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사 1 -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전쟁과 평화 학술총서 1
일본역사학연구회 지음, 아르고(ARGO)인문사회연구소 엮음, 방일권 외 옮김 / 채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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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제독의 이른바 "포함 외교" 시도에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구폐를 소탕한 후 신체제를 부랴부랴 가동한 일본의 행보는 구미 측으로부터 일정 시기 동안 경탄과 우려와 경멸 어린 시선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아무리 근본 각성 없이 수박겉핥기식으로 밀어붙인 근대화의 시늉이라고 해도, 여튼 그렇게나 짧은 시간 안에 국가의 틀 하나를 완전히 새로 짠 후에는 가당찮게도 열강의 나쁜 행보만 본받아 식민지 침탈까지 시도했으니 말입니다. 이 역시 놀랍게도 성공(...)을 거둬 20세기 들어서는 러일 전쟁의 승리, 한국 병탄 등의 연이은 행보로 아시아에서 힘깨나 쓰는 강대국의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을 보면 "... 거듭된 요행 덕에 이뤄진 성공에 버릇이 나쁘게 들어...."와 같은 평가가 있는데 물론 히틀러를 두고 이른 말입니다. 천품이 비천하고 머리에 든 것 없는 망상자가 비뚤어진 욕심과 왜곡된 자아상으로만 정신을 가득 채울 때 이런 패턴이 흔히 나타나는데, 이런 이들에게 두 가지 길이 대개 앞에 놓입니다. 하나는 늦게나마 현실을 깨닫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미래를 성실히 준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현실을 거부하고 망상만을 추구하다 처참한 파멸을 맞는 것인데, 역사의 필연과 정의가 대개 어느 쪽으로 귀착되었는지는 우리가 결과를 봐서 잘 압니다. 일본군국주의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 객관적 자기 역량의 신중한 평가 없이 무모하게 감행한 태평양 전쟁에서 결국 패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였을 뿐 아니라, 국력의 손실과 막대한 인명 사상은 두고두고 역사의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이 책은 거의 60여년 전에 쓰여진 일종의 "고전"입니다. 이미 태평양 전쟁 개전 전에도 일본의 양심 있는 지성인, 학자들은 체제의 모순과 허약한 시스템 기반의 맹점을 날카롭게 파악하여, 더 큰 재앙을 맞기 전에 무모한 "행군"을 중지할 것을 권했으나, 군부와 정치인들은 오불관언이었으며 오히려 양심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탄압하는 데에만 전력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쿄 대공습, 두 차례에 걸친 원폭 투하 등으로 민간인들까지 끔찍한 피해를 입고서야 이 무모한 전쟁은 비로소 무조건 항복으로 종결되고, 이 책의 저자들처럼 올곧은 양심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지성인들의 양심 선언일 뿐 아니라 이 책(시리즈)은 학문적으로도 치밀하고 충실한 방법론에 입각하여 저술된 모범적인 교본에 속합니다. 독자는 이 책들을 통해 1) 일본 내에 엄존하는 올곧은 지성의 양심 고백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2) 태평양 전쟁 직전과 경과, 이후의 aftermath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정립할 수 있고 3) 나아가 세계사의 거대한 맥락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동아시아사, 일본사에 침투하여 하나의 필연을 빚어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장에서는 태평양전쟁, 나아가 그 전단계였던 만주사변과 조선 침략 등이 그저 단견, 근시안의 정치인들이 둔 일시적 패착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 작동되던 자본주의 기제의 필연적 모순 노출이었음을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p17에서는 "...천황제와 반(半) 봉건적 지주제, 그리고 이 둘과 깊이 결부된 특권적 대자본이.... 국가를 전쟁으로 내몰았음"으로 분명히 전쟁의 원인을 짚고 있습니다.

전쟁은 그저 표피적, 독립적,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의 모순과 언제나 연결됩니다. 저자들은 특히 일본 소농들의 빈곤과 궁핍상에 주목하는데, 대개 소출의 50%를 소작료로 지불해야 하는 가혹한 조건 때문에 반(半) 농노 상태에 머물렀다고까지 규정합니다. 반 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 산업국가로 성장한 일본 굴기의 이면에는 이처럼 1차 산업 섹터의 어두운 그늘이 자리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국사 시간에 배우기로 "1910년대 후반에 대대적으로 열도로 반출되었던 조선의 미곡 때문에 일본 내 소매가가 급격히 떨어져 (일본) 농촌에서 대대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같은 교과서의 한 줄 언급이 있었죠. 이처럼 식민지에서는 현지 농민들을 수탈하고, 자국에서마저 농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추진한 공업화, 산업화란 필연적으로 사회 구조상의 중대한 균열을 노정하기 마련입니다.

