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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 국회의원 박용진의 경제민주화를 위한 끝나지 않은 분투
박용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젊고 패기넘치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박용진 의원의 책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과연 재벌은 대한민국 거시경제의 중추, 혹은 "화수분"으로서 국민이 믿고 의지할 바가 되느냐 하는 민감한 문제를, 그의 소신에 따라 과감히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이른바 "트리클 다운 효과"라는 게 있어서, 대기업이 활발히 본연의 활동으로부터 수익을 거두면 그 혜택이 "아래"에까지도 널리 미친다는 믿음, 혹은 입장이 있고, 이에 반대하며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잔치에 그칠 뿐이라는 강력한 회의론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논쟁은 특히 십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주목을 끌며 불 붙은 바 있는데, 아직까지도 명쾌한 결론이 난 바는 없습니다. 결론이 나기보다, 사회 전체가 진이 빠진 상태라고 할까요. 여튼 저자는 이 신저에서 주로 이 문제를 논급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은 책 중에서 김종인 전 의원의 말을 인용합니다. 김종인 전 의원에 대해서는 재작년~작년 연간에 여러 사건 때문에 낯익어하는 분들이 많겠는데, 이분이 젊었던 시절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할 때 남겼던 언행은 사실 그런 이미지와는 꽤 다릅니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파업을 해 대니 원 세금은 내가 뭐하러 내는 건지."
"세금은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내는 겁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상식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처럼 시원한 주장을, 명쾌한 논리와 함께 내놓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김 박사가 그런 말을 하고서야, 사람들은 세수 총액의 본체에서 노동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새삼 재고하게 되었죠.
이 책에서 인용되는 김 전 의원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닭을 붙들어매고 키우지 않으면 돌아다니며 농작물을 쪼아먹고 다녀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닭을 죽여 버린다면 농가에 더 큰 손해이다."
이 말을 두고 박용진 의원은 이렇개 해석합니다.
"여튼 재벌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해야 한다. 재벌을 개혁하는 건 국민에 이익이 될 뿐 아니라, 그 재벌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그는 "혹시나 있을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인데, 재벌 개혁은 재벌을 해체하고 죽이자는 게 아니다."라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이 이슈와 관련, 그가 얼마나 깊고 너른 사유 끝에 이 대안과 논변을 제시하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2부에서는 외부에서 보기에 상당히 불투명한 과정이 많았던 이재용씨의 삼성그룹 승계과정에 대해 조목조목 짚습니다. 사실 이번 큰 스캔들이 터지기 전에도, 외국 투자자 그룹이 합병 비율의 이례적인 양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걸기도 했습니다. 국수주의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기업은 해외의 투자자들(꼭 그 사람들 말고라도)에 대해서도 일단 신뢰를 얻어야 살아남습니다. 승계 과정에서 불투명한 점이 자꾸 눈에 띈다면, (위에 인용한 박 의원 말대로) 해당 기업의 건강성과 장래를 위해서도 좋을 바 없습니다.
국민을 위해 단호하고 정의로운 정책을 집행해야 할 관료들이, 정기적으로 재벌 측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관리 대상"이 된다면 이는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박 의원은 여러 제보와 사례를 통해 이런 우려가 현실에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뇌물을 두고 "떡값"이라 부른다면 그저 완곡한 우회어법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의 추악한 징표를 희석시키려는 불의한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 의원은 유력 야당(당시. 지금은 집권여당)의 힘으로 촛불 혁명이 성취되었다기보다, 국민의 응축된 에너지가 한시에 폭발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그 기저에는, 정의롭지 못한 경제 구조의 모순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땀방울의 성과를 거둘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한 근로 대중의 활화산과도 같은 에너지가 작동했을 뿐, 특정 정파의 공으로 돌릴 게 아니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죠.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하면 이를 계기로 삼아 같은 모순과 병폐가 되풀이되지 않게 모두가 경각심을 다질 필요가 있는데, 한국 사회는 이 점이 결여되었다고 박 의원은 다시 지적합니다.
이 책은 결국 "경제민주화야말로 민주화의 완성이요 국민 행복의 종착점"임을 알기 쉽게 증명하는 기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돕는 주장이 많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