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본 살인사건 스코틀랜드 책방
페이지 셸턴 지음, 이수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카페에서건 전철 객차 안에서건 책에 푹 파묻혀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여성은 아름답고 호기심을 끕니다. 무슨 책을 읽기에 저리도 몰두할까? 책 속 말고 다른 세계에는 저처럼 빠져들어 본 적 있는 분일까? 헌데 알고 보니 집안 내력, 개인적 취미 등 모든 면에서 "책벌레 그 이상"의 사연을 지닌 분이라면 더 큰 흥미가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에든버러는 브리튼 섬의 북부 스코틀랜드 문화 최정수의 깊은 역사를 한 몸에 다 품은 유서 깊은 고장이지요. 책방에는 여태 이 도시가 찍어낸 모든 문제의 책들, 문화의 압축판이 다 소장되어 있을 듯하고, 주인공 딜레이니는 철가루가 자석에 이끌리듯 고서점의 굽이진 서가 속으로 향합니다. 이 고서점과 그 오랜 세월의 풍파를 내내 함께했을 듯한 주인 에드윈의 주름살 역시 역사의 비밀을 굽이굽이 간직했을 것만 같습니다.

책 속의 인물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환각인지 아니면 대서양 너머 이방의 고서점에서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인지, 혹은 미국에서 내내 희구했던 모험과의 운명적 조우인지, 믿을 수 없는 체험과 살인사건이 부르는 공포와 좌절, 그러면서도 스릴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는 딜레이니를 보며, 우리는 오즈 한복판에 느닷 떨어진 도로시를 만나는 듯도 합니다.

고서가 부르는 마법이란 흔한 마녀의 장난질이 일으키는 파문과는 깊이와 격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하필 그녀가 잠시 열띤 눈길을 준 청년의 이름은 "햄릿"이기까지 합니다. 이처럼이나 유서 깊은 고서점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박물관이기도 한데, 고서점이 간직한 희귀한 판본 하나를 두고 끔찍한 범죄가 벌어질 만한 소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금전적 가치도 가치이거니와, 마치 기독교의 성배 전설처럼, 상징은 많은 이들에게 상징 이상의 효능과 마력을 지닙니다.

깊은 사연을 간직한 가문에서 벌어지는 동기간의 갈등은 사실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이해가 안 될 만큼 격렬한 양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마치 1년 전 방영되었던 영국 드라마 <셜록>을 연상시키는, 알고보니 남들이 함부로 짐작 못할 골치 아픈 알력으로 점철된 에드윈 씨네 집안 사연이 이 딜레이니의 머리를 더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 언제나 장애물로 앞길을 막는 건, 책, 책, 책이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도 주인공 도로시가 어떤 특별한 자질이 있어 그 숱한 곤경과 마법의 질곡을 헤쳐 온 게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도로시가 믿었던 건 자신의 착한 마음, 불의와 모순은 반드시 해결되고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정의감, 그리고 친구와의 연대감 등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고판본 하나가 빚은 끔찍한 살인이, 천재적 능력 아닌 선의지와 정의감으로 그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은 통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세상을 지키는 건 평범한 우리들의 의지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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