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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전쟁 - 미래의 권력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
데이비드 S. 에이브러햄 지음, 이정훈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주변에서 하도 전쟁, 전쟁 해 대어서 괜한 신경증까지 생길 수 있는 요즘입니다만 이 책에서 다루는 "전쟁"은 총성만 나지 않았다뿐 실제 전쟁 상황이 맞지 싶습니다. 다 읽고 나서 그 심각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쟁의 목표, 주제는 "자원"이고, 따라서 전쟁의 성격은 "자원 쟁탈전"입니다.
희토류가 무엇일까요? (주기율표상에 나오는 숱한 원소들 중) 희귀한 엘리먼트를 가리킨다는 정도는 우리 대중들도 다 아는 사항입니다. 여기서는 희토류 이슈를 집중 분석한 책 답게, 그 어원에 대해서, 또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문제를 초반부에 자세히 짚고 넘어갑니다.
희토류는 영어 rare earth를 직역한 단어입니다. 그러니 우리말로는 희귀 원소, 희귀 금속, 희귀 자원 정도로 옮겨야 뜻이 제대로 전달될 텐데 (책에도 나오지만) 8년 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분쟁 때문에 제대로 이슈화하여 미디어에서 쓰는 용례로 이미 굳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금, 은, 등도 귀한 건 마찬가지고 흔치 않으므로 귀하게 된 건데 이들 귀금속과 '희(稀)금속'의 차이는 무엇이냐?"라고도 묻습니다. 책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해 가려운 곳을 긁듯 명쾌한 답을 내어놓습니다. 금과 은이 화폐나 가치 표상물처럼 쓰이게 된 데에는 원소 자체의 성격 외에 다른 역사적 이유도 여럿 끼어들었지만, 일단 문제의 희토류와 저들 귀금속이 다른 점은, 희토류는 광물 상태에서 순수하게 그것만의 높은 함유 상태로 발견이 잘 안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구리 등 다른 금속을 채광, 정련하면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게 이들 희토류인데, 자연 상태에서 농도가 극히 낮다고 합니다. 반면 금이나 은은 어떤지 떠올려 보십시오. 픽션 속에서 노다지를 발견했다며 기뻐하는 광산업자 눈 앞에는 대개 샛노란(혹은 새하얀) 덩어리들이 훤히 펼쳐지기 마련이었죠.
또 하나는, 금 시세야 물론 등락 폭은 있어도 대개는 일정 선에서 유지가 되기 마련인데(단기 재테크 품목으로 여기는 분들에게는 이 차이도 민감하게 다가오지만), 희토류는 (책의 표현을 따르면) 계단식으로 가격 추세가 그려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시장에서 언제 제값이 찾아질 줄(오를 줄) 알고 무작정 공간을 마련해 보관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창고 임대, 재고관리 비용 발생). 다음으로, 함량 농도가 떨어지는 이들 원소를 그때그때 찔끔찔끔 생기는 양만 갖고 따로 챙겨 두거나 정련 시설을 갖추기엔 채산이 맞지 않다는 이유도 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희토류는 다른 광물과 달리 그 탐사, 발굴, 정련(생산), 유통 과정을 시장에만 맡겨 두기엔 대단히 부적절한 아이템 취급을 받습니다. 반면, 현재 희토류 관련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건 이를 국가가 관리하거나, 민간 업자에게 강력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인 덕도 있습니다. 물론 절대 매장량 자체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많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내몽골 자치구 등의 현황을 보면 깔끔히 개발은 된 현대식 시가지가 정작 입주민은 부족해서 텅텅 빈 사진을 보기도 하는데, 이런 게 국가 주도의 개발계획 경제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반면 희토류처럼 미래를 보고 전략적 개입이 필요한 자원의 관리에 대해서는 확실히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당장 돈이 되건 안 되건 정부는 일단 손을 뻗어 생산, 비축해야겠다고 결정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희토류 관련해서 유명한 언급은 이미 덩샤오핑이 반 세기 전에 당료와 공무원들을 모아 놓고 한 적이 있습니다. 덩샤오핑이 이런 말을 할 무렵이면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 조절을 놓고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할 시절이죠. "앞으로 희토류가 공업 생산에 부쩍 필요해질 세상이 오면, 중국이 결정적으로 키를 쥐고 흔들게 될 것이다."
책에는 이오시프 스탈린(나이로는 덩샤오핑의 아버지 뻘이며, 그가 죽고 난 후 사반세기가 지나야 간신히 집권하죠. 덩이 아직 젊었던 시절 마오의 수행단에 참여하여 둘이 실제로 만난 적도 있습니다)의 이야기도 잠시 나오는데, 물론 저 먼 발트해 연안국(에스토니아)에 그런 도시를 설계한 건 전략적 판단 착오에 기인하긴 했지만, 여튼 당장 채산이 안 맞는 산업도 국가가 개입해서 영리하게 육성하는 건 사회주의 국가를 시장경제 체제가 못 따라가는 면이 분명 있습니다. 잔인한 독재자 스탈린도 결국 덩샤오핑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경제 문제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봤다는 뜻도 됩니다.
