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이노베이션 - 모방에서 주도로, 중국발 혁신 세계를 앞지르다
윤재웅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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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분야에서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게 실리콘밸리냐 아니면 중국이냐 하는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답이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일인자, 트렌드 세터가 누구인지에 대해 획일적인 답을 내는 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산업 섹터가 과연 충분한 경쟁력, 아니 생존 가능성이나 갖췄는지 정직하게 자성(自省)해 보는 일이며, 특히 무서운 기세로 세계 시장을 장악해 가는 중국의 저력과 발전상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작금의 이노베이션 센터는 "모바일 섹터"에 한정된 건 아니고 4차 산업혁명 연관 전 산업 분야로 잡는 게 합당할 텐데 범위를 이처럼 넓히고 보면 중국이 실리콘밸리(나아가 미국과 서유럽의 첨단 산업 기지 전반)에 아직 못 미치는 분야가 많습니다. 허나 우리는 당장의 목표를 중국 추월로 잡아도 많이 버거운 형편입니다. 이 책에서 잘 짚고 있듯, 이미 우리는 중국에 많은 분야에서 경쟁력 우위를 내주었고, 더 비관적인 건 앞으로도 이런 간격이 좁혀질 전망이 별로 안 보인다는 사실이죠.

"만리방화벽"은 본디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마련한 인터넷 검열 수단이었으나 이게 1990년대~2000년대에는 자국 내 산업 보호 장벽으로 작용하여 현재의 텐센트, 바이두 등 IT 업계의 거인들이 자라나는 온상 노릇을 했습니다. 이처럼 불리한 여건을 오히려 성장의 역 기회로 잡고 일어선 게 중국 기업들의 특징인데, 이른바 "그림자 금융(p30)"은 지금도 중국 경제 구조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소기업은 국영기업과 달리 관치금융의 숨 막힐 듯한 규제에 시달리며 돈 가뭄 때문에 활개를 펴기 어려웠는데, 이걸 기업 성장의 좋은 기회로 활용한 게 알리바바입니다.

알리바바는 중국을 넘어 세계 굴지의 전자상거래 업체로만 우리가 압니다만 어느 기업이나 그렇듯 다른 한 발을 금융 섹터에 들여 놓고 쏠쏠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 알리바바는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며 신용의 위험을 해소하게 위해 일종의 자체 에스크로 제도를 마련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때 송금인(구매자)가 벤더에게 돈을 넘기기까지는 중간 예탁인(물론 알리바바 측이죠)의 손에 머무는 다소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때 아예 알리바바 측이 금융기관 구실을 겸해서 예금 상품 하나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권하는 겁니다. 일정 기간 맡겨 주면 이자를 붙여서 상환겠다는 거죠. 그리고는 그 돈을 소규모 자영업자나 (앞서 말한) 돈가뭄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 대부하여 예대마진을 챙기는 건데, 이게 한국의 현실이면 각종 규제 때문에 쉽지를 않습니다. 알리바바가 오늘처럼 굴지의 업체로 성장한 건 이런 부대사업의 성황에도 크게 의존했는데, 예컨대 한국의 모 쇼핑몰은 이번 무점포 은행 선정과정에서 탈락한 사례와 크게 대조되죠. 쇼핑몰의 혁신 의지나 당국의 전향적인 정책이나 우리가 중국에 크게 모자란 대목입니다.

은행 섹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세계 어딜 가도 흔히 눈에 띄는 유니언페이는 본디 중국의 독점금융기관인데, 한국의 여느 인스티투션이 함부로 넘보지 못할 만큼 각종 기법을 정교히 발전시킨 우량 업체이죠. 그런데 이 유니언페이의 혁신이, 마윈의 알리바바가 보기엔 한참 미흡하다는 겁니다. "은행이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가 은행을 바꾸겠다." 어쩌면 부분적으로 우리도 이런 진취적인 양상을 카카오뱅크 등의 노력으로 다소 따라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서도 누누이 강조하지만 본디 중국 IT 산업은 미국의 것을 그대로 베껴 자국에 이식한 무작정 모방에서 첫발을 떼었습니다. 텐센트는 그 중에서도 "자국 경쟁업체의 장점과 성취까지 일일이 따라한 모방"으로 욕을 많이 먹었는데, 경영이란 기술 자체의 독자성 창의성 외에 플러스 알파, 그 무엇인가가 더 개입해야 완전한 성공이며, 마화텅 회장은 이제 "인터넷 플러스"라는 새로운 아젠다를 들고나와 이 추세흘 선도하고 있습니다(정확하게는 위양[於揚. 어양]회장이 먼저 사용). 이는 전통산업과 인터넷 산업의 창조적 융합을 일컫는데, p75를 보면 오토바이로 무엇인가를 급히 배달하는 바이커의 사진이 있습니다. 무물론 한국에서도 흔히 보는 풍경이긴 한데, 이 사진이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듯 플러스 뒤에 붙는 중점 육성 산업이란 주로 "유통"에 관련됩니다.

