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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대륙
미지 레이먼드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에 나오는 대로 1979년 "에어뉴질랜드901"이라는
비행기가 재난을 당한 적은 실제로 있었습니다만, 오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의 남극 크루즈 여객선이 정착빙에 부딪혀 715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가 빚어진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남극이 "책임 있는 관리 당국"이 부재한 채로 방치되며, 게다가 남극 조약이
종료되기까지 하는 몇 십 년 후에 이른다면, 이런 사고가 언제든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여튼
역자 후기에 나오는 대로 이 소설은 이른바 "재난 장르"는 아닙니다. 남극 대륙이라는 예외적 환경에서 다양한 아종의 펭귄들, 그
밖의 동식물군에 정을 붙이며 생업에 정열을 쏟는 어느 전문직 여성이, 여느 통상의 대륙에 사는 남들처럼 개인적인 사랑, 직업상의
갈등, 관계 속에서의 마찰과 유대를 두루 거치며 생의 일정 시점에서 어떤 겨결론에 도달한다는 사연입니다. 사람은 남극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환경 속에서도 인격 파탄과 완전한 안식 중 어느 지점에도 도달할 수 있는, 감정과 상상을 통해 존재 방식을 결정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만, 누구에게는 그 배경(무대)가 하필 남극이라면 마치 사막의 구도자가 맞는 특별한 운명처럼 우리는 그이의
유별난 운명과 행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1인칭 시점으로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보라 가드너입니다. 대개 5년 전 "그 참사"가 빚어졌던 언저리에서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는 어조이지만, 많은 대목에서 시제는 현재를 취하며(엄연히 5년 전 과거인데도요), 아주 간혹 십수 년 전 대학원생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다가, 결말에서는 본 주소를 내내 두고 있었던 오리건 포틀랜드(남극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집은 여기를
삼았습니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남극
같은 극한의 원격지에서 수 개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현지에서 부부처럼 "커플(해당 대목에서는 이 흔한 단어에 특볗한
의미가 주어지더군요)"로 지내다가, "원 대륙"으로 복귀해서는 본연의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소속되곤 하는 관계가 종종 생기나
봅니다.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도, 다시 생각해 보면 뭠가 거북한 느낌이 드는 게 또 당연합니다.
주인공
데보라 가드너는 아직 미혼인데다 본인 표현(p217)에 따르면 남자를 진지하게 사귀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채드, 데니스 등이 생각나는 정도이며, 그 중 전자와는 제법 깊은 사이까지 진행되었는지 임신까지 한 적도 있지만 출산은 하지
않았습니다. 중반쯤에 보면 "다시 관계가 복원된" 켈러 설리번에게 청혼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호칭이 "미스 가드너"입니다. 한
번도 결혼을 하지않았으니 당연하며, 이런 까닭에 그녀는 별반 께름칙한 느낌 없이 어떤 이성과도 가벼운, 혹은 진지한 관계를 만들
수 있지만 그녀가 사람 고르는 데 까다로운 편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유년기에 그녀가 부친의 부정(不貞)을 뜻하지 않게 눈치챈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친의 생일보다 한참 앞선 시점,
하트가 그려진 축하 카드를 아빠가 쓰는 걸 훔쳐봤는데, 이 일을 기억한 그녀가 몇 달 후 엄마에게 주어진 카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걸 지적하며 가정은 결정적으로 파탄이 났던 거죠. 그 전부터 이 부부는 어린 딸의 눈에도 꽤 어색한 관계였는데, 이 악몽
같은 기억 때문에 뎁 가드너는 내내 소극적인 대(對) 이성 자세를 가지게 되었나 봅니다.
그녀는
학창 시절 내내 그리 여성스럽지 않은 모습을 유지했고(지금 키가 180cm에 가까우니 저 시기에도 작은 키는 아니었겠죠?),
친하게 지낸(그녀의 평가에 의하면 "정말 괜찮은") 친구 알렉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남사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알렉은 우리
독자들이 빤히 눈치챌 수 있지만 남성 동성애자이며, 이런 그와 깊은 공감을 나눴다는 고백으로 미루건대 그녀 역시 적잖은 혼란을
겪었음도 감지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녀는 우리가 봐서 알듯 이성애자입니다.