다시 중국과 일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8년 전 중국과 일본 사이에 그런 분쟁이 생기고 나서 어째 요즘은 잠잠합니다. 일본은 희토류를 대체할 만한 다른 수단을 마련했을까요? 일본 산업계가 다른 방법을 찾았다면 기술적으로는 희토류에 의지하지 않는 다른 공정이 기술적으로 마련되었다(다른 나라들도 따라할 수 있는)는 뜻도 되는데, 저자는 "아니다"라고 딱 잘라서 답합니다. 우선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원소 재료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이란 그리 쉽게 발견될 수 없음을 저자는 환기합니다(그런 게 나왔다 하면 세계 과학사에 남을 대발견이란 뜻이죠). 약이나 치료제, 옷감 등도 한때 그토록 인공 합성 물질을 선호하다가 지금 다시 "천연"으로 추세가 바뀌는 걸 보십시오.
인류 문명 발전 3000년사 동안 거의 무시되다시피했던 희토류가 왜 이처럼 최근에서야 각광 받는 것일까요? 답은 우리가 쓰는 각종 공업 제품의 질과 성능이 그만큼 첨단을 향해 달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일상의 불편을 해소할 정도면 충분한 저품질 저성능 제품은 어느 소재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부피를 차지하면서도 정밀하게 작동 가능한 제품은, 기존의 핵심 부품과 궁합이 맞으면서도(주기율표상의 인접 원소) 성질은 분명히 차별화된 소재를 적용해야만 합니다. 마치 천피스 퍼즐을 맞출 때 게임 초기 단계에는 큼직큼직한 조각이 더 요긴하게 보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시시한(뭔지도 모를) 작은 조각이 결정적 구실을 하는 이치와 비슷하죠. 주기율표에서 그저 자리만 차지할 뿐 자연 속에서 여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각종 원소들은 이제서야 존재감을 드러내며 몸값을 호기롭게 외쳐 대고 있습니다. 인류는 손에 당장 넣기 쉽고 눈에 잘 띄고 다루기 쉬운 것부터 차례로 도구화했으며, 돌- 구리 - 철에 이어 이제 "잉여 원소" 하나하나까지 다 이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비극은 그런 잉여 원소가 지구상에 널리, 고르게 묻혀 있지 않다는 겁니다.
희토류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하는 국제 정치 상황(우리에게도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슈 하나를 짚어 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시는 걸 보면 저자는 참 다방면에 너른 소양을 쌓으신 분 같습니다. 2010년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이 터지고 희토류 금수 조치(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없습니다. 이번 한한령도 마찬가지였죠)가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했는데, 당시에는 민주당이 집권했을 시절입니다.
아베의 자민당이 정권을 잡은 지금은 그럼 뭔가 나아졌을까요? 저자는 역시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당시 집권당은 외교 경험이 부족하여 문제를 표면에 노출시켰을 뿐이고, 오히려 지금 집권당이 순진한 브링크맨십(저자의 표현입니다)을 극력 회피하여 대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어차피 해법은 정면 대결 말고는 찾을 수 없는데,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을 당장 일으키기(일본은 중국과 싸울 힘이 없고, 중국은 어차피 일본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으니 부담스러워하고)보다 그냥 양국이 장래로 미뤄두기를 택했다는 결론입니다. 이 말을 저자가 굳이 하는 이유는, "희토류 전쟁"은 외교적 해법도 기술적 해법도 찾아진 적 없고,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씁쓸히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중등 과정 교과서에서 배우기로, 2차 산업 분류에는 "광업"이 항상 포함되었습니다. 주변에 "광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없는데 왜 이렇게 따로 항목을 만들어야 할까? 예전만 해도 미국에는 광산업자, 광산기사 등이 버젓한 직업군으로 존재했습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이른바 "브리-엑스 스캔들(이걸 소재로 한 영화도 있어요)"이 터진 것도, 여전히 광업은 한번 잭팟이 터졌다 하면 많은 이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다 줄 수 있는 수지 맞는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미국에서도 이런 직종이 사라져감을 저자는 꼬집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숙련 직원의 평균 연령대가 50대라는데, 이 정도면 청년층에서 신규 충원이 거의 안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현장에서만 전수될 수 있는 소중한 지적 재산인 암묵지는 허공으로 다 날아갈 판입니다. 지원자가 없을 뿐 아니라 각급 학교에서 교육 커리큘럼도 마련 안 되었고 설치되었던 학과도 다 사라져갑니다. 반면 국가에서 정책으로 보호하는 중국의 경우는 이와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희토류는 그 자체가 일종의 화학 합성 물질처럼, 원료로 쓰일 만큼의 고순도 상태를 의미있게 단괴로 모으는 과업조차 매우 힘듭니다. 전문 인력과 시설이 없으면 산업으로 자생하기가 극히 어려운데, 그나마 그런 국제 분쟁이 터져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요란하게 장식하고도 일반이나 정책 당국자의 인식은 매우 미진합니다. 더 무서운 건, p60의 그래프(밸류 체인)에 나오듯, 현재는 자원의 독점자일 뿐인 국가가 미래로 갈수록 소재- 부품, 나아가 완제품의 독점자로 점차 위상이 넓어져 간다는 겁니다. 희토류가 쓰이는 모든 전자제품을 생산을 쥐락펴락하는 국가가 앞으로는 중국이 된다는 뜻이죠. 희토류가 어느 전자제품에 쓰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고성능 기기 거의 모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