"인터넷 플러스"는 이처럼 본디 민간에서 시작한 걸 이제 정부 당국이 착실히 이어받아 몇 배의 가속이 붙어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으로 기능합니다. 한국에서도 벌써 몇 년 전부터 크게 유행하던 말 중에 O2O가 있는데, 보통 전치사 to 전후에 붙는 단어가 같은 말인 것과 대조할 때 유독 튀기도 하는 신조어입니다. 오프라인 샵에서는 그저 아이쇼핑만 하고, 정작 구매결정은 인터넷에서 하는데 이런 걸 두고 "쇼루밍"이라고 합니다. 비싼 임대료와 재고관리 비용은 그것대로 감당하면서도 정작 전자상거래 업체 좋은 일만 시키는 이런 현상을 지양하기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 두 섹터가 하나로 기능하여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몸부림이죠.

내수는 엄청난 인구 집단을 배경으로 삼았으니 본래가 체질이 튼튼하고, 민간은 겁 없이 돈 벌어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혁신의지에 가득차 있고, 국가는 체계적으로 이런 혁신의 사슬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주고 있으니 중국의 혁신이 나아가는 진로는 현재 거침이 없습니다. 특히 저자는 책 여러 대목에서 강조하길, 지도층의 근본적인 교체가 없으니까 정책 기조가 일관성이 있고, 그러면서도 양회(정협과 전인대)의 정기적인 개최를 통해 지도부의 세대 물갈이가 합리적으로 이뤄지긴 하니 기풍의 침체나 관성에의 매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반면 한국이나 (심지어 미국도) 한번 정권이 바뀌었다 하면 잘된 것이든 몹쓸 정책이든 근본부터 다 쓸려나가니 혁신의 바른 싹이 움틀 여지도 안 남는다는 거죠. 타당한 지적입니다.

중국의 혁신은 그 자체가 무슨 썩어빠진 사대주의마냥 찬양하고 떠받들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위에 매달아 경계와 각성의 지표로 삼아야 할 뿐입니다. 십 년 전에는 중국이 제조업으로 욱일승천할 때 우리가 중간재 보급 기지 노릇을 하며, 중국이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매상고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우리의 지갑도 두둑해지는 보완 공생 관계, 윈-윈의 릴레이션십이 가능했습니다. 허나 지금은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드" 트렌드가 현저하며, 철강이든 전자든 중간재를 구태여 한국의 업체로부터 조달하지 않고, 우수한 자국 업체에 맡겨 국부의 해외 유출을 최소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의 앞선 기술을 따라잡느냐 하면 여전히 기간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현저한 격차를 두고 밀리는, 이른바 샌드위치 압박에서 헤어날 길이 안 보입니다.

저자는 이른바 한국형 "러스트 벨트"를 거론하며, 한때 잘나갔다가 지금 모조리 문을 닫고 근근이 헤비테일 계약 방식으로 울며겨자먹기로 연명하는 남부 지방 곳곳의 조선소를 상징처럼 지적합니다. 조선업은 매뉴얼화한 공학 지식만 중요한 게 아니라, 우수인력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현장 전수되는 "암묵지"가 중요한 산업 분야인데, 이 인력들이 현재 중국으로 다 스카웃되어 추세 역전에 큰 몫을 한다는군요.

정부는 홀데인 원칙의 준수로 민간 R&D에 비능률적으로 간섭하지 말아야 하며, 스마일 커브(꽤 아이러니한 이름이죠)의 고 부가가치 체인을 집중 지원하여 산업 전반에 낭비적인 흐름을 제거, 차단해야 합니다. 허나 지금의 동향을 보면 한숨만 절로 나오고, 대기업 역시 현재의 단기 이익 추구에 급급하여 투자를 등한히하고 장기 비전 수립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미래지향적 대응이 특히 중국에 비해 우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인데, 산 너머 산이라고나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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