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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나는 문학관 여행
김미자 지음 / 글로세움 / 2018년 1월
평점 :
경치 좋고 풍광이 수려하며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한국은 본디 뛰어난 문인, 풍류객들이 여럿 배출되어 공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예찬 받던 곳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혹은 인접 고장)의 명소나 어트랙션을 자세히 살펴 보지 않아 지나쳤을 뿐, 알고 보면 가까운 곳에 향취 그윽한 문학관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설령 좀 멀다해도, 이미 고속철이나 수도권 전철의 연장, 혹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거의 연결되다시피한 요즘입니다. 찾아볼 마음만 먹고 정신에 약간의 여유만 품는다면 어느 곳인들 일일이 못 돌아볼 이유가 없습니다.
전국에 문학관은 그 수효(數爻)가 이제는 꽤 많은 줄 압니다만, 중견작가 매강 김미자 선생께서 직접 답사하여 그 소회를 정리하신 이 책을 보면 (몇몇은 이미 저도 개인적으로 다녀온 곳인데도) 그 참된 매력을 못 보고 지나친 구석이 이렇게 많았던가, 혹은 이미 그분을 기리는 문학관이 (과연 있어야 할 만한 곳에) 들어섰는데도 그저 무신경한 탓에 존재도 몰랐구나 하는 자괴감도 느껴지더군요. 저는 <복희 이야기>, <마흔에 만난 애인> 등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저희 어머니도요), 바로 그 김미자 선생이 펴낸 문학과 여행기라서 정말 큰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전라북도 부안 태생이신데, 부안 역시 한국에서 첫손에 꼽는 예향 아니겠습니까. 저도 자주 찾고 제 지인도 여럿 거주하여 개인적으로도 연이 각별한,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이뤄졌습니다. 지역별로 나눠진 차례인데, 서울-경기(인구도 많고 지역은 넓긴 하나 문학관이 의외로 많지는 않더군요. 하긴 빼어난 문인들이 주로 자연이 더 보존된 지방에서 더 영감을 크게 받았을 테니), 충청, 강원, 전라, 경남, 경북 순(順)입니다. 강원도 여러 문학관들은 특히나 부군과 함께 탐방하셨으며, 이 여행기가 완성되기에는 근 일 년의 시간이 쓰였다고 하십니다. 여행도 다녀 오시고 여행기를 쓰시기까지에는 일 년이 걸릴 수 있지만, 이런 멋진 안내와 가르침을 담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 독자들이 한번 따라해보기는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만 투자해도 일정이 완료될 수 있지 않을까요.
청운동에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이 들어선 연유가 무엇일까. 똑같은 의문을 작가님도 가졌다고 하시네요. 답은 "연희전문시절 이 동네에서 하숙을 하셨다"는 겁니다. 청운동이면 제가 일 때문에 한 주에도 여러 번 들르는 곳인데 여태 이런 사실도 몰랐다는 게 (하늘을 우러러?) 좀 부끄러워졌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 "팬"들이 자주 찾는 명소라고 합니다. 과거 자신들의 정부 체제가 식민지로 삼고 탄압하던 때 비참하게 희생시킨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고(글 말미에는 "생체 실험"을 암시하는, 경도[京都]제대 출신의 송몽규 선생의 증언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잘생겨서"라는 이유가 크다고 하네요. 좀 착잡하기도 합니다만 여튼 이런 식으로 민간 차원의 교류가 늘면 반성도 이해도 몇 걸음씩 더 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해외 홍보(일본뿐 아니라 중국에도)가 늘어야 국부에도 도움이 될 텐데 내국인들도 이처럼 까맣게 모르고 있으니.
미모 하면 그보다는 후배 문인인 한무숙 님도 빠질 수 없죠. 한말숙 작가님도 그의 동생분이기도 하고요, 한무숙 님은 <생인손>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데 해당 작은 MBC에서 특집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저희 가족이 모두 모여앉아 시청했었죠. 정말 반갑게도 p27에 그 언급이 나오네요. 매당 쌤도 보셨나 보죠?ㅎㅎ). "단아한 한국 여성의 기품과 자신의 문학세계를 조화시키며 모범적인 삶을 산..." 이런 평가를 사후에 남길 수 있는 분은 얼마나 가득 축복을 받은 인생입니까. 혜화동뿐 아니라 정작 문학관이 또 생겨야 할 곳은 태생지인 부산이기도 합니다.
김수영 시인은 당대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근래 들어 저항정신과 현실 비판 의식 때문에 더 각광 받는 분입니다. 제가 깜짝 놀란 건 1960년대에 불의에 항거한 활동과 족적뿐 아니라 그 다양한 시선과 넓은 폭의 작품 활동인데, 예컨대 <나는 아리조나 카우보이야> 같은 작품도 있더군요. 아시겠지만 1950년대 후반 가수 명국환씨가 부른 비슷한 제목의 트롯풍 가요가 있습니다.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트롯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란 생각이었는데, 무려 김수영 시인의 작품에도 채용된 모티브라니. 참고로 애리조나에는 정말로 전설적인 총잡이도 악질적인 카우보이도 역사(?)에 큰 한 자락을 남긴 바가 있죠. 와이어프 어프 등의 "OK 목장의 결투"가 그것입니다. 왠지 불의에 단신으로 저항하는 코드가 김 시인과 통하지 않습니까?
