 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 이치가 국가 경제에도 적용되는데요. "성장"을 논할 때에는 개발 도상(途上)에 아직 머문 국가를 염두에 둔 게 보통이죠. 그런데 이 책은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든 국가의 거시 경제"도 일단 논의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한국처럼 무역대국 반열에 든 나라나 성장의 절정기를 벌써 지난 나라의 경제 주체들이 특별히 관심을 보일 만한 토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중년 남성들이, 청년기의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솔깃한 말에 끌리는 심리나 마찬가지라 할까요. 자연인의 회춘은 의학적으로 극히 가망이 낮은 희망사항이지만, 글로벌 성장이란 과제는 (이 책 저자의 관점에서라면) 그리 불가능해 보이지만도 않습니다. 경제란 이처럼 희망의 한 줄기 빛을 찾아 떠나는 담대한 여정이며, 여정의 마련 그 자체에 우리는 마음이 설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기업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들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경제 전문지 <포춘>, <포브스>, 혹은 <이코노미스트>나 <비즈니스위크> 등이 거의 매년, 혹은 반기별로 공표하곤 하는 100대 랭킹 기준이 있습니다. 사실 구체적으로 무슨 기준이 적용되었는지, 적용 양상이 공평하기는 했는지 꼼꼼히 체크도 안 해 보면서, 우리 평범한 독자, 대중은 그저 순위 매기는 구경꾼의 쾌감에 취해 저잣거리 아이들 참요 읊어대듯 작위적 평판의 확산에 동참합니다. 생각해 보면 좀 부끄럽기도 하죠.

그런데 이 책에서 "위대한 글로벌 성장 기업"의 기준으로 제시한 사항은,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 구체적입니다. 우선 저 어구가 꽤 길기 때문에, 책에서는 일일이 되풀이할 수 없어 간단히 G3로 약칭합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이며, 마치 G의 세제곱처럼 오른어깨 위에 첨자가 붙은 꼴인데, 글로벌(global), 성장(growth), 자이언츠(giants. 책 원문에도 -s가 붙었습니다)이라는 세 가지 범주를 가리킨다고 저자는 말합니다(p50). 즉 G+G+G가 아닌, GxGxG란 겁니다.

하나 재미있는 건, 이런 지표를 모두 충족시키고도 "비경쟁 체제"에 속해서 특혜 비슷한 걸 누리는 기업은 과연 어떻게 취급할지의 고민에서, 저자는 과감히 배제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저널 중에는 꼭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 곳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개 투자 전망 쪽 정보를 얻으려는 독자를 염두에 둬서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히, "성장을 멈추지 않고, 변화에 부단히 적응하기 위해 뭔가 배울 구석이 있는 기업"의 모범을 제시하는 게 목적입니다. 따라서, 환경이 급변하기라도 하면 바로 도태될 게 뻔한 기업은 아예 처음부터 제외했다는 설명입니다. 과연 그렇겠으며, 이 책을 꺼내 들만한독자는 "현재 승승장구하는 기업들로부터 무엇을 벤치마킹할지"를 고민하는 게 보통이겠으므로, 저자가 이런 선명한 지표를 잡고 리스트를 뽑은 건 참 현명한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같은 이치로, 금융기업의 매출은 (저자의 관점에서) 실물의 성장이라 볼 수 없고, material(원자재 등)계도 모두 배제했다고 합니다. 후자의 경우 창의력과 혁신에 의해 기업의 성쇠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호불황 여부에 따라(타의에 의해) 기업 이익의 등락이 좌우될 뿐이므로, 이런 기업으로부터도 우리가 뭘 보고 배울 게 없다는 뜻입니다.

세 가지 지표에는 각각 40%, 40%, 20%의 가중치가 부여되었습니다. 아무리 장래성이 좋아도 만년 틈새 시장에 머무는 기업은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볼륨(매출)이 필요하다는 뜻이며, 그렇다고 이익을 낳지 못한 채 몸집만 불리는 기업도 물론 곤란합니다. 저자는 단 이익계상(計上)이란 회계 편의에 의해 부풀려질 수 있으므로 20%만 반영했다고 합니다. 이 서두에서는 "기업가치 성장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으나, 이후 방대한 본문 중에 저자의 입장과 이론이 상세히 전개됩니다.


