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채근담
                    신흥식 역주 / 글로벌콘텐츠 / 2018년 1월
                    
                  평점 :
                    
                    
                    
                    
                    
                    
                    
                    
                    
                    
                    
                 
                
            
            
            
        
 
        
            
            
            
            
            
            
            
국내에 <채근담>은 여러 판본이 출간되어 있습니다만 이 책은 한학에 깊은 조예를 쌓으신 한조 신흥식 선생이 번역하고 주(註)까지 다신 책입니다. 채근담은 교양 있는 동아시아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익하고 심오한 격언집입니다만, 유불선 중 어느 한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조류의 가르침 그 정수를 고루 담기까지 한, 동양 인문의 결정체에 가까운 역작입니다. 머리에 든 것 없고 천품이 천박할수록 박약한 지능으로 고전을 함부로 폄하하는 풍조가 근래 일어서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만, 이런 와중에도 성현들의 지혜를 오롯이 담은 멋스러운 책들이 계속 출간되니 그나마 세상에 희망의 불잉걸이 아직은 남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채근담은 전/후집 양권으로 나뉜 편제입니다. 전집은 수신의 도에 대해 주로 평하고 논하지만 대개는 유가의 입장에 근거를 두었으며, 후집은 앞서 말했듯 불가와 도가의 심원한 진리까지를 반영합니다. 채근담의 어느 판본이라도 이 고전에 대한 해제를 잘 베풀어 놓았으나, 특히 역주자 신한조 선생님의 서문은 참으로 정갈합니다. 글이란 그저 건조한 지식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고아하고 풍취 높은 표현 속에 수양의 깊이를 증명하는 바 큽니다. 이런 그윽한 문구와 은은한 어휘를 통해 저자와 독자는 인문의 소통을 완수하고, 대 성인의 심오한 깨우침은 면면이 전승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어휘에는 한자어가 일일이 병기되어, 우리가 일상으로 쓰다시피하는 단어가 기실 어떤 속뜻까지를 품었는지 심사숙고할 계기까지 마련해 줍니다. 
사람들의 경우와 계제를 보면
갖춘 이도 있고 갖추지 못한 이도 있는데, 
어찌 나로 하여금 홀로 갖추어지기를 바라겠는가?
人之際遇, 有齊有不齊, 而能使己獨齊乎
(p60. 책 본문에는 물론 한자음이 일일이 달려 있어 독자에게 최대한 편의를 도모합니다)
결론은, 마치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상대를 보아 가며 그 속사정을 알고 교류의 양태를 그때그때 융통성 있게 달리해야만 진정한 의사의 합치가 이뤄진다는 뜻이겠습니다. 이는 유가에서 목민관이 명심해야 할 자세로도 해석되지만, 역자께서는 맨 아랫줄의 "법문"이란 어휘에 유의하여 개인 수양의 도(道) 쪽으로 새기십니다. 타당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언뜻 저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첫 문장이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고전으로부터 올바르고 청아한 문구만 인용해 댄다고 이를 과연 바른 배움의 자세라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준엄히 방자한 편법을 꾸짖으며, "자신의 단점을 덮고 사적으로 이용하는" 못된 마음가짐이란, "적에게 무기를 내어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대어주는" 한심한 작태나 다름 없다고 하십니다. 말 한 마디를 주워듣고 그 깊은 맥락도 모르면서 비천한 교만을 부리듯 남발하는 몹쓸 처신이란, 이처럼이나 오래 전부터 경각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태어났다면 아마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치도곤을 맞아 폐인 신세가 되었을 겁니다. 바탕이 천한 자는 먼저 마음을 수양한 후 사악한 기질을 말끔히 걷어낸 후에야 비로소 책을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p149에 보면, "의식을 깨끗이하지 못하고 밝은 마음을 구하려는 건, 마치 거울을 향해 먼지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말씀도 나옵니다. 