왜 화성에 노작 홍사용의 문학관이 들어섰을까? 이 역시 그가 유복한 성장기를 보낸 고장이라는 연원이 있다고 하시네요. 화성이라면 꽤 멀게 느껴져도 병점역에서 내려서 찾아가라고 할 것 같으면 그리 멀지 않을 듯합니다. 예전에 숀 코너리, 마이클 케인 주연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번역 제목을 단) 영화도 있었고, 근래에는 같은 이름을 붙인 장규성 감독의 한국영화도 나와 있습니다. 이들이 노작의 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특히나 전자는 더), 여튼 그 멋진 어감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더 앞선 시기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긴 합니다만)
1장에 실린 문학관의 주인님들 중 안양의 김대규 시인은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활동 중인 "할아버지" 문인이십니다. 홍사용 문학관을 찾아가실 때에도 저자께선 1호선 안양역에서 출발하셨다고 책에 나옵니다만 아무래도 현 거주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터잡고 활동하시는 향토 문인(안양은 수도권이긴 합니다만)이시니 더욱 존경과 관심이 생기셨을 법합니다. 김 시인은 꽤 고령이신데도 아직 정정하실 뿐 아니라 문인 특유의 멋이 물씬 풍기는 참 젠틀한 외모이십니다. 바로 앞에 나왔던 토픽의 주제 조병화 선생(역시 큰 시인이셨죠)과 대학생 시절부터 교류하시던 분이라고도 나오네요.
부여는 백제가 도읍을 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고 호암사 정사암 등 무수히 많은 문화재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여기는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이 근거를 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가 본 적 있는데 작가께선 "신동엽문학상 수상작"들이 천장에 "모빌처럼" 매달렸다고 하십니다. 모빌이라 함은 물론 콜더의 그 모빌 장르를 말하는데, 아주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시의 깃발'과 옥상의 구조였다." (p111)
박인환은 참 그 이른 시기 현대 한국의 모던한 정서를 너무도 잘 대변, 표현한 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따지고 보면 별것없는데도 그 말 맛이 너무도 착착 감겨든다."고 평하시던데 가장 헐하게 평하고 들어도 이 정도의 감탄을 자아내는 진정 특출한 재능을 지닌 분입니다. 시로서도 탁월하지만 유행가 가사로 붙여도 참으로 제격인데, 1980년대 대중가요 상당수의 가사가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고답성을 가장하는 건 어쩌면 (훨씬 앞선 시점에서 뜻밖에 요절한) 박 시인의 (예기치 않았던)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문학관이 소재한 인제는 그의 출생지이니 더욱 의외입니다. 그런 벽촌에서 이런 극한 도회적 감성의 소유자가 탄생하다니요.
천재 소설가 김승옥은 오사카 태생이지만 순천에서 성장기를 보냈기에 이곳에 문학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모두의 기를 죽이는 놀라운 재기를 발산했던 그는 젊어서부터 온갖 문학상을 휩쓴 분이지만 장년기에 쓴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문학상 제1회 수상을 하기도 했죠. 이곳에는 정채봉 시인의 코너도 마련되었는데 그는 인접 농촌 승주 출신이지만 현재는 행정구역이 통합되었으므로 이곳에서도 그의 자취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병주 선생은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분이고 하동에 세워진 그의 문학관에 찾아본 적도 여러 번입니다. 순천이나 하동이나 영호남 경계에 붙은 곳이라 작가께서는 인접한 일정으로 다 소화하신 듯합니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도 참으로 멋지고 작가 본인이 4. 19 등에 참여하신 이력이 있는 만큼, 이후 1980년대에도 <그해 오월> 등의 시사성 짙은 대작을 창작하기도 하셨지요. 사람은 이처럼 말과 실천이 맞닿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무슨 자기만의 환상 속에서 민주화운동의 끝판을 보기라도 한 양 말만으로 폭주하는 정신병자도 있으니 참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그저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김 선생께서는 특히 이 문학관에 대해 존(zone)을 나눠 색깔별로 의미를 부여한 선택에 대해 특히 높이 평가하시며, 특히 갈색인 4 zone에는 "끝나지 않은 월광 이야기"란 제목이 달려 있었다고 회고하시는데 저 역시 그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김동리는 책에도 나온 대로 본디 경주 태생이고, 그래서 그의 풍자적 단편 <화랑의 후예>가 더 각별한 의의를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명은 우리가 국어 교과서에서 잘 배운 대로 "시종"이며, "동리"라는 필명(아호가 아닙니다)은 그의 형이 지어주셨다는군요. 김미자 작가님은 "... 곡선이 아름답고 웅장한 기와 지붕은 그 어떤 관문과는 격이 다르다..."는 말로 첫 소회를 표현하십니다. "먼저 선배인 동리관으로 들어갔다"라는 문장이 있어 잠시 웃었는데 이 책에는 이곳 말고 그 앞에서도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처음에는 김 작가님 개인적으로 선배 된다는 뜻인 줄 착각했는데, 아무려면 김동리 소설가가 연배로든 무엇으로든 김 작가님께 "선배"가 될 수는 없죠. 한 고장에 세워진 문학관에는 그 지역이 배출한 여러 문인을 기리는 코너가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박목월 시인에게 소설가 김동리가 선배인 셈이란 뜻입니다.
우리 자신의 정신적 여유를 찾고 삶의 깊은 의미를 돌아보는 데에 이처럼 문학관 탐방만한 멋진 계기도 또 없을 듯합니다. 예쁜 책이 아니라도 이곳들은 언제나 우리의 팍팍하고 메마른 정신을 향해 손짓하지만, 이런 예쁜 컴패니언까지 곁에 끼고서 한 곳 한 곳 발품 팔아 현지의 정취를 직접 접해 보는 것도 어떻겠습니까? 문학은 그저 종이 저편에서만 우리와 소통하려 드는 세계가 아니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