이제 논의는, 그럼 G3기업의 구체적인 공통점, 자질, 특장은 무엇인지로 넘어갑니다. 저자는 두문자 요약법으로, 글로벌 성장 기업은 한마디로 LEAP 모델에 자신을 최적화한 조직이라고 단언합니다.

책소개글에 잘 나와 있겠지만 저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복습하는 뜻에서, LEAP이 무엇을 뜻하는지 요약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L은 lean과 leverage를 뜻합니다. "린 방식"이야 현대의 모든 경영 교과서가 다 취급하는 개념이며, 불필요한 조직 군살을 과감히 제거하고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정글의 야수처럼 날렵한 체형을 유지하라는 겁니다. 그럼 뒤의 "레버리지"는 뭔가. 기업이 혁신을 위해 모든 역량을 자체 개발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집니다. 경쟁자든 협력 업체이든 남의 장점과 자원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융통성과 지혜를 발휘하라는 겁니다. 여기서 지렛대는 "협상의 추진력(간혹, 남의 약점 잡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지레를 이용하듯 내 힘의 몇 배 되는 효과를 내는 영리함을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날씬하기만 한 사람은, 설령 남은 체성분이 모두 단백질, 알짜 근육이라고 해도, 역시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힘을 못 냅니다. 이때 남의 힘을 이용도 할 줄 알라는 뜻입니다.

② E는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core competence인데, 물론 "핵심(역량) 경쟁력"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핵심 경쟁력인가. Edge와 Extension, 즉 "엣지"와 "확장"이죠. 김혜수 씨의 모 드라마 중 대사로 우리 한국인에게도 거의 일상용어가 되어 버린 "엣지(책에서는 '에지'로 씁니다)"에 대해, 저자는 "일단 튀고 볼 줄도 알아야 하며, 무색무취한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대표적인 예로 든 게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더군요(저자가 매긴 랭킹 100에서 24위입니다). 참고로 저자는 일본 분이고, 삼성이 유일하게 고전하는 시장이 일본입니다(그런 배경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공정한 평가로 볼 수 있습니다). "압도적 주특기, 특이점"으로 새겨도 좋다고 합니다.

그럼 엑스텐션은 뭘까요? 물론 한 가지 재주, 남이 범접하지 못할 어떤 특별한 장기도 있어야 하나, 그것 하나만으로는 험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란 여전히 어렵습니다. 자신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변화도 주고 다른 재주도 피우면서 소비자에게 지속저인 흥미를 끌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애플을 듭니다.

③ A. 여기서는 기업의 내적 체질, DNA를 꼽습니다. 집착력과 적응력 두 요소를 듭니다.

흔히 "미쳐야(狂) 미친다(及)"고도 하는데, 기업이든 개인이든 확실한 주무기는 전문성의 깊이에서 마련됩니다. 이것이 집착(addictive)입니다. 책에는 앤디 그로브(p83)의 말을 인용하며, "편집증 없이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 말이 처음 소개된 건 시사주간 TIME의 1996년 어느 이슈였습니다. 당시 하도 화제가 되어, 그 발언자(출처)는 잊어도 저 표현만큼은 널리 회자되는 명언이 되어 버렸죠.

역시 집착만 갖고는 안됩니다. 세상이 바뀌는데 하나에만 어리석게 매달리면 그건 장기가 아니라 저주이며 제 죽을 구멍을 파는 실수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적응력(adaptive)도 강조합니다.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흥미로운 말씀을 하는데 잠시 인용하겠습니다(p82).


과거에는 "시행 착오(trial and error)"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마저 한가하게 들린다. 지금 요구되는 자세는 "테스트 앤 런", 즉 한번 시도해 보고, 되면 좋지만 혹 실패하면 그 실패로부터 반드시 무엇인가를 배워야(learn) 한다는 뜻이다.


이런 집착과 적응의 대표적 모범 사례로 책에선 구글(특히 구글 X의 성공)과 유니클로(의 개별 점포 경영 확산 전략)를 꼽습니다.


④ 마지막 P의 뜻은 뭘까요? purpose와 pivot을 드는데, 각각의 뜻은 "대의"와 "한 발 전진"입니다. 분명한 대의를 내세울 줄 알아야 일류 기업이지만, 그렇다고 한 자리에 계속 머무는 건 퇴행을 자초하는 선택입니다.