켈러
설리반은 변호사 자격도 가졌었고 실력도 좋았지만 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나서다 석사 학위를 세 개나 단기에 추가하는 등
뛰어난 지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한 번 결혼에 실패했고, 그래서인지 뎁에게도 조심스러운 태도였지만(뎁은 본래가 조심스럽고요),
결국 다시 본격적으로 가까워지고 뎁은 (아마도) 두번째의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광객 케이트- 리처드 아처 부부를
알게 되는데, 리처드 아처는 젊은 나이에 여러 사업에 손을 대어 큰 돈을 번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책 뒤표지에는 이런 대화가 인용되었는데요.
"남극 대륙에 온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과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사람이로요."
"이곳은 저한테 마지막 대륙이에요. 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셈이네요. 당신은요?"
사실
이 대화는 p248에서 케이트와 뎁 두 여인이 주고받는 내용이 살짝 바뀐 것입니다. 해당 대목에서 케이트는 "남극은 나의 일곱
번째 대륙"이라고 합니다. 넉넉한 형편에 육대륙을 다 다녀 봤다는 자랑으로도 들리는데(그렇게 듣는다면 물론 오해입니다), 뎁은
"여긴 저의 세번째 대륙이지만 마지막 대륙"이라며 "마지막"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합니다.
(이하 약간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설령
더 이상 숨을 곳도, 갈 곳도 없는 이들이 우연이건 필연이건 택한 행로가 남극이었다 해도, 반드시 그곳에서 물리적 파국을 맞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객선 오스트랄리스는 정말로 백 년 전 저 북극해 근방의 타이타닉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요. 이
과정에서 아깝게도 켈러 설리반과 딕 아처가 목숨을 잃습니다. 약간은 위험 중독 증상이 있는 아처는 (맞는 진단인지는
의심스러우나) 뱃멀미 때문에 부착한 패치형 약 때문에 극한 상황에서 판단력까지 잃습니다. 여튼 두 남성 모두, 그들이 각각
사랑했던 여성들 "앞(물리적 거리는 다소 납니다만)"에서 평소보다 더 품위 있는 대처를 하려 애썼음은 분명합니다.
켈러나
뎁이나 남극의 생태에 워낙 애정이 깊다 보니 해당 분야의 지식과 현황에 아주 밝으며 특히 펭귄에 대해서는 그 지식의 깊이나
애정의 강도를 누가 따를 수 없습니다. 남극에서는 분해자의 활동조차 극한의 저온에서 억제되다 보니 죽은 생물의 사체를 포함 무엇도
썩지 않고 흉한 모습 그대로 방치되며, 그 와중에도 특수 박테리아나 전염균은 펭귄 등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전문 인력의
특별한 방역 조치가 항상 뒤따릅니다. 이 과정에서 승객들과 크고작은 마찰도 따르게 마련이고요. 무심한 행동 속에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생태계에 작은 위험이라도 전파하는 관광객들에 대해 이들은 항상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직무상 의무라는 이유 말고도
그들에겐 "다른 대륙에서 받은 상처"를 이 마지막 대륙에 대한 애정으로 대신 치유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짐작되기도 합니다.
급작스러운
결말에서 뎁은 많은 상처를 입었으나 결국 살아남고, 켈러의 딸을 출산한 후 그 특별한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키우던 집 주인 닉과
결혼하게 됩니다. 여기서 독자들은 약간 놀라게 되는데, 아마도 바다를 보지 않으면 역으로 멀미가 나던 그녀의 증상도 5년이나
지난 지금 많이 나아지지 않았을지, 더불어 관계의 진전에 대한 부담과 공포도 사고로부터의 호된 그 경험을 통해 (역으로) 적잖은
치유가 되지 않았을지 기대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대륙은 다시 첫 대륙으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법이니요.
"세상의 끝, 만물의
기원"이라는 소설 마지막 문장은, 저 앞 p25의 "fin del mundo, principio de todo"라는 스페인어
어구와 같은 뜻입니다. 이 구절을 모토로 삼는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땅끝마을"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