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세계 -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리처드 하스 지음, 김성훈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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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세계 정세가 요동치지 않았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한국사만 해도 900여차례가 넘는 외침을 겪었다고는 하나, 독일 등 유럽의 중근세사를 살피면 도대체 이렇게 전란과 분쟁이 잦았던 땅에 어떻게 사람이 터잡고 살 수나 있었는지 고개가 갸웃해지곤 합니다. 언제나 대립과 갈등이 잦아들 날이 없던 세계였지만, 그 중 상당 국면은 "요동과 위험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이며 적은 어떤 이들인지"에 대한 인식만큼은 명확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정세 위협 요인이었던 미소 냉전 역시 "누가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모두가 다 알고들 있었죠. 뜻밖의 돌발사태로 의외의 해법이 찾아지긴 했으나 그 일이 아니었어도 미소 대결은 아마 원만한 타협, 혹은 점감하는 긴장의 소강으로 마무리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헌데 작금의 세계 정세 불안은 모든 것이 불확실성에 싸여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고조되지만 과연 이 두 나라가 전쟁 상대로 격이 맞기나 할까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중이 협력한다고 하지만 과연 두 초강대국이 서로 진정어린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고 보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IS 등 극단주의 세력은 표면상 미국과 서유럽을 겨냥해 테러 등 도발을 감행하지만, 이들은 그럼 러시아와 중국 등과는 우호적인 관계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고, 러시아나 중국의 지역 분립 세력과 언제든 연대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양국은 국가 분열 사태를 막기 위해 진압과 격멸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나아가, 과연 중국과 러시아는 언제까지 불안한 동맹을 유지할까요? 표트르 대제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을 때까지 동진한 이래 두 거인은 단 한 시점도 사이 좋게 지낸 적이 없습니다. 같은 이념 하에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시절조차 둘은 일촉즉발지경까지 치달았습니다. "누가 나의 적이고 친구인지,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하는지" 그 당사자들조차 갈피를 못 잡는 게 현재의 국제 정세입니다. 저자 리처드 하스 교수의 인식은 이런 질문에서 그 단초를 마련합니다. 책 제목의 DISARRAY는 그만큼 드러난 현상 모두가 아직 무슨 실체인지 감을 잡기 어렵고, 전례 없던 이런 불확실성이 위기를 키우는 중요 요인 중 하나라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장 중 하나가 '새로운 세계질서 2.0’입니다. 이 신질서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원리는 "주권에도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명제입니다. 영어로는 sovereignty인 이 오랜 개념은, 번역어로는 "주권"인데 과연 낱말 속에 "권" 자만 있지 의무나 책임을 뜻하는 요소(형태소)가 없습니다. 사실 이 말은 봉건제 하에서 상위의 통치자나 교황에게 함부로 간섭 받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는 데서 비롯했으니 그에 의무 같은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겠죠. 주권 자체도 간신히 명색만 유지할 판에 무슨 한가로운 의무를 고려했겠습니까.

중국은 남중국해 일원에 영해로서의 특수 성격을 주장하면서 이른바 "구단선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인공 섬도 지어 놓았고 역사적 연원도 충분히 존재하니 이 라인 안으로 넘어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인데, 이걸 두고 흔히 A2/AD라는 말(전략의 일환)을 쓰기도 합니다. 여튼 이때 중국이 내세운 명분이 "주권 행사"인데, 중국을 두고 구차하게 그 주권이 부인당할 만한 한계국가라고 인식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이유에서 뭔가 주장이 참 궁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제까지 아무나 다 잘만 다니던 공해가 일국의 영해로 바뀌는 판에 근거라는 게 고작 "주권 행사"라니. 여튼 주권이라는 근거에서 그토록 강력한 현상의 변경이 초래될 정도라면, 이제는 주권에 시시한 방어적 개념만 부여하고 말 게 아니라, 그 강력해진 외양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도 함께 지워야죠. 본디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아니었습니까.

세계 평화는 강대국 간의 알력으로만 신음하고 위협 받는 게 아니라 약한 나라들이 고질적으로 치르는 시련과 문제 때문에도 심각하게 흔들립니다. 저자는 과연 국제정치학계의 대석학답게 섬세한 개념 구분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요. 예컨대 국가로서의 위신은 유지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이 약한 나라는 weal power, 그렇지도 못하고 자국 내부의 통일성이나 정체성도 간신히 연명해 가는 나라는 weak state로 명명을 달리하는 식입니다. 미국이 1990년대 초에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폈을 때 쿠웨이트의 주권을 회복시킨 후 그 선을 넘지 않고 일단 작전을 종료했으며, 대신 이라크에 대해서는 이른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여 재기를 막은 사실은 유명하죠. 이때 아직 소련이 망하기 전이었는데 냉전의 공식 종료 이후보다 오히려 저때가 미국의 위세가 가장 등등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상에 "비행 금지 구역"이라니! 그러나 군사력이 현저히 불균형을 이룬 판에 당장 쳐들어가서 정권 자체를 와해시키지 않는 걸 고맙게 여겨야할 판이라고 할까요.