이상의 지표에서 보듯, 한 가지 범주에는 반드시,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덕목이 쌍으로 자리합니다. 어느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모목표가 달성 못 되는 것 아닐까? 이런 걸 경제학에선 trade-off 관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혁신의 시대에 트레이드오프라는 핑계나 구실, 혹은 종래의 프레임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이율배반이 아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에서 선정된 기업들은,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 목표를 실전과 현장에서 일일이 손에 쥐고 달성하여 경쟁자들로부터 경외감을 자아내는 성공자들이라고 단언하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들이 선정되었을까요? 저자의 기준으로도 단연 1위는 애플입니다. 사실 어떤 논자로부터도 "마땅히 칭찬할 적절한 표현"을 경쟁적으로 이끌어낼 만한, 이 시대의 총아임에 분명합니다. 매출의 볼륨이면 볼륨, 선명한 기업가치의 각인이면 각인, 뭐 하나 빠질 게 없습니다. 누구의 눈에도, 이 21세기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저렇게 해야 한다는, 벤치마킹대상이자 모범으로 꼽혀 당연합니다.

구글과 알리바바도 자세히 다뤄지고, 이들은 같은 2위 상당기업군에 매겨집니다만 순위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둘 다 IPO가 늦었으므로 정확한 기업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인데, 읽으면서 참 어지간히 스스로 정한 가치에 충실하려는 저자분이란 느낌 받았습니다. 대신 본문에서 (어찌 보면 재무제표의 주석처럼) 서술로 상세히 다루므로, 독자는 기대와 수요를 충분히 만족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2위군에 집어 넣은 리쿠르트도 같습니다. 알리바바 말고도 중국의 텐센트 등 여러 스타 기업들도 같은 파트에서 자세히 분석되는데, 특히 중국 청년들에게 "부자 되는 꿈"을 키워줬다는 점에서 "기업 가치" 점수를 높게 받은 듯합니다.

냉연히 실적만 갖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인도의 타타 그룹처럼 이른바 착한 기업, CSR에 충실한 사례들도 저자에게 후한 평가를 받습니다. 책은 이처럼 현대인들이 중시하는 여러 이념적 지표를 고루 반영했기에, 정치적으로나 경영상 시각이 다를 수 있는 독자군에 두루 설득력을 갖고, 호응을 이끌어냅니다.

IBM과 아마존, 월마트, GE 등은 놀랍게도 순위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아마존의 경우가 참 의외인데, 저자는 "지나치게 고객 위주"라는 베조스의 전략지향이 현재의 번영, 최전성기를 가져 왔지만, 이런 무분별한 고객 추수 경향이 서비스의 품질 저하를 불러, 역으로 아마존의 성장 한계를 고착화하리라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합니다. IT 기업의대표격이었던 IBM은 최근 20년 동안 경솔한 정책 수정, 사업 부문 매각 등 누구 눈에서 봐도 갈팡질팡이었으므로 이런 평가가 당연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단 저자는 이 회사가 보유한, 오래 전부터 개발해 온 인공지능 모델 왓슨이 제2의 부흥기를 조만간 도래시킬 가능성도 지적합니다. GE의 경우는 경영자가 바뀌고 난 후 다시 침체와 혼란을 맞은 취약상을 지적하는데, 그래도 무려 토머스 에디슨 이래로 이어져온 저력에 주목할 필요는 여전하다는군요.

저자는 아무래도 일본분이다 보니, "잃어버린 20년"의 악몽에서 깨어나 재도약의 계기를 갖자는 취지에서, 현재 괄목할 성장을 보이는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한 그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도 지적하는데, 화교(華僑)와 달리 현지에 철저히 융화하면서도 고유의 풍속을 잃지 않는 재외일본국민(발음이 같은, 和僑로 표기합니다)만의 장점을 살려, 세계 곳곳에서 치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경쟁력을 제고하자고 제언합니다. 이런 주장은 한국의 현실에도 타당하며, 실제로 해외에서 맹활약 중인 우리 교민들은 정기적으로 "한상(韓商) 대회"를 열어 단결과 우의를 다지고 정보를 교환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도태됩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지 않는 자는 한 마리도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글로벌 성장 기업들의 비결은,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가지 전략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지혜를 짜내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는 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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