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전쟁 2 - 백악관 워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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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잠시 등장했던 묘령의 처녀 아이린은 이 2권에서 그저 남주 인철의 곁을 지키며 그 매력을 부각하고 고비마다 요긴한(결정적인) 어시스트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기능을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주제의 부각에 기여를 한다고 봐야겠는데, 더 이상 말을 하면 내용 누설이라서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물론 최이지도 나옵니다)

"그래봤자 다 꼭두각시들이지...." 좀 위험하기까지 한 발언이었는데 이건 OOO이 경솔해서라기보다 어느 정도는 OO 앞에서 자기 신분을 과시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겠고, (조금 스포일러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거부감(양심의 명령과 타고난 기질)의  발로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 2권의 마무리를 보며 작년 이맘때 방영된 영드 <셜록> 새 시즌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는데, 물론 두 인물(누구와 누구?)은 외모, 나이, 동기 등에서 무척 차이가 크긴 하지만 재능과 무모한 선택 때문에 영어의 몸이 되었다는 점만큼은 같죠.

개인의 인생도 그렇고 집단(기업, 공동체 등)의 장래 개척도 그렇고 한 국가나 전 지구의 운명도 결국은 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어떻게 중지를 모아 유효하고 도덕적이기까지 한 방정식의 해(解)를 찾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2권에서 (캐릭터) 문재인 대통령은 이른바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문제를 거론하며, 당찬 재원 최이지의 서한(1권에서 나왔던)이 암시한 이슈를 골똘히 파고듭니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임종석 비서실장도 등장하는데, 국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동시에 풀어내며 주변국도 만족시키고 평화도 유지하는 방안이 대체 무엇이겠냐는 겁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마치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끼의 대작들에 나오는 인생의 과제처럼 심오한 울림을 확산하는데, 고전에서 제기된 질문과 차이가 있다면 이 작품 속의 난제는 형이상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당장 우리 모두가 죽고사는 일이 달렸다는 점이겠습니다. 근세 유럽에서는 이에 가장 가까웠던 게 1648년 베스트팔렌 체제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소설이나 현실이나 400년 전 현황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문제가 꼬여 있으며 파국이 닥칠 시 인류가 당면할 비극도 훨씬 심각하죠. 여튼 김진명 작가는 떡밥을 던져 놓고 회수를 게을리하는 무성의는 보이지 않습니다. 답은 소설 후반부에 매우 선명히 제시되는데, 감격과 동시에 약간의 전율을 느낄 독자도 있겠습니다.

2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푸틴, 시진핑 등 국제 정치의 거물들이 원 이름 그대로 등장하며 각자의 잔인하고 영악한 잔머리를 열심히 굴려대는데 판돈은 승자가 챙기겠지만 말판의 졸(卒)이 되어 희생제단에 바쳐지는 건 물론 힘 없는 대중과 백성들입니다(이런 비극은 현재 운 좋게 한국인들만 강건너 불구경하듯 피했을 뿐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티벳, 남미, 아프리카 어느 곳 민중에게는 이미 살을 저며내듯 아픈 현실입니다). 키신저 같은 이는 트럼프와 극우 세력에게 "한국을 그냥 버리고 중국의 세력권에 넘겨 주면 우리가 편하다. 맘 잘 맞는 일본만 파트너로 곁에 두고 가벼운 날개로 비행하는 게 훨씬 낫지 않냐?"고 충고합니다. 본래가 친중파이기도 하고(1970년대 당시 닉슨을 보좌하여 미중 데탕트를 이끈 장본인이죠), 냉혹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한 그의 (실제) 지론에 가깝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키신저뿐이 아니라 지난 십년기 전반에 세력을 잡았던 네오콘 일각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 일부 인사들도 이 문제에 대한 이견 때문에 경질된 적도 있습니다.