한편으로, 제국주의는 세계적 규모에서 상품 수출과 자본 수출을 동시에 주변부에 진행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서평 맨처음에 적었듯 페리가 군함을 이끌고 열도에 내습한 건 그저 일시적 군사력의 위용 과시가 고작 그 목적이 아니라, 이를 발판으로 선점한 주변부에서 향후 상품의 판매와 항구적 금융이익 획득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던 치밀한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책의 항목 일부를 "억압 받는 국가에서 억압을 가하는 국가로, 그리고 다시 억압 받는 국가로"로 제목을 정했는데, 심지어 조선에 식민 기지를 건설했을 때조차 일본은 초기 투자국인 미국, 영국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차관 상환을 압박받았습니다. 그 직전 단계인 러일전쟁 역시, 표면적으로는 "한반도가 러시아에 점령되어 일본 열도를 겨누는 칼끝이 되는 결과를 예방한다"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장래를 생각지 않고 마구 끌어다 쓴 온갖 빚이 정부와 민간에 큰 짐으로 끊임없이 작용했기 때문이죠. 이러던 일본이 정작 고종의 대한제국에 대고는 "경부선, 경인선 부설 융자금의 상환"을 끝없이 요구한 건 실로 아이러니입니다. 이처럼 내부를 들여다 보면 근대화의 화려한 외관 속에 숨은 부실이 끝도 없이 구조를 좀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전쟁도 군수물자를 생산할 여력이 되어야 개시, 지속할 수 있으며 일단 일으킨 전쟁 역시 전선의 군인들을 꾸준히 지원할 수 있어야 승리는 고사하고 현상 유지라도 가능해지는 법입니다. 러일전쟁도 미, 영 측의 차관 제공이 아니었다면 일본 정부는 결코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며, 초기 예측과는 반대로 러시아가 극동에서 압살당할 조짐까지 보이자 미국은 도리어 일본 측의 지나친 세 확산을 경계하여 서둘러 종전을 주선했다는 분석은 실로 충격적입니다. 결국 전쟁을 일으키거나 향방을 결정하고 심지어 패전 처리의 구체적 조건까지 조율하는 것도 막후의 국제 자본이라는 뜻이니 말입니다.

대전 발발 직전 국면을 보면, 책은 협소하게 일본 국내 정치 상황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태평양 전쟁 반대쪽인 당사자인 미국을 보면, 1930년대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공황을 타개하려 시도합니다. 여기서 몇 줄 아래를 보면 "... 큰 곤봉을 차고 걸으면 오래 걸을 수 있다... "라는 루스벨트의 재담이 등장하는데, 책에서는 퍼스트 네임이 생략되었으나 이 말 자체는 FDR의 먼 친척 아저씨뻘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조크죠.

대공황은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민중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빈곤에 시달린 농민들은 만주로 이주했고, 한편으로 열도의 경제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식민지에서 이처럼 공황의 폐단이 집약적으로 발생하자 역으로 일본 본국에 그 부작용이 유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에서 말한 일본 경제구조의 봉건적 후진성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던 데다 이런 타격까지 받으니, 일본으로서는 전쟁 외에는 위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없었던 게 됩니다. 한편으로 일본인들이 조직적으로 부추긴 만주 내 한 중 갈등상이 큰 무력 충돌로 비화하고, 이 소문에 격분한 조선인들이 한반도 안에 거주하던 화교를 공격하는 등 대단히 안타까운 민족 간 분쟁으로 비화합니다. 현재까지도 일부 중국인들은 1930년대 이후의 만주, 북중국 일대의 정세에 대해 "조선과 일본이 합작하여 대륙 침략을 기도했다"는 오해를 하는데, 이런 배경에는 일정한 이유가 작용했던 셈입니다.

장개석 정권은 1930년대 일본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해도 유효한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내륙과 남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던 마오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견제와 진압에 국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른바 "북벌" 과정에서 북중국의 군벌을 견제하느라 장샤오량 등의 병력을 통제했으므로 정작 현지의 군벌(대부분은 농민을 수탈하는 봉건제적 구태에 지나지 않았지만)이 유조구 사태, 노구교 사건 등에 대해 전혀 효과적 대응을 못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장개석 정권이 친일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란 대상입니다만 그가 ㄷ담판을 위해 일본 정치가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을 때 일부에서는 "여튼 그는 우리(일본)의 편"이라 단정했는가 하면, 귀국 후에는 (당시 일본과는 중대한 대립 관계였던) 미국 측에 곧바로 대화 제스처를 취하는 등 모순된 태도를 보여, 마냥 호락호락한 일본의 주구는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p59에는 악질 친일파 왕정위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p91의 후주에 보면 본명을 "왕조명"으로 한자 표기하면서도 정작 중국식 독음은 "왕정웨이"라고 하여 혹 혼동의 우려가 있으니 독자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왕자오밍이야말로 누대에 악명을 남긴 친일파, "한간"이라고 봐야겠죠.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이미 미국과 일본은 국가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점입니다. 미국는 만주 일대에 큰 이권을 가졌으며, 상대적으로 영국은 대륙 본토에 이해관계를 지녔으니 만주 침략에 대해서는 초연했는데, 이런 태도는 히틀러를 상대할 때 당장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유화 제스처를 쓰다(네빌 체임벌린) 돌이킬 수 없이 상대의 간만 키워 준 어리석은 결과를 빋은 유럽의 정책 실패를 떠올리게 합니다. 미국에서는 "맨츄리언 캔디데이트"라는 관용구를 두고 "괴뢰"라는 뜻으로 널리 쓴 적이 있는데 얼마나 그들이 중국 동북 지역 일대에 큰 관심을 당시 두었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러던 만주(현 동북 3성)를 일본이 불과 3개월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장악했으니 세계는 큰 충격을 받았던 게 당연하죠.

책은 마치 소설책을 읽듯 시간적으로 정확한 경로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며, 전후 일본 지성계의 통렬한 반성을 글자 하나하나에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사를 공부하는 표준적 교과서로 충분히 참고, 열독할 만한 멋진 역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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