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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ㅣ 에디션 D(desire) 14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현재 "에디션D"라는 기획의 일환으로 계속 출간 중인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출판사의 설명에 의하자면 에디션D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의 세계를 탐험하고, 인간이라는 가장 불가해한 존재에 대해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컨셉이라고 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이 시리즈의 7, 8권인 엠마뉴엘 아산의 <엠마뉴엘>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남겼으며, 이후
<데미지>, <크래시>, <비터 문> 등 주로 각색된 영화로 대중 사이에 더 널리 알려졌을 만한
다른 "구성품"들도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원작들은 사실 서로 다른 동기와 배경, 주제를 바탕으로 세상에 태어난, 혈통이 먼 각각의
걸작들이지만, 이런 동아리 안에 함께 넣고 감상하니 색다른 맛이 더 추가되는 게 또 사실입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원작이 맨 부커 상을 받고서 몇 년 후 레이프(랠프) 파인즈와 줄리엣 비노시(지금 생각해 보니 의미심장한
캐스팅이네요) 주연의 영화가 큰 화제를 불렀을 때 원서(얼마 후에 한국어 번역서도 나왔습니다. 이 책과는 텍스트가 다른)로
읽었는데, 난해하면서도 고혹적인 문장과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책"에서도 같은 역자분의 솜씨로 몇 년 전에 번역본이 나온
걸로 아는데 이번에 이 시리즈에 함께 엮여 새 장정을 입고 우리와 만나게 되네요.
역자
후기에도 나와 있듯 본디 작가부터가 "플롯을 의식 않고 썼다"고 밝혔더랬습니다. 정체 불명의, 아마도 "영국 국적"으로 추측되는
어느 환자를 둘러싸고 몇 사람이 한데 모여 나눈 대화가 내용의 중심인 이 소설에서, 어떤 줄거리를 찾아내는 건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초점을 비껴가는 헛된(잘못된) 노력일 수 있죠. 이걸 생각하면 앤서니 밍겔라 감독은 이 장편을 그저 "소재"로만 삼아
자기 이야기를 그냥 펼쳤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그 영화에서 "드라마"의 힘은 대단했거든요.
이
작품이 과연 에로티시즘을 표방했는지도 조금은 의문입니다. 하지만 에로티시즘 코드를 염두에 두고 읽으니 초회독때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영화는 사실상 원작과 꽤 다른 길을 걸었으니, 상당수 독자는 소설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펼쳐 읽는
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요. 일단 작가가 스리랑카(출생 당시 영국식민지 "실론") 사람이며, 대종은 아니라도 곳곳에서 끈적한,
그러나 품위의 외투를 여러 겹 걸친 고상한 문장들이 속출합니다. 이 점에서 러디야드 키플링의 여러 작품들과 통하는 데가
많습니다(키플링은 영국 혈통이나 태생이 인도이며 생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냄).
소설
중에 키플링의 장편 <킴>이 여러 번 언급되고, 역자 후기에서도 텍스트 연관성이 분석됩니다만 그 작품 말고도
<정글 북>의 여러 단편과 많은 코드를 공유합니다. 예컨대 사막(사막과 정글은 같은 혹서의 심상이긴 하나 생태의 면에서
극한의 대조를 이루죠)에서 한 OO이 법열에 들떠 춤을 추다 스스로 흥분하여 OO하고, OOO을 특정 용도로 사용한다는 식의
서술은 <The Spring Running>에서의 나른한 탐미주의를 연상케 합니다.
이뿐
아니라 분명한 소속 없이 이중, 삼중의 간첩 일을 하며 떠도는, 솜씨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OOO(혹은 OOO OO. 이름은
밝힐 수 없습니다) 같은 인물들은, 키플링의 <왕이 되고.. > 등 여러 작품들에 등장하는 "실패한 모험주의,
식민주의의 사생아들"과 닮았습니다. 정작 세 인물이 모여 기괴한 발상과 체험담과 상처를 공유하는 이탈리아의 모 수도원은, 험난하고
곡절 많은 바깥 세상과 꽤나 단절된 안온한 별세계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입니다. 얼핏 보아 연관이 없어 보이는 온갖 이야기가 반시계
방향으로 굽이치며 한 지점(이기나 한지도 불확실하지만)으로 흘러가는 모습에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역자는 등장인물 킵에 대해
"시크교도이면서도 영국 공병인" 둘 이상의 혼란스런 정체성을 한데 가졌다고 정리하시지만, 사실 시크 교도는 한때의 격렬한 항쟁을
거쳐 제국주의에 완전히 순치된 후 영국군 내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으므로 그리 모순되는 갈등의 신분 설정은 아닙니다. 다만 킵이
보병이 아닌 "공병"이란 점에 주의할 필요는 있겠죠.
p191
셋째 줄에 보면 "... 전쟁이 펼쳐지는 또하나의 극장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본디 theater에 "전역(戰域),
작전 구역"이란 뜻이 따로 있습니다. 허나 "극장"이란 말에서 옮아오는 연상, 이미지가 독자를 좀 도와 줘야, 그저
"전역"이라고만 할 때 생기는 기술적 용어 특유의 건조함을 피할 수 있겠죠(이런 작품에서는 더군다나). 번역이란 게 본래 오답,
정답으로 딱 잘라 가를 수 없는 회색지대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언어를 열심히 익혀 원어로 읽어내는 것일 뿐이며, 뭐가
맞니 그르니 아무리 따져 봐야 답이 나올 리 없습니다. 다른 언어계에 속한 단어 각각에 본디 일대일대응 관계가 숨어 있지를 못한데
그게 다 무슨 헛수고이겠습니까.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건데 다만 어느 하나가 작가의 본의를 좀 더 담아낼 수는 있겠죠.
고도를
기다려도 고도가 결국 오지 않을 뿐더러 고도가 대체 무엇인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부조리의 극한에서, 인간은 차라리 주관적 육욕에
침잠하며 다른 방향의 "탐험"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영국인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멋대로 세운 가정 위에 기이한
의식과 소통과 의미의 재규정을 시도하는, 어찌 보면 다분히 희극적인 "극장(무대)"의 재현을 통해, 작가 역시 인도인인지
영국인인지 정체성을 규정 못 할 자신이 결국 "환자"나 다를 바 없다는 자조적 고백을, 이처럼 해체적 인격들의 설정을 통해
털어놓는지도 모릅니다.
흠,
말도 하지 않고 뭘 보려 들지도 않는(할 수 없는) 어느 정체 불명의 환자에다가 제 편할 대로 "영국" 국적을 붙여 놓고 온갖
정신적 방황의 향연을 벙벌이는 이들을 보며, 전쟁만큼 인간의 인습과 루틴을 통째로 헤집고 원점에서의 재출발을 강요하는 계기와
사태도 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청마 유치환이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라고 노래했듯, 사막에
불시착하여 대추야자에 자신의 타액을 섞은 후 공존과 재생을 돕는 수수께끼의 부족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는 환자임을 새삼 깨닫고
무슨 신분으로 재 각성하여 눈을 뜰지 모릅니다. 그 순간이 현생 속이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