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해방하라 - 지적인 삶을 살기 위한 최고의 방법
이드리스 아베르칸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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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species)에 속하는 동물끼리 견준다면 과연 특정 능력의 편차가 크게 벌어질까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우수한 뇌 기능에 기대어 이처럼 놀라운 문명의 진보를 이뤘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면 뇌를 활용하는 범위, 능률, 성과가 서로 엇비슷해야 상식에 맞는데, 우리 주변에서 확인하는 현상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게 이상합니다. 어떤 분들(기업 중역이나 재산가)은 "써 보니까 사람 능력은 다 거기서 거기야. 얼마나 좋은 기회를 손에 쥐느냐가 중요하지."라는 말도 하시던데,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좋은 기회란 건 어쩌면 숨겨진 재능과 잠재력을 계발할 기회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해서 아무 능력도 의욕도 없고 마인드셋도 틀려먹은 사람까지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아 이러면 되는구나"같은 각성을 어느 순간 맞이했다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뛰어난 인재로 거듭날 수도 있겠습니다. 타고난 조건이 모든 결과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게 요점이며, 심지어 "타고난 조건"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도 의문은 의문입니다.

저자는 비교적 나이가 젊은 분인데, 프랑스에서 스타 지식인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고 하네요. 이십대에 박사 학위 세 개를 취득했다면 그 두뇌의 수월성이야 익히 짐작이 갑니다만 이런 분이 "타고난 두뇌는 결정적인 게 아니며, 어떻게 후천적으로 잘 계발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를 외친다면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지과학은 이미 한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이정민 교수 등 선구자들에 의해 깊이 연구된 바 있으며, 오늘날 여러 협동과정이나 AI 관련 분야에 중요한 초석을 놓았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연구보다는 강연과 저술 활동에 집중하며 새로운 시대에 널리 요긴히 쓰일 인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자신만의 창의적인 의견을 널리 전파하는 걸 보며, 미래는 이처럼 기존의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적 선발자가 앞서 열어젖히는 것임을 새삼 확인합니다.

"좋아서 하는 자, 즐겨서 하는 자를 아무도 이길 수 없다."란 말이 있죠. 어쩌면 천재는 남과 다른 뇌구조를 갖고 태어나서라기보다, 거꾸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뇌 구조가 남들보다 더 빨리, 더 항구적으로 그리 형성되어 가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좋아지면 그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온갖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다 써 가며 애정을 결국 쟁취하려 들곤 하는데, 바른 공부도 어쩌면 이와 같다는 겁니다. 정말로 그 분야 지식이 알고 싶다면 나의 모든 타고난 잠재력과 지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목표를 달성해 내고야 마는 게 인간입니다. "사랑 없으면 탁월함도 없다!" 저자의 말인데,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신나는 명언이 꽤 많이 나옵니다. 마치 열정적인 강연자의 한바탕 신명나는 수다를 녹취록으로 옮긴 듯해서, 이 분야에 전혀 소양이 없거나 뇌 계발 같은 주제에는 평소 관심도 없던 독자들도 무척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순수하고 진정한 호기심에서 비롯한 활동이라야지, 그저 남한테 비뚤어진 과시욕이라든가, 자신에 대한 그릇된 과대평가에서 출발한 학습이라면 백날 천날 해 봐야 제자리걸음이죠.

