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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그리고 사람들 - 영화의 첫인상을 만드는 스튜디오 이야기
이원희 지음 / 지콜론북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포스터는 영화 전체의 압축판입니다. 스토리와 컨셉과 주제와 매력(관객을 상영관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단 한 컷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상업적 계산 때문에도 이를 허술히 제작할 수 없고, 작품이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영화의 개성 전체를 상징하는 증명사진으로 남습니다. 제작 측의 입장에서도 그러할 뿐더러, 우리 팬들 쪽에서도 성장기, 혹은 각별한 추억이 아로새겨진 시점에서 누군가와 함께 관람한 영화는 대개 그 포스터가 내게(우리에게) 남긴 인상과 영원히 함께 남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포스터나 팸플릿 등을 작정하고 수집하기도 하는데 모으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각별한 추억의 세공 작업(컬렉션)이라 그 결과물을 누구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짧을수록, 함축적일수록 이상적입니다." 이는 포스터 제작자의 특권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무이기도 합니다. 감독은 단편물 연출에 특화된 이가 아닌 이상 가능하면 섬세하고 성의 있게 자신의 사연을 풀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포스터의 기능은 이처럼이나 바라는 방향이 다릅니다. 피그말리온은 물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괴이한 외모와 취향의 조각가입니다만, 이 책에서는 우리 동시대 한국의 포스터 제작 집단인 '피그말리온'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잘 아는 대로 GB 쇼의 유명한 희곡과 오드리 헵번 주연의 그 영화와는 어떤 사연의 지점을 공유하는지, 대담자들은 포스터 제작의 고충과 보람을 논하면서 쫄깃한 뒷담화를 늘어놓습니다.
요즘은 아예 다양성 영화라고 해서, 상업적 메인스트림으로부터 거리를 둔 주제와 분위기를 마음껏 표현하는 멋진 영화들이 표현의 장을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만 아직 인지도도 낮고 최근에는 또 그 나름의 변형된 상업성을 추구하는 경향마저 있죠. 여튼, 믿고 보는 토드 헤인즈의 작품 <캐롤>의 국내판 포스터 제작에 얽힌 재미난 사연들이 독자의 바쁜 시선을 잠시 멈추게 했습니다. 주연배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두 여인의 익숙하고도 깊이 있는 표정, 눈빛이 대두되었습니다만 손에 쥔 "담배"가 사라졌다는 게 팬들 사이에서 논란을 불렀다는군요. 희한하게도 국내 TV 방영 릴에서는 일일이 흡연 씬이 흐릿하게 처리되는데 어색하기도 하고 과연 국제 추세에 부응하는 규제인지도 고개가 갸웃해질 때가 많습니다. 이 역시 남성 중심의 흡연 문화, 타인 비배려, 사회의 보편적인 건강권 강조 등의 추세와 맞물려 한때 진보적인 발걸음으로 평가되었습니다만 지금 이렇게 예술 섹터의 제작자들은 "불편함"을 운위합니다. 뭐가 맞을까요. 혹은 어디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지요.
영화 감독과 그래픽 디자이너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작업하나요? 이처럼 "질문"이란 우리 독자들의 공통된 의문을 대표로 나서 시원하게 긁어주는 시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애 대한 답은 다소 에두르는 식이나, 김광철씨의 대답은 두 가지 점에서 아주 명쾌합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 포스터를 만들 수 없다. 영화 해석의 자유는 우리 디자이너 들에게 주어져야만 한다." 마치 얼마 전 발매된 음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의 고백, 혹은 마니페스토와도 비슷하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