"참 나, 배은망덕한 꼴 더 이상은 못 봐주겠군. 그냥 버리는 카드로 생각하고 말지 뭐." 허나 꾼들의 셈속은 또 그리 간단한 계산에 그치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여기서 난다긴다하는 모사꾼들과 상대국의 파트너들을 찜쪄먹는 놀라운 술책가로 묘사되는데, 과장되고 바보스러운 언행으로 놀림감이 되곤 하는 그이지만 실제 기량은 좀처럼 측량이 어려운 고수이기에 그만한 부를 일구고 대통령까지 되었겠죠. 이 소설 속에서는 OOOO 측이 그를 선택한 덕에 대권을 쥔 걸로 나오는데(물론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힐러리나 전임자 오바마나, 심지어 젭 부시 측도 OOOO 측이 요구하는 "일전불사" 결단에 대해 미온적이었기에 선택에서 배제되었다는 식입니다.

OOOO은 왜 전쟁을 원할까요? 여기서부터는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혹은 그보다 한참 이전 시기부터 세상은 거상과 부호들이 배후조종하는 노름판이었다는 겁니다. 이해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단계까지 충돌하면, 전쟁으로 판을 쓸고 끝장을 봐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진 군주들은 밑천을 상환 못 했으니 퇴위, 추방 등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되고, OOOO들은 어떤 식으로건 투자 원금과 "그 이상"을 챙기고야 맙니다. OOOO들은 현재 미국에다 잔뜩 재산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미국 달러화로 표시된 재산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에 실제 가치 그 이상을 갖습니다.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면 OOOO는 투자처를 옮기면 됩니다. 지금까지 수백년에 걸친 역사 동안 그리 해 오면서 그 막대한 부를 유지해 왔습니다. 헌데 이제는 그리 못 하는 게, 중국은 지배 엘리트들이 이를 막습니다. "거기 들어간 순간 내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보면 돼." 이게 맞는 인식이든 그르든 간에, 더 이상 현재의 지위를 유지 못 한다고 그들이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는 순간, 전쟁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전쟁은 명분과 승전 가능성 사이를 절묘히 저울질한 후(누가?) 발발 시점이 결정됩니다. 히틀러도 소련이 그 시점을 넘겨 군수물자를 충분히 갖추면 더는 상대하기 버겁겠다 싶은 포인트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이 이대로 자꾸 크면 현 상태에서의 우위마저 유지 못하게 되고, 그럴 바에는 지금이라도 전쟁을 벌이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말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소설 속에서 지나치게 단순화한 상황 설정이긴 하지만, 미국 지배층의 위기의식과 현실 판단도 큰 그림에서는 이 소설 속의 시나리오와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등이 벌이는 이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위상은 뭘까요? 김진명표 소설의 감동은 바로, 저혀 수를 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뜻밖의 발상으로 우리 약소민족의 생존 돌파구도 찾고, 세계 평화에 결정적 기여도 하자는, 어찌 보면 순진하고 어찌보면 애국심으로 충만한 그 결말의 과감한 단색적 제시에 있습니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쓴 피히테도 생각나고, "어쨌든 결단이 필요함"을 역설한 칼 슈미트도 떠오릅니다.

(이하 약간 내용 누설 있습니다)
이 2권의 부제는 "백악관 워룸"입니다. 누가 뒤에서 부추기건 간에 개전을 주도하는 건 미국이고, 다만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린다면 이른바 back to back 포지션으로 협업의 진(陳)을 짜고 대항하는 두 강대국을 무슨 수로 미국이 상대하겠습니까? 이건 현 시점에서도 미국이 답을 못 찾는 난제 중 하나죠. 트럼프(극중 캐릭터)는 노회하게 수 하나를 내고(혹은 OOOO이 시킨 대로만 따라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중국을 압살하기 직전입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작전을 짰다고만 얼버무리는 대목도 있지만(또, 중국이 보유한 채권과 달러를 모두 무효한다고까지! 헉) 여튼 여기까지 국제 정세의 구도 제시는 꽤 그럴싸합니다. 이제 다시 미국의 단일 패권 세상이 열리고, 그 대가로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는 걸까요? 여기에서 인철과 ᇫᇫᇫᇫ는 묘안을 내어 파국을 막습니다. 대한민국은 진짜 세계 평화의 균형자가 되는 셈인데 픽션 속의 이 흐뭇한 결말이 현실에 조금이라도 수렴하게 하려면 우리 국민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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