르완다 사태, 아이티 사태(모두 1990년대 전~중반에 벌어진 국제 위기였습니다) 모두 각각의 국가들이, 자국 국민 일부를 무력으로 공격하거나(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외국인 쿠웨이트뿐 아니라 엄연한 국민인 쿠르드족 거주지에 독가스를 살포한 적이 있습니다), 자국민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는 게 공통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p127). 후자의 경우 "보호하지 못했다"는 수동적 국면에서 그친 게 아니라 공격을 은연중에 방조, 교사한 혐의까지도 받는 거죠. 이른바 R2P는 이제 하스 교수에 의해 "주권의 새로운 의미로 편입될" 국가 내적 의무 중 하나로, "자국민을 정당하고 적법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이미 주권을 논할 자격을 잃는다"는 함의에까지 이어집니다.

이란의 경우는 보다 복잡합니다. 미국은 특히 오바마 행정부 당시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방침을 꽤 오래 유지했고, 제거(elimination)보다는 제약(constraint)이라는 틀로 해법을 마련하려 들었습니다. 국제 조약에 있어서 합의 문언은 그 타당성보다는 체결 당시의 협상력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안타깝지만 냉혹한 현실인데, 저자는 당시 국제 유가의 등락이라든가 이란 주변의 정세에 비추어 더 유리한 협상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큰 폭으로 양보한 건 매우 유감스러운 결과였다는 한 마디를 빼놓지 않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간의 긴장은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해묵은 과제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파키스탄, 인도 양국이 핵무장을 완료함에 따라 남아시아 일대의 지정학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그전까지는 명분상으로야 어떠했든 자원과 영토와 인구 수 면에서 열세인 파키스탄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추세였습니다. 저자는 "이미 상당수 무슬림들이 인도 사회에 동화되어 잘 살고 있는 형국에 별개의 무슬림 국가가 북동부에 따로 분립하는 자체가 인도에 대한 모독"으로 해당 국가의 지도자들이 인식한다고 정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도 아대륙 전체에 대한 지배권은 10세기 이래 파키스탄(현재의 명칭) 일대의 펀잡인들이 특유의 무공과 의지로 내내 유지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권력 구조 하부만을 간신히 지탱해 온 인도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게 조상 대대의 명예에 비추어 모욕적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종교 대립 문제가 아니죠. 여러 정치 세력이 아슬아슬한 연합으로 형식상 민주정체를 끌고 온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군부 정권이 국가를 장악한 독재 시스템이었습니다. 지아 울 하크가 사고로 죽고 민주화의 봄이 열리는가 했으나 이내 무능과 분열상만을 노출하고 곧바로 무샤라프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며 종래의 독재로 다시 회귀했죠.

"주권적 의무" 개념의 정립은 생각보다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그 창안자인 하스 교수 본인에게조차 그렇습니다. 의무의 개념은 곧바로 그 국가가 "정통성"을 과연 가지고 있느냐로 연결되는데, 이로써 그저 강대국에 대한 항변권 정도의 의미에 그치던 "주권" 개념은 더 입체적인 성격이 새로 입혀지는 셈입니다. 정통성이 부족한 주권은 권리만 내세울 뿐 의무는 내던지다시피한 불완전한 명분이며, 이는 예컨대 1989년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며 천안문 일대에 모인 군중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덩샤오핑 정권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입니다. 이 책에서 내내 강조되는 건, 도대체 자국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기본권을 탄압하는 국가가 과연 대외적으로 주권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명백한 부조리를 두고서도 "현실적 제약"이라는 비겁한 핑계를 대며 외면하는 데에서 현재의 국제 정세 불안이 유래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유럽 근세의 정치적 위기가 봉합되고 disarray가 진정되었듯, 북핵 위기이건 혹은 그 어떤 지역적 긴장이건 전쟁 없이 마무리되려면 국가 모두가 참여하는 이성적인 논의의 장이 우선 열려야 하며, 그때 이 "세계 질서 2.0과 주권의 신개념 정립"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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