박사 학위를 세 개나 딴 분이니만큼 그 관심사와 전공 분야를 어느 하나에 한정할 수 없겠으나, 저자의 열렬한 이슈 표적은 그 중에서도 "지식 경제학"에 놓인 듯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지식 경제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학문 분야"인데, 지식경제를 저자의 방식으로 정의하면 당연한 결론이긴 합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역사 자체가 곧 지식경제의 발달사와 일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곧 공통의 거대한 "두뇌"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며, 모든 개인과 문명과 집단은 이 두뇌를 공유 저수지처럼 이용하며 필요한 만큼 물을 대어다 쓴다는 논리, 비유입니다. 이 논의 도중에, 미국 NSA가 저지르는 해저 케이블 망 해킹을 은근히 비꼬기도 하는데(이런 유머감각과 자유로운 발상이, 대중을 매혹하는 명강사의 비결 중 하나입니다), 저자가 옹호하는 건 이런 비겁하고 비도덕적인 술수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제한없이 액세스하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기여를 할 수 있는 공동 데이터베이스의 창안을 뜻합니다. 이는 물리적 실체를 가진 것일수도 있고, (현재 우리가 누리는 초기 형태처럼) 느슨한 비유적 형태의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맹시(盲視) 현상은 이른바 "눈 뜬 소경"과도 같이, 멀쩡히 두 눈으로 보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기이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머리로 본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자는 이 이슈를 짚으면서도 인간의 두뇌만이 가진 고도의 효율과 능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필요 없는 정보를 덮는 건 시력이 아니라 당사자의 뇌가 내리는 결단과 습성인데, 공부(책에서 배우는 것뿐 아니라 인생에서 겪는 모든 체험이 다 공부이죠) 과저에서 꼼꼼하고 성실하게 모든 정보를 점검하고, 어설픈 감정을 개입시키면서 제멋대로 가치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같은 책을 봐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캐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열린 마음을 갖고 그릇을 크게 잡았으니 새로운 정보가 쏙쏙 섭취되고 기존의 스키마가 더욱 확장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편식하듯 정보를 섭취(왜곡)하는 게 버릇이 든 사람은, 무슨 책을 읽어도 기존의 편견만 재확인, 강화, 편향 확증할 뿐 도통 발전을 못 합니다.

저자는 역시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라, 현상학파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의 개념을 인용하여, 이 과정을 "노에마들의 진입 경쟁"에 비유합니다. 철학과 자연과학을 극과 극의 위상에 갖다 놓고 하층민처럼 진부한(근거 없는) 상식으로 왜곡하는 돌대가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깨닫지 못할 경지죠. 사실 저자의 교육 방법론을 아무리 확대 적용한다 해도, 이처럼 악성의 반사회 퇴행 분자, 근본이 비뚤어진 정신을 교화시킬 방법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승자 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건 안타깝게도 이 노에마의 두뇌 안착 경로에서도 비슷한 특성을 지닌 듯하나, 앞서 말한 것처럼 당사자의 두뇌가 유연하게 작동하면 보다 넓은 범위의 정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음은 당연합니다. "못된 사람"은 일일이 정보에다가 자기 감정을 투사하니, 들어오던 정보도 그 편협한 가시 철조망에 다 튕겨나가, 결국은 아무것도 머리 속에 남기질 못하는 겁니다.

저자에 따르면 코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한 인간을 구하는 자는 전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물론 선행하려는 의지와 동기를 널리 진작하기 위해 구사한 레토릭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말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서, 인간의 생명과 선한 마음씨의 가치는 어느 기준으로도 비교 형량할 수 없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저자는 "하나의 신경망을 구하는 자는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란 재미난 말을 합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 남의 이익과 명예와 권리를 훼손하고도 태연히 "좋아서 그랬다고 장난이라고" 가당찮은 궤변을 떠드는 자는, 본인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뭔가 정상적인 신경망 가닥이 괴사한 까닭에 저런 정신나간 범죄를 태연히 저지르는 거죠. 이런 자들은 감옥 안에서라도 그 불구의 신경이 교정되어야 마땅합니다.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고 비유법은 유창합니다. "신경은 신성하다."

모든 것에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잘못된 교육방식은 결국 왜곡된 인간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낙오자 그룹 일부가 범죄자로 타락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저자는 모든 단계가 즐겁고 유쾌하며, 따라서 인생 내내 희열에 가득찬 반복 학습, 개량을 위한 시행 착오가 가능한 학습이 되려면 교육은 곧 게임이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순응해야 할 것은 오직 자연의 이치뿐이다." 재미있는 건, 인지과학과 경제학을 동시에 천착한 저자답게, "경제는 산업 혁명을 통해 자연을 배신하는 듯했으나, 자연은 어느 시기에도 경제를 배신한 적이 없다." 같은 기막힌 명언으로 역사의 이치를 정리하는 대목입니다.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현실화시키는 개혁이야말로, 인간을 타고난 선한 천성으로 도로 복귀시키고, 모든 개인이 주어진 즐거운 삶을 누리며 가소로운 허세가 아닌 정직한 기여를 사회와 공동체와 지구에 베풀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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