성정이 조급한 자는 
타오르는 불꽃과 같아서 만나는 것마다 태워버리고 
은덕이 적은 사람은 
차고 맑아서 만나는 것마다 반드시 죽게 하느니라.
燥性者火熾 遇物則焚
寡恩者氷淸 逢物必殺 (p76)
어찌 이런 자들이 타인에게만 해악을 끼치겠습니까? 이미 나쁜 성정이 조직과 공동체, 심지어 가정 안에서조차 간파되어, 해롭고 간특하며 악의를 품은 그 바탕을 다들 멀리하니, 남편에게건 자식에게건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건 사갈시되는 게 당연합니다. 결국 해악의 발등은 자기 자신을 향해 찍고 마는 것입니다. 저 뒤 p175의 가르침("성정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올바로 이룰 수 없고....")과도 함께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p77에도, 또 p60에도 "방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역주가 달려 있습니다. <채근담>은 명대의 저서인데 오늘날 널리 쓰는 한자어와도 제일의(第一義)가 거의 같다는 사실에 주목하게도 됩니다.
곧은 선비는 복을 구하는 마음이 없기에
하늘이 곧 무심한 곳으로 나아가서
그 복을 채워주고
간사한 사람은 재앙을 피하고자 애를 쓰나 
하늘이... (중략)... 그 넋을 빼앗느니라
貞士無心徼福 天卽就無心處牖其衷
憸人著意避禍 (天卽就著意中)奪其魄 (p94)
보통 <사기> 중 태사공자서 일부를 인용하며, 세상에 천도가 없어 악인이 번영하고 선인이 곤경에 처하는 부조리가 흔하다고들 하나, 이 중 상당수는 능력 없고 나태한 자의 비루한 자기 합리화에 그치는 수가 많습니다. 악하다고 해서 반드시 강한 게 아니고, 때로는 그지없이 비틀린 심성을 가진 자가 그저 무능의 허물을 선(善)으로 치장하여, 자신의 실패를 호도하는, 참으로 속 보이는 너절한 변명을 일삼는 작태도 우리는 간혹 봅니다. 세상의 이치는 그리 허술하지 않아서, <도덕경>에 보면 天網恢恢 疏而不失이란 말도 나옵니다. 이 문구는 꽤 유명하여, 저는 서양의 어느 추리소설에서도 한 인용을 접한 적 있습니다. 
能脫俗便是奇 作意尙奇者 不爲奇而爲異
능히 속세를 벗어나면 문득 이를 기이하다고 하나
고의로 기이한 체 하는 자는
기인이 아니면서 기인인 체 하는 것이니라. (p148)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각성 없이 그저 현인의 모양새만 가장하여 세상을 속이려 드는 무도한 사술이 횡행했던 듯합니다. 한편 이 장의 후반부에는, 그저 속세와 과격히 절연하려는 자는 청렴의 의도가 아니라 격렬한 성정의 발로일 뿐이라며 훈계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진정성도 없으면서 그저 과격한 언사로 지위를 노리는 속물들이 반드시 경청해야 할 가르침이겠습니다. 
寒燈無焰 弊裘無溫 總是播弄光景
꺼진 등은 불꽃이 없고
헤진 갖옷에 온기가 없다 함은
삭막한 광경을 희롱한 것이니라. (p196)
이는 불가의 훈시를 다분히 담은 문구입니다, 차디찬 예식만을 내세우며 정작 인간된 도리와 훈훈한 인정을 잊는다면, 그런 사람은 참된 경지에 이를 수 없으며 자신의 행로까지도 망치고 만다는 의미겠죠. 혹 노자(도가)가 공자를 꾸짖었다는 고사도 연상된다고 할까요. 유교 윤리가 사회의 지배 교리로 자리잡은 현실에서, 융통성과 여유를 좀 남길 것을 요구하는 불(佛), 선(仙)의 개탄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p52, p91, p197 등에 보면 역주자님의 친필(한글, 한자)과 힘찬 붓놀림의 흔적이 도판으로 실려 있습니다. 서화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가외의 선물입니다. 
명대에는 점차 사대부의 불만과 좌절이 사회의 문란한 풍기와 맞물려 체제 불안 요인을 형성했으며, 한참 전 남북조의 현실 도피 청류 추구도 아니고 학인 본연의 수행도 아닌, 개인 선에서의 과격한 불만 표출이 흔한 풍조였습니다. <채근담>의 저자는 그런 지식인들에게, 설령 체제의 모순이 개인을 옥죄더라도 선비란 먼저 자신의 인격을 갈고 닦은 후에야 세상을 향해 명분과 결의를 주장할 수 있다고 은근 타이르는 듯합니다. 하긴, 이런 이치가 어찌 명나라 말기에만 해당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